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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종명 창작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정종명
의 혹
정 종 명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곧추세우면서 수화기를 잡은 손에 서서히 힘을 가했다. 문학과비평 겨울호에 실린 채원종(蔡元鐘)의 <가면놀이>가 모정문(牟鼎文)의 <두 얼굴>을 표절했다고 서태욱(徐泰煜)이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도서출판 문예정신과 계간문예지 문학과비평의 편집주간이며, 저명한 문학평론가였다.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오는 건 좋아. 그렇지만 뭘 그렇게까지 서두르시나.”
그가 한 발 물러서는 듯해서 상대적으로 나는 조금 조급해졌다.
“아니죠.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그 날 오후에 이경후(李京厚)가 신문사로 나를 찾아오기로 선약이 되어 있었다.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도 한 그는 내가 문학담당 기자로 발령이 난 이래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기를 한가롭게 기다리고 앉아 있을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책상 위에다 행선지를 밝힌 메모지를 남겨놓고 신문사를 나섰다.
문예정신사까지는 도보로 이십분 거리가 채 못되었다. 토요일 오후의 거리가 흔히 그렇듯이 차도는 벌써 주차장이나 진배없었다. 나는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신문사 앞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걸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모정문의 <두 얼굴>이란 작품을 읽어 본 기억이 안 났다. 언제 어디다 발표한 무슨 작품일까.
나를 본 서태욱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읽어 본 적 없지? <두 얼굴> 말이야.”
“그러잖아도 여기 오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도무지 기억에 없는 작품인데, 어떤 작품입니까?”
“육십장 안팎의 짧은 단편소설이야.”
그는 내게 두 권의 잡지를 건네주었다. 하나는 문학과비평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처음 보는 어문학회 학술지(學術誌)였다. 전년도 가을에 출간된 그 학술지에 <두 얼굴>이 실려 있었다. 학술지에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좀 의외다 싶어서 판권란을 살펴보았더니, 발행인이 모정문이었다. 나는 문학과비평을 집어들었다.
“지금 시중에 한창 깔리고 있겠군요.”
“시내 대형 서점에는 이미 다 깔렸지.”
“그렇겠군요. 요즘은 몇 부나 찍습니까?”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물론 아니었다. 지나가는 말로 그냥 한번 해본 소리였다. 경험에 의하면 문예지 편집자들치고 발행 부수를 사실대로 공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책이 팔리지 않아 죽을 지경이라고 엄살을 떨다가도 이야기가 발행 부수에 이르면 금세 표정들이 달라지면서 노골적으로 허세를 부렸다.
“이만부.”
서태욱은 웃지도 않고 말했다.
“네에?”
“인쇄소에 가서 물어 보라구. 지난 여름부터 부수가 부쩍부쩍 늘어나더라니까.”
그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조만간 출판 재벌이 탄생하겠군요.”
“에이, 재벌은 무슨……”
그는 손을 들어 내저었다.
“돈 많이 벌어서 고료도 좀 듬뿍 올려 주고 그러세요. 문예지에서 주는 고료 가지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작가들이 써야 할 작품은 쓰지 않고 엉뚱한 곳에다 아까운 재능을 죄 탕진해 버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는 나와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피해 버렸다. 이야기가 원고료에 미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문예지들 중에서도 문학과비평의 원고료가 가장 박하다는 이야기를 나는 듣고 있었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도 실은 이놈의 애물단지 때문에 죽을 맛이라네.”
내가 알기로 계간문예지 문학과비평은 도서출판 문예정신을 지키는 간판이며 기둥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문예지들이 그렇듯이 문학과비평 자체는 적자 투성이였다. 하지만 문학과비평을 운영하면서 얻어지는 부가가치가 상당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문예정신사에서 시인(詩人), 작가(作家)들을 선별하여 그들의 시집이나 소설을 출판할 수 있는 것도 문학과비평이 이면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학과비평을 창간하기 전의 도서출판 문예정신은 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그렇고 그런 영세 출판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학과비평이 창간되고, 서태욱의 비평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문예정신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채원종의 장편소설 <사람의 숲>이 베스트 셀러에 오른 것도 그 좋은 예였다.
나는 문학과비평의 목차를 살펴보았다. <가면놀이>는 중편소설로 권말(卷末)에 실려 있었다.
“선배님.”
“응?”
나는 기자수첩을 꺼내 들었다.
“주로 어떤 점들이 표절인지 좀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겠습니까?”
“표절 여부를 검증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허나 이 작품의 경우는 정황이 너무 명백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지. 우선 인물 설정부터 살펴볼까.”
서태욱은 <가면놀이>가 <두 얼굴>의 표절일 수밖에 없는 증거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 가면서 세세히 설명했고, 나는 두번 세번 확인해 가면서 꼼꼼히 메모를 했다.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에 야기될 심각한 파장을 생각하면 어느 한 대목도 소홀히 들어 넘길 수가 없었다.
“저도 한번 숙독(熟讀)해 보겠습니다.”
