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인선 통신원 |
© 이인선 통신원
요즘 주유소에 적힌 기름값을 보면 예전보다 많이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로 국제 유가가 많이 상승해 많은 나라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2021년 9월에 11월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배럴당 75.45달러(1L당 약 560원)를 기록했고, 11월 북해산 브렌트유는 79.53달러(1L당 약 590원)를 기록했다. 또한 서부텍사스 원유는 전반적으로 1년 만에 가격이 1.96배로 급등했고, 천연가스 가격도 같은 기간 2.2배로 뛰었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10월 1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가 100달러까지 오르겠느냐는 질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답변하며 에너지 상품 수요 증가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다른 협력국, 그리고 OPEC+(석유수출국기구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와 원유 시장 안정을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글에서는 국제 유가 상승 배경을 들여다보며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가 취하고 있는 행보를 살펴본다.
국제 유가, 왜 상승하나
일반적으로 유가가 오르는 이유는 다양하다. 각 나라가 백신을 보급하고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를 풀면서 휘발유, 항공유, 각종 화학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또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방유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몇 해 전부터 미국 전역에 닥친 한파로 풍력발전소의 터빈조차 얼어붙어 전기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미국 내 난방유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수요보다 생산량이 적다 보니 유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OPEC+는 2020년 5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에 대응해 당시 세계 생산량 대비 10% 수준인 약 1,000만 배럴(bbl, 1bbl=약 159L)을 하루마다 감산하기로 했다. 이후 2022년 4월까지 점진적으로 감산 규모를 줄여나가기로 합의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을 권장하고 탄소 발생 원인이 되는 화력발전이나 석유사용을 억제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펼치는 것도 현 원유 공급 감산에 영향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석유 의존도는 높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소 10년간 차량용 연료와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OPEC+는 2021년 7월 18일 석유장관 회의를 열어 2021년 8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하루 40만 배럴씩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2021년 7월 기준 OPEC+의 감산 규모는 하루 580만 배럴이었다. 그동안 산유량 정책에 이견을 보이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원유 생산 기준을 조정하면서 합의에 성공했다. OPEC+는 9월, 10월 그리고 11월 4일, 감산 규모를 논의했으나 현행 유지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환경을 생각하자면 수요에 따라 원유 공급을 늘리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 상승과 더불어 천연가스 가격도 오르고 있다.
천연가스는 주로 원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원유 생산 감소·관련 업계의 투자 부족·재고량 감소 등으로 2021년 초부터 가격이 급등했다. 현재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2021년 초보다 250%나 상승했고, 미국과 아시아의 가격도 거의 2배 가까이 올랐다.
이에 따라 천연가스를 원료로 쓰는 발전소들이 전기 요금을 올리고 있고, 유럽 각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요금 지원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1년 9월 22일 “러시아가 유럽 시장의 안정적 공급자라는 점을 보여줄 기회”라며 이례적으로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확대를 러시아에 촉구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이란과의 핵 합의, 중장기적으로는 가격 상승 시 원유 공급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받았던 미국의 제재로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핵 협상에 복귀하고 미국이 제재를 풀면 이란의 원유 수출량은 2~3개월 안에 이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본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가한 제재를 바이든 정부가 푼다면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도 공급자로 동참할 수 있다.
