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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그리스도인은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가?/ 데살로니가전서 5:18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IL1PEtIKLBc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다섯 절기를 지킵니다.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과 맥추감사절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교회가 지키고 있는 절기가 신앙생활을 균형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은 구원과 관련된 절기로써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깊이 있게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성령강림절은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절기로써 신앙생활의 키를 가지고 계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를 사모하게 하는 절기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반년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이고, 추수감사절은 지난 1년의 필요를 채워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신앙생활은 구원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다는 의미이고, 지금까지 우리의 생명을 붙들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냐? 내가 돈도 벌었고, 내가 건강도 지켰는데 왜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 127:1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가 집을 세우려고 수고해도 하나님이 세워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있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깨어있음도 헛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1년간 손이 수고하여 소득을 얻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다른 내용들보다 더 확실하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본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모든 것’, ‘모든 일’입니다. ‘모든’에는 긍정적인 것도 들어가고 부정적인 것도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에도 감사해야 하고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때에는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988년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로 전국이 뜨거웠습니다. 그때 중요한 이슈가 사형 폐지론이었습니다.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가 사형 폐지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전국을 누비면서 사형제도는 없애야 된다며 유세를 했습니다. 어느 날 CNN의 토크쇼에 그가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쇼의 엥커는 유명한 버나드 쇼였습니다. 버나드 쇼가 듀카키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 하신다죠?”, “네, 그렇습니다.”, “참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선생님, 만약에 선생님의 아름다운 부인이 괴한에게 끌려가서 강간을 당한 후 살해당했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범인이 잡혔을 때 선생님은 여전히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서 듀카키스는 당황했습니다. 머뭇머뭇하고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수천 만 명의 시청자들이 받은 인상이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그는 자기와 상관이 없으니까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지 진짜 자기 일이 되면 그런 소리를 할 사람 아니라는 인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토크쇼 때문에 그가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봅니다.
남의 이야기는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고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십시오.”라고 설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감사하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암으로 죽어 가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가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극심한 방황을 하며 인생을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자녀를 둔 부모가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질병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감사가 나올까요? 사업이 부도나서 회사는 망하고 집은 빚쟁이들에게 빼앗기고 당장 월세를 얻을 돈도 없다면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이력서를 수십 곳에 내고 면접을 봤지만 어떤 회사도 일할 기회를 주지 않을 때, 그 젊은이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와 여러분이 그런 경우라면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 말씀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비현실적인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엡 5:20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는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름으로’라는 말을 ‘때문에’로 바꾸어도 전혀 잘못되지 않습니다. ‘이름으로’라는 말을 ‘때문에’로 바꾸어 읽어봅시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남해 쪽 바닷가에 있는 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셨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그 목사님에게 집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일곱 번 여덟 번 해서 그 목사님이 할 수 없이 집회를 인도하러 가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한참 후에야 한 사람이 오더니 반갑게 맞이하지도 않고 그 목사님을 어느 민박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민박집은 방의 불도 어둡고 이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습니다. 더구나 이불에는 여기 저기 담배 불똥 자국이 뻐끔뻐끔 나 있고 베갯잇은 몇 달이나 세탁하지 않았는지 새카맸습니다. 방안에서는 바퀴벌레 두세 마리가 경기를 하고 있었고 샤워장에 가서 물을 트니 샤워기 호스가 터져 있어 물이 옆에서 막 솟아났습니다. 그 목사님과 함께 갔던 교회 직원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안되겠습니다. 방을 옮겨야 되겠습니다. 여관으로 가시지요.”, “아니에요. 교회에서 정해 준 곳에 있어야지요.” 그 목사님은 교회 직원을 보내고 나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상한 교회입니다. 그렇게 와 달라고 간청해 놓고 어찌 이런 곳에 묵게 합니까? 저를 머슴으로 아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 아버지, 그렇지요?” 그때 성령님께서 그 목사님에게 이런 감동을 주시더랍니다. “네가 뭔데 방 타령하느냐? 하늘의 왕 예수님께서 마구간에 계시면서도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네가 무슨 방 타령이냐? 이 방이 마구간보다 얼마나 귀하냐?” 그때 그 목사님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별것 아닌 것이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천사 대접을 받고 좋은 호텔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 마음까지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도 누워 계셨는데, 나같이 부족한 죄인이 마음이 상해서 불평을 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태어나셔서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예수님은 33년간 온갖 고난을 경험하셨고 마침내는 가룟유다에 의하여 은 30에 팔리셨으며, 채찍에 맞아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믿는 자의 죽음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생을 얻었고, 영원한 천국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영광이 아무리 클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은혜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은혜는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서부 아프리카의 마치이 부족들이 쓰는 ‘감사’라는 말은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답니다. 너무 고마워서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았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말 너무나 감사해서 머리가 흙 속에 들어갈 만큼 인사하며 감사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감사하기를 바란다.”, “감사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감사하라.”고 명확하게 명령합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사항입니다.
