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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리지 않는 진동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의 공기는 늘 선명한 흔적을 남기며 차가워진다. 해원은 아파트 단지 입구의 오래된 벤치에 앉아 주머니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 위에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화면을 켜자 희미한 빛이 그의 주름진 손등을 비추었다.
메신저 앱을 열었지만, 새로 도착한 메시지는 없었다. 상단에 뜬 몇 개의 단체 대화방은 이미 오래전에 알림이 꺼진 채 침묵하고 있었다. 예전 동창들의 모임방, 한때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들의 방, 지역 봉사 모임방까지. 대화방의 목록을 아래로 내릴수록 사람들의 이름은 마치 오래된 무덤의 비석처럼 무감각하게 지나갔다. 간간이 올라오던 누군가의 자녀 결혼식 소식이나 부고마저도 이제는 뚝 끊긴 지 오래였다.
해원에게도 진동 소리가 삶의 배경음악처럼 끊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밤늦도록 사람들과 모여 찌개 냄새와 소주 향이 섞인 거친 공기 속에서 잔을 부딪쳤다. 누군가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겉으로는 축하를 건넸고,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속으로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준다는 핑계로 밤새 쓸데없는 농담을 나누며, 자신이 커다란 무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자식들이 제 살길을 찾아 떠나고, 몸의 이곳저곳에서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하자 그 굳건해 보이던 관계의 울타리는 마치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이익과 이해관계로 얽혔던 사람들은 이익이 사라지자 약속이라도 한 듯 가장 먼저 연락을 끊었다. 정으로 묶여 있다고 믿었던 이들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억지로 만남을 이어가 보았지만, 돌아서는 길에 느껴지는 것은 따뜻함이 아니라 한기와 극심한 허기뿐이었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헛헛함만이 가슴 깊은 곳에 앙금처럼 남았다.
해원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가을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자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랗게 물든 은행잎 한 장이 그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이제 나도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는 것인가.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길의 오래된 이정표처럼, 그저 쓸쓸하게 시들어가는 건가.’
그날 밤, 해원은 거실의 불을 끄고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고독은 물리적인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가슴 위에 무거운 바위 하나가 올려져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에서 혼자만 빠져나와 바닥에 구르고 있는 듯한 기분.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나 혼자가 되었다는 자괴감이 해원의 깊은 밤을 사정없이 갉아먹었다.
2. 산의 입구, 타인의 시선
다음 날 아침, 해원은 눈을 뜨자마자 답답함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방 안에 계속 갇혀 있다가는 외로움이라는 늪에 스스로를 완벽히 매장시켜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낡은 신발장에서 수년 동안 신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앉은 등산화를 꺼내 들었다. 신발끈을 매는 손끝이 어색하게 떨렸다.
무작정 집을 나와 발길이 닿은 곳은 도시의 외곽에 자리한 자그마한 야산의 입구였다.
주말을 맞이해 산입구는 단풍 구경을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화려한 색상의 최신식 등산복을 맞춰 입은 부부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깔깔대는 친구 모임,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웃음꽃을 피우는 가족들. 그들의 소란스럽고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 무리 사이에서, 오래된 운동복 상의에 낡은 등산화를 신은 해원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혼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나는 갈 곳도, 함께할 사람도 없는 외로운 노인입니다"라고 광고하는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해원은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 하나하나가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돋보기처럼 느껴졌다.
‘저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주말에 같이 올 친구 하나 없어 혼자 산을 찾는 불쌍한 사람으로 볼까?’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해원의 발목을 잡았다.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갈등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다시 그 정막한 방 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등산로를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운 일이었다. 해원은 입술을 짓씹으며 등산로의 첫 발을 내딛었다.
3. 오르막길 위의 자유
산길은 처음부터 완만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사가 가빠지기 시작했고, 해원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려 눈가를 간지럽혔다.
그런데 오르막길이 계속되자 해원의 눈에 재미있는 광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입구에서 그렇게 활기차게 웃고 떠들던 무리들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네 명이서 함께 오르던 한 모임은 속도가 맞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앞서나가는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왜 이리 느려, 좀 빨리 오지!" 하고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고, 뒤따라오던 사람은 힘에 겨운 표정으로 "쉬었다 가자니까 왜 자꾸 재촉해!" 하며 맞받아쳤다. 또 다른 부부 모임에서는 한 사람이 발목이 아프다고 하자, 다른 이들이 아쉬운 표정을 숨기며 어색하게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기를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다.
해원은 그들의 곁을 조용히 지나쳐 올라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신에게는 눈치를 봐야 할 상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내 숨소리에만 집중해 보자.’
해원은 타인의 걸음걸이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발바닥이 흙과 돌을 밟을 때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차가운 공기의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빠오는 호흡에 맞춰 발걸음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했다.
힘이 들면 굳이 남에게 약해 보이기 싫어 참을 필요 없이 그 자리에 바로 멈춰 섰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발걸음을 더 천천히 옮기고 싶으면 얼마든지 천천히 걸었고, 목이 마르면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앉아 물을 한 머금고 유유히 쉬었다.
