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열린 대장동 재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는 “제가 없어도 재판 진행에 지장이 없지 않나”라며 재판부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불출석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불만을 터뜨린 것인데, 일반 피고인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만한 태도이고, 국회 제1당 대표의 판사 겁박으로도 보일 수 있을 겁니다.
재판장으로선 이미 단식·국회 일정 등의 이유로 여러 차례 불출석한 이 대표의 편의를 또 봐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형사 재판에선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 진행이 될 수가 없습니다.
변호사인 이 대표가 형사소송법 제276조(피고인의 출석권)를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고 검찰에 이어 법원마저 자신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상을 지지자들에게 심어주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 황당한 건, 재판 불출석 허락이나 기일 변경은 판사의 권한이고 자신도 그 때문에 재판부와 언쟁을 벌였음에도 재판을 전후해 검찰을 비난한 행태입니다.
이 대표는 재판 전에 총선 지원유세 등에서 “검찰이 우겨서 선거기간 중에도 재판에 참석해야 한다.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하도 검찰을 비난하다 보니 상황을 착각했는지 법정을 떠난 뒤엔 유튜브 방송에서 총선 때까지 재판 연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언급하며 “검찰이 노린 걸 테니 할 수 없다. 다 대선에 진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 혐의로 선거 직전에도 법정에 나가야 하는 민망한 현실을 호도하고 지지층 결집을 노려 ‘기승전 검찰 탓’을 하는 것일 겁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김어준 방송에도 나가 “브라질도 7대 경제 강국이었다가 사법 독재, 검찰 독재 때문에 갑자기 추락했다”고 했는데, 전형적인 사실 왜곡입니다. 브라질은 룰라·호세프 대통령 연속 집권으로 이어진 좌파 포퓰리즘 정권의 국가 재정이 감당 못 할 과도한 복지로 파탄 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정권의 부패 스캔들을 수사한 검찰 때문에 경제난이 왔다는 건, 억지이고 본말전도입니다. 아무리 민주당의 대표라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검찰 독재를 입에 달고 살다 보니 말이 헛나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선거판에서 종횡 무진하는 이재명을 보면서 정말 그게 그의 무지(無知)인지 억지(抑止)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오후여담] 문화일보. 김세동 논설위원 님의 글에서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된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권도형(33)씨 송환 문제를 놓고 국내 피해자들이 그를 미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권씨는 전 세계적으로 피해 규모가 약 50조원으로 추정되는 ‘테라·루나 코인 폭락 사태’ 주범으로 지목된다. 권씨는 현지 법원에서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국내 가상화폐 관련법 미비로 권씨 처벌 여부가 불투명하고, 형량도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한국이 범죄자가 원하는 나라로 전락했다는 조소도 나온다.
단순히 권씨 한 명의 사례로 치부해선 안 된다. 범죄 혐의자들이 한국 형사사법 체계를 만만히 보는 풍조가 팽배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1년 1월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과 2022년 5월 공포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은 범죄 수사 환경을 완전히 흔들어 놨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골자다.
검수완박법으로 검찰 직접 수사권이 축소됐다. 경찰의 수사 주체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였으나 수사 현장의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과거에는 경찰이 고소·고발 사건을 다 검찰로 넘겨야 했고, 검사가 사건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사건 하나에 한 개의 ‘형제번호’(사건번호)가 붙었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보완수사 요청으로 경찰에 사건을 보내면 사건번호가 바뀌고 더 이상 검사 사건이 아니게 된다.
요즘 검찰 안팎에선 검사가 미제 사건을 남겨놓고 골머리를 앓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사건 ‘핑퐁’에 지친 서초동 변호사들 사이에선 이대로 몇 년 더 지나면 검찰에 수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검사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경찰에선 업무 과중으로 ‘수사 부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사기범죄 검거율은 2017년 79.5%에서 2022년 58.9%로 대폭 떨어졌다. 신종 사기가 판을 치는데 국가 범죄 대응 역량이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최근 월례회의에서 “고소인·피고소인, 피해자는 물론 검찰, 경찰, 변호사 모두 현재의 사법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신뢰하지도, 만족하지도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현재 시스템이 범죄자에게 유리하게 잘못 설계돼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피의자가 기소돼도 선고까진 하세월이다. 형사 합의 사건(불구속)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2018년 159.6일에서 2022년 223.7일로 급격히 늘었다. 정치인 등 유력자들 재판은 1심만 3~4년 걸리기 일쑤다.
재판 지연 원인은 판사 수 부족도 거론되지만, 2020년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 수평적 문화 도입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법복을 벗은 많은 판사들이 ‘법원에 남아 열심히 일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1·2심에서 유죄가 선고돼도 요즘 법원은 불구속 재판을 강조하며 피고인들을 좀처럼 법정구속하지도 않는다.
입시비리 혐의로 2심까지 실형을 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법정구속되지 않은 상태로 창당을 하고 총선에 출마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는 재판에서 “조 대표도 법정구속 안 됐는데, 왜 저는 활동을 못하는지 수긍이 안 된다”고 되레 목소리를 높인다.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식인데, 법원이 자초한 일이다.
검찰 권한 줄이기와 수사권 조정, 법원 내 수평적 문화 도입과 불구속 재판 원칙 강화 모두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정책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범죄자들이 형사사법 체계를 우습게 보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정치권과 법조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한다. 형사사법 시스템은 정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질서 수호의 영역이다.>국민일보. 나성원 사회부 기자
ㅍ 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가라사니, 범죄자들이 원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법이 언제 이렇게 유야무야로 바뀌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가 접근하자 급히 우회전해 차량에서 내린 뒤 경찰이 요구하는 음주측정을 거부하며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운전자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이 운전자의 옷 또는 팔을 잡고 음주감지기를 갖다 대며 불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현행범 체포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위법한 체포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음주측정을 거부하면서 경찰관을 폭행한 사안에서 운전자를 체포하지 않고 음주측정을 요구한 경찰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음주단속 현장에서는 도주하거나 음주 사실을 감추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대응법’이 운전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가 원래 저지른 범죄보다 더 무거운 사법방해죄로 처벌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거짓진술이나 허위자료 제출 등으로 수사나 재판 절차를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사법방해죄가 없습니다.
적법절차원칙이나 위법수집 증거 배제원칙은 위법한 압수수색을 비롯한 수사 과정의 위법행위를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자 형사소송법에 명문화된 중요 원칙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야만의 시대’가 용인된다면 정말 대한민국이 범죄자들이 원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