취재를 마친 나는 서둘러 신문사로 돌아갔다. 이경후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나는 모정문의 <두 얼굴>을 먼저 읽고, 이어 채원종의 <가면놀이>를 읽어 보았다. 작품을 읽는 동안 서태욱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려고 의도적으로 애를 써 보았지만 허사였다. 내가 보기에도 표절이 명백했다.
나는 내친 김에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문단에 표절 시비가 일고 있다. 소설가 牟廷文씨(68)는 문학과비평 가을호에 실린 蔡元鐘씨(44)의 <가면놀이>가 자신의 단편소설 <두 얼굴>의 표절이라고 주장하고 나서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채원종씨의 <가면놀이>는 사회적 명사인 하박사를 중심으로 그의 2명의 여비서와 운전기사를 둘러싼 일련의 엽색행각을 통해 이중인격자이며 이중국적자인 하박사를 고발하는 내용의 중편소설이다.
작가 牟씨는 이 소설이 某 어문학회지에 실린 자신의 단편소설 <두 얼굴>의 표절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어느 제자의 귀띔을 받아 <가면놀이>가 실린 문예지를 입수, 면밀히 검토했다는 牟씨는 표절의 근거로 두 작품이 비슷한 다음 사항들을 제시했다.
하박사가 사회적 저명인사이면서 이중국적자로 묘사된 점, 여비서 수진이 최근에 입사한 점, 윤미가 전 여비서라는 점, 영민이 하박사의 수제자이고 하박사의 중매로 전 여비서 윤미와 약혼했다는 점, 운전기사 명규가 하박사의 재산상속을 노리고 있다는 점, 하박사의 가족이 미국에 이민 가 있다는 점, 하박사가 현 여비서와 전 여비서를 농락했다는 점, 하박사의 침실이 이층에 있다는 점, 등장인물의 숫자와 직업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
이에 대해 <가면놀이>의 작가 蔡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두 얼굴>은 읽어 본 적도 없다면서 “표절이 아니라 모든 상황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표절설을 강하게 일축했다. 두 작품을 모두 읽어 보았다는 문학평론가 S씨는 “틀림없는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너 지금 추리소설 쓰고 있는 거냐?”
돌아다보니 이경후였다. 그는 어깨 너머로 방금 내가 작성한 컴퓨터 화면의 기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봤어?”
“모정문 선생님은 지금 국내에 계시지 않아. 국내에 계시지도 않는 분이 표절 운운 주장한다는 것부터가 환상적인 거짓말이잖아.”
“모 선생님은 그럼 지금 어디 계시는데?”
“오사카. 막내따님이 재일교포와 결혼해 일본에 살고 있잖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비어 있는 옆자리의 의자를 끌어당겨 그에게 권했다.
“채원종씨는 만나 봤어?”
“아직.”
“표절이 아니라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강하게 일축했다면서?”
“대충 그런 스토리로 흘러갈 게 뻔한 일 아닌가, 이 사람아.”
“발로 뛰어.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제멋대로 꾸며 쓰지 말고.”
“또 시작이다, 그놈의 잔소리.”
신문사 부근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집으로 옮겨 앉아서도 우리의 화제는 바뀔 줄을 몰랐다.
“기사가 나가게 되면 채원종씨는 그것으로 끝장이겠지?”
“문단의 웃음거리로 그칠 일이 아니야. 표절작가란 낙인이 찍힌 이상 무슨 낯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하겠나.”
“자업자득이야.”
“하지만 석연치 못한 구석이 많아.”
“주로 어떤 점이?”
“조만간 채원종의 창작집이 문예정신사에서 출간된다구. 그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내가 그 작품의 해설을 써 주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서태욱이라면 표절 시비를 쉬쉬 감추어 보려고 애썼을 거야. 채원종의 창작집 출간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말이야.”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이상 창작집 출간은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봐야겠지.”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동안 톡톡이 효자 노릇을 해온 <사람의 숲>을 봐서라도 문학과비평에다 <가면놀이>를 싣지 말았어야지. 표절인 줄 알면서 실어 준 저의가 뭐겠어?”
“처음에는 몰랐겠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 자는 처음부터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어. 알고 있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거야. 잡지가 나오는 날 기자를 불러 그 사실을 슬그머니 흘려 준 것이 그 증거야. 고도의 계략이 숨어 있는 것 같애.”
나는 천천히 술잔을 비워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정문 선생님의 작품을 표절한 작가야. 그런 채원종을 애써 두둔하는 이유가 뭐야?”
“이번에 그의 창작집 해설을 쓰면서 나는 채원종이란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어. 그는 찬사를 받아 마땅한 능력 있는 작가야. 더더욱 중요한 것은 채원종씨와 모정문 선생님의 인간 관계야. 채원종씨가 모정문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응.”
“내가 장담하건대 채원종씨는 스승의 작품이나 표절하는 그런 부도덕한 작가가 아니야.”
“하지만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는데야 어쩔 수 없잖아.”
