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거렸다.” (9,29)
오늘 복음의 배경은 산입니다. 산은 평지와 달리 높은 곳이며, 높다는 것은 하늘과 가깝다는 말입니다. 흔히 동양적인 관점에서 선인仙人과 속인俗人의 차이란 그 존재가 살아가고 있는 상태, 곧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 산과 계곡에 따라 차이가 생깁니다. 산은 신성한 곳이고 초월적인 곳이며, 산은 모든 강물이 시작되는 곳이자 온갖 생명을 품고 있는 어머니 품과 같습니다. 높은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며 소명받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장소로 알려졌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났던 곳(탈3,1)도,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났던 곳(1열19,8)도 모두 산입니다. 그들은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소명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높은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산에서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이 하얗게 번쩍인”(루9,29) 변모의 핵심인 빛은 곧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빛에서 나신 빛’(=니케아신경)이라고 고백합니다. 순수한 빛,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암흑과 어둠은 없고 완전한 빛, 광명만이 있습니다. 오늘 루카 복음보다 마태오 복음에는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애졌다.”(17,2)하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빛으로 빛의 찬란한 광경을 목격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그의 동생 요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높은 산의 명징한 정기와 찬란한 빛으로 고양된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지금껏 줄곧 스승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분의 기적을 보면서 느꼈을 행복과 산에서 변모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느꼈을 행복은 전혀 차원이 다른 행복감이었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이런 예수님 본 모습, 참모습을 목격한 베드로는 주체할 수 없이 벅찬 환희와 전율에 들떠서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9,33)라는 표현은 그저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른 행복감에서 터진 감사와 찬미의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만일 우리 역시도 그 자리에서 그런 광경을 목격했다면 베드로처럼 그렇게 주님께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이는 곧 ‘주님, 지금 제가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음이 얼마나 좋은지 더 이상 말로 표현 못하겠습니다!’라는 탄성은 다름아닌 빛에서 나신 빛 자체인 예수님과 함께 있음에 대한 베드로의 진솔한 행복감의 표현이라고 느낍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의 ‘좋습니다.’ 표현의 의미는 놀랍다는 뜻인데, 지금껏 자신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목격하고 체험하면서 그 순간의 기운으로 압도당해 무섭고 떨린 상태임에도 그 경험이 참으로 좋다는 뜻입니다. 이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지만, 참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행복감이었을 것입니다. 지복직관의 행복!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 조건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창조의 본래 목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인간 존재는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유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근심 없이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멸이나 무시 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이라 부르는 그 자체를 느끼며 살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참된 행복한 분이시고 참된 행복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산에서 놀랍게 변모하신 모습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자 한 의도는, 다름 아닌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희망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초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당신의 변모 축일을 지내는 저희에게 당부하시는 것이 있다면, 비록 삶이 힘들고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삶을 충만하게 살고 허투루 살지 말며 철저하게, 처절하게 살면서 행복하게 살라는 당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동요나 여하한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없이, 온몸과 마음과 정신과 심령을 다해 지금 여기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일을 온 존재로 몰두하며 온 힘을 다해 결단하며 살아갈 때 참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9,33)라고 말하는 베드로를 철부지 같다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산은 오르면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베드로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베드로에게 있어서 산에서 체험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여기에 머물고 싶습니다, 는 표현은 기도 생활을 통해 혹은 일상생활 가운데 하느님 체험을 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바람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만난 그 상태에서 오래도록 머물러 있고 싶은 게 인간의 강력한 소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도 훗날 예수님의 부활 체험 이후 깨닫게 되었으니 이런 하느님 체험을 만끽하기 위해서 필연코 십자가의 길, 고난의 여정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이제 영광스런 빛으로 변모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난 뒤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9,35) 라는 말씀을 실천하고 그분의 뒤를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따랐던 제자들처럼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은 이제 그 어떠한 고통도 괴로움도 이겨낼 힘이 솟구칠 것이며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이 가신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느님과 하느님의 빛, 하느님의 영광이 어떤 것인지 보고 느끼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하느님의 완전한 영광의 빛 안에서 오래오래 머물게 될 것입니다. “주님, 당신 빛으로 빛이신 당신을 뵈옵게 하옵소서.” (시3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