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88년 5월 4일 군에서 제대한 후에 교구 성소국장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복학하기까지는 10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어디에서 봉사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이 있는 곳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돈보스코 센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수녀님들은 본당에서 보았지만 수사님들을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돈보스코 센터는 살레시오 수도회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훈련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낮에는 기술을 배웠고, 밤에는 방송통신 고등학교 과정을 배웠습니다. 전원 기숙사에서 지냈고, 매일 아침에 미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미사 전례를 도와 드리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일, 자습 시간에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사님들께서 늘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과 함께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사님들은 학생들과 함께 농구를 하였고, 학생들은 수사님들을 가족처럼 따랐습니다. 스페인에서 오신 모 신부님, 이태리에서 오신 공수사님, 임수사님, 폴란드에서 오신 현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살레시오 수도회는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가 설립한 수도회입니다. 10개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20년 후인 2008년 저는 본당에서 그때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두 분은 인연이 닿아 결혼하였고 아들을 3명 낳아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형제님은 청소년 분과장으로 봉사하였고, 자매님은 구역장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혈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2년 동안 온갖 방법을 찾았지만 하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는 이야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 중풍병자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 듣지 못하는 사람의 귀를 열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자신의 병을 차마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병을 고치고 싶은 간절함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12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하혈이 멈추었습니다. 소경처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중풍병자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병환자처럼 깨끗하게 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간절한 손짓은 비록 말은 없었지만 여인의 몸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저도 여인과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103위 시성식을 위해서 방한하셨고, 서울 신학교에서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중앙 통로 쪽에 있던 저는 교황님께서 제 옆을 지나가실 때 발을 살짝 내밀었습니다. 사제가 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제가 된지 32년이 지났으니 그때의 간절함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 위한 표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살면서 많은 아픔과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욥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의지하며 걸어간다면 병이 나았던 여인처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던 소녀처럼 살아서도, 죽어서도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탈리타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일어나야할까요? 재물, 명예,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욕망, 욕심, 시기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착각으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2023년 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탈리따꿈”
첫댓글 착각에서 일어나라고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