밤이 꽤 깊어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이경후가 찾아왔다. 그의 집과 우리 집은 자가용으로 약 십분 거리였다. 그는 등산복 차림이었다.
“나 지금 등산 가는 길에 잠깐 들렀어.”
그는 아파트 출입문 앞에서 가지고 온 책을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지?”
“읽어 봐. 읽어 보면 참고가 될 거야.”
그것은 포항에서 발행되는 동인지(同人誌) <동해문학>이었는데, 거기에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반성하자’는 채원종의 권두언이 실려 있었다.
――당신이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나는 반갑게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소설은 중․단편 위주로 발전해 왔습니다. 문학의 한국적 후진성으로 진단할 수밖에 없는 이런 현상과 관행은 2천년대를 목전에 둔 지금 이 시점에서도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각종 문학상이 난립해 있습니다. 그 중의 몇몇 문학상은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고 있어 문단 안팎의 관심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그 문학상의 수상작은 예외 없이 중․단편입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수상의 물망에 올랐던 후보작까지 합쳐 단행본으로 묶어 팔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통과 권위까지 싸잡아서 빤한 장삿속으로 타락해 버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작태 앞에서도 우리 문단은 지금 속수무책입니다. 심지어 그런 작품들을 선정하는데 일조를 아끼지 않은 심사위원조차도 자기 반성 같은 것을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이상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장사꾼이 주선한 잔치마당에 묵시적인 참여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펴낸 한국문학전집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가령 100권짜리 전집이 나왔다고 합시다. 100권짜리 문학전집, 이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찬 대역사(大役事)입니다. 이런 정도의 분량이면 우리 나라 문학 작품의 대표작은 거의 망라되었다고 믿어도 좋습니다. 여타 출판사에서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고 또 우려먹은 작품들을 골라 모았다는 점이 다소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그것까지야 구태여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겠지요. 그런데 나는 여기서도 참으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이 100권짜리 문학전집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작품이 중․단편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사정이 그렇고 보면 그동안 오로지 장편소설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온 작가의 작품이 이런 자리에서 제외되고 배척당하게 마련인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
신문에 실리는 기사나 월평(月評)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주먹만한 활자에 대문짝만한 얼굴 사진까지 곁들여져 있어서 모처럼 대단한 작품이 나왔나 보다 싶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내용을 훑어보면 고작 100장 안팎의 단편소설이거나 길어야 300장 안팎의 중편소설을 소개하고 있기가 예사입니다. 이런 기사가 실린 난에는 으레 장편소설 출간도 구색 맞추어 소개되고는 있지만, 그 내용이 아주 빈약합니다. 1단짜리 기사로 두세 줄, 길어야 대여섯 줄로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1천장, 많으면 2, 3천장 이상의 장편소설이 그런 식으로 푸대접을 받아도 누구 하나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이의를 제기할 처지도 못됩니다. 100장 내지 300장 안팎의 중․단편만도 못한 푸대접을 받아 가면서 애써 장편소설에 매달린 작가의 노고를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기업체에서 발행하는 사보(社報) 덕분에 우리 작가들이 그동안 참 많은 꽁트를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콩트집도 여러 권 나왔구요. 하지만 이들 콩트가 비평의 대상이 된 적을 나는 보지 못했습니다. 콩트와 단편의 속성이 다르고, 중․단편과 장편의 위상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짧은 소설이 우대받는 우리 나라 문학 풍토에서 꽁트가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는 까닭을 나는 모르겠습니다. 중․단편이 우리 나라처럼 우대받는 나라는 아마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감히 단언합니다. 지금은 비록 빼어난 우수작으로 손꼽혀 세상의 눈과 귀를 속이고 허명(虛名)을 훔치지만 그것이 중․단편인 이상 오래잖아 지금 우리가 예사롭게 대하는 콩트 이상의 관심도를 지니지 못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소설의 주체는 마땅히 장편이어야 하고, 그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중․단편이 노벨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할 줄로 압니다.
말이 기왕에 노벨문학상에 이르렀으니 짧게 한마디만 언급하겠습니다. 어쩌다 그 방면에 길이 열려 작품이 영어나 불어로 번역이 되기만 하면 그 당장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이 꺼뻑 죽어 달려올 것처럼 착각하고, 나라의 힘이 거기에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는 덜 떨어진 얼치기 시인․작가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습니다.
