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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도 사 줄 만한 문장이 없다!’
이번 칼럼은 독자의 흥미에서 살짝 벗어난 주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 교회, 특히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와 한국 교회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로마보다도 가깝고 미국보다도 정서적으로 친근한데, 두 지역보다 아시아가 더 멀게 느껴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미스테리다. 지난 한두 달 사이에 일어난 최근의 일이고 또 아시아에 대한 한국 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상황이니만큼 관심을 가져 달라는 부탁으로 말문을 열어 본다.
위 부제는 한 아시아 신학자가 FABC 50주년 총회 최종문서에 대해 결론 삼아 내린 평이다. 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대표기구인 FABC에서 발표한 수많은 문서 중에 이런 평가를 받은 것은 내가 아는 한 처음이다. 그것도 외부인이 아니라 FABC의 브레인 역할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는 ‘신학사무국’(OTC)에서 10여 년 동안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펠릭스 윌프레드 신부의 비판이기에 더욱더 심각하게 들린다. 그는 총회가 열리기 전부터 최종문헌이 나오기까지 아시아 주교들이 20일에 가까운 총회 기간 동안 진정으로 교회가 부딪친 위기를 타개할 의지와 지혜를 모으도록 염원했고, 이를 5개의 크고 작은 글에 반영했다.1) 그러나 그의 바람은 크게 빗나갔다. 모두가 예상하듯이 FABC 50주년 기념 총회 최종문서이기에 지난 50년간 걸어온 길을 개괄적으로라도 헤아려 보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전에 없던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일이었고 따라서 그가 “이번 문서는 뿌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의 과거에서 단절돼 버렸다”2)고 단언한 것도 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펠릭스의 평가를 좀 더 따라가 보자. “이번 방콕 총회 문서에서는 서로 간에 솔직 대담하게 발언하고 관점이 대결하며, 긴장이 있어서 더 큰 창조성을 낳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문서로서는 이 FABC 총회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처럼 활발한 토의와 고민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참석 주교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의견이라 할 만한 것을 전혀 갖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는 겉 포장이다.”3)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UCA News> 기자로 일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FABC 총회에 참가한 내 경험으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이런 그의 진단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그룹 토의와 전체 토론에서 여러 발표가 있고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이면 어떤 형식으로든 기사에 담아 공론화 했다. 총회당 각종 선언문과 발표 문서를 포함해 40-50개 기사를 생산해 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중요한 50주년 총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개회 소식 이외에 어떤 형태의 기사도 거의 나오지 않은 사실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총회는 FABC가 어떻게 원칙과 전통을 저버리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펠릭스는 “이 문서는 신학적 비전, 구체적 지향점, 실제적 지표가 비참할 정도로 부족해, 변화를 위한 청사진이 되기에는 효용이 떨어진다.... 50주년이라는 중대한 때에 만들어진 이 문서는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며, 때문에 이 존경받는 조직에서 지금까지 만든 총회 문서 가운데 아마 가장 볼품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라고 결론 내리면서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FABC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펠릭스는, 정녕코 몰라서 이런 질문으로 글을 맺고 있는 것일까.
펠릭스 윌프레드 신부가 지난 6월 8일 제17회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아시아가톨릭TV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FABC와 한국 교회
아니, 그는 분명 알았을 것이다. FABC가 창립하고 30여 년 동안 얼마나 신학적, 사목적 발전을 이뤄 왔는지, 그리고 그 뒤부터 얼마나 후퇴해 왔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몰랐다면 ‘이번 총회를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우려와 걱정의 논조로 쓴 그의 저 다섯 편의 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몰랐을 수도 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망가져 있을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펠릭스의 저 마지막 질문은 많은 생각을 몰고 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펠릭스가 이 글을 쓴 지난 5월, 서울에서 FABC 신학사무국 정례회의가 열렸다. 그러니까 이 신학사무국이 주도한 또 다른 회의인 셈이다. 타이밍이 얄궂다. 이 자리에는 신학사무국 위원과 한국 교회 신학자 14명을 포함해 관계자 20여 명이 일주일 동안 회의를 열었다.5) 한 교계 신문은 이번 회의가 신학사무국 위원들의 “오랜 기대가 반영돼 서울대교구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추진”됐으며, 이는 “아시아 교회 안에서 한국 교회 위치가 그만큼 성장한 것을 보여 주는 것”6)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의 큰 국제회의를 하면서 그 흔한 자료집조차 없이 사무국 위원장 주교와 위원인 서울대교구장의 발표문 정도만 A4 용지에 커버도 없이 스테이플러로 철한 형태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어떤 중요한 신학적 논의가 있었다는 소리나 흔적조차 없으니, 이 위원들이 기다린 ‘오랜 기대’는 도대체 무엇에 대한 것인가? 