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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朔風)
천 승 세
수림(樹林)들은 맵고 쓰린 바람올 받으면서 미친년처럼 올었고 하늘을 다 채운 눈발들은 무서운 속도로 능선의 허리들을 덮어갔다. 덕지덕지 빙충을 얹은 조그만 내(川)가 쩍, 쩌억―얼음결을 찢었다.
야전앰불런스는 오래 전부터 발동을 건 채 덜덜거리고 서 있었다. 앰불런스의 뿌연 헤드라이트가 어지러운 눈보라 속올 뚫고 길게 뻗쳐 있었다.
불길은 벙커 C유를 먹을 때마다 볼기둥을 세우면서 널름거렸다. 불길은 내리는 눈발을 녹이면서 뿌연 밤하늘에다 휑한 구멍을 냈다. 불길에 헐름헐름 드러나는 눈 맞는 산야와 꽁꽁 언 내와 눈보라 속에 갇혀 형체마저 희뿌옇게 어른대는 사병들의 을씨년스러운 모습들을 채운 밤하늘은 흡사 너훌대는 휘장처럼 펄럭거렸다.
“씨 파알 되게 춥구나'’
“이거 왜 이렇게 불김올 안 먹어:”
“멕힐 턱이 있어? 눈은 사태로 내리붓구 시체는 왼통 벌집이구…… 배때기가 봉봉해야 펑펑 터지면서 불김을 먹지.”
“추워어. 아휴 추워 씨파알.”
시체처리반 사병들이 투덜댔다. 그들은, 정강이까지 파묻힌 눈을 털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지글지글 기름을 태우고 있던 다리 한쪽이 흡사 중환자가 일어설 때처럼 서서히 무릎을 꺾기 시작했다. 그것은 허공을 향해 오르다가 썩은 고목외 가지처럼 ㄱ자로 오그라들며 굳었다. 벙커 C유를 또 한 차례 뒤집어쓴 불길은 기세 좋게 타오르고 ㄱ자로 굽은 다리는 마치 산불 속의 고목처럼 분길에 휩싸였다. 고속촬영으로 찍은 발레의 동작처럼 뭔가를 더듭둣 서서히 일어서는 두 팔이 외줄로 하늘을 향해 뻗치다가 빠른 슉도로 갈퀴날처럼 오그라붙었다.
“메뚜기 다리로 팍 꺾이누나. 이제 됐어.”
시체처리반 사병의 마지막 말끝, 그리고 불길 속의 다리가 메뚜기 다리처럼 뚜욱 하고 관절을 꺾던 그 순간 윤 하사는 고함을 내지르며 불길 곁으로 치달렸다.
“야 이 좁쌀 같은 영현새끼들, 뭐라구 아구창 놀렸어? 뭐, 메뚜기?”
윤 하사는 대고 주먹을 휘둘렀다. 영현부대 사병은 방한모 위로 수복이 쌓인 눈을 먼지처럼 털며 발랑 나자빠졌다.
눈 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사병은 끙끙대며 겨우 일어섰다. 움직이는 눈동자만 아니라면 시체처리반의 사병은 그대로 눈사람이었다. 사병은 긴 입김올 담배연기처럼 뿜으며 투덜댔다.
“그러지 마슈우―나도 동네 구반장 설설 기구 로터리 김 순경 코피 따는 하사요 하사, 아무리 송장 뼛대만 가는 각설이지만 이 추운 날에 너무했수다 너무…….”
그는 낮게 투덜대며 볼길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이 새끼, 정말 지 오 피 뽄대를 뵈줘야…….”
윤 하사가 그의 둔중한 등올 향해 잽싸게 돌아섰을 때 헤드라이트 두 줄이 부채살처럼 눈발 속으로 뻗쳐왔다. 덜그덕대던 체인 소리가 멎으면서 지프차는 멎었다. 지프차는 그렁그렁 가쁜 숨올 내뱉었는데 그 소리는 산릉을 할퀴는 매운 바람 소리 속에 섞여 야릇하고 소름치는 메아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김 중령은 지프차에서 내려 불길 앞으로 다가왔다. 쓴 약을 씹는 듯 착잡한 경련올 담고 있는 김 중령의 얼글 위에서 널름대는 불길이 놀고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당일 소대장은 누구였지? ……맞아 최 소위였군.”
김 중령은 얼굴 위로 날아드는 눈발올 쓸면서 불길 속에다 시선올 못박았다.
―새끼이, 싱겁게도 죽었군. 당일 소대장이 엄연히 근무하는데도 네가 무슨 명분으로 매복순찰올 돌았나. 그걸 알고 있다…… 맞아, 그때 나는 술집에 있었다. 어쩌잔 말이였어?
