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로가 있던 시기가 근초고왕 시기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암만 근초고왕때 백제가 힘이 세고 담로를 설치해서 중국에 총독부를 두고 식민통치를 했어도, 인구 숫자에서 확 밀리는데다 외부세력이며 먼 거리를 이동해 와야 한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면, 인구도 많고 같은 중국문화의 중국어를 쓰는 인종이며
백제와 고구려 중 어느 쪽이 더 강했냐고 단순비교를 하기는 참 어렵겠지만, 고구려의 가장 강대했던 시대와 백제의 가장 강대했던 시기를 비교해 보죠. 광개토대왕 시절의 고구려와 근초고왕 시절의 백제가 전면전을 일으켰다면 누가 이겼을까요? 백제는 근초고왕 이후 사실상 큰 퇴보 없이 이어져 내려와 광개토대왕의
또 백제는 24대 동성왕 때 북위와 전쟁을 할 때 정로장군 매라왕 사법명, 안국장군 벽중왕 찬수류, 무위장군 불중후 해례곤, 광위장군 면중후 목간나를 보내 북위 기병10만군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땅으로 이동한 10만기병을 격파한걸보면 담로의 자체 군사력도 만만치않은것을 알수있지않을까요?
그 시대에 민족주의가 없었다는 얘기는 Nationalism의 번역어로서의 민족주의가 없었다는 얘기죠. 중국인의 뿌리깊은 중화사상은 민족주의가 아닐까요? 백제가 어라하의 죽음을 붕어라 칭하고 주변 사방을 이적융만이라 부르던 백제중심사상은요? 한 정치권력 안에 살면서 같은 말을 쓰고 비슷한 문화를 가진 자들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식을 가지게 되고, 두 세력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 공동체의식은 집단이기주의와 대결주의로 변합니다. 백제 담로가 정말로 중국지역 총독으로 재지하는 직위였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리가 없죠.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니라, 회사의 부서와 부서 사이, 그리고 한 나라 군대의 부대와 부대 사이에서조차
북위의 기병을 쳐부쉈다는 기록은 제가 알기론 남조 사서에만 나옵니다. 북조는 자신들의 패배를 숨기려고 그 사실을 누락시켰을 수도 있지만, 대결관계이던 남조에서 북조에 대한 선전공작으로 커다랗게 부풀렸을 수도 있죠. 또 북위 기병을 격파한게 다른 세력인데 백제와 혼동했을 수도 있구요.
또 백제 담로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위치 중에는 요서, 산동, 회하 유역 등 북조에서 상당히 군사,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지역들입니다. 북조의 중요한 군영들에서 아무리 멀어도 100km 이상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은 지역들이죠. 그 지역들에서 본국과의 거리는 바닷길로 1000km정도에 달하는 거리입니다.
아무리 백제가 해상왕국이고 강병 백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쳐도, 현대 미국과 맞먹는 해병대 해상신속기동여단이라도 보유하고 있지 않는 이상 중국측의 도발에 즉각적으로 대비해서 출동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중국이 담로지역을 쓸어버리고 나면 그 연락을 받고 보복조치로 중국 다른 지역을 쓸어버릴 수는 있겠죠.
째영님은 약간 현대의 잣대로 보고 말씀하신거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잘못된 견해 같습니다. 한나라의 강성은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수 없습니다. 과학의 페러다임 현상도 나라의 흥망성쇠와 연결지을 수 있죠.. 또 민족주의가 있었는데 뚜렷히 설명이 안되었지 있을지도 모르죠.. 무조건 없다고 해서 되는게 안됩니다..
