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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전도서의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는 말씀의 경계를 오롯이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치, 종교, 문화의 헤게모니는
보수적 복음신앙으로는 불가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대한민국의 종말적 상황을 복음적인 신앙으로 원만한 이해를 할 수 있다면
진정 성경과 그 말씀의 고수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무릎 꿇었던 한국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좌파적 헤게모니, 그 카르텔에 굴복하였습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 그 헤게모니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우파를 궤멸시켜
소위 말하는 좌파적 촛불혁명정부를 세우는데 일시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좌파의 승리는
보수를 불태운 그 마지막 잔불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편승된 기독교는
좌파 신앙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기독교의 좌파 신앙은 북한의 적화통일을 위한 전략전술이요,
선교통일기도회는 기독교 신앙의 3대 요소인 신망애(信望愛)를 총동원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강단은 복음의 증거를 상실하였고
말씀의 비전을 쫓는 인본주의 신앙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로 타락하였고
그 맘몬 신앙은 인본주의 신앙으로 전락하였으며 포스트 모던의 좌파적 헤게모니에 장악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란 불가항력이요,
종교적으로도 기울어진 강단을 바로 세우기란 불가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인본주의 신앙의 혁명가로 받들고....
인본주의 정신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가치를 신망애와 융합하였습니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미국의 건국 정신이요, 민주주의 이념이며
미국의 기독교는 복음주의 옷을 입은 인본주의 신앙을 발전시켰습니다.
미국의 인본주의 신앙은 로버트 슐러를 비롯하여
피터 와그너와 리차드 포스트와 릭 웨렌 등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로버트 술러를 받아들였고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는 피터 와그너를 받아들였으며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는 릭 웨렌을 받아들였고,
지구촌 교회의 이동원 목사는 리차드 포스트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 교회를 휩쓴 각종 교회 성장 프로그램은 알파 영성과 셀을 기반으로
전교인의 무속화를 이루었으며 한국 교회는 인본주의 신앙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각 종 교회 성장 프로그램은 좌파적 신앙의 진지전을 구축하는 헤게모니에 장악되었으며
인본주의 영성 문화의 기도 운동은 적화통일의 전략전술이 되었습니다.
적화통일의 전략전술인 셀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좌파적 신앙의 진지전은 구축되었으며
알파 영성은 주체신앙의 교조적 무속화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가운데 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알파영성의 영향을 받지 않은 교회는 거의 없으며
농어촌과 섬마을의 작은 교회까지 침투하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셀을 도입하였을 때
영적 침체의 늪에서 성장의 동력으로 소망있는 교회로 약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셀"에 투영된 적화의 그림자는 아무도 눈치 체지 못하였고
성장에 목마른 교회는 앞다투어 도입하였습니다.
박태선의 전도관과 이장림의 다미선교 등
이단과 사이비의 반동으로 복음주의 운동이 잠시 일어났으나
그 복음주의는 성서적 복음의 분별력을 잃고 성장에 목마른 한국 교회에
셀과 알파 영성을 접목시켰습니다.
셀과 알파 영성으로 침투한 좌파 신앙의 진지전 구축,그 헤게모니는
선교 통일의 꿈을 좇아 평화적 적화 통일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 사기 탄핵으로 청야작전이 되어
베일에 가려진 어둠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한 기독교 단체와 신학교와 종교인은
그 동안 좌파 신앙에 농락되어 광화문 해학의 촛불 좀비와 불나방이 되었습니다.
평화적 적화통일의 전략전술, 그 좌편향의 축이 된 한국의 기독교 모습은
북한의 공산주의로 폐허가 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던 평양의 교회에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불탄 종말론적인 교훈에도 불구하고
말라기 시대 스룹바벨 성전은 제사장은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였고
문지기 마저 떠난 성전은 이방신전이 되었습니다.
