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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1905년 한국 최초의 야구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야구단’이 창단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해 다카하시라는 일본인 교사가 관립중학교(한성학교의 전신)에서 야구부를 조직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1910년 서울 훈련원(현 국립의료원 자리)에서 열린 황성 YMCA와 한성학교의 경기는 그래서 의미가 깊다. 이 땅에서 맞붙은 최초의 한국식 야구와 일본식 야구의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춘추>가 ‘황성 YMCA-한성학교전’ 100주년을 기념해 야구(野球)와 야큐(야구의 일본식 발음)의 만남을 모색했다. 수준높은 야구담론을 통해 ‘숙명의 맞수’이면서 ‘아시아야구의 동반자’인 두 나라 야구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모색해보자는 게 기획의도다.
<스포츠춘추>의 ‘야구·야큐 위클리’는 1편 <한·일 야구기자 대담, ‘프로야구의 한국, 야구의 일본’>, 2편 <외다리 타법의 창시자, ‘야구는 도(道)이고, 타격은 검(劍)’>, 3편 <한·일 스포츠저널리즘의 고민, ‘무엇을 쓸 것인가’> 4편 <한·일 야신의 대화, ‘야구는 하나다’> 5편 <요미우리 백업 포수 류환진, ‘일본야구의 심장을 말한다’>로 구성될 예정이다.
기무라 고우이치(48) 기자는 아시아야구 전문가다. 특히나 한국, 타이완야구에 조예가 깊다. 자국기자들을 능가할 만큼 한국과 타이완 야구역사에 해박하다. 두 나라 야구관계자들과의 친분도 매우 두텁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기무라 기자는 이후 수십 번의 방한을 통해 한국야구의 성장세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국제대회마다 한국팀을 취재해 한국야구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많이 알기도 한다. 한국야구를 상대로 한 다른 외국기자의 칼럼이 ‘말치레’ 위주인데 반해 그의 칼럼이 때론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기무라 기자는 “지난 시즌 한국프로야구가 600만 명 가까운 관중몰이에 성공해 매우 기쁘다”면서도 “그 이면에 내재한 슬픔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녕하세요. 기무라 고우이치 씨. 오랜만입니다. ‘딱’ 1년 만에 뵙는 듯합니다(웃음).
안녕하세요. 박동희 씨. 반갑습니다. 다른 건 다 느리게 흐르는데 세월만 빠르게 가는 것 같습니다(웃음). 지난해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이 끝난 다음 다저스타디움에서 작별의 악수를 한 게 어제일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어요.
알본 최고의 한국야구 전문가로 꼽히는 기무라 고우이치 기자. 대표적 지한파 언론인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글쎄요. 와인과 기무라 씨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있게 숙성한다’는 것입니다. 세월 가는 걸 두려워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웃음).
처음부터 절 칭찬으로 제압하시는군요(웃음). 기억나실지 모르지만, 지난해 3월 WBC 아시아예선이 끝나고 저와 대담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담이 ‘네이버 매거진S’을 통해 <한·일 야구기자 대담, ‘아시아 야구의 길을 묻다’>라는 기사로 나갔는데요. 한국야구팬뿐만 아니라 일본야구팬 사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것으로 압니다.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두 나라 야구를 한결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요. 1년이 지난 오늘도 유익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오늘은 ‘프로야구의 지방시대’라는 특정 논제와 관련해 기무라 씨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두 나라 야구계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테마라는 생각인데요.