그리고 중화사상을 민족주의로보기에는 너무 약하지않나요? 중국은 외부왕조가 오면 처음과 끝에만 반항을 합니다 다시말해 기반을 잡기전과 기반을 잃어갈때말입니다 약할때만 들고일어난다이거죠 그리고 중화사상자체도 약합니다 중국왕조중에 순수한족이세운국가는 한나라,송나라,명나라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중화사상을 민족주의로보기에는 너무 약하지않나요? 중국은 외부왕조가 오면 처음과 끝에만 반항을 합니다 다시말해 기반을 잡기전과 기반을 잃어갈때말입니다 약할때만 들고일어난다이거죠 그리고 중화사상자체도 약합니다 중국왕조중에 순수한족이세운국가는 한나라,송나라,명나라가 전부입니다
민족주의가 단호하게 타 민족을 배척해야만 민족주의입니까? 중국이 타민족 지배의 처음과 끝에만 반항을 한다구요? 그런 식으로 보면 어떤 독립운동도 처음과 끝에만 일어나죠. 처음의 저항이야 당연히 보이는 것이고, 중간쯤 가서 탄압에 지쳐서 티가 안 나다가 나중에 이민족을 축출할 때 쯤에는 지하에 있다가 드러나죠
첫댓글 신라에는 편두 풍습이 있으니 신라는 필시 유카탄 반도까지 진출한 모양이군요. 마야인에게도 편두가 있으니 말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에는 담로가 있다고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솔직히 무슨 근거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저도 동남아시아까지 백제의 세력이 미쳤다는건 아직까지는 전혀 신뢰하지않습니다
담로라는 것도 결국은 중국 남조의 청직이나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백제로 온 이주민들이 자기가 등주 자사였네 청주 유지였네 하는 식으로 뻥치던 것이었겠죠.
물론 해외로 뜰 정도였으니 재력도 꽤 있었을 테고 그러면 중국 현지에서도 연줄이 있었겠죠. 백제로서는 좋은 외교나 무역 파트너였을 수도 있을 테구요. 그러니 조까지마셈 하는 반응 안 보이고 아 그러냐고. 나름대로 대접을 해 줬겠죠.
설사 담로라는 것이 실제로 백제에서 파견한 중국지역 총독이었다고 해도, 본국하고는 유리돼서 중국에 가 있는 백제 관료들이 멀리 있고 힘 약한 백제를 섬기려고 하겠습니까? 가까이 있고 힘 센 중국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하겠죠.
중국 현지에 파견된 상단 총수 내지는 재외교포연합회 회장 정도 직위였다고 해도 중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현지화가 많이 됐을 겁니다.
백제가 힘이 약하다니 쉽게 동의할수없군요
간단합니다. 1. 고구려 중국보다 약했죠? 2. 백제 고구려보다 약했죠? 3. 백제 중국보다 약했습니다.
고구려가 중국보다 항상 약했던 것은 아니죠 백제도 고구려보다 항상약했던것은 아니었고 -_-
고구려가 중국보다 약해서 당태종 눈날라가고 수양제의 100만대군 박살나고 또 백제가 고구려보다 약해서 근초고왕때 평양성까지진격하고 백제가 중국보다 약해서 중국으로 영토확장하나요 째영님말은 여러모로 동의하기힘듭니다
윗글에 말투는 제가봐도 좀 이상하니 양해구합니다
원래는 백제가 고구려 보다 더 강했죠. 엄밀히 따지는 고구려는 후발 주자입니다.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때에도 백제에게 방법당한적이 있습니다.
방법당했다고요? 죄송하지만 방법이란게 뭐죠 ;;; 제가 좀 몰라서 ;;;
요샛말로 스타에서 관광당했다는 뜻입니다 ㅡㅡ;
고국원왕이 근초고왕의 아들인 근구수왕(당시는 태자)가 이끄는 백제군과 평양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죠-_-;; 적어도 이 당시에는 백제가 고구려보다 강했다고 해야 할듯
담로가 있던 시기가 근초고왕 시기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암만 근초고왕때 백제가 힘이 세고 담로를 설치해서 중국에 총독부를 두고 식민통치를 했어도, 인구 숫자에서 확 밀리는데다 외부세력이며 먼 거리를 이동해 와야 한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면, 인구도 많고 같은 중국문화의 중국어를 쓰는 인종이며
육상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중국보다 전체적인 역량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거죠.
