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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성도와의 관계(롬 8:9-11)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현대인들의 삶보다
더 어리석운자는 누가 있을까?
시편14;1 ]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50편에 의하면 더 큰 어리석운자가 있다고 암시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
자신의 생활 가운데 매일 하나님을 잊어버이며,
하나님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운 사람들을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자와의 삶과 함께 다를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그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의 행동은 변화가 없을뿐 아니라 ,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읽거나,기도하거나,
예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 없이 살아 갑니다.
그 어리석움 가운데 스스로 죄을 용인하면서 살아 갑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다고 살아가는자들보다 더 어리석다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리석움 위에다가 스스로 모순되는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싶판대 앞에서 부르십니다.
50;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4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소집합니다. 왜?
즉 이스라엘의 죄를 낱낱이 고발하면서 하늘과 땅을 불러서 증언하게 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서을 보면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경고
이스라엘의 상황 ,상태, 행동을 평가 할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50; 6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모든 인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 선포을 듣게 된다.
시편 50편 21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경고을 어떻게 생각 합니까?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였으며……” 노아는 임박한 멸망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 베드로의 경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경고,,
솔로몬 - 왕상3;3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왕상3;5절]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고 물었다. 백성을 바로 인도할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소원을 들어주셨다.
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 하나님을 볼 것이다” 모든 신앙의 전 목적 이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기 때문 이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는 마음에서 시작 합니다.
복음은 온통 “ 마음”을 강조 합니다
인류의 타락은 “ 마음”에서 시작이 됩니다.
마음이 문제인 이유? 나쁜 사람의 생각에는 나쁜생각이 나옵니다.
음란, 도독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사기, 방탕, 질투, 배신, 교만, 어리석음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뜻은 무엇일까?
객관적이고 가시적으로 보는것과 , 아니면 영적인가 ?
모세가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그를 옆으로 불러 바위 사이에 놓고 자기의 모습을 모세에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등 부분만을 보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보는일은 불가능함을 암시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그 어떤 때에 백성 들에게 “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을 일도 없고 그의 모습을 본일도 없다”[요5;38]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을 본 사람이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 [예수 그리스도] 나는 보았다.
결국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아버지을 보았다.
그럼에도 왜? 예수님은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본다고 말합니까?
이는 부분적인 성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에서 하나님을 어떤 의미 에서는 하나님을 본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치만 ,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안다는 의미”는 볼수도 있고, “그의 가까우심을 느끼기도” 한다는 의미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의 임재”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간증, “1737년 어느 날, 건강을 위해 나는 말을 타고 숲 속으로 들어가 호젓한 곳에 내렸습니다. 경건한 묵상과 기도하며 걷는 것이 흔히 하는 나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내게는 특이한 한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신 성자의 영광과 그의 놀랍고, 크며, 충만하고 순결하며, 감미로운 은혜와 사랑 그리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낮아지심이었습니다. 그토록 고요하고 감미롭게 나타난 이 은혜는 하늘보다 높게 보였습니다....이런 광경은 내가 판단하기로는 거의 한 시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소리쳐 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티끌 속에 앉아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충만해지고 싶고,
거룩하고 순순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싶고,
그리스도를 의뢰하고 싶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고 싶고,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르고 싶었습니다.
또한 내 영혼이 완전히 성화되고 신적이고 천상적인 순결로 깨끗해진 것 같이 느꼈다. 나는 이 외에도 몇 차례 이와 아주 유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디의 경우, “전에 없이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갈증은 더해 갔고 나는 실로 사역을 위해서 능력을 받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내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나를 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묘사해 낼 수 없는 너무나 경외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바울도 14년 동안 결코 말하지 않았던 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다만 하나님께서 내게 자신을 계시하셨노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러한 그의 사랑의 체험을 어찌나 강하게 한 나머지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손을 그만 멈추어 달라고 간구해야 할 정도였다.”
엡 5:18은 “술기운으로 살지 말라 성령의 기운으로 살아라”
이것이 본문의 정확한 의미이다.
“충만하다”는 것은 “~의 기운으로(감화로) 산다”느끼는 것...는 것을 뜻한다. 성령이 나를 조종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계속 성령의 통제를 받으라”와 같다. 체험이 아니고 명령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와 성도의관계을 설명 합니다.
롬 8:9-1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성도] 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 9절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단정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너희 속에 거하나니),
어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이 필연적으로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위한 성령의 바램은 우리가 육체의 영향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이 필연적으로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을 성화하도록 갈망한다.
성령은 우리을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되는 것을 갈망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합당한 삶을 살도록 사모하며,
그 사실을 즐거워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필연적으로 그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 육신” 에 있지 않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의해서 지배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이 “ 그 안에” 있다는 것은?
“거한다.” 어떤곳에 살다, 곧 집 같은 곳에 산다는 것입니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딤후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있지 않는’ 사람이다.