특히나 600만 관중을 바라보는 한국프로야구는 일본처럼 12개 구단으로 외연을 확장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금의 대도시 중심의 프로야구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야구계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고 있는 ‘프로야구의 지방시대’가 그래서 더 매력적인 논제로 비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야구의 양적 성장과 지방시대 한국프로야구는 600만을 넘어 700만 시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부 야구전문가들은 "지금이 양적 성장을 도모할 적기"라며 "12개 구단, 양대 리그 체재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지난해 한국프로야구는 592만 5천285명의 관중을 동원해 1995년 달성한 역대 최다관중 기록(540만 6천374명)을 14년 만에 갈아 치우는 사상 초유의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일본프로야구 역시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합쳐 총관중 2천239만 9천652 명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3.5%의 성장을 이뤘습니다. 수치로만 본다면 지난 시즌 두 나라 야구계 모두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성공’을 총관중 수로만 치자면 분명히 두 나라 야구계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일본프로야구는 더욱 세밀한 시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정작 일본프로야구의 성공은 총관중 수보다는 ‘프로야구의 지방시대’가 열렸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야구의 지방시대요?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예전만 해도 일본에서의 프로야구단은 모회사의 선전도구이거나 철도회사의 수익원 정도로 비췄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과거엔 많은 철도회사가 재개발에 관여했습니다. 재개발지에 많은 이를 입주시키기 위해 주변의 랜드마크로 야구장을 짓고 프로야구단을 창단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일반인들의 관심사와 취미가 다양해지고, 선수들의 연봉이 치솟으면서 모회사의 선전도구라는 측면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그즈음 철도회사를 모회사로 둔 프로야구단도 한신, 세이부 등 몇 팀을 제외하곤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그런 흐름과 프로야구의 지방시대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잘 들어보세요(웃음). 프로야구를 둘러싼 환경이 바뀔 그 무렵 J리그(일본프로축구리그)가 출범합니다. J리그는 출범 때부터 ‘100년 구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구단을 만들자!”라는 구상을 현실화합니다. 그 영향을 받아 프로야구도 ‘지방에 뿌리를 내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른바 ‘프로야구의 지방시대론’을 주창합니다.
음.
하지만, 당시는 ‘지방구단’이라고 해봤자 후쿠오카의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정도밖엔 없었어요. ‘프로야구의 지방시대’라고 말하기엔 매우 부족했지요. 그러다 2004년 일본야구계에서 ‘기존 2리그를 1리그제로 통합하자’라는 이른바 ‘야구계 재편소동’이 일어나며 긴데츠 버펄로스가 사라지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하는 급진적인 변화를 맞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라쿠텐이 지방도시인 센다이를 연고지로 했다는 점입니다.
오사카의 한신, 나고야의 주니치도 지방구단인데요.
오사카나 나고야는 ‘지방구단’이라고 하기엔 도시 규모나 시장이 큽니다. 인구 150만 이하의, 프로야구단이 일찍부터 자리 잡지 않았던 곳을 야구적 의미에서 ‘지방도시’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정리하면 라쿠텐의 창단이 본격적인 ‘프로야구의 지방시대’를 열었고, 이것이 올 시즌 총관중 증가의 원동력이 됐다는 뜻이군요. 라쿠텐이 인구 100만 명의 센다이를 연고지로 삼았다는 건 한국프로야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본격적인 ‘프로야구의 지방시대’를 연 라쿠텐은 과연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구단이 새해마다 장부상의 ‘숫자’를 발표하지만, 구단간부가 기자들을 상대로 구두 발표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 퍼시픽리그 만년 하위팀 라쿠텐 골든이글스. 그러나 지난해 라쿠텐은 포스트시즌 진출과 함께 홈관중 120만 명을 돌파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
어쨌거나 지난 시즌 라쿠텐과 같은 지방도시를 연고지로 한 팀들의 분전이 일본프로야구에 긍정적인 이바지를 한 것만은 확실하지 않나 싶은데요.
최근 1, 2년을 봤을 때 12개 구단의 평균 관중수는 확실히 증가했습니다. 일부에서 ‘드디어 프로야구의 지방시대가 열렸다.’ ‘야구팬의 지방분산화가 이뤄졌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에 만족해선 안 됩니다. (목소리에 힘을 주며) 어쩌면 머지않아 ‘프로야구의 지방시대’도 한계점에 이르러 또다시 ‘야구계 재편’이 물 위로 떠오를지 모릅니다.
‘일본프로야구의 지방시대’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야구계 재편’ 논의가 물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니, 지나친 우려가 아닌가 싶은데요.
지방도시를 연고지로 삼았지만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구단, 혹은 지방도시로 갈 시기를 놓쳐서 구단 운영이 어려워진 구단. 그런 구단을 모회사가 더는 유지해 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순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관중동원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흑자를 내는 구단은 한신, 요미우리 등 극히 일부 구단에 지나지 않아요.