백제와 고구려 중 어느 쪽이 더 강했냐고 단순비교를 하기는 참 어렵겠지만, 고구려의 가장 강대했던 시대와 백제의 가장 강대했던 시기를 비교해 보죠. 광개토대왕 시절의 고구려와 근초고왕 시절의 백제가 전면전을 일으켰다면 누가 이겼을까요? 백제는 근초고왕 이후 사실상 큰 퇴보 없이 이어져 내려와 광개토대왕의
고구려에 맥없이 패배했죠.
그시절에는 민족주의같은게없는데 외국어를 쓰는 외국인종이란게 중요할까요 비잔틴제국도 그 지역사람은 그리스어를쓰지만 지배층은 라틴어를 썼습니다 그러나 큰탈없이 잘지냈죠 또 육상으로 이동하는것보다 바람이 좋으면 바다로 이동하는게 더 빠를수있습니다
또 백제는 24대 동성왕 때 북위와 전쟁을 할 때 정로장군 매라왕 사법명, 안국장군 벽중왕 찬수류, 무위장군 불중후 해례곤, 광위장군 면중후 목간나를 보내 북위 기병10만군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땅으로 이동한 10만기병을 격파한걸보면 담로의 자체 군사력도 만만치않은것을 알수있지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광개토대왕시절의 고구려와 근초고왕 시절의 백제가 전면전을 일으켰다면 누가 이겼냐는 알수없지요 아신왕과 근초고왕이 같은 능력의 인문이아닌데 아신왕이 고구려에게졌다고해서 근초고왕시절의 백제가 약하다고볼수는 없습니다
그 시대에 민족주의가 없었다는 얘기는 Nationalism의 번역어로서의 민족주의가 없었다는 얘기죠. 중국인의 뿌리깊은 중화사상은 민족주의가 아닐까요? 백제가 어라하의 죽음을 붕어라 칭하고 주변 사방을 이적융만이라 부르던 백제중심사상은요? 한 정치권력 안에 살면서 같은 말을 쓰고 비슷한 문화를 가진 자들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식을 가지게 되고, 두 세력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 공동체의식은 집단이기주의와 대결주의로 변합니다. 백제 담로가 정말로 중국지역 총독으로 재지하는 직위였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리가 없죠.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니라, 회사의 부서와 부서 사이, 그리고 한 나라 군대의 부대와 부대 사이에서조차
알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북위의 기병을 쳐부쉈다는 기록은 제가 알기론 남조 사서에만 나옵니다. 북조는 자신들의 패배를 숨기려고 그 사실을 누락시켰을 수도 있지만, 대결관계이던 남조에서 북조에 대한 선전공작으로 커다랗게 부풀렸을 수도 있죠. 또 북위 기병을 격파한게 다른 세력인데 백제와 혼동했을 수도 있구요.
또 백제 담로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위치 중에는 요서, 산동, 회하 유역 등 북조에서 상당히 군사,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지역들입니다. 북조의 중요한 군영들에서 아무리 멀어도 100km 이상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은 지역들이죠. 그 지역들에서 본국과의 거리는 바닷길로 1000km정도에 달하는 거리입니다.
아무리 백제가 해상왕국이고 강병 백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쳐도, 현대 미국과 맞먹는 해병대 해상신속기동여단이라도 보유하고 있지 않는 이상 중국측의 도발에 즉각적으로 대비해서 출동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중국이 담로지역을 쓸어버리고 나면 그 연락을 받고 보복조치로 중국 다른 지역을 쓸어버릴 수는 있겠죠.
째영님은 약간 현대의 잣대로 보고 말씀하신거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잘못된 견해 같습니다. 한나라의 강성은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수 없습니다. 과학의 페러다임 현상도 나라의 흥망성쇠와 연결지을 수 있죠.. 또 민족주의가 있었는데 뚜렷히 설명이 안되었지 있을지도 모르죠.. 무조건 없다고 해서 되는게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삼단논법에도 오류가 있는것은 고3올라가는 저도 압니다.. 너무 믿을 것은 못 되죠..구체적으로는 제머리가 한계라서 안되거든요..