알리 바게리 카니 이란 외무부 차관은 이에 2021년 10월 28일 “6월 20일 이후 중단된 핵 합의 복원 협상을 내달 중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021년 10월 20일 “제재 해제는 상대국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대화 전제 조건으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중단을 요구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처럼 국제 유가 상승은 하나만의 이유로 단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국가 간의 에너지 협력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 상승에 러시아가 취하는 행보
러시아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이다. 러시아 통계 기관 로스탓(Rosstat)에 따르면 석유·가스·기타 에너지 상품을 포함한 모든 광산 산업은 러시아 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러시아 연방 에너지부는 석유 화학 산업에 앞으로 10~15년 동안 400~700억 달러를 투자해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의 7~8%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 목표를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부는 로스네프트·가즈프롬·루크오일·타트네프트가 소유한 14개 정유공장과 새로운 정유공장 현대화 및 건설에 대한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2027년까지 기계·보조 공장을 갖춘 30개의 보조 정유공장을 확대해 휘발유 생산량을 360만 톤, 디젤은 2,500만 톤 증가할 계획이다. 동시에 러시아 정부는 새로운 LNG(액화천연가스) 생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을 계속 확인했으며, LNG 수출세를 부과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국적 에너지기업 BP(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연례통계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포함해 전 세계의 13.3%에 달한다. 원유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12.3%)보다도 많다. 또한 유럽의 경우, 러시아산 원유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53%)을 차지한다.
천연가스는 지난 십여 년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화석연료로, 석탄·석유와 비교했을 때 친환경적이라는 점이 강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에너지원별 기여도는 석탄 45%, 석유 34%, 가스 20%, 나머지(원자력·수력·지열·태양광·저류·풍력·바이오연료·폐기물) 1%로 화석연료 중에서는 가스가 가장 낮다.
전 세계에서 석탄·석유 중심의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천연가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과 함께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9월~10월에 1,000㎥당 550달러에서 790달러로 올랐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재고 부족과 코로나19 사태 완화 이후 경기 회복에 따른 에너지 수요 급증 등에 기인했다.
그러나 일부 서방국들은 현재의 가스 부족을 러시아 측의 ‘목조이기’ 책략으로 탓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미루고 있으며, 러시아가 유럽 국가들을 협박해 가스 공급 계약을 연장하는 동시에 노르드스트림 2(러시아~독일) 가스관을 하루빨리 비준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10월 6일 “시장에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가즈프롬과 논의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했다. 이는 전력 수요 상당수를 가스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유럽의 경우,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지구촌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러시아는 세계 가스 수출의 4분의 1(25%)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즉, 원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와 관련해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10월 22일 소치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러시아가 최근 들어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을 늘렸음에도 유럽 시장이 700억㎥ 규모의 가스 부족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노르드스트림 2에 대한 독일 당국의 가동 승인이 나면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곧바로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9월 완공한 노르드스트림 2 가스관이 낡은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과 비교해 현대적인 기술로 건설됐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보다 운용 과정에서 훨씬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가스관 주관사인 노르드스트림 2 AG는 2021년 9월 초 독일 당국에 가스관 가동 승인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앞선 서방의 의혹 제기로 독일 당국의 검토와 허가까지 최대 4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 블라디미르 치조프 유럽연합 주재 러시아 대사는 유럽이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를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바꾸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유럽 천연가스 공급 부족으로 시작된 전 세계 천연가스 가격 폭등에 대해 러시아의 책임은 없으며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무기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유럽에 충분한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고 “러시아의 지하가스저장소(UGS)에 대한 가스저장이 완료되면 즉시 가즈프롬의 가스를 유럽의 지하가스저장소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알렉세이 밀레르 가즈프롬 최고경영자에게 “유럽 내 가스 저장량을 늘려 유럽의 가을과 겨울의 난방수요 위기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어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세를 멈추게 해야 한다”라며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있는 지하가스저장량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이 가즈프롬에 유럽에 대한 가스 저장량을 늘리라고 지시하자 당일 네덜란드 TTF(Title Transfer Facility) 천연가스 가격은 전날보다 4.4% 하락했다.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책임자는 푸틴 대통령의 말처럼 가즈프롬이 2021년 11월 1일까지 국내 저장으로 726억㎥ 이상의 가스저장 계획 수준에 도달하고 2021년 11월 8일까지 재고 충전을 완전히 완료할 것이라고 러시아의회에서 밝혔다. 11월 8일 이후로 천연가스를 유럽에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조치로 전력난에 처한 중국에도 석탄을 수출하며 에너지 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컨설팅업체 IHS마킷의 다니엘 예르긴 부회장은 “에너지 초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역할이 (에너지 대란·유가 상승으로) 한순간에 더욱 명확해졌다”라고 평가했다.