요즘 생각을 바꾸자는 말들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문단도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시인․작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춘문예를 포함한 각종 문학상 심사에 참여하는 심사위원들, 그것을 주최하는 출판사와 잡지사들, 그리고 문학비평가들 모두가 마음의 그릇을 크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장편소설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조금 잘 팔리면 대중소설로 매도하고, 안 팔리면 함량 미달로 단죄하는 이런 무책임한 이분논법으로 방치해 둔다면 우리의 장편소설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내가 문단 말석에 보잘 것 없는 얼굴을 내밀었을 때를 가끔 돌이켜보곤 합니다. 그 무렵은 난생 처음 만난 사이면서도 동류(同類)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치 오랜 지기지우(知己之友)인 것처럼 서로 인정 베풀기를 꺼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편인가 저편인가 먼저 알아보고 내 편이 아니면 깔보고 업신여기고 배척하고 손가락질하는 일이 노골적이게 되었습니다. 인심이 이렇게까지 야박하고 각박한 적이 옛날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걸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문학상 심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점도 적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허물 있는 자에게 죄를 내리기보다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기가 더 어렵다 하였습니다. 공정하고 명백하게 살펴서 의혹이나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권하고 강요하는 이가 있더라도 모름지기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양하고 양보하여 덕과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책임이 가도록 스스로를 낮추어 삼가는 것이 폐단을 방지하는 지름길이 아니겠습니까. 두어 번 선택받아 위력을 발휘해 보았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지, 나아갈 자리와 물러서야 할 곳을 구분하지 못하고, 부르는 곳마다 숨가쁘게 달려가서 사정(私情)을 교묘히 숨기고 평소에 친한 사람이나 아류(亞流)를 밀어 주고 끌어올리기를 능사로 삼는 이가 우리 문단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신춘문예에 참여하는 심사위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양한 개성을 갖춘 신인을 발굴한다는 것은 우리 문학의 내일과도 직결되는 문제여서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자면 심사위원도 따라서 다양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만한 능력과 덕망을 갖춘 작가가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고 권한다 하여 때만 되면 신문사마다 쫓아가 어줍잖은 평문(評文)으로 지면을 어지럽혀 뜻있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소인배는 없는지요. 보기에 딱하고 민망하지만 이런 사람들이란 예로부터 제가 남보다 잘난 줄만 알았지 세상에 사람 있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이 없습니다. 사양하고 양보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느냐 충고할라치면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게 마련이어서 차라리 가만히 웃어 보이거나 못 본 척 돌아서는 것이 미덕인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면서 젊은이들의 버릇 없고 방자함을 탓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렇다고 사태가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비록 거기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시류에 야합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어가고자 고군분투하는 젊은 작가들이 우리 곁에 많이 있습니다. 출판사나 문예지의 주구(走狗)로 전락해 버린 사이비 비평가들이 비평 일선에서 물러서고, 여타 작품은 읽어 보지도 않고 미리 수상자를 결정해 가지고 심사장에 나아가 교묘한 화술과 문력(文歷)의 권위로써 상대방을 제압하여 자기 고집만 부리거나, 주최측의 농간에 놀아나면서도 그게 아닌 척 시치미를 떼는, 어른답지 못한 심사위원 단골손님들이 도태되는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사람 만났다는 실적 쌓기에 분주한 관련 고위 관리(官吏)를 만나 사리에 닿지도 않은 몇 마디 요설을 중언부언 지절거려 놓고 마치 한국문학 발전에 지대한 직언(直言)이나 남긴 듯이 으스대는 덜 떨어진 문사(文士)들이 설 자리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인․작가가 같은 자리에 함께 있더라도 말이 비평가나 문학상 심사위원에 미치게 되면 입을 가리고 손짓을 하면서, 이로 인해 다만 손해를 입을 따름이라고 서로 경계하기에 분주한 소인배들이 물러서는 날, 우리 작가들의 서사 역량을 충분히 자아낼 수 있는 문학적 장치도 자연스럽게 마련될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열심히 쓰십시오, 사랑하는 나의 마글론!――
내가 그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서태욱이었다. 그 이유는 서태욱이 그동안 각종 문학상이나 신춘문예의 단골 심사위원으로 위력을 발휘해 온 때문이었다. 서태욱을 구체적으로 지칭한 대목은 물론 그 글의 어느 대목에도 없었다. 하지만 서태욱을 연상하는 글이라는 점을 인정하는데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서태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문학상의 수상자로 문예정신사에서 창작집을 내지 않은 작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숨겨진 비밀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서태욱 주변에는 많은 젊은 작가들이 어른거렸고, 문단 안팎에서는 그들을 서태욱사단으로 분류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사람의 숲>을 낸 이후로 채원종 역시 그 대열에 편입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서태욱에게 반기를 드는 듯한 글을 내놓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서태욱이 채원종을 타기(唾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나는 채원종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요즘은 퇴촌 집필실에 내려가 계시는데요.”
채원종이 직장 없이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전업작가라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교외(郊外)에다 집필실까지 갖추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의 부인이 초등학교 교사였다. 나는 부인이 가르쳐 주는 퇴촌 집필실 전화번호를 메모지에다 옮겨 적었다. 전화를 끊기 직전에 그의 부인은 말했다.
“지금 집필실에 계시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네요.”
“왜요?”
“오늘 아침에 통화를 했는데 오전 중에 서울로 들어오신댔어요. 문예정신사에 볼일이 있다면서요.”
“일요일인데, 출근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부인과의 통화를 끝내고 퇴촌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걸어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혹시나 싶어 이번에는 문예정신사로 전화를 걸었다. 당직 근무자거나 경비원인 듯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서태욱 주간님께서 나와 계십니까?”
