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두 대통령, 만델라와 윤석열
[ 시민언론민들레 | 박충구 칼럼 / 전 감신대 교수ㆍ 생명과 평화윤리 연구자 mindle@mindlenews.com ] 2023.03.28 13:51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1994~1999)이다. 법률가였던 그는 약관 25세에 남아프리카 국민회의에 입당한 후 불의한 인종차별주의 체제인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서는 정치적 활동에 생애를 바쳤다. 1962년 만델라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쫓기게 되었고, 반역죄로 체포되어 백인 일색인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로빈 아일랜드(Robin Island) 포함,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한 기간은 무려 27년에 이른다. 그는 훗날 그의 감옥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회상했다. “감옥생활,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주저앉히지 못했다. 오히려 최후 승리를 거둘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결의를 더욱 굳게 해주는 곳이었다.”
1990년 남아공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국내외 압력이 점증하고 인종적 갈등이 고조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황에 이르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클라크(F. W. de Klerk)는 만델라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동시에 그는 전 인구의 10%도 채 안 되는 백인을 위한 정권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폐기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마침내 헌법이 바뀌고 흑인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된 후 실시한 첫 선거(1994년 4월 27일)에서 만델라는 62%의 지지를 얻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남아공은 이날을 기념하여 ‘자유의 날(Freedom day)’로 선포하고 국가 공휴일로 정했다.
남아공 ‘자유의 날’ 그리고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탄생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을 기뻐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만델라가 직면한 문제는 아파르트헤이트 백인 정권 34년 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버려졌던 흑인들이 백인들과 그들의 조력자에게 겪은 온갖 인권유린 범죄를 찾아내 이를 심판하고, 잃어버린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되찾아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비록 헌법을 바꾸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백인들이 남아공의 실질적 권력을 여전히 거머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 클라크는 퇴임 직전 인종차별적 범죄를 저지른 백인 경찰관 3500명을 약삭빠르게 사면해 주었다.
이런 정황에서 만델라는 우파로부터 빨갱이로 매도되고 있었고, 좌파로부터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너무 쉽게 용인하려는 타협론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이때 만델라는 인종적,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를 구성할 것을 결심하고, 이를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후, 198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당시 요하네스버그 성공회 주교였던 투투(Desmund Tutu)에게 그 위원장직을 맡겼다. 동시에 이 위원회에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34년 동안(1960년~1994년) 백인에 의해 저질러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들의 실상을 밝히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들에게 주어진 조사 기간은 7년이었다. 이 기간에 사면을 신청한 인권침해 범죄는 무려 7000건에 달했다.
인종차별이 불러온 악의 역사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인간이 인간을 비참한 곤경에 빠지게 만들 수 있는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용인해온 기독교라는 종교, 인종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집단의 이기성, 그리고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서구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욕망이 얽혀 있었다. 많은 이들은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입안한 사람(Handrik Verwaerd)이 신학을 공부한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이며, 그가 성경에서 인종분리주의 정책의 근거를 찾았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가 성경에 근거해 만든 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짐승처럼 감금과 감시를 받고, 구타당하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는지, 남아공 도처에서 흑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비롯하여 무수한 인권유린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인류의 평화에 공헌한 인물로 국제사회가 높이 평가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투투 주교를 하등 인간으로 취급했다. 그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1994년까지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주거이전의 자유도, 여행할 자유도 없었으며, 그의 가족은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길거리에서 몸수색을 요구받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유명 인사, 성공회 주교인 투투에게조차 온갖 수치와 모욕을 안겨주는 사회에서 힘없는 민중이 겪은 고난과 고초는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화해와 용서의 조건
남아공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근거가 된 법 ‘국민통합 화해 촉진법’은 “과거 정치 분쟁의 결과로 빚어진 엄청난 인권 침해를 가능한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분쟁의 결과로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데 힘써야 한다”고 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규정했다. 이 규정에 따라 투투는 위원회가 수행해야 할 두 가지 과제를 선명하게 제시했다. ‘진실을 여지없이 드러낼 것’, 그리고 ‘인권과 존엄성을 박탈당한 이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이 과제를 위하여 투투는 피해자가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기에 앞서 가해자가 먼저 범죄사실을 증언하고 사죄를 요청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함을 알았다. 포악을 행한 자의 얼굴과 행위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포악을 겪은 이가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7년의 기간에 걸쳐 동료 인간에 대한 백인들의 범죄가 증언대에서 증언으로 밝혀졌다. 백인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성을 몰수당하고 집단학살을 당한 사건, 백인 경찰관들이 흑인을 살해한 후 시체를 불태워 없앤 사건, 강간당한 후 살해당한 여성들에 대한 증언, 전기고문, 방화 살인, 약물 살인, 즉결처형 등 형언할 수 없는 중대 범죄들이 증언대에서 밝혀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협과 협박과 고문, 폭력과 살해의 위험을 겪었던 피해자들 앞에 가해자들이 나와 증언대에서 자신들의 악행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진실의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도 남아공에서 용서와 화해의 길도,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인간성의 진정한 회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투투는 증언자들이 범죄 사실을 증언할 때마다 그 범죄의 희생자들이 겪었을 절망과 고통이 느껴져 그 위원회에 참여했던 이들 모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그 증언을 들을 수 없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남아공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려온 고유의 덕성, 심장이 큰 자들의 너그러운 마음, 우분투(Ubuntu) 정신이 되살아났다. 그때 비로소 피해자가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다.