더 이상 타락한 본성에 의해서 지배를 받지 않는다.
‘육신’이라는 말은, 타락과 죄의 결과로 성령의 감화가 전혀 없는 사람과 그의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소욕’이라는 용어는 ‘강하게 소원하다’, ‘강한 영향을 투입하다’라는 의미다. 육체는 성령을 거스려 강한 욕심을 내고 있다.
성령 역시 육체를 거스려 강한 욕심을 부린다.
사람들은 무엇에 의해 지배을 받습니까?
자기가 “최고로 좋아 하는것에 ” 지배을 받습니다.
“저렇게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들의 지식과 위대한 두뇌, 그리고 놀라운 자질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욕정[한순간의 충동으로 일어나는 욕심]과 열정[ 열렬한 애정]그리고 욕망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 저희는 부패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라고 묘사 하고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살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상태가 바로 육체의 소욕이요,지옥이라니까요!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영에 있나니”
요 14: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그것은 육신적인 나타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의 나타냄을 의미한다.
“육신에 있다”는 것도 죄에 빠진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죄를 많이 짓는다 할지라도 그는 다시 ‘육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다.
‘육신에 있다’는 것은 하나의 상태요 조건이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그런 상태에 있지 않다. 그의 처지가 어떠하다 할지라도 그는 그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에 있다’는 말은 역시 하나의 조건을 지시한다.
그 말은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영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전에 ‘육신’의 영역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이제 ‘영’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성령이 그를 주관하고 그를 인도하고 있으며, 그는 영 안에서 행하고 있다. 그는 ‘영을 좇아 행하고 있다’.
이것은 회심할 때 일어나는 크고 심오한 변화이다.
요 16:8-11에 나타난 성령의 일반적 사역[우리 마음가운데[영]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
(요 16:8-11) 『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이 하시는 사역 전체의 특징이다.
그는 전에 육신의 영역에 있었으나 이제 그는 영의 영역에 있다.
그는 전에 육신의 지배와 통제를 받고 있었다.
8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런 다음 갈5;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이다..
이 말은 육체를 거스려... “ 욕심을 내고 있다.
즉 육체는 성령을 거스려 욕심을 내고 있다. “ 소욕” 이라는 용어는? “ 강하게 소원하다. 성령은 우리을 인도 ,지도, “ 강하게 소원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2:2에서 그 점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살아있지만 이 세상 풍속을 좇아 행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이제 영에 의하여 지배 받고 복종받는 영역에 있다.
롬 5:21에서는 은혜의 왕노릇으로 표현하였다.
은혜의 왕노릇은 성령의 왕노릇이며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속한 영역인데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지 않다.
이제 새로운 법,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육신 안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영 안에’ 있다.
더 놀랍고 기이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영’에 있을 뿐 아니라
성령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딤후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롬 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요 14: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며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거처를 삼는다’는 말은 그와 함께 ‘가정을 이루리라’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인 속에 거하신다.
성령의 말미암아 우리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고 포함되신다.
우리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도 우리 안에 계신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것은 그가 이미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이 우리에게 해당되는 진리이고 가능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주님의 호소이다.
마귀가 공격할 때, 침체시키려 할 때, 피곤하고 지쳐 있을 때, 신앙에 회의가 올 때,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여러분 속에 살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기만 하라!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인 것을 기억하라.
“나를 이 죄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하는 사람.
사실상 필요한 것은 성령이 자기들의 마음 속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방식이다.
성령이 거하시는 몸을 남용하고 잘못 사용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이 사실을 숙고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자. 매일 상기하자.
확신과, 그리스도인 삶을 즐기는 참된 비밀, ‘넉넉이 이기며’ 남을 돕는 비결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 속해 있지 않다.
시편 14:1과 시편 53:1 모두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자. 회개, 위로, 지혜을 얻는다. 있게 됩니다.
우리가 그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그가 우리 속에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 이루어 가실 것이며, 결코 중단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시금석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이다.
어떤 전제들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지적으로 찬동을 했느냐가 아니다.
행위나 공덕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그릇된 관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간디는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았다.’ 라고 합니다. ‘20세기 중에서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다.’고. 평화주의자, 무저항주의자.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사람?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 그는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힌두교인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영이 그를 인도한 것 아닌가? 알버트 슈바이쳐- ‘
국제연맹을 세운 길버트 머레이교수- 기사 제목은 “성도 길버트!”
합리주의적인 불가지론자. 그는 공개적으로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으며,
초자연적이나 기적을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보지 않는가?
바울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붙잡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처럼 사는 삶’이라 부르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 속에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주님 자신의 약속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들 속에 거하시고 계시다는 뜻이요
더 이상 우리들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들이 거듭났으며, 새사람이 되었으며 새 피조물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