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8편 풀꽃>
①어느 봄날-38
보덕의 말에 옥희는 지레 알아차리었기에 그렇겠다고, 대답하는 거였다.
그러자 보덕이 자못 굳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처자나 내나 동갑 아니면, 한두 살 사이 또래겠지요. 한 또래란 무어든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바라건대 용서하여 주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동안 말을 꾸미고, 얼굴빛을 예쁘게 보이지 아니하였다. 또는 옥희를 달래려고, 하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겠으나, 그 보다는 한번 맺은 인연을 작심하여 끊지 못하는 그동안의 쓰라린 고뇌와 번민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걸 옥희는 넉히 알아들을 만하였다.
“스님, 걱정 마셔유. 거동안 월메나 보고 싶었겄어유. 쫌도 어렵기 생각 마셔유. 보름 아녀라 한 달이라도, 제 냄편이랑 함께 계셔더 존게유.”
옥희는 그녀의 속맘을 꿰뚫어보고, 있었고, 이렇듯 몇 년 만에 뜸을 들이어 찾아와 잠시 만났다가 헤어질 그녀가 마냥 가엾었던 거였다.
옥희가 말하는데 그녀는 속에서 열기가 오르는지 말은 없었으나, 눈망울에 수분이 번지었고, 그것이 불빛에 반사되어 번뜩이고 있었다. 그러자 옥희는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보듬으면서 되레 위로하듯 비비다가 밥상을 들고서 밖으로 나아가는 거였다.
천복은 그러는 두 여인의 말과 표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인간은 짐승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는 언제인가, 신문지상에 실린 해외토픽에서 수사자 하나를 놓고, 두 암사자가 맹렬히 싸우다가 하나가 죽자, 살아남은 남은 암사자 하나가 수사자를 차지하여 즐기더라는 실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더불어 지금도 사나흘 만에 한번쯤 줄곧 찾아드는 옥희의 여동생 순희도, 더불어 떠오르는 거였다.
아마도 옥희가 그녀의 그러한 사실을 알더라도, 방금 보덕에게 대꾸하듯 똑같이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덕의 말마따나 착한 처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보덕은 또 입을 여는 거였다.
“나는 불교도로서 부인에게 죄책감을 많이 느껴요. 그러나 나도 불자와 함께 만덕을 만들었고, 그 두어 달 남짓한 동안 인수보살의 손에 옷을 벗기고, 예의 뒷방에 들어가 흥분에 휩싸이면, 내가 돌이 아니었고, 내가 흙이 아니었으며, 쇠붙이는 더욱 아니라는 걸 일깨었어요. 실제 생체의 부처일 거라고 절실히 느꼈던 거예요. 그건 분명히 내가 내 살을 꼬집으면 아프고, 어루만지면, 열이 오르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나는 부처가 아니다! 이거였죠.”
천복이 그녀의 말에 감동이 되었는지, 사랑이라는 무형 무량하여 알 수 없는 사물을 손에 쥐고서 뜨거워 데거나, 아니면, 냉랭하게 시리지 않은 온기를 손끝에서 느끼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금 그녀의 작은 손을 덥석 쥐면서 말하였다.
“보덕스님, 나도 당신이 그립고,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도,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당신을 만나기조차 면구스럽기 짝이 없는 거지요.”
천복은 마치 잠재의식을 가지고, 하소연이라도 하듯 말하였다. 그러자 보덕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 않소이다. 만일 불자와 같은 남자가 없다면, 불문사찰도 대번 거미줄이 엉겨 폐허가 될 것이오. 인간이 있기에 신령스러운 부처님을 받들 수 있잖아요. 소승도 불자의 씨를 받아 만덕을 낳았으니, 비구니는 나도 마땅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사람의 태어남은 어디까지 사랑으로 빚어지는 거잖아요. 미워하고 싸운다면, 태어남도 불가능하겠지요. 사랑, 이게 곧 자비라는 거잖아요.”
천복은 보덕이 끊임없이 내뿜는 말 가운데에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탐구와 사색에 빠지어서 달관하였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한 뒤는 보덕이 눈도 깜빡이지 아니하고, 천복의 눈을 의식하면서 그리로 시선 꽂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는 갑자기 윗몸을 남자의 품에 무너뜨리는 거였다. 그러자 남자는 그녀를 뜨겁게 부둥키어 안는 거였다. 그리고 그네는 얼굴을 부딪으면서 비비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앙다문 입술이 풀어지더니, 눈조차 감는 거였다. 그러던, 여자가 두 팔을 보내서 남자의 목을 조이는 거였다.
그때 옥희가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로 뭉치어진 두 남녀의 뜨거운 광경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 이미 안동네에서 둘이 어우러지던 모습을 보았고, 방금 그녀가 예고하였던지라, 조금도 놀라지 아니하였다.
옥희는 잠시 그네를 바라보다가 달리어들어,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그녀의 윗몸에 걸친 속옷을 벗기어주자, 작은 어께에다 볼록볼록 솟아오른 젖무덤이 마냥 예쁘게 보이었다.
한번 엉긴 그네는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덧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옥희는 전등불을 아주 꺼버리었다.
불 꺼진 어둠속에서 그녀는 보덕의 아래 속옷마저도, 벗기어주었고, 남자의 옷도 죄다 벗기어주는 거였다.
창호지문으로 밖에서 스미어드는 희미한 불빛이 두 남녀의 나신과 한 덩이로 뭉치어진 채 꾸물거리는 불붙은 모습이 마치 활동사진마냥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첫댓글 옥희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ㅎ
항상 탕아 옆에는 현인이 있게 마련이지요. 선해야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선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지요. 천복이 그녀와 인연을
맺은지는 어느덧 10년입니다. 이전에 한 번 들렀으니 그동안 두 번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옥희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실로 가상합니다.
남편까지 양보해가면서 티를 보이지 않으니 여자로서 대단합니다.
사실 보덕도 참다 못해 찾아왔는데 옥희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으니 여자의 통량으로는 남자 못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