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정상 주변
【홍유손(洪裕孫)】 사람됨이 문장은 장자(莊子)와 같고, 시는 황산곡(黃山谷)과 같고,
재질은 제갈공명과 같으며, 행실은 동방삭 같았다. 설악산 위의 돌 사이에 팔분(八分)서체로
쓴 절구가 있는데, 이르기를
생기기는 단군이 나던 무진년보다도 먼저이고 生先檀帝戊辰歲
기왕이 마한이라 하는 것을 보았었다 眼及箕王號馬韓
일찍이 영랑과 물나라에서 놀다가 曾與永郞遊水府
또 봄날 술에 이끌려 인간 세계에 머물렀구나 又牽春酒滯人間
하였으니, 이 시를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티끌세상을 떠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홍여경(洪
餘慶)이 남추강(南秋江)이 영동(嶺東)으로 놀러온단 말을 듣고 미리 이 글을 지어 놓고 기
다렸다 하니, 홍여경 역시 속세 밖의 선비였던 것이다.
―― 권별(權鼈), 『해동잡록(海東雜錄)』 「홍유손(洪裕孫)」
주) 여경은 홍유손(洪裕孫, 1431∼1529)의 자다.
▶ 산행일시 : 2018년 6월 9일(토), 맑음, 산정에는 안개
▶ 산행인원 : 12명(버들, 자연, 모닥불, 스틸영, 악수, 한계령, 산정무한, 인치성, 상고대,
사계, 해마, 신가이버)
▶ 산행거리 : GPS 도상 6.0km
▶ 산행시간 : 8시간 2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48 - 옥녀탕 주차장, 산행시작
09 : 47 - 너덜지대
10 : 24 - 암릉, 오른쪽 수직사면 트래버스
11 : 00 - 950m 고지
12 : 10 ~ 12 : 36 - 1,159m봉, 점심
13 : 22 - 암벽 암릉, 뚫을 곳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님
13 : 32 - 치마바위 아래 1,247m봉
13 : 50 - 안산 오르기를 포기하고 뒤돌아섬
14 : 20 - 안부, 오른쪽 갱기골을 향함
14 : 40 - 첫 번째 30m 건폭, 왼쪽 슬랩 트래버스
15 : 10 - 두 번째 건폭-갱기폭포, 오른쪽 슬랩 트래버스
16 : 05 - 안부
16 : 50 - 한계2교, 산행종료
17 : 14 ~ 19 : 00 - 인제, 목욕, 저녁
21 : 0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옥녀탕 주차장에서 오른쪽 계곡(성골 城-)으로 들어갔으면 계속 그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
어야 했다. 옥녀탕 주차장 뒤쪽의 암벽 연습장을 바라보고 오른쪽 흐릿한 소로를 따라 오르
다가 산등성이 넘고 비탈길을 내려 깊은 계곡의 바위 담을 암벽 타듯 하강하여 성골 입구에
내려섰다. 옥녀탕인지 와폭 아래 담에 물이 찰랑찰랑 제법 깊다. 그 옆 슬랩은 멀리서 바라볼
때 위압적이지만 다가가니 오를 만하다.
이 다음이 문제였다. 계류 건너 왼쪽 슬랩을 타고 숲속으로 들어가는 인적이 어렴풋이 보였
으나 능선 마루금을 오르는 뚜렷한 길을 찾았다기에 뒤돌아갔다. 능선 마루금에는 여러 산행
표지기가 안내하고 연속되는 바위 슬랩에는 가느다란 줄이 서너 겹씩 매달려 있다. 이런 곳
에 붙은 산행표지기는 아마 암벽꾼들의 것이라는 생각에 그다지 반갑지 않다.
한 피치 오르면 완만한 적송 숲길이다. 하나같이 늘씬하고 아름드리인 적송 숲을 사열하며
지난다. 이때는 고요한 태풍의 핵에 들어선 느낌이다. 언제 바윗길 험로가 나타날지 몰라 가
슴 조이며 나아간다. 더구나 불안한 것이 어디서부터인가 앞서가던 상고대 님과 산정무한 님
이 연호가 닿지 않게 가버렸다. 발 빠른 신가이버 님 더러 어서 가서 함께 가자고 붙드시라
등 떠밀었다.
그런데 상고대 님과 산정무한 님은 야트막한 안부께에서 오른쪽 흐릿한 소로를 따라 골로 갔
다가 다시 오르느라 늦었다. 차라리 이때라도 우리 모두 그쪽 성골로 가서 한계산성을 지났
더라면 지난날 경험이 있어-10년이 넘었지만-안산 오르기가 훨씬 수월했으리라. 그런 줄
을 모르는 신가이버 님은 그들을 찾는다고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니.