일제 신사참배로 타락한 한국 교회는 WCC를 받아들였고
에큐메니칼 선교의 도구가 되어 종교다원주의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통로라는 찬양은
셀과 알파 영성의 훈련으로 전교인의 무속화를 이룬 에큐메니칼 선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는 창세기의 혼동과 공허, 그 적막한 어둠에 묻혔으며
창조의 빛과 구원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민주주의 이념이라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경륜, 그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요소입니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민주주의 이념이며,
기독교 인본주의 신앙의 이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인본주의는
포스트 모던의 좌파적 헤게모니에 장악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자유는 인권 침해와 충돌하고 평등은 차별금지적 평등이요,
박애는 종교 다원주의와 사회적 복지의 포퓰리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인본주의 이상은
사회주의적 이상을 실현하는 교조적 주체 신앙으로 좌파의 파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편승된 한국의 기독교는 포스트 모던의 좌파적 헤게모니에 장악되어
평화적 적화통일을 위한 전략전술의 부역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런 기독교 인본주의 신앙은
기독교의 3대 요소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복음적 이해를 이탈하고 탈선하였습니다.
잃어버린 신망애를 찾는 카페의 글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인본주의 이념을 실현하는 인본주의 신앙과
좌파 신앙의 융합으로 타락한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는 올바른 성서적 이해의 복음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의 선포는 믿음과 소망의 부작용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부작용은 긍정의 힘과 적극적 사고방식과 하면된다는 신념이며
소망의 부작용은 꿈을 좇는 비전의 추구이며
사랑의 부작용은 차별금지적 인권과 에큐메니칼 선교와 종교 다원주의와 보편적 복지의 포풀리즘입니다.
성서적인 올바른 이해인 믿음의 복음과 소망의 복음과 사랑의 복음은
성경의 영감적 지혜의 층만으로 인본주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발본색원하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복음에 깨어 있다면
강단의 설교는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을 이루는 구원의 전당이 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의 부작용도 극복하는 사도 바울의 복음 선포는
셀과 알파 영성의 통로로 포스트 모던의 좌파적 헤게모니에 장악된 한국 교회,
그 포승줄을 끊고 말씀으로 새롭게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강단의 궤변에 농락되지 않고
성서적 바른 이해의 복음으로 충만한 생명의 기쁨을 하나님의 나라로 누릴 것입니다.
신망애에 대한 성서적인 지력은
사망의 덫을 끊어내고 소망의 돛으로 믿음의 닻을 내려 사랑의 나라에 접안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삽결줄은
서로 연합하고 상합하여 생명의 줄이 되어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합니다.
적극적인 사고와 긍정의 힘, 그리고 할수 있다는 신념은
자아 주체적 믿음으로 소위 세상의 행복을 만드는 창의적인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의 구원을 얻는 믿음은
믿음의 주체가 자아가 아닌 대상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장성한 분량의 이해는
주의 의를 힘입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0-24)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2-17)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4-6)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셩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3-17)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6-9)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3-7)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뿐만 아니라 성경의 소망은
소망의 대상인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서의 저자는 소망에 대한 영감적 성찰로 충만하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소망인 것을 찬양하였습니다.
소망은 나의 꿈을 이루는 인본주의 무속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신 거룩한 은혜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자아실현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성령의 비전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소망의 믿음으로 융합한 종교다원주의는
목적이 이끄는 삶의 비전,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 침투한 종교다원주의는
소망의 믿음을 뀸을 이루는 긍정의 힘으로 융합하였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인 신본주의 신앙은
소망의 대상이 자아의 꿈을 이루는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소망의 믿음을 가진 자는
위로부터 난 지혜, 곧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으며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6-7)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62:5-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는 말씀은 믿음의 구원에 이르는 확실한 소망입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71:5-6)
☞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시71:14-16)
오늘날 꿈은 많고 소망이 없는 교회 강단의 설교는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는 시인의영감적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시편 78편의 시인은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알려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시78:1-8)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전하고 듣고 알려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소망의 연속성입니다.
