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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시절 친구(2)
헌수는 내외경제 광고부장을 너무 일찍 한 게 탈이었다. 부장은 되었는데 국장 진급이 어렵자 미국으로 이민 갔다. 샌프란시스코 위 포틀랜드란 국경 도시로 갔는데, 서너 번 날 데리러 한국에 온 적 있다.
첫 번째는 그가 포틀랜드서 관광 매점을 할 때다. 어떻게 소식 알았던지 시내서 멀리 떨어진 화양동 회사까지 찾아와 ‘이 사람아 자네 부인은 우리 와이프와 기념품점 같이 하면 되네. 기념품점 하면 생계엔 지장 없다. 옛날 신문사 시절처럼 같이 살자'며 권했다. 내 취향을 고려하여, 록키산맥의 광대한 풍광과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계류에 낚시만 던지면 올라오는 팔뚝만 한 연어 이야기도 해주었다. 정은 고마웠지만, 그땐 내가 그룹 회장 자서전을 쓰던 때라 사양했다.
두 번째는 느닺없이 소공동 롯데호텔로 나오라고 했다. 급히 갔더니, 포틀랜드 미 합중국 연방 의원에 출마한 오 모씨를 소개했다. 로비에 운동복 차림으로 내려온 오 씨는사람 구슬리는 재주 좋은 헌수를 좋아하는 듯했다. 헌수는 그곳 한국일보 지국장 겸 교포신문을 운영하고 있었다. 야당은 항시 춥고 배고픈 직업이다. 당시 재야인사이던 김영삼 씨가 미 서북부로 찾아갔을 때 잘 대접해준 인연으로 청와대로 초청했다고 했다. 이날 그들은 대통령 면담 약속이 있어 오후에 청와대 들어간다고 했다. 그날도 헌수는 날더러 '그 좋은 글 솜씨 썩이지 말고 미국 와서 기사 작성만 책임져라'. '와서 도와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광고와 지국 운영은 니가 알다시피 내가 자신 있다. 니는 기사만 쓰면 된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뭣 좀 안다고 실력 있는 것 아니다. 헌수처럼 사람 마음 휘어잡는 재주가 실력이다. 그러나 그땐 그걸 몰랐다.
인생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그때 만약 내게 두 가지 일이 없었다면 얼씨구나 헌수 따라갔을 것이다. 하나는 그때 김영사와 '재미있는 고전 여행'이란 동양 고전 다이제스트 책을 만들던 중이었다. 시중에 문학작품 간추린 책은 많지만, 한국과 중국 사상 50개를 짧게 간추린 책은 없다. 두 번째는 나는 서화 골동에 취미가 있는데, 우연히 가본 중국 소주와 항주에 할 일이 많았다. 거긴 서울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 팔면 대지 천여평에 경주 최부잣집 보다 더 큰 고래 등 같은 고가를 매입할 수 있다. 담 너머엔 운하가 있고, 뜰에는 천하 보물 태호석이 있다. 월급 20만 원 주면 중국인 식모와 운전수 두고 산다. 향기로운 중국술 맘대로 즐기고, 골동품 시장에서 2-3년만 서화와 도자기 수집하여 컨테이너 베이스로 한국에 날라오면 일은 끝난다. 그림이나 도자기 보는 안목만 있으면 돈 벌기가 나락 논에서 메뚜기 잡기다. 그런데 나는 청전 그림 모사해서 인사동 화랑에 건 경력이 있다. 그 중국을 옆에 두고 미국 갈 순 없는 것이다. 후에 신문 보니, 헌수와 같이 왔던 이모 씨는 미 연방 의원에 당선되었다.
세 번째는 내가 직장 은퇴하여 속초 모 대학 겸임교수로 있을 때다. 헌수는 한인방송을 세운다며 포틀랜드에서 호텔 운영하는 이대 출신 여인을 동행하여 왔다. 이 날 두 사람 골프 접대 내가 맡고, 라운딩 끝나고 강남 한 음식점에서 저녁 먹을 때 그 여인에게 ‘헌수 때문에 또 이런 미인 만나 뵙게 되어 무쌍의 영광입니다’ 하고 인사했더니, 여인이 말의 뉘앙스 빨리 캐치한다. '또 미인 만났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김 사장 바람피운 이야기예요?' 하고 묻는다. 내가 '옆에 그분은 바람이 록키산맥 토네이도급은 아니지만 동남아 태풍급은 되지요' 설명하자, ‘아이고 이 인간아! 숙녀 앞에서 이 무슨 망발이십니까요?’ 헌수가 질급을 한다. ‘내외 경제 신문 때 배정자보다 더 이쁘던 그 후암동 화보 편집장 말이여!' 내가 설명하자, ‘하여튼 이 친구 말로 사람 죽이는데 뭐 있다고!’ 헌수는 혀를 차고, '이 사람아! 춤 못 추는 날 양주 먹여놓고 니들은 꽉 껴안고 난리부르스 쳐놓고 지금 오리발 내미는겨?' 한 방 더 먹이자, '하여간 이 친구 아주 소설가로 나가야 해!' 손사례를 친다.
