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변호사들의 이직이 상시화(常時化)한 것은 저녁 여가가 있는 삶을 꿈꾸기는커녕 하루하루 근근이 견뎌낼 정도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주요 원인이다.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우려와 공포,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법률시장 불황에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등으로 변호사 2000명 배출 시대가 도래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는 저임금화와 혹독한 업무량에 일종의 탈출구로 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연차 휴가나 초과근무수당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근로계약서 조차 쓰지 않고 구두 계약만으로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 채용돼 일하다 퇴직금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한 팍팍한 삶을 사는 청년변호사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대형로펌 A사에서만 15년간 일해 온 파트너급 변호사는 “오너들은 오너들대로 회사의 생존을 위해 정신이 없고, 어쏘(associate attorney,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 채용돼 월급을 받고 일하는 변호사로 주로 법조경력이 짧은 청년변호사들이 맡는다)들은 어쏘들대로 지친 일상과 먹고 살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게 법조계의 현실”이라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삶인지 모를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월급 400만원이면 ‘감사’해야 하는 지경”= 많은 청년변호사들이 현 직장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근로 조건 때문이다. 대형로펌에 비해 급여수준 등이 낮은 중소규모의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 취업한 청년변호사들이 더 고민을 많이 한다.
지난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중소로펌 세 군데를 옮겨다닌 41기 변호사는 “작년에는 월급 450만원 조건이면 그런대로 일할만하다는 정도였는데 올해는 더 떨어져 400만원만 줘도 ‘땡큐’하고 들어가야 할 지경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아마 이보다 더 낮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며 “예전에는 1년 정도 근속하면 임금을 월 50만원 정도 인상해 줬는데 요즘은 많이 올려줘도 월 30만원 수준이고 월급을 아예 동결하는 곳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변호사 5급 사무관 채용도 옛말이 되지 않았느냐”며 “지난해에는 대우가 6급 공무원으로 떨어지더니 올해에는 7급으로까지 추락했고 경찰 특채도 경정(5급)에서 경감(6급)으로 낮아졌지만 지원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월급 수준이 낮아진다고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주말 출근과 야근은 일상이다. 대표변호사가 사무실에 설치된 사설경비시스템의 출입 기록을 체크해 야근과 주말 근무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초과근무수당이나 별도의 야근수당도 없다. 채용시 “월급 ○○○만원이면 되겠느냐” 정도의 구두 계약만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월급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변호사 대량 배출·경기불황에 ‘低賃金化’ 현상 가속
주말 출근·야근은 일상적… 복지후생은 생각도 못해
“이직 악순환은 모두 손해… 우선 표준근로계약서부터”
◇“퇴직금 분할 약정 무효” 대법원 판결이 오히려 독(毒)으로= 퇴직금도 문제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어쏘 변호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로펌이 별도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2012다77006). 이 판결은 청년변호사의 권익을 보호하는 획기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변호사업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퇴직금 분할 약정(퇴직금을 분할해 월급에 포함시켜 지급하는 방식)을 무효로 판단했는데 이후 일부 로펌에서는 이렇게나마 지급하던 퇴직금 명목의 돈을 아예 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어쏘 변호사의 월급이 깎이는 현상이 초래된 것이다.
두 차례 이직 경험을 갖고 있는 사법연수원 40기 변호사는 “이전에는 월급을 13개월치를 주면서 마지막 한달치는 퇴직금 중간 정산 명목으로 줬는데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일부 로펌 오너들이 어차피 문제가 될 것이니 줘봐야 소용이 없다면서 12개월치 월급만 주고 마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이직할 때 퇴직금 문제로 싸우려고 했지만 법조계가 워낙 좁은 바닥이라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제대로 말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근로기준법’은 먼나라 이야기= 근로기준법이 보장하고 있는 연차 휴가 등 복리후생은 딴 세상 이야기다. 대표변호사가 선심 쓰듯 보내주는 여름 휴가 며칠을 빼면 연차휴가를 주는 곳이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대표변호사가 진보적 시민단체 관련 활동을 많이 해 기대가 많았다던 한 40기 변호사는 “일반 직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상의 연차휴가, 야근수당, 퇴직금 등을 꼬박꼬박 챙겨주면서도 정작 어쏘 변호사들에게는 월급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는 사람이 대법원 판결에도 어쏘 변호사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듯 행동해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에 취업한 청년변호사들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근무하다 독립한 한 청년변호사는 “다른 대형 로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노동 강도가 너무 세 체력적으로 견딜 수 없었다”면서 “조금 덜 벌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표준근로계약서 쓰는 일부터 시작… 근로 여건 개선을”= 청년변호사들이 이직을 전전하면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로펌 입장에서도 손해다. 소속 변호사들의 역량이 곧 로펌의 역량으로 이어지는 법률서비스의 특성상 전문성과 경륜을 갖춘 어쏘 변호사들을 키워내고 관리하는 것이 경쟁력 강화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 청년변호사는 “대표변호사들이 어쏘 변호사의 근로를 ‘노동’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사건’ 단위로만 인식해 그 사건이 처리되는 결과만 중시할 뿐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력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근로기준법 같은 건 애초부터 고려하지도 않는다”며 “이제라도 인식을 전환해 표준근로계약서를 쓰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근로 여건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변호사도 “국민들에게는 분쟁 예방을 위해 증거서류를 남기라고 권유하는 법조인들이 오히려 분쟁이 날까봐 정작 청년변호사를 고용할 때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있다”며 “근로계약서를 쓰는 순간 초과근무수당과 연차휴가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해주기는 싫고 안 해도 일할 새내기 변호사는 넘쳐나니 그럴만도 하지만, 청년변호사의 근로 여건 개선을 비용으로만 보지 말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홍·안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