김 중령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 중령의 시선이 서서히 윤 하사의 얼굴로 향해왔다. 윤 하사는 눈 한 번 껌벅이지 않고 김 중령의 시선올 맞고 있었다. 김 중령은 그 시선올 천천히 밤하늘 속으로 떠올리며 말했다
“……윤 하새 너야?”
“……네.”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겠지?”
“네. 허지만 지금까지 어리뻥뻥해서…….”
“그거 이상하잖나아 모병탁 소위로 말하면 너와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고, 그리고 당일에 근무도 아닌 모 소위가 뭣 때문에 자네를 찾아왔올까. 더구나 잠복호에!”
김 중령은 잽싸게 홱 몸뚱이를 돌리며 윤 하사의 얼굴올 뚫어질 듯 쳐다봤다. 김 중령의 얼굴은 무수한 의문을 담은 채 비열하도록 웃고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저…….”
윤 하사는 김 중령올 맞쏘아보며 다급하게 내뱉었다.
“뭐야? 말해봐…….”
김 중령은 야전파카의 윗주머니를 열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시다시피 잠복호 정면에 노출되는 유동체는 수하없이 갈겨왔습니다. 그런데 왜 어젯밤엔 암호가……, 더구나 그런…….”
윤 하사의 대꾸에 김 중령은 별안간 험악하게 눈꼬리를 치뜨고는 윤 하사를 노려봤다.
“뭐라구……이 새끼!”
김 중령은 가차없이 윤 하사의 다리를 걷어찼다. 윤 하사는 눈발 위로 나둥그라졌다.
김 중령은 윤 하사 얼굴 가까이 그의 상체를 꺾고 가쁜 숨을 혈떡였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증기 기관차의 덩이진 연기처럼 희뿌연 입김올 내뿜으며 이를 갈았다.
“뭐라구! 암호가 어쩌구 어째? 임마 하사 달 때까지 넌 도대체 뭘 배웠어. 암호는 훈련기간 중 자유자재로 갖다댈 수 있잖나. 작전사에서 내려온 암호가 뭐가 어쨌다는 거야? 엉?”
“어제가 훈련이었습니까?”
“근데 이 자식이…… 야 임마 난 대대장이야. 자체훈련은 순전히 내 권한이야.”
“하필이면 왜 그런 암호…….”
윤 하사의 핏발서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 중령은 또다시 발길질을 해댔다. 시야가 흐리도록 희뿌연 눈가루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김 중령의 발길질은 회오리 바람처럼 눈가루를 뽑아올리고 있었다.
“나쁜 새끼! 임마 모병탁 소위를 쏘아 죽인 놈은 어떻든 너야! 알겠나, 알겠어?”
김 중령의 바쁜 발걸음이 저벅저벅 눈발을 밟고 갔다. 그렁대던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몇 번인가 높고 낮게 올리더니 그 소리는 길고 높게 메아리를 치면서 멀어져갔다.
철거덕 철거덕―.
눈길 위를 구르는 체인 소리는 고막이 멍멍하도록 울리다가 이내 멀리 사라져갔다.
널름대는 불길 너머로 싸늘한 새벽이 트여오고 있었다.
군 수사대 장교는 쩌업 쓴 입맛을 다셔대고는 길게 하품을 했다.
“모병탁 그 친구 되게 모난 사람이었다더군. 그래, 친했었나?”
“부대 안에서는 아마 저 혼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것참, 조옷 같네. 하필이면 제일 가까웠던 놈 총에 맞아 죽을 건 뭐야 안 그래?”
윤 하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수사장교의 도시 귀찮다는 표정이 천만 다행이다 싶었고, 그런 수사장교의 심정에 가능한 한 열심히 동조하며 섬찟한 기억을 떨쳐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하여튼 그 당시 너 참 혼뺐겠구나.”
수사장교는 푸우푸우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또 한 번 쓴 입맛을 다셨다.
“당일 소대장 말올 들어보면, 그 친구 죽고 싶어 환장했던 꼴이더군. 그런데 그 친구가 대대장과는 앙숙이었다며?…… 그랬어?”
수사장교는 한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 감은 눈꺼풀 위로 가느다란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윤 하사는 분명하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수사관의 질문 중에서는 모 소위의 죽음에 제일 깊이 관련된 사건의 실마리나 다름없는 말이었으나 윤 하사는 모 소위의 죽음과 함께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해버린 뒤였다.
졸음이라도 참듯이 지루한 권태 속에 나른해 있던 수사장교가 갑자기 서둘러댔다.
“몇 마디 주고받고 끝내버리자구…… 당시 자네는 개나리에 있었나?”
