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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언약하셨다. 또한,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을 약속하셨다. 과연 우린 그것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가졌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1 믿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특별히 믿은 것은 자손을 별과 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이것은 어떠한 행함으로도 가능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으므로 오직 믿는 거 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우리를 불가능한 상황에 놓으셔서 믿음을 요구하신다. (롬4:1~3)
2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을 하나님께서 하신다
사라는 이미 폐경이 되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오래 살았지만, 폐경이면 임신을 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오늘 날에는 보통 50~60세 정도에 폐경이라면 사라는 60세 이후에 첫 임신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나이에 임신한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호와께서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면된다. 그때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요구되는 것이 믿음이고 주님의 전능하심이 필요한 때이다 (창18:11~14)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순종하고 일하고... 그러나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내가 못하는 것... 예를 들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래서 게임 중독이라면 하나님께서 중독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우리에게 믿음이 요구되는 때이다
3 믿음이란 무엇인가?
일하는 자에게는 삯이 보수이고 심지어 영어 성경은 빚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빚을 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한 보수이지 은혜는 아니다. 마땅이 받을 것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경건치 않은(불의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의롭다고 하신다. 이게 무슨 말일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린 의로와질 필요가 없다. 그냥 불경건해도 의롭다 하실 것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히브리 영어 성경을 찾아보았다.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히브리 성경은 "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경건치 않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드시는 그분을 믿는다면, 그의 믿음은 의로움으로 여겨진다"라고 번역했다. 히브리 성경은 앞으로 자신을 의롭게 만드실 그분을 신뢰하는 것으로 믿음을 설명하고 있다. 헬라어 원어는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게 되도록 하는~~ " 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 영어 번역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과연 하나님은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고하시는 걸까? 아니면 불경건한 자를 의롭게 만드시는 걸까? 어떤 번역이 더 성경적일까? 분명 후자가 더 하나님의 성품과 믿음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할수있다.(롬4:4,5)
4 우리의 생애중 언제일가? (초반, 중반, 후반, 전반?)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일한 것이 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불법이 모두 용서받고 죄인이 아니라고 인정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과연 이 시기는 우리의 신앙의 인생 가운데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처음 예슈아를 만났을 때? 몇 십년 신앙 생활하고 있을 때? 죽기 전에? 아니면 항상? 불법이 모두 용서받을 뿐 아니라 죄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린 불법과 싸울 필요가 없다. (롬4:6~8)
# 과연 모든 것을 용서받을 뿐 아니라 죄로 여기지 않아주시는 때는 처음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슈아를 만났을 때일까? 한참 죄와 싸우는 혈기 왕성할 때일까? 아니면 죽기 직전일까? 언제 우리의 불법이 죄로 인정되지 않을까?
5 처음에 죄에서 건져질 때는 값없이 의로움을 얻었다
예슈아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린 값없이 의로움을 얻었고 믿음이 없었을 때 지은, 예슈아를 믿기 전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이러한 구원의 사건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적인 은혜이다. 즉, 값없이 의로움을 얻는 시기는 유월절 신앙으로 믿음을 시작할 때이다. 그러나 신앙의 중반과 후반은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고 불순종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생을 언약하셨으므로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롬3:23~27)
6 죄인을 위해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예슈아께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예슈아께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우리를 출애굽시킬 때 피로써 의롭다함을 받았다. 그래서 죽음이 넘어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의롭다함을 받았으므로 끝난 것이 아니다.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아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진노가 있는 죄를 떠나게 되는 것이 구원이다. 많은 사람은 구원이 그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죄를 떠나는 구원이 없다면 어떻게 천국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 (롬5:6~9)
# 과연 구원이 뭘까? "적당히 믿고 적당히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인간이 어디있냐?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원이라는 개념이 삶과 분리되어있는 때 하는 말이다. 구원은 건져지는 것이다. 즉 죄로부터 건져지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삶과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흔히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즉,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를 다닌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법도로 통치를 받기 원하지 않는다.