헌수의 이번 방문 목적은 현지서 일할 여자 아나운서 한 명 뽑으려는 거였다. KBS 최고참 여성부장에게 신참 여자 아나운서 한사람 추천받아, 오후에 지망자를 무교동 낙지집에서 인터뷰한다고 했다. 날더러 '방송국 채리면 더 바쁘니, 이참에 와서 신문 맡아달라'고 또 부탁했다. 내가 ‘머릿속에 공자 맹자만 가득한 이 사람을 미국 데려가서 어디 써먹나?’ 묻자, 동행한 여인이 대답했다. ‘이대 동기 중에 여류작가가 있는데, 내가 지금 압구정동 개네 집에 묵고 있어요. 의사 남편이 타계하시면서 병원 건물과 아파트 남겨주었는데, 과부가 한국에서 할 일이 없어요. 포틀랜드서 대형 갈빗집 열거예요. 이미 계약은 해놨고요. 개도 작가니까 선생님과 글 쓰는 사람끼리 이야기 잘 통할 거예요. 미국서 넷이 골프 치면 딱 한 팀이네. 페이 부담 없이 미국서 즐겨봅시다’. 부자에다 학벌 좋은 여인 이야기로 아주 미인계를 쓴다.
그런데 나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보다 중국의 장가계를 가치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동양사상을 전공했고 한시도 안다. 그래 '뜻이야 사무치게 고맙습니다만...' 말꼬리를 속초로 돌려버렸다. '속초는 영랑호, 진부령 알프스 스키장 파브릭 코스가 나인홀에 3만 원 합니다. 설악산 경치 좋습니다. 여교수와 한 조 만들어 새벽이슬에 젖은 잔디 밟으면, 고지대라 들꽃 향기 좋지요, 올려다보면 울산바위 경치 좋지요. 내려다보면 시퍼런 동해 아닙니까? 한 주에 두어 번 라운딩 하면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속초서 살았습니까?' 여인이 물었다. '네 5년 살았어요'. 그러자 '이 친구 거기서 백화점 사장했지' 헌수가 설명했다.
'백화점 오픈이 열시니까, 현지 경찰서장 세무서장 여교수로 한 팀 만들어 아침 여섯 시 티오프 해서 나인홀 돌고, 영금정 가서 4인분 2만 원 하는 매운탕 먹고, 출근하면 10시 전입니다. 담배 물고 신문 보고 있으면 직원들이 출근해요'. '그럼 록키마운틴 가보셨나요? 빙하 덮인 숲과 호수, 천국이 따로 없어요'. 사전 작당한 듯 여자분이 계속 발동을 건다.
'속초는 록키마운틴만 못하지요. 그러나 혹시 천불동, 공릉 능선, 백담계곡 아십니까? 모두 천하절경이고 콘도마다 온천 있습니다. 오색 탄산온천, 일성콘도 맥반석 온천, 척산 알칼리 온천, 한일콘도 해수온천, 입맛 따라 골라가며 온천도 가능해요. 모두 4천 원 합니다. 또 골짜기마다 약수 나옵니다. 오색약수, 갈천약수, 추곡약수, 삼봉약수가 있고, 호수도 많아요. 화진포, 영랑호, 청초호, 또 고성에서 속초, 주문진, 강릉, 부산 해운대까지 줄줄이 해수욕장 입니다. 거기 푸른 파도 보면서 통나무 카페에서 진토닉 한잔하면 속초가 하와이지요. 언제 글 쓴다는 그분도 함께 같이 가십시다.' 이렇게 딴전 피우자. '헌수 씨 말대로 역시 선생님은 각설이 형님이고, 약장수 저리 가라네요. 관동팔경 청산유수로 읊으시네?' 이렇게 말하고 그 분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자 곧바로 숙녀 한 분이 나타난다. 압구정동에서 온 그분은 부드러운 연초록 바바리코트와 선이 갸름한 얼굴이 잘 어울렸다.