© 이인선 통신원 |
맺으며
OPEC+ 장관 회의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도 유가 변동이 이뤄질 것이다. OPEC+은 2021년 11월 4일 장관 회의에서 12월에도 하루 40만 배럴 증산하는 기존 증산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 결정에 앤디 브로간 EY(언스트&영) 국제원유시장 담당 대표는 “수요가 팬데믹 이후 회복되고 있어 OPEC+의 전략은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방향을 바꿀 강력한 이유는 없다”라고 평가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2021년 10월 1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에너지 위크 국제 포럼 회의에서 “이미 계획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수요를 충족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번 장관 회의가 끝난 후 “원유가 원인이 아니라,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경제적 우려를 일으켰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란과의 핵 합의 협상 재개와 베네수엘라 제재 해제 등으로 유가가 낮아질 수 있으나 그 영향은 그리 크지 않으리라 보고 있다. 카스텐 프리치 독일 코메르츠방크 상품 전문분석가는 “미국 원유 재고가 증가하고, 이란과의 핵 합의 협상 재개 기대로 일시적으로 공급 우려가 해소된 것이 차익 실현으로 이어졌다”라면서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 시장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10월 유럽에서 원유 수요가 감소할 조짐이 있었고, 델타 변이 확산 때문에 세계 원유 수요 축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추가 증산을 결정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2021년 10월 31일부터 진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에서 탄소 중립(온실가스 배출량 0이 되도록 하는 것)을 얘기한 만큼 OPEC+의 원유 생산량 감산 결정과 함께 장기적으로 원유 생산 축소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러시아는 이런 상황에서 유럽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와 협력해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함에 따라 러시아의 에너지 초강대국 역할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이인선 통신원
요즘 주유소에 적힌 기름값을 보면 예전보다 많이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로 국제 유가가 많이 상승해 많은 나라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2021년 9월에 11월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배럴당 75.45달러(1L당 약 560원)를 기록했고, 11월 북해산 브렌트유는 79.53달러(1L당 약 590원)를 기록했다. 또한 서부텍사스 원유는 전반적으로 1년 만에 가격이 1.96배로 급등했고, 천연가스 가격도 같은 기간 2.2배로 뛰었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10월 1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가 100달러까지 오르겠느냐는 질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답변하며 에너지 상품 수요 증가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다른 협력국, 그리고 OPEC+(석유수출국기구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와 원유 시장 안정을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글에서는 국제 유가 상승 배경을 들여다보며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가 취하고 있는 행보를 살펴본다.
국제 유가, 왜 상승하나
일반적으로 유가가 오르는 이유는 다양하다. 각 나라가 백신을 보급하고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를 풀면서 휘발유, 항공유, 각종 화학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또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방유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몇 해 전부터 미국 전역에 닥친 한파로 풍력발전소의 터빈조차 얼어붙어 전기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미국 내 난방유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수요보다 생산량이 적다 보니 유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OPEC+는 2020년 5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에 대응해 당시 세계 생산량 대비 10% 수준인 약 1,000만 배럴(bbl, 1bbl=약 159L)을 하루마다 감산하기로 했다. 이후 2022년 4월까지 점진적으로 감산 규모를 줄여나가기로 합의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을 권장하고 탄소 발생 원인이 되는 화력발전이나 석유사용을 억제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펼치는 것도 현 원유 공급 감산에 영향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석유 의존도는 높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소 10년간 차량용 연료와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OPEC+는 2021년 7월 18일 석유장관 회의를 열어 2021년 8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하루 40만 배럴씩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2021년 7월 기준 OPEC+의 감산 규모는 하루 580만 배럴이었다. 그동안 산유량 정책에 이견을 보이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원유 생산 기준을 조정하면서 합의에 성공했다. OPEC+는 9월, 10월 그리고 11월 4일, 감산 규모를 논의했으나 현행 유지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환경을 생각하자면 수요에 따라 원유 공급을 늘리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 상승과 더불어 천연가스 가격도 오르고 있다.
