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정의 눈물
정분희
어머니 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해 여름은 금수강산 우리 조국을 흔들어 놓았다.
산천초목도 울부짖고 정 많은 민초들은 누구를 향한 슬픔인지 소리 내어 통곡하였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 민족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도 부족해, 가슴에서 한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어른도 울고 처녀 총각도, 갓난아기도 한 없이 울어야 했다. 우리 땅이 모두 울었다.
반 백년이 흘러온 지금도 그날의 아픈 흔적이 소리 마른 눈물을 삼키고 있다. 어디에 이토록 오랜 헤어짐이 있더냐! 누구 허락을 또 받아야 하냐! 이제는 손잡고 한 울타리서 살자. 들에 핀 자생력의 민들레도 기다림에 지쳐 말라버렸다. 젊음의 혈기는 찾을 길 없고 촌로의 얼굴들만 글썽인 눈물이니, 기약 없는 그리움만 남긴 상봉의 순간이다.
우리도 어느 하늘 아래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지낼 것을, 고마운 인연이 모 정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날도 무더운 여름날 비는 오다 그치고 찌는 더위는 맹위를 떨쳤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하늘에선 언제 총알이 날아 올지 몰랐다. 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어느쪽의 비행기가 귀를 찧어지게 굉음을 내고 가까이 왔다. '카 광 쾅' 순식간에 폭음이 산 허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엎드렸다. 나는 너를 안고 하늘이 보이지 안 토록 놀란 숨을 멈추었다. 하늘도 비행기도 겁나고 사람도 무서운 그 해 여름이었다.
너의 아버지는 만주로 가고 새댁인 나는 집안 일을 외롭게 해왔다. 먹을 거리도 넉넉지 않을 때 젖까지 말라서, 너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목숨만 붙었지 살 가망도 없는 너와 피난 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애들과 집에서 너의 아버지를 기다린다고 말씀 드려도, 너의 할아버지는 ‘혼자는 위험하고, 만주서 애 비 오면 무슨 면목으로’ 하시며 우리를 같이 동행 시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하시며, 우리는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밤이면 이동하고, 낮에는 숨어있는 피난민 대열에 합류하였다. 너의 오빠는 할머니 품에서 할아버지 품으로 힘든 나날 중 사건은 더욱 커져 갔다.
고생 많은 피난 길에 숨어있던 대열에서 우리 모녀는 떨어져 나올 운명이 벌어졌다. 태어나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아기가, 그 더운 여름에 피난 길에 올랐으니, 먹을 것 조차 힘들어 아무리 달래도 애 미 속 타는 줄 모르니 본능으로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 그리워 우는지, 배 고프고 몸 아파 우는지, 행복한 가정을 피 눈물 나게 한 전쟁에 소리쳐 우는지, 너는 그렇게도 많이 울었다.
“새댁 도저히 안되겠으니 따로 떨어져! 애기 울음 소리에 우리까지 위험한 일이 벌어 질까 겁나네.” 할아버지는 그럴 순 없다고 앞을 가로 막았으나, 혼자의 힘으로 여러 힘을 어쩔 수 없었다. 집안 어른들도 '아들을 위해선 애 미가 있어야 한다. 결론은 우는 애기를 포기해야 한다. 딸애는 숲속에 두고 가자. 새댁을 혼자 위험한 피난 길에 둬선 안 된다.' 모두 그러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피눈물은 삼키며 너의 울음을 옷깃이나 빈 젖으로 막을 여고 애를 써 봐도 소용 없었다. 너의 오빠는 어른들이 소중히 돌봐주니, 나는 너를 안고 뒤 처져 어두운 밤 대열에서 빠져 나왔다. 하늘도 흐느끼는 어미 마음의 아픈 상처를 보았는지, 초승달은 어미와 갓난아기를 품에 안듯 달빛도 처연했다. 낮에는 민가나 숲에서 숨어 지내고, 밤에는 들을 지나 강을 따라 죽어도 같이 죽자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남쪽으로 내려 왔다.
구미 부근 시골 농가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을 때, 군용차 몇 대가 가까이 왔다. 부대 원 몇 명이 차에서 내려 수근 거리더니, 나를 보고 차에 타라는 손 짓이다. 나는 놀라서 너를 부등 켜 안고 머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애기가 아프다. 애기가 굶어 죽게 되었으니 살려 달라' 며 애원했다. 그때 기운 없고 병든 애기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더냐! 악을 쓰며 울고 또 울었다. 그 병사들도 고향에 처 자식을 두고 멀리 타국서, 전쟁에 지쳐 잠시 생각을 잃었겠지. “오! 헬 프” 나와 너를 처다 보며 한참 얘기를 하더니, 우리 모녀에게 먹을 것을 한아름 주고 갔다. 처음 본 것 들이었다.
