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르신 ... 자꾸 끌림, 난 이렇게 스케일이 큰 사람이 좋습니다. 멋있는 사람 ...
목은 이색은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태어나고 조선 태조 5년(1396)에 돌아가서 생애가 두 왕조에 걸쳐 있다. 동 기간은 중국 대륙에 있어서도 원ㆍ명의 교체기였다. 이 시기의 역사를 주도했던 한 사람인 정도전(鄭道傳)은, 수덕언무(修德偃武)는 동문(同文)의 세계에 공통된 과제이니 예악을 제정하고 인문을 양성하여 천지의 질서를 세울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고, 자기 시대를 문명의 전환기로 인식하였다.
목은에 의하면, 인간사를 내(內)와 외(外)로 구분하는 논법에 비추어 문장은 외에 속하는 것이기는 해도 심(心)에 근원하는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심(心)에서 발하는 것이므로 시대에 관련된다’는 논리로 연결되고 있다. ‘문장은 도덕에서 나온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생각이다.
목은의 문학에 관한 논리에서 관심처는 사람이며, 거기서 초점은 마음이다. 심(心)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것이면서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이었다. 목은의 산문에 직설삼편(直說三篇)이라는 것이 있다.
장흥에서 석방된 그는 3년간 한산에서 지내고 1394년(태조 3) 오대산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서울로 돌아왔다. 1396년 여주 신륵사(神勒寺)에 가는 도중에 죽었다. 이색은 원나라에서의 유학과 이제현을 통하여 이 시기 선진적인 외래사상인 주자 성리학을 수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려 말기의 사회혼란에 대처하면서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목은시고 제28권 / 시(詩)
내원당(內願堂)에서 광평(廣平) 시중(侍中)의 글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산수화 병풍의 시를 청하기에 이를 인하여 세 수의 시를 읊다.
어제 사미가 내원당에서 찾아왔을 때 / 昨日沙彌芮院來
그림을 보고 오랜만에 함박웃음이 번졌다오 / 眼中一笑粲然開
광평의 산수화 병풍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 廣平山水屛風好
공손히 붓 잡고 시를 써서 상공에게 바쳤다오 / 筆法詩聯照上台
아침에 소세하니 세상 밖으로 벗어난 듯 / 朝來盥櫛思飄然
송산으로 늙은 선승 문득 찾아가고 싶네 / 欲向松山訪老禪
지금 세상에 고륙과 같은 단청 솜씨 없으니 / 當世丹靑無顧陸
뒷날 이런 그림 누가 또 전할지 모르겠네 / 不知他日有誰傳
병든 뒤로 높이 노닐며 매양 자부하였나니 / 病後高游每自誇
푸른 산 어딜 가든 간에 범왕의 집이라고 / 靑山到處梵王家
조계의 한 방울 물 참으로 얻기 어려우니 / 曹溪一滴眞難得
귀옹이나 찾아가서 함께 차 한 잔 마셔 볼까 / 欲問龜翁共喫茶
[주-D001] 고륙(顧陸) :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愷之)와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의 화가 육탐미(陸探微)의 병칭이다. 고개지는 화절(畫絶)ㆍ치절(癡絶)ㆍ재절(才絶)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육탐미는 인물 및 산수화에 독보적(獨步的)인 존재로 일컬어졌는데,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에서 장회관(將懷瓘)이 “고개지는 정신을 얻었고 육탐미는 골수를 얻었다.[顧得其神 陸得其骨]”고 평하였다.
[주-D002] 푸른 …… 집이라고 : 청산 전체가 하나의 사찰이라는 뜻으로, 산하대지(山河大地) 모두가 부처의 화신이라는 말과 같은데, 목은 자신의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발을 딛는 곳 모두가 불국토로 변하는 불교 최고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말이다. 범왕의 집은 불교 사원을 가리킨다.
[주-D003] 조계(曹溪)의 …… 볼까 : 이 세상에서 경지가 높은 진정한 선승(禪僧)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목은 자신이 믿는 귀옹을 찾아가서 한번 호흡을 나누고 싶다는 말이다.
귀옹은 귀곡 각운(龜谷覺雲)을 가리키는데, 목은이 환암 혼수(幻菴混修)와 함께 그의 선(禪)의 경지를 높이 평가하면서 친하게 교류한 인물이다.
육조대사(六祖大師)로 불리는 당(唐)나라 혜능(慧能)이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에서 선종의 정통으로 일컬어지는 남종(南宗)을 개창하였기 때문에 조계가 선종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오대(五代)의 고승인 법안(法眼)에게 승려가 찾아와서 “어떤 것이 조계의 한 방울 물[曹溪一滴水]이냐.”고 물었다가 “이것이 바로 조계의 한 방울 물이다.”라는 대답을 듣고는 활연 대오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釋氏通鑑 卷12 韶國師》
또 당나라의 조주 종심 선사(趙州從諗禪師)가 누구에게나 “차 한 잔 마시고 가라.[喫茶去]”고 하여, 일상생활 속에 선(禪)의 묘리(妙理)가 들어 있음을 보여 준 선종의 화두(話頭)가 전한다. 《五燈會元 卷4 趙州從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