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남인희화백님의 카톡에서]
👍너무 좋은 글이 있어서 옮겨왔습니다.
⬛ 보이지 않는 하느님💖
제2차 世界大戰이 끝난후 영국에서 하느님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회의가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위하여 천문학 박사와 의학 박사 두사람이 강연을 하였다.
먼저 천문학 박사가 강연을 시작했다.
"얼마전에 저는 최신형 망원경을 갖게 되었는데,
이망원경은 현재 우리가 발견한 가장 멀리 있는 별도 볼 수 있는 고성능 망원경입니다.
그런데 이 망원경으로 아무리 천체를 살펴도 하느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느님의 옷깃이라도 보여야 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자 많은 청중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맞아! 맞아!
하느님은 없는게 틀림없어!''
두번째 강연자는 의학 박사였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평생을 의학을 연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도무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수술했으며 시신을 부검해 본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도 영혼을 본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영혼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살속에 있습니까?
뼛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핏속에 있습니까?
역시 그렇군, 기독교인들이나 성경은 다 거짓이야!
도대체 영혼이 어디에 있단말이야?"
수많은 청중이 큰소리로 환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청중을 향해 질문을 하라고 했으나 모두들 잠자코 있었다.
사회자는 "그러면 이것으로 하느님이 없다는 것이 증명 되었으므로 회의를 마칩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 맨앞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제가 할말이 있습니다" 라고 하더니 연단위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먼저 천문학 박사께 질문을 했다.
"박사님. 박사님이 갖고 계신 그 망원경은 아주 고성능 망원경이죠?
예. "무엇이든 잘 보이지요?"
예. "그렇다면 바람도 보입니까?"
바람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바람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어떻게 있습니까? 보이지도 않는데."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하는 것은 옳은 말입니까?"
"또 바람도 볼 수 없는 망원경을 갖고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까?''
"......."
천문학 박사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할머니는 의학 박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박사님은 아내가 있습니까? ''
''예"
''자녀도 있습니까?''
''예"
''그러면 박사님은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예,
저는 제아내와 자식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칼을 가져오세요.
내가 박사님을 해부해서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어디에 들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그 사랑이 "살"속에 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뼛"속에 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핏"속에 들어 있습니까?
도대체 박사님이 말하는
"사랑"은 어디에 들어 있습니까?
그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였던 이 회의는 한 할머니의 급소를 찌르는 송곳 같은 질문으로 말마암아,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회의가 되고 말았다.
👍너무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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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함)너무 좋아서 전달합니다
글좋고 아래 동영상 정말 멋지네요~
🌷 마음 다스림 🌷
(해)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福生於淸儉)
(해) 덕은
자신을 낮추고
물러나는데서 생기며
(德生於卑退)
(해)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데서 생긴다.
(道生於安靜)
(해) 근심은
욕심이 많은데서 생기고
(患生於多慾)
(해) 재앙은
탐하는 마음이 많은데서 생기며
(禍生於多貪)
(해) 허물은
잘난 체하고 남을 하찮게
여기는 데서 생기고
(過生於輕慢)
(해) 죄악은
어질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罪生於不仁)
(해) 눈을 조심하여
남의 잘못된 점을 보지 말고
(戒眼莫看他非)
(해) 입 조심하여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
(戒口莫談他短)
(해) 마음을 조심하여
스스로를 탐내거나 성내지 말고
(戒心莫自貪嗔)
(해) 몸을 조심하여
나쁜 사람을 따르지 말라.
(戒身莫隨惡伴)
(해) 유익하지 않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無益之言莫妄說)
(해) 나와 관계 없는 일에
부질없이 참견하지 말라.
(不干己事莫妄爲)
(해) 순리대로
오는 것을 거절 말고
(物順來而勿拒)
(해) 순리대로
가는 것을 잡지 말며
(物旣去而勿追)
(해) 내 몸
대우 없음에 바라지 말고
(身而遇而勿望)
(해)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말라.
(事已過已勿思)
(해) 남을 해하면
마침내 자기에게 돌아오고
(損人終自失)
(해) 세력에 의지하면
도리어 재앙이 따른다.
(依勢禍相隨)
(해) 절약하지 않으면
집을 망치고
(爲不節而亡家)
(해) 청렴하지 않으면
지위를 잃는다.
(因不廉而失位)
사랑하고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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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과 악(惡)♧
(옳고 그름)
어느 대학 강의 시간에 교수가 칠판에 ‘선과 악(善과 惡 Good and Bad)’ 이라고
써 놓고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부가 유람선 여행을 하던 중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다가 큰 폭풍우로 해난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그 배에 비치돼 있는 ‘구조정’에는 자리가 하나 밖에 없었다.
이 때 남편은 침몰하는 배에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정’에 올랐고,
부인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 떠나는 남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교수는 여기까지 얘기 하고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부인이 남편을 향해 무슨 소리를 질렀을까요?”
얘기를 듣던 학생들은 모두 흥분과 격분으로 여기저기서 떠들며 대답을 했다.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을 남편으로 선택한 내 눈이 삐었지! 어디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 두고 봐라.” 등
남편을 마구 욕하는 여러 가지 대답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이 때 교수의 눈에 한 학생이 한 마디도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학생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이 뛰어 나왔다.
“교수님, 제가 생각했을 때 부인은 아마 ‘우리 아이들 잘 키워 달라’ 며 울부짖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이 얘기를 어디서 들어 봤니?
학생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어릴 때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뿐이예요.”
선생님은 그 학생의 말에 감동을 하며 다시 교단에 서서 말했다.
“정답이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배가 침몰한 뒤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자녀 둘을 잘 키웠고, 그 남편도 몇 년 후 병으로 죽었다.
그 자녀들이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아빠와 엄마가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때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폐암 말기로 아빠와 함께 세상을 떠날 마지막 위로 여행 중이었다.
그 때 마침 큰 폭풍우를 만나 사고가 발생했고,
아빠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 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보 미안하오.
그 때 당신이 나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지를 않았더라면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소.
우리들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당신만 깊고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게 할 수 밖에 없었소.
천국에서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만을 고대하며 당신 몫까지 아이들을 잘 키우겠소.”
교수가 이야기를 끝내자, 그렇게도 흥분하여 떠들던 학생들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교실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겁고 숙연한 교실 분위기속에 학생들도 이미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달았다는 것을 교수도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숨어있는 깊은 뜻은, ‘전후사정을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섣부르게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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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이렇게 살아라...
인생 이렇게 살아라...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해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 데서 오며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 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에서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람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이렇게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이 두 거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집착하게 되면
그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 만은 놓아야 한다.
이것이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 만은 놓는"
걸림 없는 삶이다.
*****법정 스님*****
🌾길을 걷다 돌 부리에 걸리면
이것은 걸림돌이 되지만,
냇가를 건널 때 물가에 놓인 돌은
고마운 디딤돌이 됩니다.
우리 짧은 인생
서로 디딤돌이 되어주며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멋지게 살아 갑시다^^
우리는 맨 손으로 세상에서
얻은 것은 모두다 덤이다.
인연으로 만남도 덤이고,
카톡으로 만남도 덤이고,
주고 받는 정도 덤이니
우리 모두 덤으로 살아 갑시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즐겁게 살아요~
멋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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