추상적인 말들만 늘어놓지 마시고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해 주십시오. 구체적이라는 게 조목조목 따져달라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아시겠죠?
아무리 백제가 해상왕국이고 강병 백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쳐도, 현대 미국과 맞먹는 해병대 해상신속기동여단이라도 보유하고 있지 않는 이상 중국측의 도발에 즉각적으로 대비해서 출동할 수는 없습니다.<- 그 강병백만의 태반이 중국 대륙포진한다면 애기는 한참달라집니다
그리고 중화사상을 민족주의로보기에는 너무 약하지않나요? 중국은 외부왕조가 오면 처음과 끝에만 반항을 합니다 다시말해 기반을 잡기전과 기반을 잃어갈때말입니다 약할때만 들고일어난다이거죠 그리고 중화사상자체도 약합니다 중국왕조중에 순수한족이세운국가는 한나라,송나라,명나라가 전부입니다
'설사 백만이 있어도'라고 했습니다. 신라군 5만도 못 막은 나라가 어떻게 백만입니까.
그리고 중화사상을 민족주의로보기에는 너무 약하지않나요? 중국은 외부왕조가 오면 처음과 끝에만 반항을 합니다 다시말해 기반을 잡기전과 기반을 잃어갈때말입니다 약할때만 들고일어난다이거죠 그리고 중화사상자체도 약합니다 중국왕조중에 순수한족이세운국가는 한나라,송나라,명나라가 전부입니다
나머지 국가는 전부 그들이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민족들이 중국에와서 세운국가입니다 평소에는 멸시하고 강할때는 굽신거리는건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역사에 구체적이 도대체 어디있습니까.. 아무리 정밀히 해도 역사학자 나름대로의 선입관이 서있고 그 시대 상황까지 엃히고 섥혔기 때문에 밝히기 힘들죠.. 그리고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꼭 부정해서 된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전설일줄 알았던 트로이도 발견했지 않았습니까?
생각해보니 맞네요 도대체 역사의 구체적과 추상적의 구분이 무었인가요?
누가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까. 구체적인 '언어'를 쓰라구요. 백제는 나라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상적인 말이죠. 무조건 없다고 해서 되는게 안됩니다? 아예 비문이로군요.
민족주의가 단호하게 타 민족을 배척해야만 민족주의입니까? 중국이 타민족 지배의 처음과 끝에만 반항을 한다구요? 그런 식으로 보면 어떤 독립운동도 처음과 끝에만 일어나죠. 처음의 저항이야 당연히 보이는 것이고, 중간쯤 가서 탄압에 지쳐서 티가 안 나다가 나중에 이민족을 축출할 때 쯤에는 지하에 있다가 드러나죠
조선 민족주의도 없었겠습니까? 초기에 의병전쟁 등으로 반항하다 20년대즈음엔 조선 내부에 이렇다 할 저항세력이 없었죠. 그동안엔 반항하지 않고 있다가 뜬금없이 광복군 활동이나 의열단 활동이 시작됐겠습니까?
제머리로는 구체적인 언어가 안나오네요.. 바랄걸 바라세요..
20년대에 이렇다할 독립세력이없었다고요? 의열단이있었습니다 20년대에는요 그리고 애 조선내부에 이렇다할 저항세력이 왜 없었는지 아시나요 남한대토벌로 싹쓸이당하거나 만주로 도망쳤기때문에 없었습니다 째영님말처럼 지쳐서 없어진게 아닙니다
그리고 째영님이 말하신건 광복군과 의열단이 아니고 광복군과 애국단이 아닌가요
의열단은 무정부주의잡니다-ㅁ- 정확히 하면 독립운동이 아닌 정부 파괴 조직이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