또 서울교구의 ‘전폭적인 지원’이란 무엇인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회의에 참석한 인도네시아 출신 위원장 주교는 “독일의 시노드 방식에 대한 논평들을 비롯해 지난해 타이 방콕에서 열린 FABC 50주년 기념 총회에서 소개된 아시아 상황에 따른 선교 신학 등을 소개”7)했다고 한다. 두 교계 신문이 전한 일주일 동안의 회의는 이렇게 간단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의 기조 강연(“Context as Locus Theologicus?”)이 아시아와는 거리가 먼, 신학사무국과 관련도 없고 관심조차 없는 독일 교회의 ‘독일식 시노드의 길’을 소환해 비판하고, 같은 맥락에서 FABC 상황 신학적 경향을 에둘러 경계한 내용은 빠져 있다. 이 둘의 관계가 아무런 논리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이 병렬적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또한 계시의 두 원천인 성서와 전통에 버금갈 만큼 현실 상황을 강조하는 FABC의 신학적 방법론을 독일식 시노드의 길 비판 뒤에 놓음으로써 이를 같은 선상으로 보고자 하는 그의 시각과 의도를 다시 드러낸다. 신학사무국 위원장이 FABC의 핵심적 신학방법론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모양새이니, 여기서 또 한 번 전통의 일탈이 일어남을 목도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 회의를 공동주최했다는 한국 교회 측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어떠한 문제 제기도 보이지 않는다. 침묵은 동조를 뜻하는 것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이 회의는 한국 교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FABC 50차 총회를 2022년 10월 12일부터 30일까지 타이 방콕대교구에서 열었다. 아시아 교회 지도자들 모습. (사진 출처 =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홈페이지)
‘주교는 자신이 아니라 신도를 대변해야’
최근 또 다른 국제 학술 행사에 참가차 한국을 방문한 인도 바사이 교구장 펠릭스 마차도 대주교는 FABC의 주요 사무국 중 하나인 ‘일치운동 및 종교간대화 사무국’(OEIA) 전 의장으로 현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전임자다. 그는 강연에서 “주교가 자기 개인적인 얘기하려면 뭐하러 비용 들여 가면서 서로 만나려고 하는가? 주교는 신도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주교들의 회의라 하더라도 전체 신도를 대변하고 대표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FABC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역 교회 신도가 ‘FABC의 본체’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마차도 대주교는 전체 인도 184개 교구의 주교가 속한 인도주교회의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FABC 50주년 총회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내게 귀띔해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그러니까 FABC는 이제 신학적 무능-이는 최근 신학사무국이 기초한 대륙별 시노드 문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을 넘어 마땅히 초대해야 할, 교구 수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인 인도주교회의 사무총장을 색깔이나 성향으로 솎아내는 비도덕적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FABC가 구조적으로 파행을 보인 것은 2012년 40주년 총회 당시 40년 동안 지켜온 ‘사무총장제’를 폐하고 의장(president)을 두는 형태로 전격 바꾸면서부터로 보인다. 이를 위한 어떤 선거 절차도 없이, 마차도 대주교를 솎아낸 것처럼 소수의 손에 의해, 40년 동안 지켜온 협의 구조 형태의 사무총장제를 폐해버린 것이다. 이 역시 비윤리적인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40년 전, 1972년 김수환 추기경을 중심으로 당시 남미 주교회의(CELAM) 같은 또 다른 ‘해방신학의 본거지’가 될 것을 우려한 바티칸 꾸리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황 바오로 6세를 설득해 2년 시한부로, 의결 구조가 아닌 협의 구조로 타협해 가까스로 승인을 받아낸, 그런 귀하고 역경에 찬 역사가 있는 FABC의 구조를 정당한 절차 없이 폐기해버린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유산의 계승은 한국 교회를 광내기 위한 선전이 아니라, 바로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교회의 개혁과 쇄신의 관점에서, 특히 FABC를 되살리려는 노력의 하나로 부활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의 차원에서 제기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교회를 포함해 아시아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현실에는 관심이 없으며, 알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디로 빠져나가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1) 그 가운데 3개는 <UCA News>에 칼럼 형식으로, 2개는 <The New Leader>에 조금 긴 에세이 형식으로 기고했다.
2) 편집국,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50주년, 비전이 없다',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2023.05.31.
3) 위의 글.
4) 위의 글.
5) 이주연, 'FABC 신학위원회 2023 정례회의', <가톨릭 신문>, 2023.5.14.
6) 위의 글.
7) 도재진, '교회를 등진 이들, 구원으로 인도할 방법 모색해야', <가톨릭평화신문>, 2023.05.10.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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