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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開拓者)★
[노숙 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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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천씨 맞습니까?"
정중하면서도 사무적인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을 때 김명천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전 10시 반이었다. 식대를 줄이려고 아침겸 점심으로 합숙소 앞 순대국집에서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예, 접니다."
"여긴 일성전자 총무부인데요."
그 순간 김명천은 숨을 죽였다. 일성전자에 입사원서는 송부했지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원서 마감 후에 신문에는 경쟁률이 250대 1 가깝게 된다고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고의 경쟁률이라고도 했다. 수화구에서 말이 이어졌다.
"내일 오후 3시까지 수원 본사 연구회관 빌딩 5층 514호실로 오셔서 면접심사를 받으십시오.
원서 접수증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긴장한 김명천이 상체까지 반듯이 세운 채 대답하고는 서둘러 펜을 꺼내어 면접장소를 적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식당 아줌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으나 김명천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일성전자에서 면접심사 통보가 오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모집이 있길래 눈딱감고 원서를 보냈을 뿐으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성전자의 기준으로 보면 수만명 응시자 중에서 서류 심사등급으로 본다면 상중하에서 중하 정도의 수준일 것이었다.
"국 식어. 밥 안먹을거야?"
다시 아줌마가 물었으므로 김명천은 수저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아줌마를 보았다.
"아주머니, 이거 저녁때 와서 먹으면 안될까요? 지금 일이 있어서."
"어, 그래."
심성이 고운 아줌마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가와 순대국 그릇을 집었다.
다행히 아직 밥은 국그릇에 섞지 않았다.
"그럼 저녁때 와."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밥맛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서둘러 합숙소로 돌아온 김명천은 먼저 양복부터 살펴보았다. 태양교역 운전사겸 경호원으로 채용 되었을 때 받은 양복은 아직 멀쩡했지만 다림질을 해야 될 것 같았다. 양복에다 셔츠까지 들고 합숙소를 나가는데 주인아줌마가 불렀다.
"김씨, 다음 달에 그 방 계속해서 쓰려면 하루 5000원씩 내야 돼. 알겠지?"
"예, 아주머니."
"김씨니까 특별히 봐주는거야."
"알겠습니다."
합숙소를 나온 김명천의 가슴이 다시 무거워졌다. 베니아 판으로 칸막이가 된 방은 옆방의 숨소리까지 다 들렸다. 여자를 받지 않아서 그래도 이상한 광경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방 한 칸에 두 명이 각각 3000원씩 내고 숙박해왔다가 혼자 있게 되자 5000원으로 인상 한다는 것이다. 합숙소를 15년째 운영한다는 아줌마는 강남에 몇십억짜리 저택을 갖고 있는 부자라는 소문이 났지만 매정했다. 아무리 오랜 단골이라도 외상 손님은 받지 않았고 시계라도 잡아야 잠을 재웠다.
그래야 서울에서는 밥 굶지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탁소에다 양복과 셔츠, 넥타이까지 다림질을 부탁한 김명천은 골목 안을 서성거렸다. 오늘도 눈이 올 것같이 흐린 날씨였는데 바람이 세었다. 임재희는 지금쯤 잠을 자고 있을 것이었다. 오늘이 룸사롱 `하진'에 나간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고 눈 내린날 발안의 바닷가 민박집에서 밤을 같이 보낸 지 닷새째가 된다. 그 후로는 만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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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전자 본사는 수원 교외의 전자단지에 위치해 있었는데 거대한 규모였다. 그런데 100만평의 부지가 좁아서 일성전자는 기흥에 다시 100만평 규모의 제3공장을 건립 중이었다. 김명천이 수원 본사의 연구회관 빌딩에 도착 했을 때는 오후 2시였다.
면접 한시간 전인데도 빌딩 앞마당과 1층 대기실에는 수천명의 응시자가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오늘이 면접 3일째였다. 경쟁률이 250대 1인 것이다. 눈앞에서 우글대는 건장하고 머리좋은 놈들 250명을 쳐 없애야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2시 10분에는 1층 로비에서 얼쩡대며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2시 반경이 되었을 때 김명천은 3층의 복도까지 올라왔다. 그동안 오가는 말을 종합해서 정리하면 이번에 모집하는 150명은 기구 확장에 필요한 인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울대를 비롯한 일류 사립대 3곳 출신이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다.