“아니요.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매우 귀찮아하는 투가 역력했다.
“댁에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회사에 나가셨다고 하더군요.”
“어디신가요?”
“신문삽니다.”
“어느 신문……?”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곧 후회했다. 채원종이 거기에 들렀더냐고 물어 보았어야 했고, 나중에라도 그가 나한테 전화를 걸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놓았어야 했던 것이다. 다시 전화를 걸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말하는 도중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린 탓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서태욱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역시 부재중이었다.
나는 채원종의 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밤이 늦어도 상관없습니다. 상의할 일이 있어 그러니 나한테 전화를 걸어 주시면 좋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나는 그의 부인에게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러나 채원종에게서는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다. 밤에 나는 다시 그의 부인과 통화를 했다. 채원종은 그 날 집에도 오지 않았고, 하루 종일 전화 연락도 없었다고 그의 부인은 대답했다. 퇴촌 집필실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낮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한 나는 다시 채원종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실종(失踪) 중이었다. 오전 내내 기다렸으나 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오후에 나는 문예정신사로 서태욱을 찾아갔다.
“제가 알기로 선배님은 문학과비평에 실리는 작품을 사전에 읽어 보고 게제 여부를 결정한다고 들었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가면놀이>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물론이지.”
“그렇다면 표절 여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쿡 찌르듯이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처음에는 전혀 몰랐지. 나중에 편집장이 갖고 온 견본책을 살펴보다가 문득 그런 의심이 들었지. 그래서 부랴부랴 <두 얼굴>을 다시 찾아 읽어 보게 되었던 거야.”
“사안이 사안인만큼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점은 선배님께서도 충분히 이해해 주실 줄로 압니다.”
일단 유보하겠다는 암시로 한 말이었다. 서태욱은 즉각적인 응답을 회피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야.”
서태욱은 대한신문 기자 출신이다. 그러니까 1980년에 신군부(新軍部)가 등장하는 와중에서 쫓겨난 해직언론인(解職言論人)이었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복직이 되었지만 그는 끝내 복직이 되지 못했다. 그의 그런 전력(前歷)을 알고 있는 우리 일간지 문학담당 기자들은 알게 모르게 그의 활동을 도와 주려고 적잖게 노력했고, 그 역시 우리 기자들을 적당히 거느릴 줄 아는 요령을 기자 출신답게 유감 없이 발휘했다. 이른바 작가 고문광(高汶光)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문광은 쉽게 말해 기인(奇人)에 속한다. 나이 서른을 겨우 넘긴 처지이지만 수염과 머리를 길러 늙은 도인(道人)처럼 행세했다. 그는 문예정신사에서 그의 장편소설 <사주보감(四柱寶鑑)>이 출간되면서 문단 안팎에 처음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세수도 이발도 하지 않았고, 손도 씻지 않았으며, 이도 닦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디를 가나 항상 아름다운 여인을 대동했다. 주간지나 잡지에서도 그의 괴벽(怪癖)이 소개되는가 싶더니 드디어는 텔레비전 화면에도 그의 더럽고 지저분한 얼굴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드디어 그의 장편소설 <사주보감>이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다. 문예정신사에서는 때맞추어 대대적인 광고 공세를 전개하여 그의 주가를 더욱 드높였다.
모 주간지에서 처음으로 그의 괴상한 행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의 괴벽이 사실은 위장된 연출(演出)이라고 그 주간지는 폭로했다. 그 예로서 <사주보감>이 출간되기 전의 고문광이 얼마나 깔끔하고 정상적인 생활인이었는가를 여러 장의 사진으로 증명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태백산에서 오랫동안 수도생활로 일관한 게 아니라 모 메리야쓰 공장 총무부에서 근무하다가 물러난 월급장이 출신이었다. 여기다가 <사주보감>의 주독자가 문예정신사 직원들이라는 이상한 소문도 함께 퍼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베스트 셀러로 조작하기 위해 문예정신사 직원들이 대형 서점마다 찾아다니면서 <사주보감>을 암암리에 사들였다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서태욱이 나섰다. 그는 우리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사실 여부에 상관 없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주보감>의 중판(重版)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가까스로 사태가 진정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그동안 문예정신사에서 출간된 베스트 셀러 전부가 불신(不信)의 나락으로 전락하는 치명적인 수모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제가 선배님 입장이었다면 이번호 문학과비평의 배포(配布)를 일시 유보하는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지. 아다시피 나는 이 출판사에서 힘들여 일해 주고 월급 받아 먹는 일개 고용인에 지나지 않아.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책을 내 멋대로 처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문예정신사에서 서태욱은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었다. 문예정신사 사장 서태익(徐泰翊)은 그의 친형이었다. 그는 모 아동물 출판사의 영업국장 출신으로 편집권 일체를 아우 서태욱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문학과비평의 배포 유예는 물론 경우에 따라 파기(破棄)도 가능한 일이었다.
“포항 지방의 젊은 문인들이 내는 <동해문학>이라는 동인지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있지.”
