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렘(Harem)
동물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수컷의 왕만 하렘을 차지한다.
하렘의 어원은 아랍어에서 금지된 것을 의미하는 '하람()'이다. 하람은 원래 쿠란 혹은 샤리아에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지만, 좁은 의미로는 "각 가정에서 손님,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방"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규방 내지는 안방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아랍, 터키 지역의 전통 가옥에는 남성들의 구역인 셀람륵(selamlık)과 여성들의 구역인 하람륵(haramlık)이 존재하는 데 하렘은 바로 여성들의 구역인 하렘륵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렘(harem)'은 '하람(haram)의 터키식 발음이며, 흔히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오스만 제국의 하렘은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남녀를 격리하던데서 온 것이다. 그 때문에 술탄의 궁전을 방문한 남성들은 하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여성들은 하렘에 들어가 황후를 비롯한 후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마찬가지 이유로 외부 여성 인사가 단독으로 셀람륵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18세기 유럽 귀부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Mary Wortley Montagu, 1689-1762)가 오스만 제국 여성들의 삶을 전하고 19세기 옐레나 디미트리예비치(Jelena Dimitrijevi?, 1862~1945)라는 세르비아 여성이 오스만 제국 황실의 허락을 받아 하렘에서 1년여 동안 살면서 하렘에 사는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적어 유럽으로 와서 쓴 책자에서 "하렘은 그리스도교의 수녀원과 같은 곳"이라고 하였다.
하렘이 존재했던 이유는 위처럼 술탄들의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주된 목적은 바로 아들 생산이다. 즉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린 나이에 여성들이 하렘으로 끌려오는데, 일단 이들은 교육을 받게 된다. 아들을 많이 많이 만들어내고 후계자가 결정되면 모든 형제를 죽였으나, 훗날 형제들을 하렘에 위치해 있는 감옥 안에 가두게 된다. 오스만 제국에 한정. 제국을 세운 투르크인은 본래 유목민족이었으므로 장남이 황위를 잇는다는 법이 없었고, 황제가 죽으면 황자들끼리 경쟁을 벌여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황위를 이었다. 다만 아흐메트 1세 때부터 형제끼리 죽고 죽이는 대신 경쟁에서 패배한 황자를 하렘에 딸린 독방에 가둬두는 법이 생겼지만, 비교적 온건해진 시대보다 살벌했던 시대가 오스만의 전성기였다는 점은 오늘날 보기에는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스만의 하렘은 성적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외척이 정치에 참여치 못하도록 막는 구실과 함께 최대한 많은 황손을 만들어서 그 중에서 인재를 골라내기 위한 구실이었다. 자녀 양육과 보호에 있어 어머니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하렘에 사는 술탄의 배우자들은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16세기에는 술탄의 실권이 축소되면서 술탄의 어머니(Valide sultan)나 할머니가 막후에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배다른 자식들이 다수 있고 그 중에서 한 명이 술탄의 후계자가 된다면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위해 다른 배다른 형제들을 몰살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적자상속이라는 튀르크족의 계승 풍습에서 유래되었다. 가령 메흐메트 2세는 즉위하자 마자 자기 형제 19명을 깡그리 죽였다. 나중에는 이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죽이지 않고 새장(kafes)이라 불리는 장소에 '봉인'시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 새장에 갇힌 황자들은 여자도 만날 수 있고, 방 안에서는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았지만 자식을 갖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변덕스러운 형에 의해 언제 죽을지 모를 처지에 있었다.
그리고 사실상 술탄이 짐승도 아니고 밥 처먹고 붕가붕가만 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사냥이나 학문 등에 취미를 두는 술탄이 더 많았다고 한다. 물론 하렘에서 오입질에 몰두한 술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술탄 치고 오래 산 사람은 없다
오스만 제국 하렘 제도에서 하렘 내 여자들은 하렘에서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는 인물은 발리데 술탄(Valide sultan)으로 파디샤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이며, 그 다음이 파디샤의 아들을 출산한 하세키 술탄(Haseki sultan), 그 다음이 파디샤와 동침한 적이 있는 하툰(Hatun)이고 하렘의 여인들을 감독하는 칼파(Kalfa), 제일 밑에 최하위 시녀로 다른 여자들의 시중을 드는 오달륵(Odalık)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위계적인 신분을 갖게된다. 쉴레이만 대제 이전에 오스만 술탄들에게는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이 없었지만 그가 휴렘 술탄과 결혼한 이후로 역대 파디샤들도 그런 전례가 생겨나서 여기에 황후라는 새로운 지배자가 생겨나게 된다.