“맞습니다. 제3초소니까요.”
“그렇다면 모병탁 소위가 1백 미터 거리를 포복해오는 동안에도 자넨 기미를 못 채린 거군.”
“우회해서 제3초소로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전방에 노출됐을 때 그냥 갈겼던 것 같습니다.”
“새끼 그거 미쳤지. 그래 잠복호에 사전통고도 없이 나들이를 했었나…… 수하를 했었다며? 훈련이었던 게로군.”
“…….”
윤 하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수사장교는 약간 신경질을 부리면서 내뱉었다.
“뭘 어물거리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너는 어디까지나 정상근무를 한 것이고, 이런 사건은 여기서 끝나버리는 것 아니겠어? 좆나발 개나발 캐차는 것도 아니고 명식상의 수사인데 뭘 어물거려? 자, 빨리 끝내버리자구. 나도 오랜만에 술독에다 몸 좀 녹여야겠고.”
윤 하사는 수사장교처럼 쩌업 쓴 입맛을 다셨다. 결국은 시시껄렁한 일로 매듭지어지고 말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실의였다. ˙
두 달 전이었다.
3소대 내무반으로 당당한 체구의 신임소위가 들어섰다. 잠복근무를 끝내고 한참 늘어지게 자고 난 소대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그를 쳐다봤다.
신임소위는 내무반올 오락가락하며 소대원들을 아니꼬운 눈길로 홅어갔다. 두 팔올 양 허리에다 얹고 잔뜩 위엄을 담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는 갑자기 멈춰 서더니 오른손 손가락을 계급장 위에다 올려세우면서 느닷없이 불호령올 내렸다.
“야, 이 새끼들!”
그는 그런 자세로 한동안 서 있더니 천천히 오른팔올 내려 허리에다 갖다 붙였다.
“야 이 새끼들아! 이 밥풀은 막소주 마셔가면서 오장육부 다 재리고 나이롱뽕해서 딴 건 줄 알아? 새끼들 형편없구먼 이거. 안 보이나, 이거 안 보여? 이 삼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는 하숙집 과부 조지고 빌려다 줄 알어? 나, 나를 소개하겠다. 3소대 신임 소대장 모병탁 소위다!”
모 소위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대원들은 내부반이 떠나갈 듯 웃어제꼈다. 윤 하사는 꿀꿀꿀――꿀꾸올 해가며 사실상 신빠이 소위의 당돌하고도 천진스러운 행동올 비웃고 있었다.
모 소위는 서부영화의 정의한처럼 어깨를 으쓱해보이면서 발했다.
“엇쭈우 너희들 배꼽 열었었어? 너희들 말야, 알오티씨 출신 밥풀들올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나한테는 안 될걸. 야 그 배꼽들 안 닫쳐, 엉?”
모 소위는 양 어깨로 가쁜 숨올 얹고 내뱉었으나 내무반은 다시 웃음 복새통이 됐다.
모 소위는 고개를 푸욱 떨구더니 야릇한 웃음올 문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유독 치켜들린 어깻죽지를 가들가들 떨며 어색한 웃움올 웃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비해 치켜들린 어깻죽지가 몹시도 수척하고 길게 흐느적대는 그의 양팔과 두 다리는 늦가을의 굶은 거미다리를 연상케 하는 그런 묘한 체격이었다.
내무반이 온통 웃음통이 되자 모 소위는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해보이더니,
“차아 이거 군기가 엉망인데? 자아…… 이거 안 되겠어어?”
하는 실의에 찬 발성과 함께 획 내무반올 나가버렸다.
내무반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묘오한 노움―-”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OO에서 두 달도 못 채우고 이곳으로 전속돼온 신참소위라는 것과 또 사단장 줄올 어느 정도 타는 장교라는 중론들이었는데, 그것도 무슨 인척간의 연고가 아니라 그가 알오티씨 후보생으르 재학시절 교관의 소개로 알게 된, 그런 관계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시체말로 ‘별 볼일 없는’ 그런 사람이고 순전히 깡짜로만 노는 그런 장교라는 것이었다.
모병탁 소위가 전속돼은 지 불과 사흘 뒤의 밤이었다. 그는 엎치락뒤치락 잠올 못 이루면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는 장교들과 별로 어울리는 일도 없었고 장교숙소를 사절하고 좁은 내무반 구석에서 잠을 자곤 했다.
모 소위는 그 길다란 발로 육 하사의 정강이를 툭툭 건드리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야 씨파알 좆 같은 게 말야하…… 어이 윤 하사 적은 본질적인 모순인 거야 본질적인 모순올 적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 거야 어이 윤 하사, 근데 이거 미치겠는데? 차아 이거야 어디…….”