“거기에 실린 채원종씨의 권두언이 재미 있더군요.”
“동감이야.”
반응이 의외로 너무 담담해서 신기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악감(惡感)을 가진 게 아니냐고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채원종씨의 창작집은 예정대로 나오게 되는 겁니까?”
“자네가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표절 작가로 낙인이 찍혔으니 당연히 출판을 포기해야겠지요.”
“생각해 보겠네.”
신문사로 돌아갔을 때, 나는 데스크에게 불려갔다.
“지금 바빠?”
“아뇨.”
“얼굴 잊어 먹겠어. 우리 가끔 얼굴 좀 마주 보면서 함께 먹고 살자구, 응?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었어?”
요점은 마지막 대목일 것이 틀림없었다.
“문예정신사 서태욱 주간을 만났습니다.”
“아, 그래?”
그는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그만 가 봐.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송기자.”
“네, 부장님.”
나는 도로 돌아섰다.
“서주간은 내가 올챙이 시절에 모셨던 대선배야. 알고 있지?”
“네.”
“사실은 말이야. 내가 그동안 좀 소홀했어. 다음에 만나면 내가 언제 한번 조용히 모시겠다고 정중히 말씀 좀 전해 주겠어?”
“알겠습니다.”
그는 아까처럼 다시 이마 위로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서태욱과 통화를 했다고 그는 못박아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태욱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나는 서둘러 모정문의 일본 전화번호를 수배했다. 이경후가 그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모시모시”
여자였다.
“여보세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아 예. 누구신가요?”
“대한신문 문화부 송병국 기자입니다. 모정문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지금 거기 계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 있다가 모정문이 전화를 받았다.
“나 모정문이오.”
“저는 대한신문 문화부 송병국 기자입니다.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경후 군과 댁에서 한번 뵈온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자신 없는 어투였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용건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오.”
“작가 채원종씨가 문학과비평 가을호에 <가면놀이>란 중편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께서 지난해에 어문학회 학술지에 발표하신 <두 얼굴>을 표절한 작품으로 밝혀졌습니다.”
모정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숨소리가 조금 높아지는 것을 나는 수화기를 통해 감지했다.
“듣고계십니까, 선생님?”
“듣고 있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면놀이>란 작품을 읽어 보기 전에는 내가 뭐라고 말할 계제가 아닌 것 같소.”
그의 어투는 퉁명스러웠다.
“항공편으로 문학과비평을 급송(急送)해 드리겠습니다. 읽어 보신 다음에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소.”
“아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표절 여부가 너무 명백합니다, 선생님. 문학평론가 서태욱씨가 증언해 주었습니다.”
“채 군은 뭐라고 하던가요?”
“우연의 일치라고 잡아떼었습니다.”
나는 일단 거짓말로 응수했다.
“채 군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그냥 넘어갈 일 아니겠소?”
“예?”
“본인이 아니라는데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소.”
나는 제자를 신뢰하는 모정문의 인품에 적이 감탄했다. 상대적으로 그런 스승을 배신한 채원종이 더욱 얄밉게 여겨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할 까닭이 없다고 나는 판단했다.
나는 채원종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문학과비평에 실린 <가면놀이>가 표절이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 때문에 어제부터 내내 통화를 시도했지만 채선생님과 연결이 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나하고 통화할 수 있도록 부인께서 주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사가 나가기 전에 그가 진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말하자면 최후의 통첩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기사 마감 시간까지 채원종은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는 데스크로 기사를 넘기고 퇴근했다.
귀가해서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데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 왔다. 아내가 건네주는 수화기를 받아 보니 상대는 채원종이었다.
“지금 오백사동 앞 공중전화부스에서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504동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앞동이었다.
“그럼 지금 우리 집 부근에 와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네.”
“제가 곧 내려가겠습니다.”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밖으로 나가 보니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는 좀 취한 상태였다. 그는 공중전화부스 부근의 나무의자에 꾸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는 약간 취해 있었는데, 인사불성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상가의 술집으로 갔다. 치킨 위주의 생맥주집이었다.
“채선생님 요즘 연애하시죠?”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해 보세요.”
“이 나이에 연애는 무슨 연애.”
그는 애써 웃었다.
“그럼 그 여자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시종 내 눈길을 피하고 있던 그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라니요?”
“마글론이란 여자 말입니다.”
그는 다시 피식 웃어 보였다.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마글론이란 별칭으로 부른 적이 있지요. 그 여자는 나를 피에르라고 불렀구요. 우리말로는 견우와 직녀를 뜻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로막을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나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 여자와 나는 고등학교 이학년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구 년 이 개월을 사귀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동안 사귀고도 우리는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요?”