천연가스는 주로 원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원유 생산 감소·관련 업계의 투자 부족·재고량 감소 등으로 2021년 초부터 가격이 급등했다. 현재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2021년 초보다 250%나 상승했고, 미국과 아시아의 가격도 거의 2배 가까이 올랐다.
이에 따라 천연가스를 원료로 쓰는 발전소들이 전기 요금을 올리고 있고, 유럽 각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요금 지원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1년 9월 22일 “러시아가 유럽 시장의 안정적 공급자라는 점을 보여줄 기회”라며 이례적으로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확대를 러시아에 촉구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이란과의 핵 합의, 중장기적으로는 가격 상승 시 원유 공급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받았던 미국의 제재로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핵 협상에 복귀하고 미국이 제재를 풀면 이란의 원유 수출량은 2~3개월 안에 이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본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가한 제재를 바이든 정부가 푼다면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도 공급자로 동참할 수 있다.
알리 바게리 카니 이란 외무부 차관은 이에 2021년 10월 28일 “6월 20일 이후 중단된 핵 합의 복원 협상을 내달 중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021년 10월 20일 “제재 해제는 상대국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대화 전제 조건으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중단을 요구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처럼 국제 유가 상승은 하나만의 이유로 단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국가 간의 에너지 협력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 상승에 러시아가 취하는 행보
러시아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이다. 러시아 통계 기관 로스탓(Rosstat)에 따르면 석유·가스·기타 에너지 상품을 포함한 모든 광산 산업은 러시아 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러시아 연방 에너지부는 석유 화학 산업에 앞으로 10~15년 동안 400~700억 달러를 투자해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의 7~8%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 목표를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부는 로스네프트·가즈프롬·루크오일·타트네프트가 소유한 14개 정유공장과 새로운 정유공장 현대화 및 건설에 대한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2027년까지 기계·보조 공장을 갖춘 30개의 보조 정유공장을 확대해 휘발유 생산량을 360만 톤, 디젤은 2,500만 톤 증가할 계획이다. 동시에 러시아 정부는 새로운 LNG(액화천연가스) 생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을 계속 확인했으며, LNG 수출세를 부과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국적 에너지기업 BP(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연례통계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포함해 전 세계의 13.3%에 달한다. 원유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12.3%)보다도 많다. 또한 유럽의 경우, 러시아산 원유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53%)을 차지한다.
천연가스는 지난 십여 년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화석연료로, 석탄·석유와 비교했을 때 친환경적이라는 점이 강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에너지원별 기여도는 석탄 45%, 석유 34%, 가스 20%, 나머지(원자력·수력·지열·태양광·저류·풍력·바이오연료·폐기물) 1%로 화석연료 중에서는 가스가 가장 낮다.
전 세계에서 석탄·석유 중심의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천연가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과 함께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9월~10월에 1,000㎥당 550달러에서 790달러로 올랐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재고 부족과 코로나19 사태 완화 이후 경기 회복에 따른 에너지 수요 급증 등에 기인했다.