프로야구의 지방시대, 그래도 결국은 마케팅과 운영이다 세이부 라이온스의 홈구장인 세이부돔. 지난해 세이부는 홈관중 150만 명을 돌파했으나, 연고지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확실한 지역밀착형 구단으로 거듭나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까닭이다
개인적으로 ‘일본프로야구의 지방시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발전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프로야구 연고지 가운데 인구 200만 명 이하의 도시는 광주, 대전 둘뿐입니다. 두 도시의 인구는 150만 명 정도입니다. 한국 야구관계자들은 지금까지도 두 도시를 ‘프로야구 연고지의 마지노선’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두 도시보다 작은 도시에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는 걸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본의 예를 잘 참고한다면 광주, 대전보다 규모가 작은 지방도시에도 프로야구단을 충분히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선행돼야 야구인들이 그토록 바라는 ‘12개 구단 시대’도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지난해 연말이었어요. 한국의 모 구단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 관계자는 “세이부 라이온스가 어떻게 마케팅을 했기에 지난해 관중동원수가 150만 명을 돌파했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또 “세이부가 진정 지방도시 야구단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세이부가 퍼시픽리그 4위를 하고도 홈 관중 150만 명을 돌파했으니, 그런 질문을 할 법도 하겠군요. 어떤 답변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정직히 말해 세이부가 다른 구단보다 특색있는 마케팅을 하거나 관중동원을 위해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이부엔 실례일지 모르지만, 솔직히 홈 관중 150만 명 가운데는 상대팀 팬들이 꽤 많았습니다. 지난해 퍼시픽리그 우승팀인 니혼햄과 놀라운 상승세로 늘 화제의 중심에 있던 라쿠텐 팬들이 세이부돔으로 몰렸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흥행요인으로는 역시 ‘WBC 효과’를 들 수 있겠지요. 물론 일본 프로야구팬층이 두터운 것도 한 이유가 될 겁니다.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사진=스포츠춘추)
뜬금없는 질문입니다만, 도쿄에서 세이부돔이 위치한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까지는 전철 혹은 차로 얼마나 걸립니까.
글쎄요. 도쿄 도심에서 세이부철도의 급행을 이용한다면 대략 40분 정도가 걸리지 않을까요. 차로 가도 그 정도 시간은 걸릴 거예요. 혹시 세이부돔에 가실 일이라도…?
(손을 흔들며) 아닙니다. 안산 때문에 물어봤습니다.
안산이요?
네. 안산시가 내세우는 돔구장 건설 당위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접근성입니다. 비록 안산시 인구는 75만 명에 불과하지만, 서울과 1시간 내 거리에 있기 때문에 돔구장을 보려고 1천만 서울시민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세계 야구 돔구장 건설 사상 유례가 없는 ‘선 돔구장 건설, 후 프로야구단 유치’ 카드를 내밀고 있습니다. 음, 하지만 도쿄 인근에 있는 세이부와 지바 롯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등이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면, 안산시가 접근성을 그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데요.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세이부의 150만 관중 가운데 절반 이상은 도쿄 도심에서 온 팬일 겁니다.
안산시가 계획 중인 돔구장 조감도. 그림 왼쪽이 돔구장, 오른쪽이 축구장이다. 안산시는 돔구장 건설 뒤 프로야구단을 유치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프로축구단 유치를 내세우며 시민의 혈세를 모아 건설한 축구장은 몇 년째 적자만 기록하고 있다. 안산시도 이를 잘 아는지 돔구장 건설을 위해 작은 부분까지 체크하고 있다(그림=안산시) |
그렇다면 역시 안산시의 ‘접근성’ 논리가 생각 이상으로 유효할 수 있겠군요.
(고개를 흔들며) 동전의 뒷면도 보셔야 합니다. 세이부 연고지 팬들인 도코로자와 시민은 역설적이게도 야구장을 많이 찾지 않습니다. 세이부돔까지 가는 교통이 좋지 않기 때문이에요. 대신 도심 팬들은 세이부철도가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이케부쿠로와 신주쿠에 세이부돔까지 운행하는 특별차량을 투입한 까닭에 편하게 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이렇게 도심 팬에 의존할 때 구단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심 팬에 의존하는 구단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라.
시대는 변했습니다. 다양한 볼거리가 생겼어요. 도심 팬들의 충성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세이부도 이를 눈치챘습니다. 2007년이었을 거예요. 이전에는 ‘세이부 라이온스’가 구단 명이었지만, 그해부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사이타마현 현청 소재지인 오미야시에서 단 몇 경기라도 정규시즌을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야구전문가가 “조만간 연고지를 도코로자와에서 오미야로 옮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무라 씨의 생각은 어떠세요? 연고지 이전이 좋은 카드일까요?