윤 하사는 자는 체 듣는 시늉도 않고 모 소위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는 내무반에 들어설 때 눈두덩이 세 곱은 부어올라 있었다. 조 하사의 말로는 대대장에게 몇 대 터졌다는 것이었다.
“어이 윤 하사, 새끼 그거 뭐 그러지? 글쎄 그 말을 어느새 대대장에게 인러바쳐서는 내 안면의 부피와 면적올 늘려줄 게 뭐야. 근데 말야 윤 히사도 봤을 거야. 난 대대장 책상 위에 놓인 그 사진이 영 밸이 꼴려 못 봐주겠거든. 그게 뭐야? 그런 본질적인 모순이 어디 있어…… 을지문덕이나 이순신 사진올 모셔놨으면 모르지만 말야, 후후훗. 그것도 자랑이다 자랑…… 끌끌끌, 차아 이거 고걸 또 고자질하는 놈이 다 있구…….”
윤 하사는 휑 돌아누우며 모 소위의 말뜻올 새기고 있었다. 모 소위가 말하는 사진인즉, 대대장의 딸과 서양인 사위가 포옹하고 있는 그 사진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어이 윤 하사 최 소위 거 사람 덜 여물었더구만, 내가 최 소위에게 말했지. 백번 이해해서 연애정도는 좋다. 그러나 피를 갈려서야 되겠는가 하고 말야. 진도개에다 도베루만을 붙여봐야 개좆도 진도개 할애비가 나오느냐구 말야 진도개는 진도에서 살아야 된다구 말야. 아, 그랬더니 그 새끼가 나발을 불어댔어. 어이, 내가 틀렸어? 어이…….”
모 소위는 연신 윤 하사의 정강이를 툭툭 건드리며 안절부절 못했다. 윤 하사는 버력 내쏘았다.
“그게 어떻다구 야단이오? 잠 좀 자자구 제발…… 젠장, 남이야 쇠죽을 쑤든 개죽올 쑤든 무슨 상관이야, 하여튼지 괴짜는 괴짜구먼 당신…… 소위님보다 나이도 더 먹었고 내 딴엔 군바리 풍상 다 겪은 놈이오, 이거. 고참 하사 잠 좀 잡시다, 제발.”
모 소위는 휑 돌아눕더니 괜히 모포깃을 들썩하며, 못참겠어, 못 참겠어! 해대더니, 급기야는 모포를 차고 일어섰다.
“못 참아 못 참겠어 이거!”
모 소위는 옷올 주워 입더니 어깻죽지를 바짝 치켜세우고는 내무반올 나갔다.
“에이 개나발 같은 신빠이녀석! 설치다가 3소대 연대기합이라도 따올 셈인가?”
윤 하사는 담배에 불올 볼이고는 일어나 앉았다. “소문대로 보통 괴짜가 아니구먼. 설치다가 6종으로 후송돼야 알갔나 저거”, “비오큐로 몰아냅시다, 저거.” ……사병들은 저마다 투덜대는 것이었다.
잠시 후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금세 욕설로 변해가더니 이내 둔탁하게 땅올 울렸다.
윤 하사가 창문으로 밖올 살폈올 때 모 소위는 옹크려앉아 꼼짝 않고 있었고 그런 모 소위를 향해 최 소위의 집요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몇 번 나동그라진 모 소위는 툭툭 먼지를 털며 어슬렁어슬렁 내무반을 향해왔다.
“하 하 하―.”
모 소위는 내무반 문올 밀치듯 밀고 들어오더니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제꼈다.
“풍월까네에. 한 방도 못 넣어보구 맞긴 왜 맞아. 3소대 뻘됐네, 뻘됐어.”
윤 하사가 야릇한 동료의식에 분노를 물고 있올 때 모 소위는 웃다말고 피식 쓰러졌다. 소대원들이 달려들어 그의 군화를 벗겼다. 윤 하사는 모 소위의 어깻죽지를 들쳐메었다.
바로 그때, 모병탁 소위는 윤 하사의 귓전에다 간이 타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 말야…… 키만 자랐지. 사실은 싸움도 못 하구 힘도 없는 놈이다. 때리면 맞는 게 광땡이지. 제발 자네만이라도 나를…… 나를 이해해줘!”
윤 하사는 가슴속으로 야릇한 충격올 느끼고 있었다. 윤 하사는 모병탁 소위를 떼메고 몇 걸음 걷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먼 곳으로부터 총성이 일었다. 그 소리는 길게 메아리치면서 내무반 지붕 위를 흘러갔다.
잠복호에서는 허깨비라도 본 모양이었다.
