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자화상
강순희(향원)
나이가 들수록 맨얼굴로 집 밖을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할까? 세수만 하고 모자 푹 눌러쓰고 나간 날은 어김없이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초라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기 싫은 사람과 마주치게 되고
“어디 아픈 데 있나요?” 하는 소리도 듣게 된다.
외출을 하려고 깨끗이 씻고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딸아이의 말이 생각난다.
“피부과에 가서 얼굴에 점 좀 빼고 피부 관리 좀 받으세요.”
그간 바쁘기도 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얼굴의 점 하나도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거야.’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거야. 뭘 돈을 들여서......’ 라고 생각하며 그냥 흘려서 듣고 말았다. 의자가 있지만 차분히 앉아서 여유를 부리며 화장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잡티와 주근깨를 가리려고 비비크림을 손으로 톡톡 두드려가며 펴 바른다. 숱이 적고 끝이 뭉툭한 눈썹은 아이브로펜슬로 부족한 부분을 그려서 모양을 잡아준다. 마지막으로 혈색이 부족하고 윤곽이 또렷하지 못한 입술도 붓에 립스틱을 발라 그려준다. 잠깐 동안의 화장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미소를 머금는다. 현관문을 나서면 엘리베이터 안에도 거울이 있다. 급히 나오느라 부스스해진 머리도 살짝 쓰다듬고 단추를 채우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외출할 때 작은 손거울은 꼭 필요하다. 모임 등에서 음식을 먹고 난 후에는 손바닥 속에 쏙 들어가는 동그란 거울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치아 사이를 슬쩍 확인한다. 핸드크림, 손거울, 립스틱은 파우치에 담아 늘 가방 속에 넣어 다닌다. 가방이 바뀌어 잊어버리고 못 가져온 날에는 밖에 있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변에 거울은 참 많기도 하다. 어디라도 거울이 있으면 어김없이 나를 비춰보게 된다. 민낯을 감추고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또한 자신만의 화장법으로 정돈된 얼굴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외출하여 볼일을 보고 난 다음 수성못으로 향했다. 봄바람이 세게 불어 물결이 일렁인다. 못 둘레의 빛바랜 갈대도 바람 방향대로 눕는다. 거울같이 잔잔하던 수면은 거세게 출렁이며 못 주변의 산과 나무와 둥지섬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지 못한다. 지난 가을 어느 날, 가을빛 드리운 산과 파란 하늘이 잔잔한 물결 속에 그대로 비쳤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바람이 일면 수면은 거울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비치는 물체도 같이 흔들리고 일그러져 보인다. 바람이 잔잔해졌다. 오리배도 그대로 비치고 잔잔한 호숫가 부들, 갈대, 원추리도 다시 비친다.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하게 있는 그대로를 비춘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좌, 우 방향만 바꾸어 비추어 준다. 따져보면 거울은 하나의 도구이며 거울 속의 상(像)을 보는 것은 나의 눈이다. 눈은 또한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잔잔한 수면처럼, 정직한 거울처럼 마음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다. 오프라 윈프리의 10계명 중에 ‘남의 험담을 하지 말라.’ 는 것이 있음을 배웠다. 남의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치게 된다고 생각된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비밀은 아주 단순해.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다는 거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들려주던 말을 떠올려본다.
못 둘레를 걸으면서 산책 나온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관찰하게 된다. 특히 내 또래의 중년 분이나 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보게 된다. ‘참 멋지게 나이 드셨구나.’ ‘걸음걸이도 바르고 허리도 꼿꼿하시네.’ 5년 후, 아니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건강하게 황혼의 삶을 살고 계신 그분들이 미래의 내 모습과 겹쳐지며 나도 곱게,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3월부터 대경상록아카데미에서 강좌를 들으면서 퇴직하신 이후로도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으며 늘 배우고 계신 분들을 보았다. 평생 배우면서 열정적으로 살고 계신 그분들이 바로 나의 귀감(龜鑑)이 된다. 퇴직 후 더 아름답게 익어가는 분들이 바로 나의 미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했다. 멀리 바라보기에는 너무 지쳐서 좁은 시야에 갇혀 눈앞의 편안함에만 취해 있었다. 그저 자유롭게 쉬고 싶었고, 어른이 될수록 감싸 안아야 하는 책임으로 부터는 가벼워지고 싶었다. 이제 거울 속에 비치는 멋진 자화상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자. 나도 누군가의 눈에 멋지게 비치는 거울이 될 수 있을까?
2017. 3. 25
첫댓글 마음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어린왕자의 말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음'을 마음에 새기는 삶,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아름답고 고운글 잘 읽었습니다.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것은 어쩌면 노년에서 맛보는 행복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도정기드림
거울 공부 잘 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화장을 하지않고도 집밖을 다닐수 있는 범위를 동네라고 합니다.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것 자체가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롭다는 증거입니다.글이 자연스럽고 깔끔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거울은 자신의 겉모습을 적라라하게 비추어 주지만 내면을 비출 수 없는 결점이 있읍니다. 변해가는 겉 모습에 실망보다 지난 세월을 자신있게 비췌보는 마음의 거울이 좋은 거울이 아닐는지요?
가끔씩 나의 원판을 거울속에 비춰봅니다. 혀연머리하며 틀니와 여섯개의 임플란트 대채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었다면 나는 합죽할머니의 하얀머리카락을 가진 70초반 옛날 60 년전 나의 할머니 모습 그대로 일것임이 확연한 사실이다.다. 남에게 보이기위해 보수공사를 하고 염색을 한 나는 가짜로 만족한다. 내면의 공사는 어떻게 할까? 얼마만큼 무너져 있는지 스스로 원판을 파헤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