오미야라면 도심에서 오는 팬은 줄겠지만, 오미야나 그 주변 중소도시에서 오는 팬들은 확실히 늘어날 겁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세이부의 전신이었던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스의 연고지는 규슈의 후쿠오카였습니다. 세이부가 구단을 인수하며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로 연고지를 이전했습니다.
세이부가 사이타마현을 근거지로 성장하고 그곳에 자신들이 세운 대형 백화점과 사철을 운행했기 때문입니다. 세이부철도의 운임수입을 늘리고, 도코로자와의 활성화를 통해 추가이익을 얻자는 게 연고지 이전 당시의 세이부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오코로자와에서 더는 기대할 게 없습니다. 1970, 80년대처럼 개발을 기다리는 땅도 없습니다. 라이온스 구단의 미래만 보자면 오미야로 이전하는 것도 좋은 방향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확실한 지역밀착형 구단이 살아남는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프로야구가 시의 랜드마크였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멋진 돔구장이 시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통하던 시절도 옛말이 됐습니다. ‘도심 팬들을 불러모으면 어쨌거나 구단 운영은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통하던 시대도 지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일본만 해도 돔구장이 6개나 있습니다. 과거 도쿄돔이 생겼을 땐 신기해서라도 갔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도쿄돔보다 더 신기한 건축물이 수도 없이 생겼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1970년대 간사이(관서)지방에는 한큐, 긴테쓰, 난카이, 한신 등 4개 구단이 있었습니다. 4개 구단 모두 모회사가 철도회사였어요. 이 가운데 살아남은 건 연고지에 가장 먼저 뿌리를 박은 한신뿐입니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8개 구단 가운데 롯데, 삼성, KIA, 한화가 대표적인 지방도시 구단입니다. 이들은 이미 지역밀착형 구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구단 운영의 자립기반을 구축한 구단은 롯데가 유일합니다. 지리적 위치가 구단 운영의 키는 아니란 뜻입니다. 제 생각엔 ‘연고지가 어디냐’보다는 ‘구단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은데요.
매우 좋은 지적입니다. 지방도시 연고지의 팀들이 구단 운영과 마케팅을 지금보다 성의 있게 한다면 더 많은 관중이 몰릴 겁니다. 항구적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글쎄요. 결국 도태되지 않을까 싶군요.
프로야구는 정체, 야구는 불변, 일본 여름 고시엔 대회 때 경기당 평균관중은 4만5천 명이다. 대회 기간 동안 고시엔 구장을 찾는 관중수는 100만 명을 넘는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지난 시즌 요미우리 평균 홈 관중은 4만 1천755명이었습니다. 2005년과 비교해 700명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요미우리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만원사례를 이루던 예년과 달리 경기마다 빈자리가 많습니다. 시청률도 10% 이하를 기록한 지 오래이고요. 이 때문에 일본야구관계자들 가운데 ‘프로야구의 위기’가 다시 찾아올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일본 도쿄에는 요미우리, 야쿠르트 등 2개 팀이 있습니다. 도쿄 인근에는 세이부, 요코하마, 지바 롯데 등이 있고요. 도쿄를 중심으로 그 부근에만 5개 팀이 몰려 있는 셈입니다. 니혼햄이 도쿄에 있을 땐 6개 팀이나 됐어요. 이런 기형적인 구단 분포에도 지금껏 프로야구가 굴러간 건 요미우리의 절대적인 인기 덕분이었습니다.
불세출의 슈퍼스타 나가시마 시게오가 현역으로 뛸 때인 1960, 70년대와 그 슈퍼스타가 감독이 됐던 1980년대의 요미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한신을 제외한 다른 팀들은 순전히 요미우리의 상대팀이었거나, 요미우리의 그늘 안에 있었기에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일본야구 평론가가 “요미우리와 다섯 난쟁이”라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과거 일본야구팬들은 요미우리 경기밖엔 볼 수 없었다지요.