김 중령은 유리창문올 통해 들어오는 차디찬 햇살올 이마 위에다 얹고 쩝찝 달갑잖은 입맛을 다셔탰다.
“서무계가 그러는데 모 소위가 사단장에게 편지를 냈다며? 귀관은 모 소위와 다소 친분도 있올 테니 알 듯도 싶은데.”
“전혀 모르는 사실입니다. 고향으로 편지를 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윤 하사는 그러면서도 분명한 사실 하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젯밤, 모 소위는 밤올 새워 뭔가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모 소위는 끝내 편지의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윤 하사가 몰래 넘겨다보면 모 소위는 쓰던 것을 덮어버리곤 했었다. 그러면서 “나도 힘올 좀 내야겠어.” 하며 알 듯 모를 듯 중얼대는 것이었다.
김 중령은 야릇한 웃음올 흘리며 나직이 물었다.
“그래, 그 친구가 정말 사단장 연줄올 타는 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인척연고도 없고 그저 모르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윤 하사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김 중령은 빠드득 이를 갈며 내뱉었다.
“개자식! 어디 두고보자. 이 미친놈의 자식올 그냥…….”
김 중령은 담배를 태워물더니 버력 고함올 질렀다.
“돌아갓.”
윤 하사가 막 문을 나서려 할 때 김 중령은 등돌아앉은 채 내뱉었다.
“그 새끼 당장 비오큐로 쫓아보내! 차후 또 내무반에서 취침하면 내무반 날아가는 줄 알고 있어. 그리고 그때는 너에게 책임올 묻겠다.”
윤 하사는 대대장실올 나왔다.
모 소위는 윤 하사 자리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며칠째 야간근무도 하지 않고 내무반에 처박혀 있는 탓인지 그의 얼굴은 유독 핼쓱했다.
모 소위가 잠복근무 소대장으로 나가는 것올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 소위가 근무하는 밤엔 유선전화가 불이 날 정도였고 심지어는 P―10 무전기로까지 쑤셔대며 대대 상황실올 들볶는 것이었다.
며칠 전 3소대가 잠복근무하는 밤이었다. 8개 초소를 순찰하고 난 모 소위는 제4초소로 기어들며 늘어지게 하품올 해댔다. 그는 초소벽에 등올 기댄 채 멍청하게 밤하늘올 올려다봤다.
“되게 싱겁구나. 잠복호가 이렇게 공일이니 대대장 허리 늘겠구먼. 아아하암―― 아아함.”
모 소위는 연신 하품올 해대더니 감자기 쉿! 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윤 하사, 방금 무쓴 소리가 났어!”
모 소위는 긴장해서 앞을 내다보면서 윤 하사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것이었다. 그러는데 잠복호 뒤에서 펄럭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전방에서 탁 하는 소리가 났다. 분명히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야 이 새끼야 뭣하고 있는 거야 임마! 김 상병, 얼른 대대로 보고해. 전방에 돌멩이가 떨어진다고¸ 임마.”
모 소위는 낮게 명령하며 김 상병의 옆구리를 쥐어막았다 김 상병이 유선전화를 들었다.
“임마, 시시하게 그건 왜 들어? 피―텐으로 쑤시란 말야 어서!”
긴장한 김 상병이 무전기로 대대 상황실올 부를 때였다. 윤 하사는 머리 위로 획 스치는 모 소위의 팔올 느꼈다. 그러자 또 한 번 전방에서 돌멩이가 구로는 것이었다. 모 소위가 주머니 속에 담아온 돌멩이를 매복조가 모르게 던지고 있는 것올 윤 하사는 알았다. 윤 하사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상황이 아니면 선제사격올 않는 것이 잠복조의 상식이었다. 성급한 선제사격은 적에게 목표를 노출시키기 때문이었다.
윤 하사는 할 수 없이 낮게 부르짖었다.
“김 상병! 갈겨!”
김 상병의 총구에서 파란 인광올 그으며 예광탄이 날았다. 때를 같이 하여 8개 초소가 벌집 속처럼 콩올 볶아댔다.
“됐어. 대대장에게 직접 보고해. 적은 패주했다고 말야.”
윤 하사는 모 소위의 귓바퀴를 틀어잡고 바싹 소곤댔다.
“또 장난치면 그땐 당신올 죽일 테야, 알았어?”
모 소위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윤 하사는 모 소위를 흔들어 깨웠다.
모 소위는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어휴. 벌써 이렇게 됐나?”
그는 시계를 보고 나더니 황급히 옷올 주워 입었다.
“외출이아?