2시 40분에 김명천은 5층 대기실에서 면접번호를 받고 주의사항을 들었다. 김명천의 면접 번호는 8247번 이었는데 5명이 1개 조를 이루어 면접을 보는 방식이었다. 면접관은 5명으로 시간은 10분이었으니 1인당 배분된 시간은 2분 정도였다.
그러나 가끔 튀는 놈이 나타나면 말 몇 마디 정도만 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튀는 놈이 잘난 체 하느라고 혼자 떠들어서 남의 시간을 빼앗기 때문인데 그런 놈이 합격 되었는지는 모른다.
8247번 명찰을 달고 514호실 앞에 서 있는 김명천에게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8250번이다. 8246번부터 같은 조였으니 같이 면접을 보게 될 사내였다.
"반갑습니다. 같이 면접보게 되었네요."
사내가 붙임성있게 먼저 인사를 했다. 번호 밑에 이름이 박인태라고 적혀져 있었다. 김명천도 얼굴을 펴고 웃어 보였다.
"잘 해보십시다."
"이번 면접은 5배수를 뽑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추린다는 건데.“
박인태가 긴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목소리를 낮췄다.
"3차 면접까지 있다는 겁니다."
"그래요?"
"다방면으로 적성 파악을 하겠다는 의도랍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김명천은 처음 듣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희망이 더 일어났다. 5배수라면 정원보다 5배를 더 뽑아서 다시 추린다는 말이다. 이력서에 일성전자의 1차 면접에 합격되었다고 쓸 수야 없겠지만 우선 당장은 가능성이 더 많아진 것이 나은 것이다.
"제 164조, 준비하세요."
스피커에서 부르는 소리에 그들은 서둘러 대기실로 들어섰다. 10분 전이었다.
대기실에는 이미 8246번부터 나머지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 단정한 양복 차림에 용모도 준수했다. 김명천은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다섯명 중 가장 출중할 것이었다. 1m 85의 신장에 체중은 82kg으로 군살도 없는 체격이다. 거기에다 태양교역의 오수영이 골라준 고급양복차림인 것이다.
그러나 대기실에 앉은 다섯은 긴장한 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8250번 박인태도 앞쪽만 바라보았다. 이윽고 벨이 울리더니 앞쪽 문이 열리고 사내 하나가 나왔다.
"자, 164조, 들어오세요."
심호흡을 한 김명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면접을 보았지만 오늘이 제일 센 상대였다. 마치 무대의 상대를 향해 링에 오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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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선 김명천은 앞쪽 벽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있는 5명의 면접관을 보았다. 말이 본것이지 이쪽은 얼어서 윤곽만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저쪽은 들쥐의 허점을 노리는 뱀처럼 이쪽의 일거수 일투족을 냉정하게 살피고 있을 것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김명천의 방식이 있다. 아예 저쪽 시선을 무시해 버리는 것인데 그렇다고 대놓고 그렇게 했다가는 감점이다.
시선을 상대방의 가슴께에 두고는 태연하게 행동해야 된다.
“거기들 앉아요.”
맨 왼쪽 사내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5명이 번호 순서대로 앞에 나란히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먼저 번호대로 자기소개를 한 다음에 면접관이 목표로 찍은 상대에게 질문을 퍼부을 것이었다.
물론 질문 내용은 모두 다르다. 그떄였다. 오른쪽에 앉은 사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시선이 김명천의 옆인 8248번에게 향해져 있었다.
“만일 대리운전을 해주고 가다가 차에 흠집을 내었다고 합시다. 물론 술에 취한 차주인은 모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저는 차주인께 정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8248이 즉각 대답하더니 덧붙였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중앙에 앉은 가장 나이든 사내가 김명천을 보았다.
“8247번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자 김명천은 먼저 심호흡부터 했다.
“저는 말 안합니다.”
그리고는 그도 덧붙였다.
“저는 대리운전을 해봐서 압니다. 그렇게 해도 득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득 될 것 이 없다니?”
궁금한 듯 사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고 다른 면접관의 시선도 모두 김명천에게 모여졌다. 김명천의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내친김이었다. 대리운전을 물어 본 것이 운수소관인 것이다.
“예, 술취한 손님을 깨워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대리운전 회사에서는 당장에 목을 자를 것입니다. 미친놈이라고 욕까지 얻어먹습니다. 거기에다 손님한테 얻어맞을지도 모릅니다.”