깡통에는 우유 가루도 있었다. 너는 서서히 생기가 돌았다. 못 먹어 죽음 직전인 너가 다시 소생할 모양새더라. 배불러 기운이 도니 우는 것도 잊었는지 생글 생 글 웃기까지 하더구나. 나는 너를 살렸고 너는 나를 살렸다. 아니! 타국 땅에서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이름 모를 병사들도 우리를 살렸다. 귀 하지 않는 생명이 어디 있겠니! 전쟁 속에서 작은 생명은 소생했는데, 기백이 창창한 젊은 청년들의 애통한 죽음은 무엇을 위함이냐! 민주, 이념, 조국, 통일!
해질 무렵 서쪽 하늘빛은 억울한 젊은 영혼을 달래어 주는지, 곱디 고 은 노을이 붉게 물들어, 깊은 골짜기와 아픈 산야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우리는 대구 큰댁에서 죽지않고 살아와서 고맙다고 다시 한번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얼마 후 너가 다시 숨소리가 작아졌다. 난리 통에 병원문을 열까마는 수없이 헤매어 골목 의원에서 나이 드신 선생님의 작은 ‘페니실린’ 주사약 한 병이 또 너를 소생 시켰다. 숨 줄에 흰 막이 덮어 곧 숨을 멈추게 하는 '디프테리아'가 피난중에 얻은 병이란다. 너는 언제나 목을 조심 하라고 하셨다. 그 뿐이냐. 너는 여름 피난 길에 더위에 지쳐 몸 속으로 더위가 들어가 비실비실 먹어도 누렇게 뜬 얼굴이라 사람 구실 하기 어렵다 하여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그 이듬해 여름 우리는 포항 모래사장에서 두어달 모래 뜸질하며 살았다. 어느 할머니가 또 너를 살렸다. ‘속으로 더위 먹은 것은 약도 없다. 더위는 모래 뜸질로 더위를 몸 밖으로 보내야, 애기가 살이 오르고 사람 구실 한다.’ 사변 후 그때는 다른 약이 없었다. 자연이 약이 였다. '너는 여러 번 죽을 목숨 구했으니 옳은 삶을 살아야 한다.' 몇 해지나 너의 아버지도 무사히 만주서 도착하여, 우리 네 식구는 부등 켜 안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며 추억의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사진첩에 수많은 사연과 의미를 간직한 사진은 소중히 남아있다. 아직 보고싶은 식구를 볼 수 없는 가족이 얼마인가. 전쟁 중 아픈 상처를 치유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거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변했으나 아직 통일은 이념 속에 묶여 있다. 오늘의 사회는 일부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연약한 여인의 모성은 강하다. 강인한 모성으로 가족을 품어야 한다. 나의 어머니도 피부가 희고 고와 겉 모습은 약해도, 강인한 모성으로 우리 가족을 지켰다. 젊을 때는 시 와 서예를 즐겼고, 들국화를 좋아해 결혼 사진에도 한아름 안고 찍은 낭만도 있다. 언제나 단아한 성품으로 성경책을 즐겨 읽던 모습이 생생하다. 칠년 전 병원에서 어머니의 기억이 끈길 무렵이다. 생사를 넘나들 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친 고마운 분들을 위해, 그 때의 추억을 글로 쓰고 싶다 하였다.
나도 삶이란 의미를 느끼고 뒤 돌아보니 어느새 지는 해의 언저리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적 삶을 언제 닮으리. 맨 앞 자리에서 항상 기도하고 봉사하는 권 사님으로, 다니던 교회서도 지금껏 많은 얘기를 하신다. 그렇게 즐기던 찬송가와 성경을, 부모님 추도식 때 만 부르며 읽어드린다. 매 주일 교회 다니길 원한 그 길도 아직 어머니의 글도 대필할 용기 조차 없다. 나라의 통일이나 자신의 마음 통일이나 아직 저 멀리 있으니, 한없이 가슴만 미어 지는구나!
어머니의 사랑은 나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다.
어머니 일기는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 하겠다.
모 정을 그리며!
첫댓글 아 !
어머니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