네 사람이 아파트로 자릴 옮기니, 창 밖은 제3한강교 가로등이 진주 목걸이처럼 빤짝이고, 강 건너 한남동 옥수동 아파트 야경 휘황하다. 작가라더니 책이 많았다. 의사 남편이 남긴 아파트와 병원 빌딩 처분하고 포틀랜드 교외에 대형 갈빗집 열겠다는 분 아닌가. 술 한잔 걸친 남자가 이런 부자 과부집에서 뻥을 치지 않는다면 그가 남자겠는가. 없던 이야기도 지어낼 판이다.
'포틀랜드에 대형 갈빗집 매입하셨다니 내 밥장사 이야기 좀 해드리지요. 속초 우리 건물 20층에 양식, 중식, 한식 식당 셋이 있었어요. 그런데 부임해보니 가슴이 철렁하도록 손님이 하나도 없어요. 20층 한쪽은 동해, 한쪽은 설악산 보이는 스카이라운지인데 그러면 뭐합니까? 손님이 없는데. 시설비 오십 억 든 스페이스가 완전히 물먹는 하마더라고요. 15명 직원 인건비만 월 2천만 원 나갑니다. 남들은 주차 빌딩까지 둘이나 있는 20층 높은 건물 보고, 이 건물 사장이 누군가 하겠지만 죽을 맛이지요. 점심시간에 식당 올라가면 종업원이 손님 없다고 딴짓하고 놀다가 사장 보고 비실대고, 어쩌다 가물에 콩나물처럼 온 손님이 거기서 밥 먹습니까? 앉지도 않고 그냥 가버립니다. 그래 서울서 요식업 경험 30년 쌓은 부장, 유명 호텔서 스카우트 해온 조리과장 불러 몇 번 긴급회의란 것도 해봤지만 아무 방법이 없어요.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닙니까? 딱 두 달만 내 방식대로 해보고, 안 되면 직원 전부 해고하고 문 닫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아세요? 주방에서 주인 망하라고 막 퍼주는 식당이 오히려 돈 번다는 이야기. 나는 그걸 실행해보기로 했어요. 계산은 이래요. 한 끼에 8천 원짜리 음식 백 그릇 팔면 80만 원 매출에 마진 3십만 원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한 끼 6천 원 받고 이백 그릇 팔면 매출 120 만 원에 마진이 더 커집니다. 죽던지 살던지 결판을 내려고 음식 값도 내렸어요. 품질은 올리고요. 시각적으로 보기 좋고 원가는 싼, 상추 배추 같은 야채는 대바구니 가득 담아냈어요, 젓갈은 변산반도 줄포만 곰소로 사람을 보내 사오도록 했지요. 새우젓, 황새기젓, 갈치젓, 조개젓 큰 것 네 통 사면 몇 달 갑니다. 입에 단물 고이는 당귀잎은 양양에서 구해왔지요. 새벽에 대포항 가면 꽁치 한 통에 만원 합니다. 꽁치를 무조건 한 마리씩 구어서 서비스로 상에 올렸어요. 해물탕 가리비 조개는 손바닥만한 큰 놈으로 바꿨어요. 문어도 중짜로 바꾸고, 게는 알짜배기만 골라 나가는데, 이걸 그냥 내놓습니까. 주방에서 반쯤 익혀서 뻘겋게 해서 입맛 다시도록 내놓도록 했지요. 이래 놓고 나는 속초 기관장들 불러 술타령에 빠졌지요. 술 좋아하는 사장 맨날 기관장들과 술판 벌인다고 직원들 걱정이 태산 같았지요. 그러나 진로 초창기 판매 전략 아시지요? 회사 직원이 술집 다니면서 ‘진로 한병 주시오’ 하면서 진로 술 사먹은 그 홍보전략, 그 전략을 썼어요.'
