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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하늘저편
나의 R / 김정웅
진리란 원래 발음조차 힘든 것, 깨우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국가적 장벽 정도는 넘어서야 할 것, 존나 좋겠다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무슨 과 나왔어요, 무역학과요 영어 잘하겠네, 못하는데요 왜 못해요 무역 한다며, 그런 거 안 해요 그럼 뭐 잘해요, 무역하고 영어 빼고 다 무역은 뭐하러 배웠어요, 영어 잘하려고요 영어 잘해서 뭐하게요, 무역 잘하려고요 야 이 새끼야 그럼 닭이 먼저니 달걀이 먼저니 (그딴 건 잘 모르겠고 내가 반숙 같은 인간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여자는 떠났고 채 식지 않은 아메리카노는 남았다 콜롬버스도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에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왠지 똥구멍이 자꾸 움찔거리고 뭔가 쌀 것만 같은,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다 보면 나올 거 같은데 잘 나오지 않는
카페를 나오자 외국인이 길을 묻는다 두 블록 정도 고우 스트레이트 해서 롸이트 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발음조차 더러운 R이 콜롬버스가 세웠다던 그 알이, 에디슨이 품었다던 바로 그 알이
이봐요 에디슨 양반, 이것이 당신이 바라던 그런 세상입니까 괜히 거지 같은 전구는 만들어서 왜 사람을 곤란하게 합니까 세상이 환해지는 바람에 나 같은 찌질이들은 숨을 데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것도 끝이네요 백열전구는 슬슬 멸종하고 있거든요 꺼진 백열전구 밑에서 졸고 앉아 있는 병아리처럼, 나도 슬슬 죽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는 모든 게 끝이란 말입니다 나는 지금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백열전구처럼 외롭다 또한 곧 끊어질 것만 같은 필라멘트처럼 위태롭다 닿을락 말락,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 봐도 생각이 닿지 못하는 진리가 어쩌면 바로 저기 있는 것만 같은데 나는 지금 아메리카로 가기 위해 펄펄 끓는 태평양 위에 몸을 던진 것처럼 희미하다
노인들만 남은 평일 한낮의 목욕탕 이렇게 뜨거운 열탕 안에서도 나는 완숙하지 못하다 어이 젊은이 등 좀 밀어 봐, 저 그런 거 잘 못하는데요 아 그래도 노인네들보다는 잘하겠지 어서 할아버지의 등을 밀다가, 봤다 그것을 저렇게나 컸던가 그것이 저다지도 탱탱한 것이었나 세상 모든 전기가 끊어지기 전까지는 절대 꺼질 것 같지 않은, 백열전구를 닮은 알을 본 것이다
평상에 앉아 구운 계란을 먹으며 다시 한 번 발음해 본다 롸이트, 롸이트! 목이 꽉 메는, 아줌마, 스트로베뤼 밀크 하나 주세요 롸잇 나우! 나는 틀리지 않은 것이다, 내 발음은
리얼리,
-『현대시』(2011년 10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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