☞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47-50)
주께서 그의 성도에게 주심 소망은
고난 중에 위로가 되시는 주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시119:116-117)
주의 말씀에 뿌리를 둔 소망은
부끄럽지 않는 구원을 얻게 합니다.
☞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이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시146:3-7)
예레미야 선지자는 소망의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렘14:7-9)
오늘날 이단과 사이비화된 한국 교회는
성서적인 올바른 소망의 기도를 드리지 못하는 성공과 번영을 구하는바알 신앙의 늪에 빠졌습니다.
타락하고 범좨한 이스라엘 백성을 신원하며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라는 예레미야의기도는
참된 소망에 깨어있는 선지자의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의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소망이요,
그 소망은 세속의 번영과 성공을 이루는 그 꿈이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참으로 호세아 선지자는
아골 골짜기에 소망의 문을 여는 종말론적인 신탁을 하였습니다.
☞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2:15 ,19-20)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였지만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을 확실한 소망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였고
그들은 듣다가 소리 질러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히였습니다.
바울은 백부장을 통해서 천부장에게 로마 시민인 것을 알리고
공회로 모인 자리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있는 자리에서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하면서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고 하면서 부활의 소망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소망의 사역을 삼았으며
종말론적인 사역으로 로마 감옥에 갇혔어도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고 강변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증거하는 바울의 복음은
이스라엘의 소망이라는 확신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순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맺으면서
공회에서 죽은 자의 부활, 그 소망을 증거하였고
또한 로마 감옥에서 순교하면서까지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소망이며 성도의 소망이며
종말론적인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삽겹줄로 생명의 복음을 엮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역동적인 복음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역동적인 복음은
소위 말하는 기독교 인본주의 신앙을 혁파하며 오직 신본적 믿음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 바을은 로마서 5장의 말씀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유기체적인 관계를 복음의 공학으로 선포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1-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가을 얻었으며
성령으로 밀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은 것이 곧 소망이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유기체적인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곧 성도의 소망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하였는데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이새의 뿌리에서 난 메시야 , 곧 예수 그리스도는 열방의 소망이며
그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복음을 증거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유기체적인 삼겹줄의 역사를 말씀하였습니다.
☞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5-6)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곧 마음의 할례를 베푸는 성령의 인치는 역사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줄을
성령의 은혜로 엮어내는 사도 바울의 영감적 성찰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한 기도에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삼결줄을 복음으로 엮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5-19)
사도 바울은 복음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연관성을 엮어내는 복음의 연금술사요,
풍성한 복음의 언어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넘치는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1-6)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말씀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바울은 로마서와 에베소서와 빌립보서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에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복음을 삽겹줄로 엮어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4-6)
시도 바울은 골로새서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의 복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삽겹줄을 복음으로 엮었습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를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1:2-4)
바울은 디도서의 복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삼겹줄로 복음을 엮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3:4-7)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믿음과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신 삽겹줄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영생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베드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삽겹줄로 복음을 엮었습니다.
☞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1-23)
.
.
이렇게 성경의 말씀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삽겹줄로 엮은 생명의 복음으로 충만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성령의 소망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성서적 복음의 이해로 가득한데 교회의 강단은 말씀의 비전을 좇는
인본주의 무속 신앙의 성공과 번영을 점치는 무당의 굿당이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교회의 강단을
말라기 시대 스룹바벨 성전이 되게 할 것인가!
제사장은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고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적하였으며
삯을 받지 못한 레위인 성전의 봉사자는 성전을 떠났고 마지막으로 성전 문지기 마저 떠나
스룹바벨 성전은 이방신들의 불을 지피는 놀이터가 되고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은 완전히 떠났습니다.
그러한데도 교조적 십일조 타령으로 이단과 사이비의 온상을 만들 것인가?
죽은 자의 십일조로 배불린 제사장은 히브리서 복음의 철퇴를 맞았고
모세의 율법 , 곧 시내산 언약과 아론의 후선의 제사장과 언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갈라디아서 복음의 하갈 언약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와
그 영감으로 충만한 사도 바울의 몽둥이를 맞았습니다.