그러나 일부 서방국들은 현재의 가스 부족을 러시아 측의 ‘목조이기’ 책략으로 탓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미루고 있으며, 러시아가 유럽 국가들을 협박해 가스 공급 계약을 연장하는 동시에 노르드스트림 2(러시아~독일) 가스관을 하루빨리 비준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10월 6일 “시장에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가즈프롬과 논의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했다. 이는 전력 수요 상당수를 가스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유럽의 경우,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지구촌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러시아는 세계 가스 수출의 4분의 1(25%)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즉, 원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와 관련해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10월 22일 소치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러시아가 최근 들어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을 늘렸음에도 유럽 시장이 700억㎥ 규모의 가스 부족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노르드스트림 2에 대한 독일 당국의 가동 승인이 나면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곧바로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9월 완공한 노르드스트림 2 가스관이 낡은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과 비교해 현대적인 기술로 건설됐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보다 운용 과정에서 훨씬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가스관 주관사인 노르드스트림 2 AG는 2021년 9월 초 독일 당국에 가스관 가동 승인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앞선 서방의 의혹 제기로 독일 당국의 검토와 허가까지 최대 4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 블라디미르 치조프 유럽연합 주재 러시아 대사는 유럽이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를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바꾸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유럽 천연가스 공급 부족으로 시작된 전 세계 천연가스 가격 폭등에 대해 러시아의 책임은 없으며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무기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유럽에 충분한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고 “러시아의 지하가스저장소(UGS)에 대한 가스저장이 완료되면 즉시 가즈프롬의 가스를 유럽의 지하가스저장소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알렉세이 밀레르 가즈프롬 최고경영자에게 “유럽 내 가스 저장량을 늘려 유럽의 가을과 겨울의 난방수요 위기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어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세를 멈추게 해야 한다”라며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있는 지하가스저장량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이 가즈프롬에 유럽에 대한 가스 저장량을 늘리라고 지시하자 당일 네덜란드 TTF(Title Transfer Facility) 천연가스 가격은 전날보다 4.4% 하락했다.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책임자는 푸틴 대통령의 말처럼 가즈프롬이 2021년 11월 1일까지 국내 저장으로 726억㎥ 이상의 가스저장 계획 수준에 도달하고 2021년 11월 8일까지 재고 충전을 완전히 완료할 것이라고 러시아의회에서 밝혔다. 11월 8일 이후로 천연가스를 유럽에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조치로 전력난에 처한 중국에도 석탄을 수출하며 에너지 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컨설팅업체 IHS마킷의 다니엘 예르긴 부회장은 “에너지 초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역할이 (에너지 대란·유가 상승으로) 한순간에 더욱 명확해졌다”라고 평가했다.
© 이인선 통신원 |
맺으며
OPEC+ 장관 회의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도 유가 변동이 이뤄질 것이다. OPEC+은 2021년 11월 4일 장관 회의에서 12월에도 하루 40만 배럴 증산하는 기존 증산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 결정에 앤디 브로간 EY(언스트&영) 국제원유시장 담당 대표는 “수요가 팬데믹 이후 회복되고 있어 OPEC+의 전략은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방향을 바꿀 강력한 이유는 없다”라고 평가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2021년 10월 1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에너지 위크 국제 포럼 회의에서 “이미 계획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수요를 충족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번 장관 회의가 끝난 후 “원유가 원인이 아니라,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경제적 우려를 일으켰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란과의 핵 합의 협상 재개와 베네수엘라 제재 해제 등으로 유가가 낮아질 수 있으나 그 영향은 그리 크지 않으리라 보고 있다. 카스텐 프리치 독일 코메르츠방크 상품 전문분석가는 “미국 원유 재고가 증가하고, 이란과의 핵 합의 협상 재개 기대로 일시적으로 공급 우려가 해소된 것이 차익 실현으로 이어졌다”라면서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 시장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10월 유럽에서 원유 수요가 감소할 조짐이 있었고, 델타 변이 확산 때문에 세계 원유 수요 축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추가 증산을 결정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2021년 10월 31일부터 진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에서 탄소 중립(온실가스 배출량 0이 되도록 하는 것)을 얘기한 만큼 OPEC+의 원유 생산량 감산 결정과 함께 장기적으로 원유 생산 축소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러시아는 이런 상황에서 유럽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와 협력해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함에 따라 러시아의 에너지 초강대국 역할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