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행 2
일주일 전 초복이 지났으니 내일모레가 중복이다. 중복은 대서 절기와 겹친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맹위를 떨칠 기세다. 칠월 셋째 주 일요일을 맞아 이른 아침 마산 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갔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좀 이색적인 버스를 타려는 참이었다. 그곳은 창원 근교로 다니는 농어촌 시내버스 기점이기도 했다. 내가 가려는 곳은 함안 칠북 강변 산기슭이다.
창원 대방동에서 11번 버스를 타면 북면 온천장을 둘러 상천고개를 넘으면 칠북 내봉촌이다. 대방동에서 다니는 버스는 하루 네댓 차례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중리와 칠원을 지나 이령을 거쳐 내봉촌까지 다니는 농어촌버스도 있다. 시내에서 내봉촌까지 운행 거리가 꽤 됨에도 버스요금은 1200원이다. 합성동에서 출발한 113번 버스는 중리를 지나 칠원 일대를 지났다.
칠북초등학교 이령분교를 지나면 종점인 봉촌이다. 봉촌은 내봉촌과 외봉촌으로 나뉘는데 창원 북면 상천고개 뒤 산간마을이 내봉촌이고 바깥이 외봉촌이다. 칠서 일대는 산비탈까지 밭을 일구어 포도를 가꾸는 과수농업이 발달했다. 내봉촌은 단감농사를 많이 짓는다. 봉촌은 자모산이 낙동강을 둘러치고 있다. 마을 뒷자락 강변에는 용성 송씨 집안에서 관리하는 광심정이 있다.
예전 광심정은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다. 광심정을 세운 송씨 집안은 강 건너 창녕 길곡 사람이다. 아마 그쪽 마을에서 강 건너편 산세가 빼어나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배를 타고 건너와 지금 광심정 자리에 정자를 세워 후학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광심정 가까이 4대강 사업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창녕함안보가 생겼다. 지금은 낙동강을 가로지른 댐이 생겨 접근이 아주 쉽다.
나는 외봉촌을 앞두고 타고 가던 버스에서 내렸다. 한적한 시골이라 마을 어귀엔 사람들이라곤 한 명 보이질 않았다. 골목길을 지나 마을 뒷산으로 올랐다. 예전 친구랑 내봉촌에서 자모산 정상을 거쳐 외봉촌으로 내려와 주변 지형지물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다. 마을 뒤 산 들머리 바위 아래는 동신제를 지내는 서낭당이 있어 주민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공간인 듯하였다.
외봉촌 뒤 자모산은 몇 해 전 산불이 나 울창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제법 불탔다. 그 당시 내가 현장에 있진 않았다만 한 가지 추리가 가능했다. 등산객이 전혀 다니질 않는 외딴 산에 산불이 난 점이 특이했다. 숲이 타 들어간 지점은 서낭당 바위부터였다. 아마 동신제를 지내거나 누군가 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던 촛불이 넘어져 산불로 번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등산로가 제대로 없는 숲속을 들었다. 산불로 시커멓게 그을린 소나무와 참나무 그루터기가 보였다. 산이 높지 않고 계곡도 깊지 않아 물은 귀했다. 일부가 불타긴 해도 워낙 우거진 숲이라 살아남은 나무도 많았고 세월 따라 숲은 복원되어 갔다. 인적 드문 숲을 거닐면서 삼림욕을 즐겼다. 정상까지 오를 일도 없고 내봉촌까지 들어갈 일도 없었다. 돌너덜을 타고 건너기도 했다.
여름 숲의 주인공은 풀벌레들이다. 노루나 멧돼지들은 너른 숲 그늘 어디론가 사라져 종적을 알 수 없다. 대신 높다란 나뭇가지에는 매미가 붙었고 낮은 풀숲엔 여치나 찌르레기가 몸을 숨겼다. 이들은 청아한 소리로 짝짓기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이다. 생태계의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거룩하고 숭엄한 자연의 섭리였다. 소중한 생명인지라 종족이 길이 이어지길 바란다.
숲속에 든 지 두어 시간이 지났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 깊은 산중도 아니었건만 인적이라곤 찾을 길 없었다. 풀벌레소리를 제외하곤 적막한 숲속이었다. 제법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고 내리기도 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심을 벗어난 외진 숲속은 아늑하기만 했다. 스스로 불편을 감수해 가며 발길 뜸한 강변 산기슭으로 찾아갔다. 더워도 더운 줄 모르고 그렇게 보냈다. 1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