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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보성초등학교 (교감) |
경험 없는 햇병아리 교감으로서 실패작 3건.
41세의 젊은 나이에 시골학교 근무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동지도에서 선생님들의 가장 큰 고층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첫째가 잡무가 많은 것이고, 두 번째가 지도안 쓰는 것이라고 했다. 공문서 작성 등의 잡무는 이해가 되었으나 지도안 작성은 도움이 될 것인데 이상하다 여겨 다시 물으니 고정된 양식에 쓰는 것은 형식적일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연세가 많고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는 분(실례)이셨는지 모든 것을 젊은 교감에게 일임하고 계셨던 터라 선생님들께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첫 번째 고충인 잡무 경감책으로 모든 공문서 작성은 전적으로 내가 하겠다. 두 번째 지도안 문제는 교과서에 부전지를 붙여 지도할 내용과 방법을 요약하도록 하였다. 잡무가 없어졌으니 교재연구 안 하면 할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교과서의 교재연구도 검사를 안하니 전혀하지 않고 수업마치고 나면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멍청히 앉아있거나 독지가가 보내주는 소년신문(조선, 한국)만 뒤척이는 것이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는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며 교재연구가 왜 필요한가를 아무리 역설해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성취의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침 금옥 학술재단에서 공모한 논문에 현장교육에 대한 원고를 작성하여 조금 의욕이 있어 보이는 선생께 정리토록하여 보냈더니, 채택과 함게 상금 50만원이 나와서 회식을 하면서 “선생님들도 할 수있다. 현장의 실천이 중요하다 아까운 시간을 왜 허송하느냐?” 등 독려를 했더니 눈빛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다 당시 선생님들께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다.
두 번째 실패작은 학교 경리 문제였다. 교감 초임 부임 전에 선배님들께 초임 “교감으로서 가장 주의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학교 경리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다. 나는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감사가 나온다고 하기에 대비하기 위하여 경리담당에게 장부를 가져오라하였더니 아예 장부가 없었다. 밤새워 만들면 될 것같아 공책에라도 적어 놓은 것이 있으면 갖고 오라고 했더니 그것도 없었다. 통창에는 인출 금액 뿐 지출 부분의 기록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리담당교사와 교장 사택의 살림살이와 가재도구 구입에 다 써 버린 것이었다.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보자싶어 학교 지적 감사는 아니라는 정보를 교육청에서 듣고 학교에 도착하면 인근 다른 학교로 보내려는 작전을 짯다. 학교장은 자리를 피하게 하고 감사관이 나오는 날 운동장 교문 앞에 지키고 서 있었다. 마침 교육청 서무과 수행원과 함께 감사관이 도착했다. 나는 얼른 인사를 하고 우리 학교는 교장과 경리 담당이 지금은 집안 혼사관계로 부재중이니 면내 인근 학교에 가셨다가 자료가 부족하면 다시 오시라고 하였더니 수행직원이 눈치를 채리고 다른 학교로 안내하였다. 거짓말도 해 본 놈이 한다고 처음하니 등골이 온통 다 젖었다. 그 뒤 한 달이 걸려 경리에게 변상을 시키고 대강 장부를 만들었다. 요즈음 같으면 소가 웃을 일이다. 실패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세 번째 실패작은 장학지도 때다. 1년에 한 번씩 교육청 장학사님이 장학지도차 나오셔서 학교의 모든 경영 관리 상태를 파악하고 지도 조언을 하는 행사였다. 지도 받는 학교에서는 교장실이나 조용한 곳에 필요한 서류를 정리 비치하고 지도를 받는 것이 통례이었다. 나는 교감 초임병이라 그런 내용도 잘 몰랐고 담당 장학사님의 교장 강습 연수물을 몇 번 작성하여 드렸기 때문에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터여서 교무실 난로가에 몇권의 서류만 조그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지도를 받았다. 돌아가신 후 몹시 서운해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아차!”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친할 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은 옳은 말이다. 선배 박찬승 장학사님께 용서를 빈다.
시골 교사들의 순진함에 서운해 한 옹졸함이 지금도 후회되는 일이있었다. 부임하고 1주일 쯤 된 직원 친목일이었다. 교감 환영회 겸 친목 배구시합을 하였다. 나는 학교시절에 배구를 조금했기 때문에 웬만한 중요 포지션은 감당할 수 있었다.그런데도 원하는 포지션을 묻지도 않고 후위 한 쪽 구석을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충하였는데 한 선생님이 “어 우리 교감선생님 어법하시네요”하는 것이었다. “그래 어법하지 옳게 해 봐라(속으로)” 그런데 그 다음이었다. 1회전을 마치고 부탁한 음식이 왔다. 막걸리와 오징어 두루치기 2쟁반이었다. 명색이 교감 환영회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멍하니 앉아 있는데 술 한 잔도 권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기에만 바쁜 것이었다. 한 선생님이 하는 말 “교감선생님 얼른 잡수세요 안잡수면 손해예요” 참으로 순진한 선생님들이었다 . 막걸리 한 잔과 오징어 한 절음을 집어먹고 교무실로 향했으니 나의 옹졸했음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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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화엄사(1982) |
지리산(1982) |
지리산(1982) |
부여바물간(1981) |
부여(1981) |
설악산신흥사(1982) |
김찬동선생님과(1982) |
소양강댐(1982) |
31회졸업기념(1982) |
유치원생수료(1982) |
32회졸업(1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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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억의 사진으로도 그 옛날 순수했던 시절을 상상해 보게 하네요..
경리사건처리 정말 잘했다. 두뇌회전이 잘된탓이야. 한참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