맞습니다. TV의 영향이 컸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엔 케이블채널이나 위성방송 같은 게 없었어요. 지상파가 전부였지요. 도쿄를 중심으로 한 방송국들은 요미우리 전 경기를 생중계했습니다. 시청률이 매우 잘 나왔으니까요. 특히나 요미우리그룹사인 니혼TV는 요미우리-한신전을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취급했습니다. 재미난 건 오키나와, 교토, 후쿠오카에서도 요미우리-한신전을 봤다는 거예요. 유명한 일화지만,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가장 인기가 높던 팀이 요미우리였지 뭡니까. 왜냐? 허구한 날 요미우리 경기만 중계하고 또 그것만 봤기 때문이에요(웃음).
그때는 정말 다른 팀 선수는 알고 싶어도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삿포로를 연고지로 쓰지만, 니혼햄도 그때는 도쿄가 홈이었어요. 당시 삿포로 야구팬들은 니혼햄을 그저 요미우리와 도쿄돔을 함께 쓰는 구단 정도로만 인식했습니다. 그러다 2004년 니혼햄이 생존차원에서 “지방도시로 가자”고 결의한 뒤 삿포로로 연고지를 이전하지요.
당시 일본 야구계 일부에서 니혼햄을 “요미우리의 텃밭인 삿포로로 갔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네, 그랬지요.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삿포로 야구팬들이 요미우리 대신 연고지 팀인 니혼햄 경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지역방송국에서 연고지 팀인 니혼햄 경기를 중계했기 때문입니다. 여기다 케이블채널과 위성방송이 활성화되면서 굳이 요미우리를 통하지 않고도 자기가 보고 싶은 중계를 선택할 수 있게 됐어요. 이때부터 전통의 요미우리 팬이 니혼햄 팬으로 바뀌게 됩니다.
요미우리 팬은 줄었어도 전체 야구팬의 수는 줄지 않았다. 이른바 ‘야구팬 총량 불변의 법칙’을 말하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요미우리 팬은 줄었지만, 그 팬들이 다른 팀 팬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전체 야구팬은 양적으로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일본프로야구의 강점 혹은 특색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 야구는 오락이고, 생활이다. 야구강국은 돔구장이 몇개인가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강국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 개 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정한 야구, 스포츠강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게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된 사회를 말한다. 야구장이 없어 수백만 원의 참가비를 내지 않으면 사회인야구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야구강국'은 허황된 소리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야구팬 총량 불변의 법칙’은 이해가 됩니다. 다만, 그러한 법칙에도 도쿄 인근 구단의 미래는 요미우리의 인기하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듯한데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가령 요미우리-요코하마 경기의 관중과 관심은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하게 말하면 요미우리에 기대, 득을 본 구단들만 힘들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해당 구단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프로야구는 대박, 야구는 쪽박인 한국 한국프로야구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 근간이 되는 아마추어야구는 고사직전이다. 프로야구는 성하되, 야구는 쇠퇴일로를 달리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일본은 프로야구도 프로야구지만 아마추어야구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일본의 고교야구팀이 약 4천800개 정도 됩니다. 이해하기 쉽게 계산해 1팀이 10명으로 구성됐다고 하면 매년 4만 8천 명의 고교야구선수, 즉 야구 경험자가 사회로 진출하는 셈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가 대학야구부로, 다른 일부는 프로로 갑니다. 물론 대다수는 회사원이 되거나 자영업자가 되겠지요. 바로 그런 이들이 나중에 야구장을 찾고, 야구 중계를 보며 스포츠신문을 사보는 팬이 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프로야구 총관중이 2천만 명이 넘는 건 그런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마추어야구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셨네요.
미 메이저리그를 보세요. 미국에선 야구가 ‘내셔널 패스타임(National Pastime)’입니다. 그래요. 국기(國技)인 거죠. 따라서 야구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어도 팬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꼭 한두 명은 야구를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되죠. 하지만, 한국은 그런 것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미국에서 야구는 대표적인 취미생활이다. 외야에서 핫도그를 구워먹고,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는 게 그네들의 낙이다. 우리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미국야구팬들은 당장이라도 글러브와 배트만 들고 직접 야구를 만끽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일본야구의 위기는 프로야구이지, 야구 자체는 아니다’라고. 그만큼 일본의 아마추어야구는 이제 생활이라는 생각입니다.