7 믿음을 의로움으로 간주하시는 때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가리워짐을 받는 은혜의 때를 할례자들이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도 죄사함의 복을 누릴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99세때 받았다. 아브라함이 자녀에 대한 약속을 믿은 것은 무할례자였을 때이다. 언약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 믿음은 의로움이 되었다. 믿음을 의로움으로 간주하시기 때문에 할례자 뿐 아니라, 무할례자도 같은 복을 누릴 수 있다. 이는 마치 믿음으로 하나님의 절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접붙여진 이스라엘로 함께 유업에 동참하게 되는 것과 같다.(롬4:9,10)
8 구원의 시작은 무할례이며 완성은 할례이다
아브라함의 신앙 생활에 대한 인정은 할례의 언약으로 받았다. 그러므로 무할례자들의 조상임과 동시에 할례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아직 무할례자였을 때 처럼 믿음의 길을 걷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나 무할례자들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인정을 받아 온전한(육체와 영) 할례자가 되는 것이 믿음의 완성이다. (롬4:11,12)
9 온전함의 할례와 함께 시작되는 언약의 성취
믿음의 여정을 걸어온 아브람에게 99세때 행함으로 완전해지라고 말씀하셨다. 완전함을 코앞에 둔 성숙한 아브라함에게 이제는 크게 번성하리라고 축복하시고 여러 민족의 아비가 되고 여러 민족들이 나오며 왕들이 나올 것이고 이름도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고 새로운 회복과 축복의 시즌을 선포하셨다. 또한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언약하셨다. 그리고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언약들은 우리가 완전함으로 나아갈 때 성취되기 시작한다. 우린 믿음으로 시작하나 더욱 행하여 완전함으로 나아가야한다. 무할례자로 시작하나 온전한 할례자가 될 때 언약이 성취되기 시작한다. 할례는 육체와 영 모두를 포함한다.(창17:1~10)
10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언약이 성취되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것을 이루어 주시고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시며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씀은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온전함을 위해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창26:3~5)
11 율법은 믿음을 헛되게 하고 약속을 파기하는가?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유업에 대한 언약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의로움으로만 가능하다. 만약 언약이 율법에 의한 것이라면 믿음도 필요없고 약속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먼저 영생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거룩함과 순종함을 배워가게 하시고 흠과 티가 없는 신부가 되도록 훈련하신다. 즉, 믿음으로 주신 언약을 우리가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겸손과 순종으로 유업을 성취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율법이 믿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약속을 율법이 성취하게 한다. 다만 언약은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믿음을 보고 주신다는 뜻이다 (롬4:13,14)
12 율법은 믿음을(언약), 믿음은 율법을 폐하지 못한다
믿음을 보시고 주신 언약은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헛되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믿음을 보시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약을 위해 율법이 필요없을까? 믿음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언약을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지만 성취를 위해서는 율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믿음이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갈3:17,18 롬3:31)
13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 믿음으로 시작하신 하나님
율법으로는 언약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약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조건이 될 뿐이다. 언약은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율법에 속한 자도 후손이 될 수 있고 아직 율법 밖에 있는 자도 후손이 될 수 있다. 조건이 단지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었다. 마지막에 반드시 영원한 생명으로 일으키시고 유업을 얻는 자로 만드시겠다는 언약도 부활의 믿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로 두려움없이 토라에 순종할 수 있게 한다. (롬4:15~17)
14 예슈아께서 할례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온전케하심
예슈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사역자가 되셨다. 그럼으로써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확증하셨다. 예슈아께서는 할례를 받은 사역자이고 할례자들에게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렇게 하심은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것을 견고케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무할례자의 믿음으로 언약에 들어오게 하시는 하나님은 긍휼하심이 끝이 없으시다. 그리하여 온 열방이 주의 백성인 할례자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다. 즉, 할례가 필요 없다거나 할례의 언약이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언약하시기에 모두의 하나님이 되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시작하여 할례자가 되어 온전해졌다면 예슈아의 가르침은 할례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온전해 지는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과 예슈아는 동일하다. 예슈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다른 것을 세우는 분이 아니시다 (롬15:8~10)
15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은 삭개오
삭개오는 예슈아를 만나고 자신의 소유의 절반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하고 속인 일에 대해 네배로 갚겠다고 선언한다. 삭개오는 회개로 울고 불며 바닥을 뒹굴지 않았다. 그는 율법을 기억했다. 도둑질하거나 빼앗은 것에 대해 4배로 갚고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기로 결단하고 선포했다. 이때 예슈아께서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증언하신다. 우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럼 삭개오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믿음이 아닌 행함으로 받았는가? 왜 삭개오는 구원이 선포된 상황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처럼 보이는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는 우리로 회개토록 만든다. 즉, 말씀으로 돌아가 삶을 바꾸게 만든다. 그게 진정한 회개이다. 회개는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는 거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토라대로 교정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율법을 더 굳게 세우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믿음과 율법은 젖가락과 같다. 둘 다 온전함을 위해 필요하다(눅19:8,9 출22:1 삼하12:6)
# 우리에게 삭개오와 같은 진리를 향한 진지함과 배고픔이 있는가? 우리는 과연 높은 나무에 올라가 그분의 가르침을 들을 마음이 있는가? 회개를 위해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줄 마음이 있는가 돌아봐야겠다.