김명천이 쏟아붓듯 말했을 때 사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대리운전을 해 보았소?”
“예, 지난달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뭘 하고 계시는데?”
“예, 인력시장에 나갑니다.”
아직 나가지는 않았지만 김명천은 다부지게 그렇게 대답했다.
오늘은 이상하게 자신이 튀는 놈이 되어 버렸지만 본의는 아니다. 그때 중앙의 사내가 다시 물었다. 나이가 많은데다 중앙에 앉아서 제일 선임자로 보였다.
“요즘 인력시장에 일은 있습니까? 그리고 일당은 얼마나 받는가요?”
“성남 인력시장에서 공사장 잡부나 이삿짐 센터일은 있습니다. 일당이 공사장 잡부는 5만원 정도지만 이삿짐센터는 고되긴 해도 8만원에서 10만원까지 받습니다.”
사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으므로 그때서야 다른 면접관이 이것저것 물었지만 김명천에게는 더 이상 질문이 오지 않았다. 면접을 끝내고 나왔을 때 다른 사내들은 싸우다 떼어놓은 것처럼 뒤도 안보고 떠나갔지만 8250번 박인태는 김명천에게 다가왔다.
“이건 내 예감인데.”
박인태가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며 웃었다.
“김형은 이번 면접에 붙으실 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는 박인태가 손을 들어 보이더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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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사롱 ‘하진’은 테헤란로의 상스호텔 뒤쪽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첫눈에 보아도 특급이었다. 우선 3층 건물 전체가 룸사롱인데다가 외관이 눈에 띄지도 않고 은근했다. 현관의 불을 밝히고는 있었지만 ‘하진’ 간판은 아주 조그맣게 붙여져서 그것이 오히려 오만하게 보여졌다. 김명천은 114에다 하진의 전화번호를 묻고는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밤 12시가 되었을 때 하진 옆쪽의 주차장에서 고급차들이 하나씩 빠져나와 현관 앞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외제 차였고 기사가 딸려있다. 김명천은 주차장 건너편의 세탁소 앞에 서 있었는데 하진의 현관이 대각선으로 보이는 위치였다. 이번에는 벤츠 두대가 주차장에서 나와 현관앞에 멈춰서자 기다리고 있던 손님 네명과 아가씨 네명이 나눠탔다.
마담의 배웅을 받으며 차가 떠났을 때 김명천은 파커 주머니에 넣어둔 소주병을 꺼내 두모금을 삼켰다. 소주는 반병쯤 비워졌고 체온에 녹아 따뜻했다. 미지근한 술맛에 이맛살을 찌푸린 김명천이 입맛을 다셨을 때 또 손님들이 현관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세명이다. 역시 마담에다 지배인, 아가씨 세명이 따라나와 있었지만 임재희는 보이지 않았다.
‘봐서 뭐한다고 이러는거냐?’
술병에 찬 기운을 입히려고 땅바닥에 내려놓은 김명천이 다시 혼잣소리를 했다.
‘손님하고 이차 나가는꼴 봐서 뭐하겠다는 거야? 아예 정 떼려고?’
세탁소 옆쪽은 오목한데다 어두웠으므로 서서 하진을 훔쳐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만 추웠다.
두손을 파커 주머니에 찌르고 어깨를 움추린 김명천은 이를 부딪치며 떨었다.
“아니지.”
김명천이 제 말을 부정했다.
“이차 나가면 어때? 그런다고 정 떨어진다면 그런 놈은 좃 떼야 돼. 그런 좃은 필요 없어.”
땅바닥에 내려놓은 술병을 집어든 김명천이 벌컥이며 세모금을 삼켰다. 술은 차가워져서 제대로 술맛이 났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냐? 쪽팔리게.”
그때였다. 현관으로 아가씨 두명이 나오더니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세탁소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쪽 길로 걸어오는 것이다. 술병을 쥔 채 눈을 크게 떴던 김명천은 아가씨 두명 중의 하나가 임재희라는 것을 알고는 몸을 굳혔다. 그들과의 거리는 이제 10미터 밖에 안되었다. 쥐고 있던 술병에 시선이 닿는 순간 놀란 김명천은 술병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러자 여자들과의 거리는 5미터 정도가 되었는데 이쪽은 어두워서 아직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김명천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이제 2미터쯤 거리로 다가온 임재희에게 말했다.