가파른 오르막길 너덜이 나온다. 그리 길지 않은 잔 너덜이다. 숨 돌릴 겸사로 전망 좋은 바
위에 들른다. 바로 눈앞에 드러난 안산 남벽이 위압적이다. 안산 주릉과 정상 주변은 안개에
가렸다. 뒤돌아보면 주걱봉과 가리봉이 골 건너편이다. 저 주걱봉 북릉을 올랐던 우리인데
어디인들 못 갈까 마음 다독인다. 가리봉 정상도 안개에 가렸다.
암릉이 나오고 오른쪽 수직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한다. 그 다음은 왼쪽 슬랩 트래버스다. 꿈
자리가 사나울 험로다. 가급적 아래는 내려다보지 않기로 한다. 돌부리 나무뿌리 헤집어 붙
든다. 어지간해야 짜릿한 손맛을 즐길 일이다. 쥐나 나지 않는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이러다 혹시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똬리
튼다. 혼자 아닌 여럿이다는 용기로 간다.
척후로 나섰던 스틸영 님은 아무래도 직등은 어렵겠다는 말을 암릉 너머에서 전해주고 사라
졌다. 하여 굴비두름처럼 엮여 줄줄이 트래버스 한다. 경점인 950m 고지에 어렵사리 오르고
오종종한 암반에 스틸영 님이 먼저 와 있다. 휴식하여도 입산주 탁주 분음이 당최 여느 산행
때만 못하다. 미취일망정 발걸음이 흐트러질까봐서다. 체면에 목추기는 시늉만 할 뿐이다.
2. 안산 정상 주변
3. 가리봉과 주걱봉
4. 전망바위에서
5-1.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암봉
5-2.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한석산 서릉
6. 안산 지능선 암릉
7. 안산 정상 주변
짐승들의 똥조차 미지의 앞길을 예상하는 자료다. 주로 바위 위에 누는 산양의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된다. 산양의 암릉 타는 실력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얕은 흙구덩이 파놓고 한 무더기
싸질러 놓은 그것은 멧돼지나 너구리다. 멧돼지가 가는 길이라면 우리도 해 볼만 하다. 멧돼
지의 똥을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대개 우왕좌왕하는 암릉에서는 산행의 변별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모처럼 물 만난, 아니
산 만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체와 정체를 반복하고 뭉쳐서 간다. 12명이 둘러앉을만
한 점심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좌우사면은 가파르고 능선 또한 릿지를 닮았다. 봉봉을 넘는
다. 왼쪽 사면이 길고 하얗게 산사태 난 1,081m봉을 넘고 1,159m봉에서 흩어진 점심자리
편다. 입맛이 쓰다. 쫄은 탓도 있으려니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으스스하니 차다.
암릉은 계속 이어진다. 오른쪽 사면에 ‘66 마굿간’이라는 산행표지기가 보인다. 말띠 생들의
산악회라 짐작한다. 그 안내를 따른다. 쉽지 않은 트래버스다. ‘66 마굿간’이란 산악회가 대
단하다 싶어 인터넷에 검색하여 보았다. 회원수 21명. 산행이력이랬자 월1회로 공작산, 월악
산, 연인산, 치악산, 공룡능선 등 별스럽지 않고, 그나마 뜸한 산행이다. 그런 산악회가 여기
를 오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아마 동명인 다른 산꾼들의 모임일 거라 생각한다.
너덜지대를 지난다. 이끼 낀 너덜이라 여간 미끄럽지 않다. 아무리 (설)악산이라지만 이처럼
악산도 드물 것. 설악산에서 더덕을 보는 것은 산삼을 보는 것만큼 희귀하다고 해도, 그 흔한
설악 곰취 한 장이 보이지 않는다. 장성 장릉으로 두른 암릉과 맞닥뜨린다. 여기저기 쑤셔보
지만 번번이 막힌다. ‘포항 청산산악회’라는 산행표지기 한 장이 어정쩡한 너덜 한복판 나뭇
가지에 달려있는데 그들의 종적이 묘연하다.
‘포항 청산산악회’는 카페가 부실하여 요사이 산행을 하는지 의문이지만, 천화대 릿지, 석주
길 릿지 등 암릉 코스를 소개했던 점에 비추어 치마바위를 오른 암벽꾼들의 모임이었던 것
같다.
암릉을 직등하여 척후 나간 스틸영 님과 산정무한 님은 소식이 없고, 해마 님의 선등으로 장
릉을 넘는다. 치마바위 아래다. GPS 고도 1,247m. 안산 서봉까지 직선거리 340m. 스틸영
님과 산정무한 님은 고도를 1,300m대로 높였다. 안산 정상은 여전히 안개에 가렸다. 스틸영
님과 산정무한 님은 안개 속 안산 정상에서 사람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만 듣고 내려왔다. 아
무런 장비가 없이 치마바위를 넘든지 돌든지 하여 안산을 오르기는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모두 모여 숙의한다. 오른쪽 사면은 절벽이니 논외로 하고 왼쪽 사면을 돌아서 치마바위를
넘을 것인가? 100m쯤 내려가서 돌아야 하는데 거기라고 암벽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우
리에게는 지도에서 읽을 수 없는 10m는 고사하고 2m 직벽이라도 난제가 아닐 수 없다. 10m
짜리 슬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선 그걸 매달 방법이 없다.