죄책 고백 없는 용서와 화해 강요는 범죄
나는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역할을 살펴보면서, 진실의 법정 없이, 가해자의 진실한 고백과 사죄 요청도 없이,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되찾아주는 일도 없이, 피해자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하는 정권의 민낯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일제에 의해 인권과 존엄성을 몰수당했던 피해자의 울부짖는 소리를 묵살하고 침묵을 강요하려 드는 정권의 야비함, 피해자의 인간성을 재차 유린하는 범죄가 아닐 수 없다. 35년에 걸친 일제 치하에서 침략전쟁의 전선으로 끌려가 온몸으로 모욕을 겪어 만신창이가 된 이 나라의 여인들, 짐승 취급을 받으며 강제노역을 겪었던 이 나라 국민이 빼앗겼던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되찾아 주는 것이, 국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헌법적 책무가 아닌가.
만델라는 로빈 아일랜드감옥에서 자신를 감시하던 교도관을 그의 대통령 취임식에 귀빈으로 초대했다. 만델라에게 종신형을 내렸던 포악한 권력이 역사 너머로 사라지고 그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성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총리를 초대해 마주 앉을 수는 없을까? 만델라 정권의 용서와 화해의 문법을 따른다면, 일본 총리가 증언대에 서서 일제가 35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범한 만행을 낱낱이 고백하며 드러내는 경우 외에는 그런 일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가해자의 죄책 고백과 사죄 요청도 없이 양국 간의 미래를 열기 위한다며 권력자가 피해자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하는 짓은 야비하고 파렴치한 범죄 행위다. 윤석열 정권의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이며 야만적인 범죄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국 "5·18 망발 없어지려면, 광주 정신 헌법 전문 담아야"
[ 대전일보 | 최고나 기자 ] 2023. 3. 29. 07:08
사진=연합뉴스
광주를 찾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5·18 광주 정신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8일 광주 동구 광주극장에서 열린 '조국의 법고전 산책' 북콘서트에 참석한 조 전 장관은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등이 5·18 관련 망언을 하며 광주 정신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대선 후보 시절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한 것을 언급하며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는 등 진정성을 의심스럽게 한다. 망발이 없어지려면 헌법 전문에 반드시 수록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5·18 광주 정신은 지역에 국한된 정신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기본이 되는 정신"이라며 "헌법에 들어가면 (앞으로 이같은 발언들이) 반헌법적 발언이 된다"고 설명했다.
조 전 장관은 일제 강제 징용 관련 '제3자 변제' 해법과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일본 강제징용 해법 문제 출발은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을 때 행정부가 따라야 하느냐 마느냐에 달린 것"이라며 "윤 정부의 안은 법률에 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해결책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또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조치를 행정부가 했는데, 기업이 돈을 내면 그 결정을 한 사람은 정권 교체 후 배임죄로 수사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내는 것을 꺼리는게 아닐까"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이날 조 전 장관은 방청객과의 질의응답에서 '개인적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밉고 서운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을 모셨던 수석보좌관으로서 답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