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거리 밖에 있는 과녁이나 표적을 겨냥하여 화살로 쏘아 맞히는 경기이다. 양궁의 뜻을 지닌 archery는 다른 여러 지역의 민족이 사용하는 활을 뜻하기도 하나, 한국 고유의 국궁(國弓), 즉 궁도(弓道:궁술)와 구별하기 위해 양궁이라 한다. 양궁은 옛 조상이 사용해 오던 국궁과 그 발상의 유래는 비슷하나 전세계적으로 그 민족의 풍토나 풍습에 따라 사용방법이나 모양에 특징을 가지며, 이를 지중해형(地中海型)·몽골형[蒙古型]·해양형(海洋型)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 고유의 국궁은 몽골형에서 유래되었으며, 양궁은 지중해형에서 유래되어 발전되었다. 그뒤 1538년 무렵 궁도 애호가인 영국의 헨리(Henry) 8세가 영국 전역에 보급시켜 자체 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차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출하여 스포츠로서도 각광을 받았는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1930년대 이후부터이다.
한국에서는 1959년 수도여자고등학교 체육교사 석봉근이 궁도에 관심을 보여 노년층에 많던 궁도 인구를 젊은 층에도 확대해 보려고 양궁과 대나무화살을 구입, 남산 중턱에 있는 석호정(국궁 활터)에서 연습에 열중하였다. 1962년 미 8군에서 근무하던 에로트 중령이 석호정에서 연습중인 석봉근에게 관심을 보여 함께 연습하면서부터 양궁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그후 1963년 7월 27일 FITA(Fé dé ration Internationale de Tir
l’Arc:국제양궁연맹)에 정회원국으로 가입하였고, 그해 9월 8일 제11회 서울시 체육대회에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어 20m 경기를 실시하였다. 1963년 10월 20일 한국일보사 주최 제6회 전국활쏘기대회에 양궁 30m 종목이 채택되어 경기도 수원 성터에서 실시되었다.
1967년 10월 2일 제1회 전국남녀궁도대회를 개최하였고, 1968년 9월 17일 개최된 제49회 전국체육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중·고등학교에 팀 창설 붐이 일게 되어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1974년 6월 7일 태릉에서 열린 일본 대표팀 초청 첫 국제대회에서 인천의 오영숙이 싱글 종합 1,162점을 얻어 3위에 입상하면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하였으나 일본 선수들에게는 뒤지는 기록이었다.
그후 1978년 12월 방콕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개인과 단체종합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하였다. 이듬해 1979년 서베를린에서 열린 제3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한 여자팀은 김진호(金珍浩)가 60m·50m·30m의 개인 및 종합우승을 석권하면서 단체우승을 차지하였다. 1981년 6월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31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여자 단체전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1982년 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선수권대회에서는 남녀 단체와 개인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그해 1월 뉴델리(New Delhi)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남녀 단체우승으로 세계정상에 다시 서게 되었다. 1983년 3월 4일 대한양궁협회가 대한궁도협회에서 독립하여 창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1983년 8월 US선수권대회에서 김진호가 개인 1위를 차지했고 김미영이 2위를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국제대회에 처음 등장한 서향순이 금메달을 차지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양궁이 9개의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한국이 종합 2위를 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김수녕·왕희경·윤영숙의 세 여고생 궁사가 개인 금·은·동메달을 차지했으며, 남자부에서는 박성수가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단체전에서 남녀 모두 우승을 함으로써 세계 정상임을 재확인하였다. 베이징[北京]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였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대회에서는 여자 개인 1위와 여자 단체전 1위를 하였으며, 1995년 제38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이경출이 남자 개인 우승을 차지하여 1993년 박경모에 이어 세계선수권 남자개인 2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윤미진·김남순·김수녕이 개인 금·은·동메달을 차지했으며, 단체전에서는 남녀 모두 우승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