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
이동민
대구시청의 시민교육 담당자라면서 전화를 했다. 팔공산 신앙에 대하여 강의를 해 줄 수 있느냐고 했으므로 승낙하였다. 여러 해 전에 ‘우리 고을 지킴이, 팔공산’이라는 책을 썼다. 줄곧 잠잠하였는데 어인 일인지 요즘에 와서 교양 강좌로 해달라는 요청이 더러 왔다. 대학에서도 오고, 시민 단체에서도 왔을 때는 나를 알아준다 싶어서 무척 즐거운 마음이었다.
시청에서 오늘 다시 전화를 했다. ‘강의 내용을 미리 교재로 만들려고 하는데 선생님을 어떻게 소개할까요? ’ 나는 얼떨결에 ‘나, 백수인데요’라고 말했다. 생업에서 은퇴를 하고 나서 누가 물으면 약간은 농담기를 섞어서 하는 말이었는데 그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왔다. ‘농담 마시고요,’라는 걸로 보아서 시청 직원도 가볍게 들었나 보다. 나는 잠시나마 ‘나, 백수 맞는데’라는 생각을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소개할 만한 적당한 직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은퇴를 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꼭히 나를 소개할 만한 직책이 없다며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선생님께서 대구 문협 수석 부회장이시지요? 소개란에 그렇게 쓰겠어요.’라고 했다. 마뜩지는 않았지만 다른 직함도 없다 보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였다. 팔공산의 신앙과 대구 문협 부회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러라고 하였다. 교육 담당자도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 제안하였다.
전화를 끊고 내가 누구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정말 집에서 하릴 없이 놀고만 있는 사람이라서 마땅히 소개할 거리가 없는가? 고개를 저었다. 나름대로 노후 생활을 의미 있게 보낸답시고 바쁘게 살았다. 팔공산의 신앙을 연구한다면서 사진기를 메고 산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수필을 쓰고, 한문도 배우러 다녔다. 미술 공부반을 만들어서 미술 강의도 하였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니 소개할 거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마땅히 내세울 내가 없다며 끙끙 앓다니, 자존심이 고개를 젓도록 하였다.
사람을 소개할 때는 사회적 직함을 댄다. 직함의 무게에 따라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미술 공부반을 운영하면서 제일 난처하였던 일이 미술에 관하여 나는 아무런 간판도 달 수 없었다. 이런 아픔 때문에 생업에서 물러났을 때 미술을 공부하려 미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제일 먼저 선택하였다.
막상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부터 심한 회의에 빠졌다. 내가 선택한 대학원 공부가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 하였다. 전공으로 선택한 한국 회화사는 지도할 교수가 없으니 순전히 혼자서 공부하였다. 어차피 독학인데 석사 간판을 따러 논문을 제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다. 석사 간판은 나의 허영을 채워주는 사치라고 핑계를 댔다. 그처럼 고고한 나를 사람들은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백수입니다, 라고 말할 때는 사회를 향한 나의 냉소가 스며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학위를 포기한 일을 후회한다. 나를 소개할 때 미술사 석사라는 간판을 내걸 수 없다. 이것이 노후 생활에 많은 아쉬움으로 다가 왔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회화사 라는 책만 발간하면 석사 학위 따위는 쓸모가 없으리라고 한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남에게 나를 알리기에는 간판이 나의 참 모습보다 훨신 더 유효하였다. 내 멋에 겨워 맑은 물이고 싶었고, 때 묻지 않는 산골의 바람이고 싶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황한 사치인가를 알았다고나 할까.
굴원이 바른 소리를 하다가 조정에서 쫓겨나서 고향에 내려왔다. 자신의 충정에 스스로 빠져들어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강가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그물을 놓던 어부가 시속의 흐름 따라 살아 갈 것이지 무엇이 잘났다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여 왕따를 당하느냐, 고 조롱하였다. 고기나 잡아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어부의 눈에는 굴원이 하는 짓이 허영처럼 보였다. 이제사 생각해보니 현실의 삶에 성실하였던 어부의 말이 옳다 싶다.
따지고 보면 사람을 소개하는 말은 오히려 그 사람의 진실을 숨겨버리는 가면이 아닐까? 가면이 화려한가 아니면 초라한가를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얼굴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백수가 된 뒤에서야 간판의 위력을 체험 하였다. 그래서 간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아서 간판이나 꾸밀 것이지 하고 후회를 해본다.
굴원을 조롱한 어부의 말마따나 조용히 시속이나 따를 것이지--- 학위 대신에 책이나 낸다고 누가 알아주던가.?
영남수필 2013년 45호
첫댓글 자기소개서에
너무 많이 넣을 필요는 없는거 같습니다
저는 인생 전반기에는 ㅡ기술인ㅡ
후반기에는 ㅡ글을 좋아하는 사람ㅡ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