연례행사처럼 지리산 천왕봉을 꿈꾸다가
혼자서는 너무 외로워 아내를 살살 꼬득여
비예보로 일주일 연기 후에 운좋게 심야버스 예약을 하게되어
지난 금요일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남부터미널을 출발하였다.
근래들어 아내는 산행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산을 싫어하던 나를 처음으로 산으로 이끌었고
평소 수 십년 수영으로 기본 체력은 탄탄하다 생각되었고
결정적으로 겁이 별로 없기에 나의 지리산행 동참권유에
가볍게 응해주고 준비도 해주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내는 산에 오를 때는 쉬이 오르고
내려 올 때는 힘들어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나는 그 반대라는 것과
밤차로 내려가 시작하는 무박산행의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귀경버스 예약을 평소 나 혼자 다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을 늦춰 예약을 해 놓았다.
졸다 말다 버스는 캄캄한 지리산 계곡길으로 접어 들고
새벽 3시가 넘어 종점에서 하차를 하며 다시 보니
우리 부부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고
서넛 밖에 안되어 보이는 여성들 중엔 단연 아내가 최고령으로 보였다.
물론 다른 산행에서는 가끔 한참 윗 연배의 부부가 산행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나도 그리 해보고 싶은 게 꿈이기도 하지만.......
예상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가끔씩 고개들어 하늘의 수 많은 별들도 보며
불쑥불쑥 나타나는 사다리같은 불규칙한 돌계단에 놀라기도 하면서
캄캄한 산길을 랜턴에 의지한 채 한참을 오르다보니
멀어지는 계곡물소리와 함께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저만치 보이는 천왕봉에는 이미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빛이 반짝거리고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가운 구름은 쉴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천왕봉에 올라 눈치껏 사진 몇장을 찍고 하산 시작,
오랜만에 지리산에 온 아내는 장터목까지의 길이 이리 멀고 험한줄 몰랐다며 궁시렁대더니
급기야 장터목을 지나 백무동하산길 초입부터 우려했던 발바닥통증이 시작된듯 힘겨워 했다.
걷다가 힘들면 수시로 쉬어가며 힘들게 내려가는 중에도
지천에 깔린 실한 도토리들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몇개씩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
도토리열매를 유난히 좋아하는 둘째 손자녀석을 준다며...^^
통증은 점점 자주 발생해 쉬기를 반복하고 걸음은 느려지고
배낭을 달라해도 주지 않는 아내의 배낭에서 몇가지를 꺼내 내 배낭에 넣고 걷지만
예약한 버스 출발 시간은 점점 가까워지고 길은 더 거칠고 힘들어지는데
힘겹게 따라오던 아내가 갑자기 뒤에서 소리를 친다.
" 나 이제 산에 안갓!! "
" 다다음주 설악산 공룡능선도 안갓!!! "
아~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외마디 비명같은 일방적인 통보를 들은 이후 한마디 말도 못하고
나는 갑자기 대역죄인이 되어 잔뜩 몸을 낮추고 눈치를 살피며
힘들게 산을 내려와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올라오는 버스안에서 2주후의 설악산 버스예약을 취소하고
비몽사몽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전철과 버스를 타고 귀가,
집앞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후다닥 대충 정리를 하곤 초처녁부터 둘다 곯아 떨어졌다.
일요일 어제 이른 아침,
각자 단잠을 자고 거실에서 만나 손을 들고 굿모닝~인사를 하는데
의외로 아내의 얼굴이 밝다.
" 우리 설악산 그냥 가자 ~!! "
' ??? '
" 아예 이번 주말에 가던가~! "
" 헉?? 정말~?? "
" 눈뜨니 컨디션이 너무 좋네~ "
성질 급한 나는 바로 이번 주 금욜 밤차 버스예약을 해버렸다.
물론 돌아오는 차편은 넉넉하게 평소보다 4시간을 늦추고 버스도 프리미엄으로 예약,
그리고 장시간 산행 후 하산시 발생하는 발바닥통증(앞부분통증, 중족골염 의심중 족저근막염 아님)을
보완할 수있는 방법을 더 알아 보기로 하고 물병 두개를 들고 화기애애하게 몸풀기 산책을 나갔다.^^
첫댓글 오 사모님과 두분이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셨네요
두번째 사진은 표지석위에 서계신것처럼 보입니다
다음 설악산은 더잘오르실것 같으니
즐겁게 잘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겁없는 부부,
사실 겁이 많은데 서로 으쌰으쌰~ 해주면서 꿈을 꿉니다.^^
두 번째 사진은 작년에 혼자 갔을 때 같이 오르던 청년이 찍어줬던 것을
흉내 내어 봤습니다.ㅎ
천왕봉에 이어
단풍이 시작된
공룡능선 잘
다녀오세요
두분 대단하십니다.
