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회 가람(이병기)시조 문학제 및 생가 답사 !
1. 개 요.
⑴. 일 시 : 2011년 04월 09일.08:00 ~ 17:00.
⑵. 장 소 :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가람 생가.
⑶. 주 최 : 전북 익산시.
⑷. 주 관 : 가람 기념사업회.
⑸. 관 리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이장단.
⑹. 목 적 :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문학 애호 정신을 후손에 전하기 위함.
⑺. 사 진 : 첨부 하였습니다.
⑻. 작 성 : 보훈청 알림이 및 문화재청 지킴이 송 철 효.
⑼. 개 요 : ①, ②.
➀. 가람 이병기 선생은 1891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연안(延安) 이씨
(李氏)채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아호는 가람(嘉藍 ·柯南) 한자로는 임당(任
堂)이라 했고 완고한 조부에게 9세부터 10여 년간 한문을 공부하던 중 중국
양계초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읽고 깨달은바 있어 19세나이로 70리
길을 걸어 전주 보통학교를 6개월만인 1910年 졸업했으며 관립 한성 사범학
교를 1913년에 마치고 비교적 늦게 신학문에 뜻을 세운 가람선생은 이 기간
중 나라와 겨레를 생각하여 밤이면 조선어 강습원에 나가 주시경(周時經)선
생의 조선어문법 강의를 수강하여 우리말과 글의 연구에 뜻을 키웠습니다.
➁. 가람 이병기 선생은 남양, 전주, 여산 등의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
다가 1922년부터 휘문, 보성, 경복, 덕수상 등에서 우리말의 작문과 습자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였으며 연희전문(1938 년)및 보성전
문학교(1940年) 강사로 우리말과 글을 위한 활동과 연구를 활발히 하였고
광복 후에는 미 군정청 문교부의 편수관과 편수 과장을 지내다가 1946년 나
이 56세에 서울대 문리대 교수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단국대, 신문학원, 예술
대학 강사로 출강했고 1948년에는 동국대, 국민대, 숙명여대, 세종중등 교
원양성소에서 후학 양성에 노력하였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피난해 있다가 수복 후 명륜 대학과 전시연합대학 교수 원광대학
강사를 거쳐 1952년 새로 건립된 전북대 문리대학장에 취임했습니다.
2. 내 용.
⑴. 1956년 정년퇴임한 가람은 다시 상경 중앙대와 서울대 대학원 강사로
활동하다 1957년 한글날 우리말 큰 사전 출간 기념회에 참석하였다가 귀가
도중 쓰러져 병석에 누워서 생가인 수우재에서 10여년의 투병 끝에 78세로
서거했습니다.
⑵. 가람은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시조시인으로서 현대시조를 이끈 인물로 더
욱 유명하며 종래의 고식적인 형식을 깨뜨리고 좀 더 자유로운 문학 장르로
서 현대시조를 여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25년부터 조선 문단 동
아일보 동광 현대공론 신동아 조선일보 등에 주옥같은 시 들을 발표 했으며
1939年에 이들을 묶은「가람시조집」을 펴내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
람은 일제의 강요에도 끝끝내 굴하지 않고 한편의 친일(親日)적인 글을 쓰지
않아 후학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⑶. 광복 후에도 현대문학 월간문학 등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였으며 수많은
기행문과 서간문을 남겼으며 특히 1909년부터 60년에 걸쳐 쓴 일기는 2백
자 원고지 4천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훌륭한 산문문학으로 평가받고 있
으며 전주시 다가공원에는 그의 詩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고 그의 생가
와 가까운 여산 남초등학교 교정에도 그의 시「별」을 새긴 비가 있습니다.
3. 결 론.
⑴. 유적지는 생가(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가 지방 기념물 제6호로 지정
되어 있으며 생가는 초가 네 채로 이루어졌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자신
이 세 가지 복을 타고 난 사람이라 여겼는데 술 복, 글 복, 제자 복이다 하
시고 조선말기 선비 집안의 배치에 따라 안방과 사랑채 등을 만들었으며 관
리는 가람의 자부 윤 씨 부인이 하고 있고 묘는 봉분이 없이 묘비만 있고
그 밑에 잠들어 있으며 동상 가람시비에 별이 새겨져있습니다.
⑵. 글쓴이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과 이에 대한 생각을
꾸밈이 없는 간결한 문체를 통해 다양하고 솔직하게 쓰고 있으며 일상생활
의 간결한 기록 사이에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고뇌에 찬 모
습이 표현됨 3.1운동 후 국문학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보며 괴로워하는 젊은 이병기의 모습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일기이기에 더욱 생생히 드러납니다.
⑶. 특징은 ①. 그날 있었던 사실이나 사건 및 글쓴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사
실적으로 표현하였다. ②. 간결한 문체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글쓴이의 소회를 드러내고 있다. ③.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가 순차적으로 반복되는 간단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④. 현재 시제를 취하여 간결한 문체로 서술하였고 주제로는 일상생활의 정서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고뇌와 삶의 어려움 이었습니다.
⑷. 별 : 바람이 소 슬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 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별을 헤어 보노라 생가의 풍경 중 가장 인상적인 방형의 연못 돌로 쌓은 축대가 견고하고 물에 비친 꽃 그림자가 아름답다.
4. 감사 합니다 ! 2011년 04월 09일.
5. 국가보훈처 알림이 및 문화재청 지킴이 송 철 효(진국)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