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약 철학자로서 누군가가 지구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면, 맨 먼저 모든 예술의 요람이자 서양이 모든 것을 빚지고 있는 동양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라.”
이 말은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1694-1778)의 말이다. 공자(孔子)를 숭배해 그의 서재에서 공자에 대한 예(禮)를 올리고 논어(論語),맹자(孟子)에 나온 치국(治國)의 도(道)를 서양의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결국에는 아담 스미스 (Adam Smith,1723-1790)의 국부론(國富論)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서양 발흥의 시원이 된 계몽주의(啓蒙主義)를 태동시킨 당대의 석학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의 오묘한 기능에 대해서 단 한마디만 했지만, 이미 그 논지는 공맹(孔孟)의 도에서 나온 것임을 서양의 귀납적(歸納的) 고찰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조선(朝鮮) 오백년의 역사는 공자(孔子)를 위대한 성인으로 모시고 그의 정치경제적 철학을 실천했던 지구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나라였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첫째 백성을 배부르게 할 것, 둘째 백성 모두의 일자리를 만들어 노는 사람이 없게 할 것(완전고용), 셋째 이율을 낮게 하여 백성의 부를 증진시킬 것 과 같은 경제의 대원칙을 논어(論語)에서 말하고 있으며, 이를 계량적으로 파악한 프랑스의 중농주의(重農主義)학자 케네(rançois Quesnay,1694-1774)와 그의 학통을 이어받은 수많은 학자들은 공자를 동양의 예수 그리스도라 칭하며, 선교사(宣敎師)는 유럽에서 동양으로 보낼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유럽으로 공자의 사상을 전파해줄 선교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역설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조선 선비들의 수많은 문집의 내용은 바로 이러한 공자(孔子)의 실용(實用)을 현실에 어떻게 적합화할 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과 간언(諫言) 그리고 연구였다. 이미 춘추전국(春秋戰國)시기에 일어났던 정전제(井田制)와 이후 조선조(朝鮮朝) 정약용(丁若鏞)의 정전제(丁田制)논의는 바로 이러한 공자(孔子)의 대동(大同)사상을 현세에 적용하기 위한 발전적 실용주의(實用主義)였음으로 분석해 낼 수 있다.
이미 성종(成宗)시기였던 1492년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3월27일 정유(丁酉)일의 1번째 기사에서는 한양도성에 거주하는 호수(戶數)가 일백만이고, 인구는 만만(萬萬-일억)이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凡都城之戶, 無慮百萬 而人口之數又萬萬焉>
또한 정약용(丁若鏞)은 그의 글에서 옥바라지할 사람이 없는 죄수도 짚신을 삼으면 옷과 양식을 마련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으며, 당시 조선에서는 하루 짚신 열켤레만 만들면 먹고살기 충분했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이 척박한 반도에서 비참하게 살았다고 교육받아온 우리 선조들의 삶의 행태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임은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거니와, 공맹(公孟)의 정치경제학적 윤리(倫理)로 무장한 선비라는 철인(哲人)들이 이끌어가는 조선이라는 역사적 실체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더라도 실로 우리 선조들의 터전이 바로 거대한 대륙이었음은 자명하게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2.
황태연 선생의 저작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2015-에 보면, 미국 경제사 신문지 <경제사 연구>에 실린 전성호와 제임스 루이스(J.Lewis)의 공동연구를 통해 고찰하면서, 정조(正祖)당시의 조선 숙련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당시 이탈리아 밀라노나 영국 런던의 숙련노동자보다 실질임금수준이 높았음을 분석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의 GDP를 통해 분석하면서 18세기 영정조(英正祖) 시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의 1인당 GDP가 600달러선에 머물던 청(淸)나라를 뛰어 넘었고, 아담 스미스가 1776년의 기록에서 ‘중국이 유럽 어느 지역보다 부유한 나라‘ 였다는 고찰을 통해 이미 조선의 경제력은 청(淸)과 영국을 뛰어넘은 당대 최고의 부유한 국가였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를 통해 현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저력이 이미 18세기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라 분석하고 있는데, 그러한 대한민국의 전신인 엄청나게 부유했던 조선(朝鮮)이 이 반도에 존재했을리도 없거니와, 대륙에 존재했던 조선의 이야기는 친일식민사학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각색되어 반도에 존재했던 조선으로 둔갑되어 버리고 말았다.
공자(孔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게 아니라, 공자(孔子)를 살려야 이 나라 대한민국이 다시 세계에 웅비할 도덕(道德)과 강력한 경제 및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사상이 사라진 것은 조선이 망해서 그리되었던 것이지만, 서양의 석학들에 의해 재해석된 공맹(孔孟)의 도(道)는 서양철학이라는 옷을 새로 해 입고 우리곁에 다가와 있었다.
그래서 1980년을 전후해 서양의 학문을 공부한 세대는 공맹(孔孟)의 숨결을 접하게 되었지만 그 이전 세대들은 인문학의 문외한이 되어 작금 대한민국의 군부독재로의 회귀를 획책하는 친일반역자들의 행태에 대해 참과 거짓을 구분못하고, 뜨거운 불길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들을 거리낌없는 하게 되었다.
우리가 시대의 한 중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자(孔子)는 이미 2,500년전에 글자로 그 답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바로 의(義)와 덕(德) 두 글자였다.
2025.02.07. 松溪
첫댓글 고맙습니다
신라때도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였지요
신라의 비단은 세계돈을 긁어모았지요
금이 풍부하여 개밥그릇도 금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때부터 국부를 관리하는 세력이 있다 하는데 그 대를 이어
조선시대 정조때 홍국영이가 세계 50조경 딸라 움직이는 로스찰일드가 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세계1,2,3,4,등까지 한국돈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돈이 곧 한국이 세계화될때 쓰여짐을 이루리라라고 보고있지요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