“좀 다녀올 곳이 있지…… 이 메뚜기에도 독침이 있다구 대대장이 나의 별명올 하사한 모양인데 거 심히 불쾌한 껍덱긴데? 뭐? 광야의 메뚜기라고 했다며? 거 상당히 서구적인데 자기 손자 이름으로 딱 좋군.”
윤 하사는 어정어정 내무반올 나가는 모 소위를 불러세웠다.
“오늘부터 비오큐로 가셔야 되겠어. 대대장의 엄명인데 말야…….”
“그래? 헐 수 없지. 최 소위 새끼헌테 좆이나 빨려봐?”
“……사단장 줄을 좀 타보지그래. 후방으로 말야 참 못 봐주겠어.”
“오 노우! 난 지오피에다 뿌리박았다구. 그런 건 속물들이 하는 짓이고…….”
“뿌리박는 것 좋아하네. 나 같으면 당장에 후방으르 뛰겠어. 끗발 좋은 데로 당장 뛰겠어.”
“윤 하사가 염려하는 그런 것은 아니래도 딱 한 번 사단장올 이용하겠어.”
모 소위는 후적후적 내무반을 나가버렸다.
윤 하사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사나이로으 태어나서으 하알 일도 많다마안…….
모 소위의 흥얼거리는 군가 소리가 창 밖올 흘러 멀어져갔다.
윤 하사는 잠에서 깨어났다. 저녁 햇살이 싸늘하게 창올 뚫고 있었다. 창 밖에 헬리콥터 한 대가 낮게 날고 있었다. 헬리콥터는 내무반올 통째 울리며 지봉 위를 넘어갔다.
잠시 후였다. 내무반 앰프가 삐익삐익 고막올 찢더니 다급한 목소리가 려져나왔다.
――중대장 이하 전 하사관들은 즉시 연병장으로 집합해주기 바란다. 각하께서 비래하셨다. 비번 전 소대원들은 취침상태를 유지할 것, 이상.
윤 하사가 연병장으로 뛰어갔올 때 연병장은 정렬하는 사관들로 북새통이었다. 헬리콥터는 연병장 상공올 낮게 날더니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대대장 이하 전 사관들은 부동자세로 굳어 있었다.
헬리콥터가 내려앉고 문이 열렸다. 요란한 구령이 떨어지고 거수경례의 정연한 손들이 매운 바람올 가르며 얼어붙었다.
대열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은 잠시 후였다. 윤 하사는 경악하며 굳어버렸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사람은 사단장이 아니라 바로 모병탁 소위였다. 모병탁 소위는 잔뜩 어깻죽지를 추세우고 긴 팔을 흐느적거리며 내무반올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김 중령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의 얼굴은 집요한 경련올 얹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을 때, 김 중령은 그제야 자세를 흐트리며 천천히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이었다. 그의 손은 마구 경련하고 있었다. 펼터를 질근질근 씹고 있던 김 중령은 그것을 내뱉어버리며 벽력같이 고함올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이리 와!”
걸어나가던 모병탁 소위는 태연히 되돌아서 걸어왔다.
“이 새끼! 이 메뚜기새끼!”
김 중령은 와락 달려들어 모병탁 소위의 멱살올 움켜쥐었다.
“왜 이러십니까. 나는 정확한 귀대시간 때문에 사단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았올 뿐입니다. 갓 쓴 놈이 미제 날틀올 탔다 이겁니까?”
모병탁 소위의 눈은 김 중령의 이글거리는 눈길을 뚫어져라 맞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구? 그 따위 서툰 엄포에 내가 꺾일 줄 딱았나? 얏 죽어라, 이 새끼!”
김 중령의 가차없는 발길질올 신호로 모든 장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모병탁 소위는 난무하는 주먹에 갇혀 기진한 투계처럼 퍼득거렸다.
구릉올 홅는 삭풍이 눈보라를 날리우구 있었다. 눈보라는 원주처럼 피어오르며 설화를 이고 늘어진 상륙수의 가지 새로 빠지고 있었다.
김 중령올 뒤따르는 1중대장 박 소령과 최 소위가 가끔 뒤를 힐끗힐끗 돌아다봤다. 김 중령의 널찍한 야전파카의 등이 야릇한 수모를 감내하며 묵묵히 행진하고 있었다. 쪼르르 내닫는 김 중령의 사냥견(전형적인 한국 잡종견이지만 사냥에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이 뽀얀 눈가루를 흩날리며 오랜만의 나들이에 미쳐 있었다.
윤 하사는 모병탁 소위와 함께 뒤처져 걷고 있었다.
“풀어놓지그래. 끌고 다닐려면 뭣 하려고 고걸 사왔어.”
“모르는 소리. 이 놈을 풀어놓으면 저 똥개를 겁탈하고 말 거다.”