십일조와 성전의 봉헌물을 도적한 것은 평화의 언약을 파기한 제사장들이요,
헤롯 성전의 십일조와 봉헌물로 호위호식한 사람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 무리들이었습니다.
성전의 십일조와 봉헌물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한푼도 사용되지 않았고
또한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교회의 복음전파에도
성전의 십일조와 봉헌물은 조금도 사용된 적이 없는 것을 왜 설교하지 않은가?
초대교회의 연보는 전재산을 드려쳐 유무상통하였으며
매일 구제하는 선한 일로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증거하며 역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 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한데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에스겔의 환상으로 본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고 우상으로 가득하고
동방의 태양신을 섬겼던 예루살렘 성전이요,
말라기 시대 이방의 신전이 된 스룹바벨 성전이요, 신약의 헤롯 성전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성도가 하나 되어 성령의 전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인 적그리스도의 바벨론 교회로 변질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단과 사이비의 온상이 되었고
마귀의 복마전이 되었습니다.
강단의 복음은 쫓겨났고
혼잡한 설교는 말씀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신약의 복음은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과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가는 길이 분명히 다른데
오늘날 교회는 율법과 복음을 혼합시켜 타락한 성전의 탐욕적 모습으로 가득한 이리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에베소 교회는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 교회와 종말론적으로 타락한 교회의 모습,
곧 이리가 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제자 훈련으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께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 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행20:23-38)
그러므로 이천년 기독교 역사는 이단과 사이비의 역사요,
종말론적인 타락의 늪에 빠졌고 적그리스도와 바벨론 교회의 굴레를 가졌습니다.
성경의 인본주의 옷을 입은 것이 신학이요,
신학의 사이비 옷을 입은 것이 오늘날 강단의 설교인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도적의 소굴로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의 신탁이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을 바알 신전이 되게 하였던 제사장들의 타락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나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사66:1-4)
예레미야 선지자는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렘7:8-13)
에스겔 선지자는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겔8:12-18)
말라기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말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말1:12-13)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2:1)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말2:8-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3:7-9)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2:13-17)
이렇게 해서 실로의 성막은 블레셋에게 파괴되고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게 불탔으며 스룹바벨 성전은 헬라에게 짓밟혔고
헤롯 성전은 로마에게 돌 위에돌 하나 남지 않게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성막과 성전이 완전히 무진 그 저주 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습니다.
너희 복을 저주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화평으로 구원의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믿음과 소망의 엮어가는 사랑의 줄은
신망애, 그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는 바울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23)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9-12)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7-8)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3-16)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1:3-7)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4-5)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3:14-21)
☞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4:2-4)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16)
☞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1-2)
☞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9-11)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11)
☞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시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9-14)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2-17)
☞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13-14)
☞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1:5-7)
☞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 지어다 아멘(딤전1:14-17)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행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제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1-19)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2:5)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벧전3:8-11)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7-11)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7-12)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6-18)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1:20-21)
이렇게 성경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복음으로 가득하며
특히 사도 바울은 소위 말하는 복음의 연금술사가 되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성령의 소망으로 풍성한 말씀을 수 놓았습니다.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영감으로 넘치는 구원의 말씀은
인본주의 영성이나 신앙이 파고들어올 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의 강단은 성경의 풍성한 진리의 복음을 버리고 말씀의 비전을 이루는 인본주의로 타락하였습니다.
참으로 성경의 옷을 입은 신학은 인본주의 학문이요,
그 신학의 옷을 입은 강단의 설교는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다른 복음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삼겹줄로 엮은 생명의 복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할 것입니다.
바울의 신망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충만한 말씀의 강변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담은 복음의 역동적인 생명으로 넘치고 풍성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강단의 설교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가득한 역동적인 복음으로 메아리칠 때.......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몸인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와 영광을 가득 담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