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위암이라니 3
내가 건강검진에서 이상소견이 있다고 상담을 받은 것이 10월 말이니까 오늘로서 꼭 두 달이 되는 셈이다. 발단에서 결말까지 비교적 짧은 시기에 일이 잘 처리되어 지금은 평온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글쓰기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약속도 있고 해서 간단히 그 간의 있었던 일을 소개하려 한다.
수술 전에 12월 2일과 3일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수술 부위를 확정 짓기 위한 위 CT검사, 식도위장투시촬영과 수술에 대한 저항성을 알아보는 심근단층촬영, 심장초음파, 호흡기 검사 등 10여 가지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받으러 가는 날 아침을 먹은 후 이틀을 꼬박 굶고 검사를 받는 것이 좀 힘이 들었지만 잘 참았다. 검사 받은 후에는 오히려 마음이 개운하고 평안해졌다. 병원에서 말기암에 걸려 비쩍 마른 환자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
12월 17일 오후 2시경에 병원에 도착했다. 입원수속을 하니 1인실이 배정되었다. 처음에는 1인실에 있다가 방이 나는 대로 2인실이나 5인실로 옮겨준다고 한다. 12층에 자리한 내 병실은 서쪽으로 난 창 너머로 올림픽대로와 한강이 보이는 비교적 전망이 좋은 방이다. 방값이 하루에 30만원으로 좀 비싸긴 하지만 퇴원할 때까지 여기서 그냥 지내기로 했다.
밤에 담당 레지던트로부터 설명을 듣고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검사결과 병반의 부위가 위의 구부러진 부분에 있어서 위의 60~80%를 절단한단다. 위를 절단하면 위와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유문괄약근이 제 기능을 못해 이를 먼저 제거해야 한단다. 수술방법은 복강경을 원칙으로 하되 수술 중 출혈이나 이상이 생길 경우 개복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복강경 수술을 하드래도 절단한 위를 꺼내려면 5~6cm를 절개해야 한단다.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위 절제 수술을 하면 유문괄약근의 상실과 위산이 다량으로 나오는 위의 하부가 사라지므로 사실상 위의 기능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수술 후 연동운동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밤늦게 장 청소약을 먹고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비웠다. 10분 간격으로 화장실 다니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모두 비워 내니 오히려 속이 개운하다.
수술하는 12월 18일은 내 생일날이다. 내가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이대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날이다. 그래서 미리 유서까지 써서 안 보이는 곳에 감춰놓고 살짝 강나루에게만 귀띔을 해둔 터다. 화장실 다니느라고 잠을 설쳤지만 6시 전에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정신을 차렸다. 수술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지극히 편안하다. 오히려 주위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걱정말아라. 나 씩씩하게 수술 받고 올께.” 하고 하나하나 손을 잡아 주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 받기 전에 수술실을 살펴보니 비슷한 모양의 방들이 양쪽으로 다섯 개씩 열개가 있었다. 나는 그 중에 7호실로 실려 들어갔다. 짙은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사람들이 너댓명 나를 둘러싼다. 옷을 벗기고 몸에다 무엇인가를 바르더니 산소호흡기 비슷한 마스크를 씌우고 심호흡을 하란다.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두번째 숨을 들이쉬면서 천장에서 내리꽂는 밝은 불빛이 희미해졌다. 그 후로는 기억이 없다.
내가 정신이 든 것은 수술실로 들어간 지 4시간 후다. 눈이 열리기 전에 귀가 먼저 열렸다. 어디서 가냘픈 신음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작게 들리더니 점점 크게 들린다.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서 내는 신음소리다. 하얀 천정이 보인다. 아! 여기가 천국이 아닌 회복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토해낸다. 정말 배가 아프다. 간호사가 다가와서 “깨셨어요?” 하고 묻는다.
병실에 간 후에도 진통은 계속된다. 링거 옆에 진통제를 매달아놓아 아플때마다 누르면 링거에 섞여 들어가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지만 엄청 아프다. 지켜보는 가족들이 있어서 신음소리는 되도록 내지 않고 참았지만 그날 저녁은 무척 아팠다.
그런데 이튿날부터는 통증이 훨씬 감소하고 제법 참을 만했다. 아침에 회진 온 의사가 오늘부터라도 걷는 운동을 시작하라고 해서 오후부터는 링거대를 밀며 걸을 수 있었다.
운동을 꾸준히 한 덕인지 3일만에 순조롭게 가스도 나오고 간호사들로부터 예후가 빠르다는 칭찬을 들었다. 3일후부터 미음을 시작으로 호박죽, 흰죽 등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그동안 나를 속박하던 링거줄과 주사바늘에서도 해방되었다. 그래서 수술한지 6일 만에 퇴원하게 된 것이다.
퇴원 전에 중요한 결정이 환자를 기다린다. 수술시 절제된 위나 같이 때어낸 림프절들은 실험실에 보내져 정밀검사를 하게 되는데 결과에 따라 타 기관 전이나 항암치료 여부가 결정된다. 위암은 제일 안쪽의 점막층에 발병하여 차츰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하층, 장막층으로 퍼져 위 밖으로 나오게 된다고 한다. 암세포가 점막하층까지만 국한된 시기를 1기 또는 조기위암이라고 한단다. 조기위암인 경우에도 위 바깥에 수많이 분포 되어있는 림프절에 암세포가 발견되는 일이 있어 항암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단다. 그런데 나는 다행히 점막하층까지의 조기위암이고 림프절 수십개도 일일이 조사해 보았으나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아 항암치료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나는 요즘 집에서 잘 먹으며 편안히 쉬고 있다. 수술 후 체중이 약 3kg정도 빠졌으나 내 사랑하는 아내 강나루여사가 워낙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통에 금방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몇 개월 아니 1~2년 정도는 이 엄청난 변화를 감내하기 위한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지. 그 동안 염려해주고 격려해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면서 꾸준히 체력을 단련하여 날씨 좀 따뜻해지면 오름에도 갈 생각이다. 아~ 이제 나는 위암환자가 아니다. 다만 胃小한 사람일 뿐이다. 2008. 12. 30
첫댓글 좀 이른 시간 글을 읽었습니다. 이 분야 아는것이 전무 한 데 주제 넘게 무슨 말을 하리요.다만 햇살 아빠다운 자세가 감동적이고 가슴깊이 와닿네요. 햇살 밝은 새해를 맞아 더욱 굳굳한 의지와 희망을 다지 리라 믿으며 밝은 모습 만을... 모든 은총이 깃들어지고 빠른 쾌유를 기도 하겠습니다.햇 살 !그밝은 미소 잊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암 이젠 암환자가 아니지. 암을 도려내 버렸고 항암치료도 안 받는다니 당연히 암환자가 아니지. 단지 생활에 불편은 있겠지만 그것도 시일이 지나 몸에 익게 되면 일상이 되겠지. 강나루 여사님 힘내세요.
완산의 심장 강의처럼, 친구들 교육시키려고 대표 체험을 한 것 같네. 빠른 회복법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