모병탁 소위는 피식 웃었다. 모 소위의 손에 단단히 메달린 포인터가 길게 혀를 뻬고 헐떡였다.
“김 중령이 사냥올 납신다기에 기어코 사온 개야, 자그만치 일만 원정이야 근데, 이 새끼 이거 좆만 컸지 제대로 사냥 한 번 못 할 뽄대란 말야.”
앞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빗맞았는지 장끼 한 마리가 바로 머리 위를 푸드득 날아갔다. 장끼는 산협의 굴곡 속으로 길게 포물선을 그으며 사라졌다.
“병신 같은 새끼. 벌써 세 번째나 허탕이군.”
모 소위는 중얼거렸다.
김 중령의 헛기침 소리가 가끔 꺼렁꺼령 산을 울렸다.
묵묵히 걸어나가던 모 소위가 윤 하사의 옆구리를 꾸욱 찔러댔다.
“헛기침 연방 쏟는 게 속으로는 되게 불안학 모양이군. 나를 웃겼다. 이 광야의 메뚜기를 뉴헴프셔의 뚱돼지가 웃겼어.”
윤 하사는 모 소위의 얼굴을 빤히 건너다보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사냥에 따라 나서리라곤 상상도 못 했올 거란 말씀인데에…… 보다시피 내 손엔 총이 들렸단 말이다. 저 친구, 행여나 내가 한방 내갈길까봐 제정신이 아닐 거라, 훗훗. 비록 메뚜기이되 그렇게 비열하지는 않아. 나는 모순올 중오하는 거지…… 그리고 시겁잖은 이유 하나로도 한번 싫어지면 그게 끝장이야 그놈의 사진올 책상 위에서 내릴 때까지 해보는 거야.”
“…….”
“그리고 행여나 하고 내 눈치만 슬슬 살피는 것도 구역질 난단 말이야. 헬리콥터 사건 이후로 되게 찔리는 모양인데, 후우웃――그것도 이 광야의 메뚜기를 웃겼다! 말했잖어? 딱 한 번 사단장을 이용해보겠다고― 그 결과는 내가 죽 되도록 터지고 말았지만 말야.”
모 소위는 어깻죽지를 바싹 추켜세우고 끼들끼들 웃어댔다.
윤 하사는 걸어나가다 말고 주츰 멈춰 섰다. 김 중령과 박 소령이 눈발 위에 주저앉아 이쪽올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 소위가 그 앞올 지나칠 때까지 흡사 서치라이트의 광열처럼 홅어가고 있었다.
“윤 하사.”
“네:”
“그 개 자네 건가? 조오쿤.”
김 중령은 입슬올 떨며 조소했다.
“아닙니다. 모 소위님 개입니다.”
뒤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났다. 최 소위였다. 최 소위는 윤 하사의 뒤를 간격올 두고 따라왔던 듯싶었다.
윤 하사는 모 소위의 뒤를 따라 그들을 지나치면서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모 소위가 소곤댔다.
“윤 하사 거 보라구. 녀석은 어느새 우리 뒤를 밟아온 거야 말하자면 감시였겠지. 후읏 내 배꼽은 감정이 예민해서 탈이야. 홋홋――.”
모 소위가 능선올 내려섰을 때 뒤에서 총소리가 을렸다. 총소리는 간격적으로 계속됐다.
“본격적으로 시작하는군 이제 우리가 앞섰으니 심사가 편할 거라. 좀 쉴까?”
모 소위는 눈밭 위로 털썩 주저앉더니 이내 번듯이 누워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 방도 안 쏘구 내려갈 참이야? 괜히 진짜 오해받지 말구 사냥이나 하자구.”
모 소위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사낭해서 뮐 해.”
“글럼, 뭣하러 왔어?”
“조금 있으면 알게 돼.”
“……뭐라구?”
윤 하사가 다급하게 묻자 모 소위는 눈올 털며 일어섰다.
“천만에! 자네가 염려하는 그런건 결코 아니고…… 차아 이거, 날 그런 속물로 알다니.”
능선 위쪽에서 김 중령의 머리가 불쑥 내밀었다. 모 소위는 가늠쇠 위에 얹힌 목표물올 보듯 상반신이 드러나는 김 중령의 모습올 한쪽 눈안에 담고 있었다. 잇따라 박 소령과 최 소위의 모습이 서서히 능선 위로 떠올랐다.
“잠복호를 향해 포복해오는 적들 같군.”
모 소위는 천천히 카빈올 들었다. 그리고는 안전장치를 풀고 딱 한발의 탄환을 재는 것이었다.
윤 하사는 와락 모 소위에게 달려들며 그의 덜미를 붙잡았다.