시편 136편은 ‘감사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여 감사해야 할 이유들을 열거한 특별한 장입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악한 분이시라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영생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안한 삶을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구원도 영원한 것입니다.
2을 보겠습니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신들 중에 뛰어나신 분입니다. 어떤 존재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4절입니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홍해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기이한 일들입니다.
21절입니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있던 강력한 적들을 물리쳐주시고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거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거처를 다 예비하시면 우리를 데리고 가시려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는 비천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노동에 시달렸고 아들을 낳으면 죽여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전에는 비천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 우리는 마귀의 종이요, 죄의 종이요, 세상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로 우리를 속량하셔서 우리의 영을 살려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고 영원한 천국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25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물을 흡수해버리는 땅이라 농사짓는 것이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은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짓고 먹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도 채우시는 분입니다. 하늘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감사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마치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시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신 11:26-27을 보겠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두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일본 해군 장교 출신인 ‘가와까미 기히찌’씨는 세계2차 대전 때 폐전하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그는 ‘내가 이런 삶을 위해 목숨 걸고 전쟁을 했는가?’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그의 몸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이 그의 병명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없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그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찌’라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이상한 처방을 해주었습니다. “당신은 하루에 만 번 이상 ‘감사합니다.’를 하십시오.” 정신과 의사의 처방이 이상했지만 그는 그 처방을 따라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만 번 하려면 약 3시간 반이나 걸립니다. 그런데 그는 의사의 처방대로 열심히 ‘감사합니다.’를 만 번 이상 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아버지, 감 드세요.”라고 하면서 감을 주는데 그는 감사의 습관 때문에 순간적으로 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차츰 굳어졌던 근육들이 풀어지면서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유익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시 100:4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 보면 그의 궁정이 나옵니다. 이 궁정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의 문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감사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찬송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영적인 유익도 큰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을 자져다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지그 지글러는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있는 장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감사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건강지수와 행복지수가 높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불행을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있는 장소를 받아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하기보다는 계속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여기는 물이 없다. 고기도 없다. 과일도 없다. 부추도 마늘도 없다. 이곳은 길이 나쁘다.”고 불평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40년 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불행했습니다. 결국은 광야 1세대는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원망과 불평으로 불행을 불렀던 것입니다. 감사해야 행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사를 명하신 것은 감사가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의 임재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감사는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감사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를 명하신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믿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고 고난을 만나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세 가지 사건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이런 사건이 나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도 자기의 꿈이 어떤 꿈이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으면서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술사들 그리고 지혜자들을 불러서 자기의 꿈을 알아내고 해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은 만일 그들이 자기의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하지 아니하면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집도 멸망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사건입니다. 이때 다니엘도 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니엘에게 왕의 꿈과 그 꿈의 해석까지 알려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는 놀랐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은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다니엘에게 예물과 향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다니엘을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게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 문제는 목숨이 걸린 아주 위험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엄청난 금 신상을 만들어서 두라 평지에 세었습니다. 그리고 낙성식을 했습니다. 그곳에 참석한 자들은 누구든지 금신상 앞에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곳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상 앞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다니엘의 친구들의 대적들이 왕에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참소하였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우상에게 절할 것을 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에게 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 속에 들어간 사람은 셋이었는데 왕이 보니 불속에 네 명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불 속에 있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은 자리에 앉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만난 어려움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리오 왕 때 일어났던 사건이 나옵니다.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였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습니다.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시기한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함정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한 달간 왕 이외의 다른 어떤 신에게나 기도를 금하는 법을 재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쉴 수가 없어서 기도하다가 발각되어서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다니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자들로부터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대적들을 사자굴에 던져 넣어서 죽게 하였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만났던 문제, 다니엘이 만났던 위기 상항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만나도 감사해야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그 이유 세 가지를 나눴습니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믿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