누군가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숨을 헐떡일 필요도, 누군가가 지쳤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어디서 쉴지, 얼마나 오래 머물지, 어떤 코스로 걸을지를 오직 자기 자신만이 결정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해원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툭 하고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평생 누군가에게 맞춰 살며 잊고 지냈던 낯설고도 커다란 감정, 바로 ‘자유’였다. 젊은 시절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교 모임에서 늘 누군가의 기대와 기분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속도로 걸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이 조용한 산길 위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4. 숲이 건네는 소리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에 도달하자 서늘한 가을바람이 해원의 땀젖은 이마와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해원은 능선 중간에 위치한 넓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탁 트인 산 아래로 그가 살아가는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과 미로처럼 꼬여 있는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마치 아득한 먼지처럼 아주 작게 보였다. 그 속에서 아등바등하며 타인의 눈치를 보고, 인맥이 줄어든다고 불안해했던 자신의 모습이 문득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해원은 눈을 감았다. 시각을 닫자, 그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귓가로 밀려들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활엽수 잎들을 비벼대는 사락사락 소리, 이름 모를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지저귀는 맑은 울음소리, 발밑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바스락거림, 그리고 자신의 가슴속에서 규칙적으로 뛰어대는 심장 소리.
세상 사람들과 섞여 시끄럽게 떠들 때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고요 속의 울림이었다. 숲은 그에게 "너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 비로소 너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나지막이 말해주는 듯했다.
옛 가르침 중에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떠올랐다. 똑같이 홀로 있는 상황이라도, 그것을 ‘타인에게 버림받은 외로움’으로 해석하면 견딜 수 없는 감옥이 되지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해석하면 나를 키우는 거룩한 수행이 된다.
해원은 혼자 산을 오르는 이 시간이야말로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두 다리로 서는 법을 배우는 독립의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후반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나를 증명해 줄 수많은 타인의 박수가 아니라, 홀로 걸어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었다.
5. 한 그릇의 밥
산을 내려오자 어느덧 배에서 출출한 신호가 왔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산입구에는 백숙이나 파전을 파는 커다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고, 등산객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예전의 해원이었다면 혼자 그런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때우거나 집으로 허겁지겁 돌아갔을 것이다. 남들이 혼자 밥 먹는 자신을 ‘불쌍한 독거노인’으로 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길을 혼자 걸으며 마음의 근육을 키운 해원은 달라져 있었다. 그는 번화한 식당가 모퉁이에 자리한 작고 정갈한 장터 국밥집 문을 뚜벅뚜벅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주모가 물었다.
"혼자입니다. 국밥 한 그릇 주세요."
해원은 당당하고 단정한 목소리로 답한 뒤, 창가 쪽의 자그마한 2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끈한 장터 국밥과 깍두기, 양파 절임이 담긴 쟁반이 차려졌다. 국밥 위에는 붉은 다대기와 파가 푸짐하게 얹혀 있었다.
해원은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다. 대화할 상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았다. 그는 오롯이 자신의 앞에 놓인 밥상 하나에 온 정신을 모았다.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진하고 구수한 고기 육수의 풍미가 혀끝을 감싸며 목구멍을 따라 따뜻하게 내려갔다. 이어 밥 한 술을 국물에 말아 깍두기 한 조각을 얹어 입에 넣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깍두기의 단맛과 밥알의 구수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여럿이 어울려 식사를 할 때는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쓰느라, 혹은 분위기를 맞추느라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삼키기 일쑤였다. 상대방의 식성에 맞추어 원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 먹는 이 식사는 전혀 달랐다. 밥 한 숟가락, 반찬 한 조각의 맛을 온전하게 느끼고 음미할 수 있었다. 천천히 씹어 넘길 때마다 음식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이 밥 한 그릇에 담긴 수많은 인연들이 떠올랐다. 이 쌀을 피땀 흘려 키워낸 농부의 손길, 고기를 단정하게 손질한 이의 정성, 뜨거운 불 앞에서 국물을 우려낸 주방장의 노고. 그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슴속에서 피어났다.
이 한 끼의 식사는 단순한 ‘혼밥’이 아니었다.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지친 자신의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소중하게 돌보는 차분한 ‘시간’이자, 나 자신을 진심으로 대접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6. 홀로 걷는 길 위에 피어난 복
식당을 나온 해원의 발걸음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깨는 곧게 펴졌고, 두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원은 길가의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스치는 바람, 길가에 소박하게 피어난 들꽃, 아이들의 웃음소리.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아름답게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 주머니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갈구하지 않았고, 단체 대화방의 침묵에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시끄럽게 지내는 것만이 복이 아니었다. 오히려 헛된 인연, 나를 소모시키고 내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관계들을 조용히 정리하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것이야말로 인생 후반부에 하늘이 내려준 진짜 ‘복’이었다.
사람들은 무리 속에 섞여 있어야 안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무리 속에 있을 때 사람은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과의 만남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해원은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침까지만 해도 스산하게 느껴졌던 정막한 거실이, 이제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침묵의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는 등산화를 단정하게 정돈하여 신발장에 넣었다. 등산화 바닥에 묻어온 흙먼지가 산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해원은 거실 창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오늘 참 좋은 길을 걸었구나."
해원은 이제 알고 있었다.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질 혼자만의 시간들은 외로움의 형벌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고 깊게 가꾸어갈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그는 더 이상 홀로 걷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존엄하며,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게 하는 복된 길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햇살이 창가를 넘어 거실 깊숙이 따스하게 비쳐 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