“이 새끼! 너 미쳤어? 엉?”
모 소위는 윤 하사의 손올 뿌리치며 완강히 저항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내뱉었다.
“제발 이러지 말라. 넌 날 뭘로 보는 거야? 아, 이러지 마! 날 그렇게 비열한 속물로 보면 후회한다.”
윤 하사는 스르르 덜미를 풀었다.
모 소위는 눈 위에 앉아 버얼건 물건을 립스틱처럼 반쯤 까고 있는 포인터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좆 한 번 되게 크구나. 저 녀석은 아까부더 김 중령 암캐한테만 혼올 빼고 있어.”
김 중령 일행이 모 소위 앞올 지나갔다. 최 소위의 손에는 꿩이 다섯 마리나 들려 있었다.
“대대장님 많이 잡으셨습니다.”
김 중령온 푸 소위의 돌연한 태도에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엷은 웃음올 물었다.
헬리콥터 사건 뒤로 찜찜했던 의문 같은 것이 단숨에 걷히는 그런 기미였다. 말하자면 ‘네까짓놈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린데 저놈의 개새끼는 물어올 줄도 모르는군요. 그러니까 외국제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군요.”
김 중령의 웃는 얼굴에 웃음기가 걷히면서 그의 눈은 점점 당황해가기 시작했다. 모 소위의 총구가 포인터의 골통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었다.
――타앙――
포인터는 한 번 껑충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루비빚 선혈을 눈발 위에 뿌리며 길게 늘어지는 것이었다.
눈 속으로 배어드는 선지에 시선을 못박온 채 김 중령은 입술올 떨고 있었다. 김 중령은 천천히 시선올 떠올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차고 빠르게 분노를 익혀갔다. 그의 시신은 모 소위의 시선과 교차하며 불꽃처럼 이글이글 끓고 있었다.
김 중령은 그대로 선 채 말했다.
“박 소령, 내일은 훈련이오 제3소대가 야간근무한다. 소대장은 최민수 소위……너 모병탁의 소대장직올 박탈한다. 오랜만에 실컷 술을 마시게됐군.”
달빛이 희끄무레했다. 얼음쪽처럼 굳은 달이 매운바람 속에 떨고 있었다.
유선 전화가 울었다.
“여기는 진달래. 삼십분 후면 아군 가상적이 잠입한다. 위치는 8개 초소 후방 전역이다. 잠복호 전방은 상시 근무조건 그대로다. 수하불응차는 적이다. 이상.
윤 하사는 수화기를 놨다. 최민수 소위의 목소리였다.
윤 하사는 내무반에 뎅그렇게 남아 있던 모병탁 소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이 윤 하사 내가 너무했나?”. ˙
“그걸 말이라고 해?”
윤 하사가 내쏘는 말끝에 모 소위는 어깻죽지 속으로 모가지를 묻고 키들거 렸다.
“맹추새끼는 할 수 없군; 그래서 모순은 악순환하는 거야 차하 이거 내가 뭘 잘못한 게 있어?…… 고별주는 어디서 들까. 낌새가 지오피도 마지막일 것 같은데. 후웃.”
모 소위는 창가에 기대어, 엔진올 부릉대고 있는 수송트럭의 눈부신 비상라이트에 눈이 멀고 있었다. 그는 탈출하다가 서치라이트의 집광 안에 갇힌 죄수처럼 허탈을 씹고 있었다.
유선 전화가 기진한 소리로 또 울었다.
“여기는 잠자리. 귀초소 우측전방에 유등체 출현.”
“뭐?”
윤 하사는 수화기를! 놓고 총구를 세웠다.
“잘못 기어든 아군 아냐?”
“시간도 안 됐고 위치도 틀립니다. 수하를 해보면 알겠죠.”
김 상병과 이 상병이 수류탄읔 빼어들고 우측전방을 웅시했다. 잠시 후, 우측전방 구릉에서 서서히 노출되는 물체가 있었다. 윤 하사는 가늠쇠 위로 유동체를 떠올려놓고 숨올 죽였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구릉을 따라 우측 측면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김 상병의 수하가 떨어졌다.
“메뚜기!”
수하와 동시에 괴물체는 벌떡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뭐? 메뚜기? 야 이 썅…….”
윤 하사의 총구에서 예광탄이 목표를 향해 날았다. 이어 예광탄의 방향을 따라 숨돌릴 새 없는 총성이 더졌다. 초소 우측전방은 순식간에 폭죽처럼 화광 속에 덮였다.
총성들은 삭풍을 따라 한없이 메아리쳐 흘러갔다.
― 1974년
2016년 12월 24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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