“그 여자가 나보다 서너 달 먼저 결혼을 했습니다. 화가 나서 나도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지요. 그로부터 육 년이 지난 어느날 우리는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슬하에 형제를 거느린 가정주부였고, 나는 남매를 가진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내가 미쳐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오로지 그 여자만을 생각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었으니까요.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면서도 그 여자를 생각하는 한 사내의 부도덕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비전도 없이 예비된 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사랑이란 당사자들의 그 어떤 변명에도 상관 없이 궁극적으로는 손가락질과 따가운 비난이 기다릴 따름이지요.”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의 소설 <사람의 숲>에 들어 있는 이야기였다.
“스님 한 분을 만났다. 그 스님한테 여쭈어 보았다. 스님, 그 여자와 나는 왜 결혼을 하지 못했을까요? 스님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전생(前生)에서 아마 아들과 어머니였을 것이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에 맺힌 한(恨)의 올가미에서 풀려나는 듯한 구원의 빛을 보았다. 대충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나지 않았던가요?”
“읽어 보셨군요.”
“그럼 <사람의 숲>이 일종의 사소설(私小說)이었던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내가 겪었던 경험담이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의 소설 <사람의 숲>을 처음 내었던 출판사는 장음사(長音社)였다. 그런데 초판 2천부를 찍는 것으로 사장(死藏)되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나중에 모정문의 소개로 서태욱이 그것을 문예정신사에서 재출판했다. 그는 <사람의 숲>을 재출간하면서 계간문예지 문학과비평에다 ‘이 작품을 재평가한다’는 타이틀로 작품론을 실었다. 내가 사회부에서 문화부로 자리를 옮겨 앉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는 전공이 국문학이었고, 학생 시절에는 분명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취직이 되어서는 오랜 동안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문화부로 떨어진 것은 순환근무제의 일환이었다. 덕분에 나는 대한신문 선배 기자였던 서태욱을 만났고, 그의 조언을 받아 <사람의 숲>을 대서특필했다. 채원종을 만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나보다 일곱 살 위였다. 운이 따랐다고나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숲>은 재출간 육 개월만에 무려 이십만 부를 돌파하는 베스트 셀러로 군림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 문학적인 평가에서 소홀해지고,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 대중적인 인기에서 멀어진다는 우리 문단의 통설을 뒤엎고 <사람의 숲>은 보기 드물게 문학적인 평가와 대중적인 인기를 동시에 획득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만한 대접을 받아 마땅한 수작(秀作)이었다.
“<사람의 숲>은 요즘도 잘 나가지요?”
“베스트 셀러 목록에서 빠진 지 오래됐습니다.”
그가 어딘지 모르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언뜻 감지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오랫동안 정상에서 인기를 누려 온 가수가 다음 히트곡을 내지 못해 안달하는 것과 흡사한 그런 초조한 눈빛이었다.
“동인지 <동해문학>을 보았습니다.”
“바쁜 사람이 뭐 그런 시시한 걸 다 읽어 보십니까.”
“시시하게 보았다가 한방 얻어 맞았지요. 신문 기사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웃어 넘겼다.
“채선생님 스스로도 피력하셨더군요. 시인․작가가 같은 자리에 함께 있더라도 말이 비평가나 문학상 심사위원에 미치게 되면 입을 가리고 손짓을 하면서, 이로 인해 다만 손해를 입을 따름이라고 말입니다. 허구 많은 사람들 중에서 채선생님이 굳이 총대를 매고 나선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포항 후배들이 모처럼 동인지를 내게 되었다면서 내게 원고를 청탁해 왔더군요. 우리 문단의 병폐를 지적하고, 개선 방향을 논의해 주면 좋겠다는 주문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나오는 동인지라 별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써본 글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서태욱 선배님께서 특히 서운해 하시더군요.”
슬쩍 떠보았으나 채원종은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열한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딴전을 피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까지 나를 찾아오신 목적이 있었을 게 아닙니까. <가면놀이>가 표절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싶으신 거지요?”
그는 어조를 조금 가다듬었다.
“송기자.”
“네.”
“나는 데뷔 십년이 넘도록 누구 하나 알아 주는 이가 없는, 외롭고 고달픈 무명 작가였습니다.”
“그런데요?”
“<사람의 숲> 덕분에 겨우 문명(文名)을 조금 얻었는데, 이제 표절 작가로 낙인이 찍힌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요?”
“내 말을 믿어 주십시오. 표절은 아닙니다.”
역시 예상 그대로였다. 나는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허나 늦었습니다.”
“기사를 기어이 넘기셨군요?”
“내일 아침 신문을 찾아보십시오.”
“지금이라도 그 기사를 취소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좀 안될까요?”
가슴으로 차갑게 밀려드는 아득한 절망감에 나는 순간적으로 치를 떨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비애였다.
“그만 가 보시죠.”
마침 가게 주인이 그만 문을 닫아야겠다면서 술값 계산을 요구했다. 내가 술값을 치르는 동안 그는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밖에 나가 보니 어느 새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상가 모퉁이를 돌아가려는데, 벽에다 한쪽 손을 짚고 꾸부정하게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채원종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우웩우웩 토하고 있었다. 그는 사이사이에 누군가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으나 가만히 종합해 보니 이런 말이었다.
“더럽다. 치사해.”