맞습니다. ‘고교야구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프로야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팬이 일본엔 분명히 있습니다. 프로야구를 보려고 구장을 찾지 않아도 동네야구를 보러 시간을 비우는 팬층이 있어요. 역으로 말하면 ‘한국야구의 중흥은 프로야구를 말하지, 야구 자체는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동의합니다.
황금사자기, 청룡기, 봉황대기, 대통령배 대회를 두루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대회들은 ‘한국의 고시엔대회’에요. 그런데 열기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일본의 고시엔 대회는 웬만한 프로야구팀들의 경기보다 더 많은 관중이 몰립니다. 한국의 KBS 격인 NHK는 고시엔대회 개막부터 결승까지의 전 경기를 지상파로 생중계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프로야구 600만 시대를 연다면서도 고교야구는 지금도 찬밥 신세입니다. ‘어째서 그럴까?’ 생각하면 '한국야구는 양식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양식어요?
오해하지 않고 들어주세요. 1982년 한국프로야구의 출범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압니다. 아마추어야구 역시 과거 한국의 교육부에서 ‘이 학교는 축구, 저 학교는 야구를 중점적으로 진흥시켜라’와 같은 형태의 시책으로 발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정부나 관의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아마추어야구부와 프로야구가 생겨났습니다.
음.
양식어란 표현을 써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제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양식장을 뛰쳐나오려면 뛰쳐나오고 머무르려면 더 튼튼한 양식장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지요?
다시 말해 과거처럼 정부 주도로 12개 구단으로 늘릴 수 있는지, 역시 정부 주도로 대구구장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정부 주도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양식장을 뛰쳐나와 새로운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방향이라면?
지금 이야기 역시 오해 없이 들어주길 바랍니다. 저는 감히 한국야구는 기존 사고를 역행할 줄 아는 독자적 길을 가야 한다고 봅니다. 무슨 이야기냐? 인구 5천만 명의 한국에서, 그것도 한정된 야구팬층을 확보하는 시장에서 8개 구단은 너무 많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이 일본처럼 12개 구단으로 리그를 운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어요. 일본과 미국에서 야구가 ‘하는 스포츠’라면 한국은 그야말로 ‘보는 스포츠’에요. 일본과 미국은 프로만큼이나 아마추어야구를 관심 있게 보지만, 한국은 오직 프로야구뿐이에요.
한국야구의 근간이 어느 정도 강한지, 한국야구문화는 어떠한지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게 우선이라고 봐요. 그런 관점으로 출발한다면 한국야구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은 12개 구단체재가 아니라 120개 고교야구부 조직, 1천200개 야구장 건립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외국인, 그러나 한국을 일본만큼이나 사랑하는 기무라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선 야구인구를 늘려 야구라는 종목에 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야구소비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파이를 키울 수 있습니다.
광주구장엔 인터뷰할 만한 장소가 없다. 지난해 방송사들은 어쩔 수 없이 뙤약볕이 내리 쬐는 그라운드에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더 암울한 건 '한국야구의 메카' 광주에 야구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야구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같은 생각입니다. 근간 들어 남극의 빙하가 언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는데요. 한국야구도 빙산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빙산이요?
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야구라는 빙산은 매우 작았습니다. 그러다 2007년 이후 관중이 늘어나며 조금씩 커졌습니다. 지난해 600만 관중은 600만 톤의 눈과 같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최대 크기의 빙산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빙산의 크기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왜냐? 눈에 보이는 빙산은 거대해졌는지 몰라도 눈으로 볼 수 없는 물 아래의 빙산은 이전보다 더 빨리 녹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는 성장하는 데 반해 아마추어야구는 그만큼 부실해지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고교야구팀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야구장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있던 동대문야구장은 ‘새것'과 ‘파괴’를 ‘디자인’으로 오인하는 이들 때문에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들은 오랜 전통과 역사의 장충리틀야구장을 ‘디자인'하려 준비 중입니다.
한국에서 야구가 언제까지나 ‘보는 스포츠’로 남을 때, 고교야구팀이 지금처럼 하나 둘 사라질 때, 야구가 ‘디자인’해야 할 대상으로 지정될 때. 한국야구는 쌓이는 눈보다 녹는 속도가 빠른 빙산이 될 것입니다. 지금 눈물을 흘리는 건 남극만이 아닙니다. 한국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시에 한 목소리로)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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