16 믿음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믿음에 대해 훈련을 받았다. 없지만 별과 같이 많을 자손을 믿음으로 바라본 아브라함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롬4:17)
그런데 타국에 간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고백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으신 것을 거두는 분이시다. 자신의 행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성취하실 수 있다는 고백이었다.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 이 종의 고백처럼 행함이 필요없다는 가르침이었는가? 물론 아니다. 그러므로 이 종은 예슈아께서 왕이 되는 것을 싫어했던 원수로 인정되어 멸망받게 되었다. 이 두사람은 어떤 면이 다른 것일까? 아브라함은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은 것이었고 종은 자신이 해야할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시길 바라는 믿음에 대한 전적인 오해였다. 믿음이란 행함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모두 하고 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충성된 자의 믿음이다. 즉, 믿음이란 율법없이 사는 것, 순종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준행하는 자에게 언약하신 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게 믿음이다. 그래서 삭개오가 믿음으로 율법에 순종했을 때 그 언약대로 구원이 선포된 것이다. (롬4:17 눅19:20~27)
17 예슈아께서 부활하신 목적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이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그분을 믿는다. 우리가 범죄함으로 죽으셨다면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다(롬4:23~25) 즉, 예슈아의 부활하심으로 우린 구원을 받았다. 의롭게 된 것과 구원은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죄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 의로움이고 구원이기 때문이다. (롬5:10)
18 믿음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다
처음에 예슈아를 믿을 때는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고 즉각적인 의로움을 경험하게 하시고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하신다. 그러고 나서 우린 죄를 떠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때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이 필요하다. (롬3:20~22)
19 죄와 의로움에 대한 교리에 미혹이 있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다. 의를 행하는 자가 예슈아처럼 의로와 진다. 이 부분에 대해 어둠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우리가 의를 행하면 예슈아처럼 의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의롭지 않아도 예슈아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거짓말 한다. 또한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준행하는 자들을 교만하다고 정죄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롭지 않다면 우린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태초부터 범죄할 수 밖에 없는 태생이 범죄자가 사단이다. 우리의 구원은 죽어서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곳에서 죄를 떠나는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의로움이고 구원이고 그런 자에게 장차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짓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그렇게 되는 것이 온전함이다(요일3:4~8)
20 거룩한 말씀(성경, 토라)이 필요한 이유
만약 믿음만으로 언약이 성취된다면 성경이 필요없을 것이다. 그저 될거라고 믿는 긍정적인 자기 최면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구원의 개념도 상당히 추상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성취하도록 지혜를 주시고자 성경을 주셨다. 그리고 성경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교정하시며 의로움을 교육하신다. 이렇게 하시는 목적이은 아브라함이 99세 때 온전함의 할례를 행한 것처럼 우리도 온전해져서 모든 선한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언약을 성취하도록 지혜를 줄 것이다. (딤후3:15~17)
# 결론적으로 믿음으로 언약안으로 들어온 이방인과 유대인이 성경(토라, 율법)을 통해 죄를 떠나 온전해지고 구원의 삶을 살게 하신다. 그리고 그런 자가 장차 구원의 언약을 성취할 것이다. 살면서 불순종으로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언약을 믿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 다시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가면 된다. 두려울 때마다 언약을 전적으로 믿고 부활의 믿음으로 순종하면 된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온전함에 이르는 삶이었고 예슈아께서 가르치신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 30분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첫댓글 ㅎㅎ ㅎ ㅎ
재미있는 분 좋은 주제 여기 있는데 너무 늦게 도착 아쉽네요
결론은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함은 시작이고 실제로 율법을 준행 죄를 떠난 삶을 통해 의롭다 함 을 얻고 구원이 완성된다라는 주장이신데 오늘날 율법주의 대 놓고 말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 대단하시군요
그럼 구원의 완성은 죽기직전에만 율법 잘지키고 있으면 되겠네요
죽기 일주일전까지 잘 지키다가 바람들면 땡이고요
아니면 율법지킨것 합산 평균점수로 띵동 땡인가요??
구원은 죄가 완벽히 하나도 없어야 해요
우리 스스로가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죄가 하나도 없게 의롭게 살수 있겠어요?
아! 회개요? 이 부분 제 게시글 육신적 그리스도인에 잘 나와 있어요
너무 늦어서 이만 쓸게요
ㅎ ㅎ 어쨓든 주제는 좋아요
글도 흥미있게 썼네요
그러나 No Ok!! 이네요..
님은 은혜로 받은 구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율법대로 돼지고기나 순대 안먹나요?
율법의 죄짓기 않으려 안식일 각종 절기 모두 율법내용대로 모두 다 지키고 있읍니까?
은혜로 모든 죄사함 받은 후에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그 죄를 떠나야 한다니 율법중 하나라도 범하며 살고 있다면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이라 의로움도 구원이 없는 거군요.
그렇게 율법의 죄들중 하나라도 범하지 않고 사는 분 누가 있나요?
또 구원 받은 후 몸과 마음으로 부지불식간에 지은 수많은 죄들 다 기억하고 다 회개 하는게 가능합니까?
하나라도 회개 못하면 죄짓고 사는거죠?
예수님이 멍청한 짓을 한거네요.
여전히 죄속에 살지만 믿음만을 의롭게 여겨주시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시작해 믿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즉 은혜로 시작해 마지막까지 오직 값없는 은혜로 천국 가는 것입니다.
괴수님 복음을 잘 이해하고 계신데 왜 지난번에 버림받은 사생아 처럼 하소연 하셨나요??
살이 포동 포동한 자녀인것 같은데요!
아직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요..
@무조건 OK 이것과 별개의 문제지요.
나이는 기억을 못하시네요?
@죄인중괴수
영적 나이요??
@무조건 OK no
비슷할거라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