그의 그런 뒷모습을 훔쳐보면서 희안하게도 나는 그가 감내하기 어려운 회오(悔悟)나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스스로에게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이유를 나는 후에 알았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는 문예정신사에서 보내온 초대장을 살펴보다가 너무 놀라서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채원종이 제8회 문예정신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이었던 것이다. 수상 작품은 그의 창작집 <가면놀이>였고, 심사위원은 서태욱과 모정문 두 사람이었다.
그동안 나는 문예정신사 쪽으로는 의도적으로 발길을 끊고 지냈다. 문화부에서 생활과학부로 자리를 옮겨앉은 탓도 없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옮겨 앉은 뒤에 서태욱 쪽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두어 번 왔으나 나는 정중히 거절하는 것으로 나의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내가 놀랍게 생각한 것은 채원종의 창작집 <가면놀이>가 출간 한 달만에 베스트 셀러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그 사실이었다. 장기 베스트 셀러였던 <사람의 숲> 덕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었고, 출간 직전에 빚어진 표절 시비가 독자들의 호기심에 불을 질렀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쓴 기사가 나간 지 일 주일만에 <가면놀이>를 표제작으로 삼은 채원종의 창작집을 전격 출판한 서태욱의 계산은 어쨌든 적중한 셈이었다. 그 점에 대하여 이경후는 내 앞에서 이렇게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내가 해설을 써 넘길 때만 해도 <가면놀이>는 들어 있지 않았어. 그런데 하필이면 <가면놀이>를 표제작으로 내세운 까닭이 뭐겠어. 이건 처음부터 서태욱이 의도적으로 꾸민 치사하고 졸렬한 연극이자 음모였다구. 너나 나나 그 자의 장단에 놀아난 꼭둑가시였단 말이야.”
시상식은 사흘 뒤에 거행되었다. 그 날 나는 만사 제쳐놓고 일부러 그 시상식에 참석했다. 축하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문인들이 참석해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 없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문학과비평이 차지하는 위력을 다시 보는 듯해서 나는 약간 착잡했다. 채원종은 나를 보자 다소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지만 서태욱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내 손을 너무 세게 잡고 흔드는 바람에 나는 삐져나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눌러 참아야 했다.
채원종은 수상 소감을 너무 싱겁다 싶을 정도로 간단히 끝냈다. 그러나 모정문의 축사(祝辭)는 꽤나 장황했다. 그는 수상자 채원종과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에서 수상작에 대한 작품 평가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세세히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전에 보도된 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줄로 압니다. 이번의 수상작 <가면놀이>가 내 작품 <두 얼굴>의 표절이라고 지적한 기자가 있었지요. 그 기자의 지적은 지당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두 작품의 줄거리가 너무 유사합니다. 허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혹 오해의 소지가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 두거니와 표절은 절대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작가 채원종씨는 남의 작품이나 표절하는 그런 부도덕한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첫번째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채원종씨는 정직한 작가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표절이라는 치명적인 의혹을 사게 되었는가?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랄까, 내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 원인 제공자는 문학과비평의 서태욱 주간입니다. 아마 서너 해 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 주간하고 나하고 채원종씨 하고 셋이서 술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지요. 그 자리에서 서 주간이 하 아무개에 대해 이야기를 아주 소상히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두 얼굴>이나 채원종씨의 <가면놀이>는 바로 그 하 아무개를 모델로 씌어진 일종의 실명소설이랄까요. 그 하 아무개라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대단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지도급 인사였는데, 이면에 그런저런 이중성과 스캔들을 갖고 있다는 숨은 이야기를 서 주간이 우리 두 사람한테 들려 주면서 좋은 소설감이라고 추천을 했지요. 작가인 우리 두 사람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그 충격이 모티브가 되어 <가면놀이>와 <두 얼굴>이 태어난 거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같은 이야기라도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을 쓰게도 되지만, 우리 두 사람처럼 유사한 형태로도 빚어진다는 것을 구태여 이상한 눈길로 노려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여기다 더 이상은 옮기고 싶지 않다. 그리고 모정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의식의 한쪽 끝에 엉겨붙는 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서태욱이 <가면놀이>를 표절로 몰아붙인 이유 말이다. 내 친구 이경후가 애초에도 그랬고 나중에도 지적했듯이 표절 문제는 과연 서태욱의 계산된 음모이자 계략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덕망과 지조를 자랑하는 선비이기 전에 치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갓 탐욕스런 도박꾼이란 말인가. 그래, 그는 그렇다고 치자. 돈벌러 나선 장사꾼이니까. 하지만 채원종은 어떤가. 자칫하면 작가 생명이 그것으로 끝나 버릴 수도 있는 자해(自害)를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도박판의 훈수꾼으로 야합한 점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두 얼굴의 가면놀이를 기획하고 즐긴 사람은 서태욱이가 아니라 채원종 바로 그였는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의혹이 그 순간 내 머리를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첫댓글 문협이사장이신정종명님도 의혹이 많이 가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