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설음에 대하여
제주대학교/낯선철학하기/식품영양학과/2020107090/박규영
익숙한 낯설음이란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땐 주제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저 모순되는 두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익숙한데 낯설수가 있을까?
주제에 관해 요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 본 내 답은 ‘그렇다’였다.
몇 달 전, 갑자기 예상치 못한 비가 내렸다. 맞기에는 꽤 많은 양의 비였지만 난 우산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비를 맞는 다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일단 선택지가 없었고 집에 도착한다면 옷은 빨면 되는거고, 몸은 씻으면 되는거였으니까 별 생각 없이 맞으며 걸었다.
그런데, 비를 맞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처음 보는 분이 갑자기 내 옆으로 오셔서 우산을 씌워주셨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시며 어차피 가는 길이라고 같이 가주신다고 하셨다. 그 분 덕분에 나는 비를 맞지 않고 버스정류장까지 올 수 있었다.
또 다른 일이었다. 버스를 탔는데 어떤 교복입은 한 학생이 버스카드를 찍자 잔액부족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뒤에 줄 서있는 사람이 많았어서 그 학생은 뒤로 가기도 힘든 상황이라 학생은 잠시 옆에 비켜 서있었다. 버스 입구 쪽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그 학생은 버스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기사님은 그냥 타고 가라고 하셨고 학생의 잔액부족 메시지를 들은 몇몇의 승객은 본인들이 버스비를 내주시겠다며 학생에게 카드를 건네곤 했다.
사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이런 도움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는 나이가 어려서 선불카드만 가능했었는데 가끔 충전을 까먹은 날이면 이런 일이 발생하곤 했다.
언뜻보면 물질적으로 엄청나게 큰 도움은 아닐지라도 이 순간 나는 감동을 크게 받았다. 이럴때마다 타인에 대한 고마움이 크게 들었었다. 이 학생을 보며 과거의 내가 생각이 났었고 큰 도움은 아니지만 나도 그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버스비를 대신 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익숙한 낯설음이란 이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 안에서 서로 당연한 듯이, 약속한 듯이 본인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줄 때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받기도 한다. 그리고 우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렇게 살아왔다. 나는 도움을 주는 것, 받는 것 모두 익숙하다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문득 이러한 행동이 익숙하지만 낯설다는 느낌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아무것도 엮이지 않은 채 남남으로 만났지만 우리는 당연하게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관계‘로 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떠한 보상을 바라는 것 없이 ’남‘을 위해 도와준다는 행위 자체가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라는 당연한 삶 속에서,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더라도 그 속에서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거나,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기꺼이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익숙함에 속아 감사함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첫댓글 우리가 관계 맺고 사는 존재라는 것은 꽤나 익숙한 선언이지요. 이성적 동물, 관계적 동물 이런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어왔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우리가 관계 맺고 사는 존재인가는 관계가 파탄날 때, 또는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는 낯선 상황에서 되묻게 됩니다. 그래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가 철학하기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존재, 의미, 가치, 곧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