옆에서 헌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좌우지간 창현이 이 친구 뱃장은 옛날부터 알아준다니까'. 그러자 압구정동 여인이 물었다. '그러다 문 닫으면 전부 실업자 되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다 적자나면 기업 망합니다. 그러나 대 모험 해야지요. 질 좋은 음식 막무가내로 퍼주는 모험을 해봤어요. 그런데 내가 초대한 기관장들이 보니 음식이 싸고 먹음직해요. 그래 물어봅니다. ‘김 사장! 해물 매운탕 이거 4인분 얼마요?’ ‘4만 원입니다.’ 그러자 ‘김 사장 안 계셔도 이리 나옵니까?’ 하고 묻는다. 그래 ‘어이 홍과장 이리 와봐!' 그러면 허연 터번 머리에 둘러쓴 조리과장이 옆에 와서 허리를 굽히고, '사장님 안 계시면 더 잘 나옵니다' 하고 장단을 맞춥니다. 따지고 보면 해물 매운탕은 1인분 만원 꼴. 가족회식 겨냥한 맞춤 요리 이만한 데 없어요. 그 전략이 성공했는데, 기관장들이 처음엔 공짜다 싶어 부하 데려오데요. 부하들은 가족 데려와요. 그때부터 바람은 슬슬 부는 동남풍. 인구 10만 속초라 금방 소문나요. 한 달 매출이 확 뒤집어져 버렸지요.'
미국에 대형 갈비점 준비해놓은 압구정동 그 여인은 그 이야길 심각히 경청했다. 그래 또 다른 비법도 이야기 해드렸다. '이런 수도 써봤어요. 원래 음식의 기본은 김치 아닙니까? 하루는 식사하다가 조리과장을 불렀지요. ‘어이! 누가 이 김치 담갔어?’ 일부러 화난듯 큰소리를 치니 과장이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내 눈치를 보더군요. ‘누구야? 누가 이 김치 담았어?’ 재차 소리를 지르니 과장이 ‘한 아무개 아줌마가 담았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합디다. ‘그래? 그럼 그 아줌마 불러와!'. 아줌마가 오자, ‘홍 과장! 이 아줌마 오늘부로 월급 5만 원 올려!’ 지시했어요.
그리고 그 달 조회에서 직원 모두에게 연설을 했어요. '음식은 정성과 솜씨가 원가입니다. 우리 식당 식재료 원가를 생각해봅시다. 솜씨 좋게 맛있게 만들면 가치가 두배로 올라갑니다. 솜씨 나쁘면 가치가 내려갑니다. 오색 그린야드 호텔 아시지요? 거기 음식은 양은 적고 가격은 비쌉니다. 도라지를 예로 들면, 기름에 튀겨서 딱 서너 점만 나와요. 그런데 손님이 그걸 싫어합니까? 깔끔해서 좋아합니다. 우리처럼 그냥 한 접시 가득 무쳐서 내놓으면 좋아합니까? 싫어합니다. 이걸 바꿔야 합니다. 재료는 적게 쓰고 값을 비싸게 팔면 어떻게 됩니까? 따따불 이익이 생깁니다. 솜씨와 정성이 원가의 중요한 구성 요인입니다. 사장이 여기서 약속드리지요. 음식은 예술이고 창의입니다. 앞으로 이번 김치처럼 맛있는 또다른 음식 만들면 그분 월급 당장 5만 원 인상시킵니다.'
'이렇게 웅변 토하고 나니, 대번에 응답이 와요. 식탁에 도라지 튀김이 오른 거 있지요? 그래 그 자리서 또 한 번 쇼를 했지요. '이 도라지 튀김 누가 했소?' 물어보니, 또 그 아줌마네요. 쇠 뿔을 단김에 뺐습니다. ‘홍 과장 이 아줌마 이번 달 월급 오만 원 더 올려!’ 곁의 식당 아줌마들이 이소릴 듣고 놀래버렸어요, 월급이 한 달에 두 번 오른 거예요. 이 빅뉴스는 금방 손바닥만한 속초시에 퍼졌어요. 소식 듣고 방문객이 나타났어요. 그는 전에 우리 주방 책임자였어요. 월급 적다고 설악파크호텔 주방으로 갔던 사람입니다. 내가 그를 도로 스카웃 해올려고 사람을 보냈다가 거절당한 사랍 입니다. 그가 스스로 찾아와 하는 말이 '자기 부하였던 그 아줌마보다 2만 원만 더 올려주면 복귀하겠단' 겁니다. '2만 원 같은 시시한 소리 하네. 5만 원 올려줄 테니 당장 오세요'. 그분은 찍소리 못하고 옮겨왔고, 그 후 우리 식당은 속초 최고가 됐지요.
