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보물] 시흥동성당의 ‘빛이 있으라’
우리 교구의 시흥동성당에 가면 뒷벽 전체를 꾸민 아름다운 유리화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 미술 발전을 위해 헌신한 화가 이남규(루카, 1931년~1993년)의 작품입니다. 50여 곳의 성당과 수도원의 유리화를 제작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시흥동성당의 유리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주임 이문주 신부의 의뢰로 찬란한 유리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작품 ‘빛이 있으라’(1979년)는 암흑 속에서 빛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형상화한 것입니다.(창세 1,3-5 참조)
작가는 빛에 대한 내용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단순한 추상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은 무엇을 덧붙여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일, 곧 지우고 또 지워서 최종적으로 질서에 맞는 것만을 남겨놓는 일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형형색색의 빛을 화려하게 표현한 거작입니다. 크기는 세로 6m 가로 21m로 21폭으로 분할된 구역에 표현하였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유리가 아니라 벽돌처럼 두꺼운 유리를 달드베르(dall de verre) 기법으로 만들어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유리화를 보석처럼 빛나게 만듭니다. 왼쪽 상단에는 빛의 원천인 태양이 있고 그곳으로부터 빛의 파장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파장은 벽면을 분할한 여러 구역을 넘어 끝없이 퍼집니다. 한 지점으로부터 시작된 빛이 성당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서 미사를 참례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물들이며 세상으로까지 번져 나갑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영롱한 빛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에 대한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태양은 모든 빛의 근원이신 주님을 상징하고 형형색색의 빛은 그분의 무한한 은총을 드러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우리와 온 세상을 비추십니다.
오랫동안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이 작품은 2011년에 내부 구조물을 걷어내어 지금은 온전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교회에 성물이나 성화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예술품의 가치를 알고 제대로 보호하며 보존하는 일입니다. 그 가치를 모르면 교회 안에서도 소중한 작품은 쉽게 훼손되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작품을 가렸던 구조물을 걷고 ‘빛이 있으라’를 빛나게 만든 시흥동성당은 우리가 교회 미술품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하며 보존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 우리 교구의 명동대성당, 혜화동성당, 중림동약현성당, 도봉동성당, 응암동성당, 논현동성당, 당산동성당, 대방동성당, 봉천동성당, 서초동성당, 절두산성당, 예수성심신학교 성당(원효로경당)에도 이남규 유리화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2018년 4월 29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서울주보 5면,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 유물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