꼭 1년 전, 10월 1일 혼자 갔던 공룡엔 단풍이 그다지 들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어떨 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천천히 천불동을 놀며 내려오려구요~^^
부부가 함께 산행하는 모습이 멋집니다. 몇년전 새벽 일찍. 숙소를 나가 천왕봉 올랐던 기억이 나군요
분초를 다투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파란하늘때문에
사진찍기도 어려웠습니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하다 다녀오기엔 많은 무리가 따르더군요.
욕심만 앞서는 산행, 항상 조심조심 다니려구요^^
잠안자고 설악산이나 지리산가는것은 우리나이에 별로 건강에 안좋습니다. 꼭 산장에서 자든가 아니면 근처에서 자고 새벽에 오르는게 좋다고 추천합니다. 하여튼 부부금슬이 좋으실때 열심히 다니십시요.
네~주신 말씀이 맞습니다.^^
헌데 대피소예약도 어렵거니와 배낭이 그만큼 무거워지기도하니
장단점이 있더라구요^^
그저 조심조심 살살 오래 다니고 싶습니다.^^
부부가 같은 취미로 함께하는 것.
참 보기 좋고 부러운 일입니다.
설악산도 함께 잘 다녀오세요.
넵~!
모처럼 함께하니 여러모로 좋긴 하더군요.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즐기는 여행을 하고 오고 싶습니다.^^
지리산은 여전하군요 ^^
김장군님이 동행하신다기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무리였나 봅니다.
저는 석모도 다녀온 후 오늘 백운대 다녀왔고
10.18일 천왕봉에 갑니다. 중산리로 올라서
백무동 하산입니다.
윗글 읽고 나니 혼자 가는 제가 낫겠어요 ㅋㅋ
이상하게 두어 달 전부터 하산하면서 통증을 느끼더라구요.
잠시 쉬면 멀쩡해지는...ㅎ
18일도 매진이던데 그중 한자리시군요.
그 때 쯤이면 단풍이 제법 들었을 거 같습니다.^^
오늘 백운대
두 가지를 마치셨군요
중간 축하 드립니다. ㅎ
아구 대단하십니다.
제게는 딴세상 이야기 같아요.ㅎ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아요.
다시 내려올 산을 왜가는냐는 저를 이끌고 다녀주던 아내였습니다. 오래오래 같이 다니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ㅎ ^^
대단하십니다.
산을 오를때면 늘 내가 왜 이고생을 하나 싶다가도 정상에 오르면 그 쾌감이란 안 해보신 분들은 모르죠.
지리산은 어느 곳이든 하산길이 만만치 않죠.
부인께서 고생 하셨겠지만 다음 주 설악이라니.. 부럽습니다.
저는 귀때기 청봉은 가봤고 공룡능선은 아직 못가봤어요
10 월 휴일 일정이 빡빡하게 있어서ㅠㅠ ..
부럽습니다.
조심시 잘 다녀오셔서 사진과 재미난 일들 올려주세요.
공룡능선은 혼자서라도 해마다 갔었는데 아내랑가는 것은 몇년 된듯합니다. 하산시간을 더여유롭게 잡았으니 잘다녀 오겠습니다.^^
한창 때인 것, 자랑으로 알겠습니다.^^
취미 중에 부부가 함께하는 것에는
등산이 최고 인 것 같습니다.
70대를 넘어가면, 하고 싶어도
체력이 못 따라갈 수도 있지요.
한 나이라도 젊을 때,
두 부부 열심히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남편 동창들을 보면, 일주일에 한 번 씩이라도
꾸준히 등산한 부부가 늦게 까지 건강한 걸 보았습니다.
겁없는 아내덕에 뒤늦게 좋은 취미로 함께하니 고마운 마음입니다.
한창 때라 말씀해주시니 어려진 기분입니다.ㅎ
감사드리옵고 아름다운 가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