“재희야.”
“엄마야!”
대경실색을 한 임재희가 자지러졌고 같이 오던 아가씨까지 덩달아서 놀라 펄쩍 뛰었다.
“나야.”
김명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약간 빛이 깔린 세탁소 앞으로 나가섰다.
“아니, 너.”
임재희가 두눈을 치켜떴다. 아랫입술까지 물었다가 푼 임재희가 한걸음 다가섰다.
“너, 여기서 뭐해?”
임재희의 목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뭐하냐구?”
“그냥.”
“그냥?”
그때 옆에 서있던 아가씨가 임재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얼굴에 웃음기가 조금 떠올라있다.
“얘, 불쌍하다. 같이 국수나 먹자.”
40
근처에는 포장마차가 많았는데 그들이 들어선 곳은 골목 안쪽의 주차장에 설치된 대형 포장마차였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국수와 꼼장어, 거기에다 소주를 일사불란하게 시킨 것은 임재희의 친구 하유미였다.
그동안 임재희와 김명천은 눈만 껌벅이고 앉아 있었을 뿐이다. 더 자세하게 표현한다면 임재희는 여러 차례 눈을 흘겼고 김명천은 시선을 받지 않고서 두리번 거리기만 했던 것이다. 술과 안주가 재빨리 날라져 왔을 때 하유미가 웃음띈 얼굴로 김명천을 보았다.
"잔 받으세요."
인사는 포장차에 들어서기 직전에 했다. 김명천이 술잔을 쥐었을 때 하유미가 소주를 따르면서 물었다.
"재희가 이차 나가는걸 보면 어쩔 작정이었어요?"
"뭐, 그냥."
한 모금에 술을 삼킨 김명천이 그때서야 재희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그냥 돌아갔겠죠, 뭐."
"그리구여?"
"뭐가 말입니까?"
"그리구 어떻게 될 것 같았어요?"
"그런건 생각 안했습니다."
김명천이 시선을 돌려 탁자를 내려다 보았다.
"그냥 보고 싶어서 간 겁니다."
그때 임재희가 제 앞에 놓인 술잔을 쥐더니 한모금 삼켰다.
"정말 구질구질하게 놀지마."
술잔을 내려놓은 임재희가 말을 이었다.
"궁상떨지 말라구."
"알았어."
김명천이 선선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안그럴게."
"나한테 연락도 하지마."
"알았어."
국수가 날라져 왔으므로 셋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먹는 사람은 김명천 뿐이었다. 임재희와 하유미는 젓가락으로 깔작이면서 김명천만 힐끗 거렸다. 이윽고 김명천이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웠을 때 하유미가 제 국수를 반이상 덜어주었다.
"더 드세요, 저녁도 안드셨나봐."
김명천이 잠자코 그 국수까지 다 먹었을 때 임재희가 말했다.
"돼지같아."
"얘는."
하면서 하유미가 눈을 흘겼으나 임재희가 다시 김명천을 쏘아보았다.
"나, 오늘은 이차 손님을 못받았지만 앞으로는 계속 이차 나갈거야. 그리고 가능하면 스폰서도 하나 만들려고 해."
김명천이 눈만 껌벅였을 때 임재희의 말이 이어졌다.
"나가는 김에 돈 벌어야겠어. 그러니까 제발 걸리적거리지 말아줘. 알았지?"
"알았다니까."
이제는 제 손으로 잔에 소주를 채운 김명천이 조금 차분해진 시선으로 임재희를 보았다.
"누가 뭐래니? 스폰서를 세 명 잡아도 상관없고 하룻밤에 이차 두 번 나가도 상관없어. 하지만,"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은 김명천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너, 혼자있을 때, 그러니까 어디 몸이 아파서 집에 있을 때라든지 또, 갑자기 주민등록표가 있어야 할 때, 그런 때 내가 네 옆에서 심부름을,"
"시끄러 짜식아."
임재희의 목소리가 컸으므로 옆 좌석의 여자들이 이쪽을 보았다. 눈을 부릅뜬 임재희가 잇사이로 말했다.
"날 제발 혼자 내버려둬. 그것이 나를 돕는 일이란 말이야."
임재희의 두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