임금 책정도 경영 비법입니다. 삼성이 그랬어요. 임금이 높은 대신 직원 1인이 경쟁사 2인 몫을 해냅니다. 봄 임금인상 철 오자, 직원 임금을 대폭 올려버렸어요. 부-과장 모아놓고 인상폭을 말해보라니 한참들 눈치만 봅디다. 그러다가 4%만 올리면 좋겠다고 해요. 이유는? 하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더라고요. '사장님은 그룹 비서실장 하신 분으로 소신대로 하시는 분이라서' 이런 시시한 소리만 해요. 그래 내가 '당신들이 월 매출 5%만 올려주면, 임금은 7% 인상하겠다. 어떠냐?' 라고 물었지요. 그렇게 올리면 속초 4개 대기업 중 두 번째가 됩니다. 그 전엔 꼴찌였어요. 그들이 회의 끝나고 돌아갈 때, 가서 직원들에게 뭐라고 하겠냐고 물었더니, '사장님이 결단을 내셔서 어쩌고..' 하는 대답을 합디다. '에라이! 이 사람들아 자네들이 사장한테 요구해서 임금 올렸다고 왜 못해. 그 대신 월 매출 5%만 올려! 가능하지?' 이래 놓고 그 달 실적을 보니 매출 5% 거뜬히 올라갔습니다. 즉각 매출 목표 달성했다고 전체 3개 부서에 보너스 100 만원 씩 줬어요. 매출 5% 오르면 임금 인상 3% 보태줘도 순익이 훨씬 큽니다. 매출 목표는 항상 달성 가능한 매출 목표로 주었어요. 그러니 다음 달 매출이 또 5% 올라가요. 사장은 보너스만 주면 됩니다. 열심히 일하라는 쓸데없는 말 할 하고 다닐 필요 없습니다. 지들이 알아서 죽어라고 일 합니다. 이게 경영입니다'.
'창현아! 니가 반해서 사죽을 못쓴 그 피아노 치던 아가씨 이야기는 왜 빼먹나?' 헌수가 끼어들었다. '우리 양식당에 피아노 치는 아가씨가 있었어요. 포크와 칼로 랍스터와 스테이크 자르는 데라, 무드 잡으라고 그랜드 피아노 놓고, 생음악으로 피아노 치던 아가씨예요. 그런데 손님이 음악 듣습니까 아가씨 얼굴 봅니까? '무조건 강원도 학원 다 뒤져서 얼굴 이쁜 애 구해오라'고 지시했어요. 직원들이 황당했을 거예요. 사장이 여자 밝히나 싶었을 거예요. 현재 피아노 치는 그 처녀가 음대 나왔다고 그래요. 나는 '시끄럽다! 무조건 얼굴 이쁜 애 구해오라' 했어요. 그래 구해온 아가씨를 보니, 그가 위드 위스의 시에 나오는 도브의 샘가 인적 없는 외진 곳에 살던 소녀 같아요. 얼마나 순진하고 이쁜지. 면접할 때 내조차 노닥거리며 좀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더라니깐요. 피아노 위치도 손님이 아가씨 얼굴 볼 수 있도록 180도 돌려버렸어요. 그랬더니 속초 한량들 난리 났어요. 밤 10시 넘도록 커피 마시며 가질 않아요. 양식당 매상 쑥 올라갔어요’.
'대중심리를 잘 파악하셨군요?' 압구정동 여인이 코멘트했다. '겉으로야 교양 찾지만, 남자들 본질이 원래 늑대 아닙니까?' 내가 이러자, '지피지기라 그 말씀이지? 니가 늑대니까 늑대 경영을 했군' 헌수가 토를 달았다. '종업원 임금 인상 건, 원재료 원가 문제, 음식 가격 책정 등 백화점 요점을 잘 짚으셔서 해결하신 거 같아요. 선생님 말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자 미국 친구가, '애숙아 애! 티 난다. 순진하게 너무 그러지 마라. 다음에 김 선생님을 싸부로 모시든지 말든지 네 맘이지만, 처음부터 이래서 쓰나? 속도 조절 좀 해라' 그랬다. '아니다 지금 내가 출가한 애들하고 상의하냐? 김 선생님은 백화점도 운영하셨고, 너무 배울 점이 많으셔!'. 미국 친구가 싱그레 웃으며 '재가 아주 춘향이 이도령한테 그러듯 팍 엎어지는구먼!' 했다.
이런 대화 끝에 그날 그분은 날 쳐다보며 미국에 함께 가시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숙녀가 먼저 꺼내기 어려운 부탁이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뒤 태평양을 건너갔다. 20년 전 일이다. 당시 일 생각하면 지난 여름 파도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잔잔히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