게다가 하렘의 관리는 황후도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하렘 안 여성의 임신도 견제 대상이었다. 때문에 하렘 안 여성을 정말 사랑하면서도 황후가 알아차리고 죽여버리는 것도 얼마든지 일어났다.
술탄 압둘 하미드 2세는 하렘에 사는 뤼흐하라는 여성을 정말로 사랑했다고 한다. 그가 그녀에게 남긴 편지를 봐도 그야말로 닭살 돋는 진수가 보일 정도로 사랑에 뿅가는 글귀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도 황후의 눈치를 보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내색하지 않았다가, 그녀가 병으로 일찍 죽자 슬픔과 절망 속에 오래가지 못해 그도 죽었다고 한다.
■ 할렘(Harlem)
할렘은 미국 뉴욕 시 맨해튼 북부 미국 최대의 흑인 거주지구이다. 센트럴파크 북쪽 116번가에서 155번가에 걸쳐 있다. 빈민가 혹은 흑인 빈민가를 지칭하는 대명사로도 사용된다.
1658년 뉴네덜란드의 총독 페터 스토이베산트가 네덜란드의 도시 하를럼을 따서 이름을 지어 정착지를 설립한 것이 기초이다. 미국독립전쟁 때에는 조지 워싱턴이 롱아일랜드 섬으로부터 후퇴하면서 자기의 군대를 재편성하여 지금의 할렘에서 전투를 가진 적이 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할렘은 농장과 설교 지역이었고 19세기에 와서 집들이 여름 별장으로 쓰이면서 유행적인 거주지역이 되었다. 1880년대의 빌딩 붐이 일어나면서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미국 남부에서 들어온 흑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때에 흑인들의 거주, 상업 지대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할렘 르네상스가 발달하였다.
할렘에 들어오는 흑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질병, 빈곤, 실업 등의 문제들이 생겨 결국 빈민가를 이루고 말았다. 1980년대에 와서 공동 주택 공급, 더 나은 의료 시설 등의 개발을 추진하였다.
할렘의 동부에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살고 있으며, "스패니시 할렘"이라 불린다.



■ "Let the market be" 자유시장경제 확립의 필요성
빈민가의 대명사 뉴욕의 할렘 지역. 이 할렘 지역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이 바로 정부의 규제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뉴욕 시 맨해튼 동북쪽의 빈민가 할렘 지역은 원래 현재와 같은 빈민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이 곳 할렘 지역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의 중심지였던 맨해튼을 중심으로 집값과 임대료가 폭등하게 되자, 정부는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당시 뉴욕 시장이였던 에드워드 카치가 선택한 것은 바로 정부에 의한 강압적인 규제방식. 그는 폭등을 막기위해 ‘임대료 규제법’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임대료 인상을 강제적으로 막게 되면서 건물 소유주들은 더 이상 세입자들을 위한 주거환경 개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받는 임대료에 비해 손해보게 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죠.
건물 소유주는 이야기합니다. “제 값을 받지 못해 손해 보는 것은 뻔하기 때문에, 투자는커녕 건물 보수는 꿈도 못 꾸죠. 임대 아파트 소유가 오히려 손해에요“
세입자들은 규제가 실시되자 임대료가 낮아진다고 생각하며 기뻐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정책이 서민들에게 실질 혜택으로 돌아갔을까요?
맨해튼의 건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건물주들은 점점 임대 놓기를 꺼려하게 됩니다. 결국 공급은 급감하게 됩니다.
새로이 맨해튼에 입주하고자 하는 입주 소망인들 역시 규제의 피해자가 됩니다. 줄어든 공급과 열악한 환경으로 입주하고 싶어도 입주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거죠.
결국 임대료 규제는, 시장의 참여자들 모두에게 부작용을 안겨주게 됩니다. 집주인들에게는 임대료 수익의 하락을, 세입자들에게는 낙후된 건물과 환경을, 새로운 입주소망인들에게는 공급의 하락 등으로 입주하기 힘든 여건을 안겨주게 되었죠.
규제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외곽으로 나가게 되고, 충분한 이용가치가 있는 중심지였던 할렘 지역은 점차 낙후되어 빈민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 합니다. “Let it be, Let the Market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