8. 안산 정상 아래
9. 안산 정상 아래
10. 안산 남릉 1,159m봉에서
11. 갱기폭포 위
12. 갱기폭포 위
13. 갱기폭포 위에서
14. 멀리 왼쪽은 주걱봉, 오른쪽은 삼형제봉
지금 시각 13시 50분. 날씨는 안개가 바삐 돌아다니고 금방 비를 뿌릴 듯 우중충하다. 여태
오른 험로를 생각하면 하산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길이 없다. 이만 하산하는 것이
상지상책이다. 뒤돌아선다. 우리가 방금 밟았던 족적을 더듬어 살금살금 내린다. 험로가 눈
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는지 아까보다는 낫다.
점심자리를 폈던 1,159m봉을 내리면서 바라보는 오른쪽 골짜기 수해(樹海)가 안온하여
문득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상고대 님이 GPS 지형도를 샅샅이 살핀다.
약 1km쯤 내리면 150m 정도가 등고선 촘촘하여 까칠할 뿐 대체로 무난하다고 진단한다.
까칠한 150m라고 해서 이곳으로 뒤돌아 오르지 않고 거기서 사면을 돌아서 내리면 되니 간
만큼 이득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오른쪽 골짜기가 갱기골이다. 지형도에 까칠하게 보이
는 150m 구간은 갱기폭포다. 낙차 130m. 암벽코스 5개가 개척되었다.
1,159m봉을 내린 야트막한 안부에서 잡목숲 헤치며 생사면을 내린다. 이내 마른 계곡에 다
다르고 너덜을 간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그 안온하던 골짜기가 실은 사나운 성깔을 감추
고 있었다. 건폭을 만난다. 30m는 됨직하다. 왼쪽 슬랩을 트래버스 하여 잡목숲을 직하한다.
내려갈수록 계곡의 너덜지대는 점점 넓어진다. 뿌리 채 뽑힌 거목들이 여기저기 드러누웠다.
바위 위에 돌멩이 서너 개 포개 올려놓은 건 반가운 인적이다. 마침내 갱기폭포 위다. 말랐
다. 주변의 장대한 직벽과 아득한 밑바닥 전망에 숨도 크게 못 쉬고 압도당한다. 자칫하며 빨
려 들어갈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기가 겁난다. 오늘 산행의 망외의 대수확이라 가까이 멀리
아찔함을 한참 즐긴다. 오른쪽 암반에 야영한 흔적이 있다. 얇게 흐르는 계류를 건넌다. 물이
끼가 미끄럽다. 한 발 한 발 감촉을 확인하며 건넌다.
인적은 잠깐 뚜렷하다. 가파른 슬랩을 길게 트래버스 한다. 마지막 난관이다. 굵은 나무 꼭
부등켜안고 돌아내리곤 한다. 안부. 왼쪽 사면으로 ‘포항 새순산악회’라는 산행표지기가 암
릉인 첨봉을 돌아내리도록 안내한다. ‘포항 새순산악회’도 찾아보았다. 회원수 169명. 산행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고 최근의 산행이력은 칠갑산, 덕항산, 강천산, 자굴산, 한우산, 우
두산, 소금산 등인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곳을 다녀갔다는 게 신기하다.
너덜지대 지나며 나뭇가지 사이 먼발치로 갱기폭포를 들여다본다. 장관이다. 지능선을 갈아
탈 때 약간 움찔하여 트래버스 하고는 어려운 데는 없다. 비로소 인적은 뚜렷해졌다. 계곡 너
덜 건널 때 후미는 건너편 산자락 도는 잘난 길을 알지 못하고 그냥 너덜로 내렸다. 그들은
휴식하고 있는 5명의 암벽꾼들을 만났다. 비가 올 것 같아 치마바위를 가지 않았다며 거기
비 오더냐고 묻더란다. 산기슭의 출입금지 걸침막에 어미 곰 아기 곰을 그려놓았다. 그 암벽
꾼들이 지나며 우리에게 알려준다. 곰이 출입금지라고.
한계2교. 어려운 산행이었다. 오지산행 전대미문인 퇴각한 산행이었다. 도상거리 6km. 산행
시간은 8시간을 넘겼다. 그래도 후련하다.
15. 멀리 왼쪽은 주걱봉, 가운데는 삼형제봉
16. 갱기폭포 상단, 대폭이다
17. 갱기폭포, 폭포 아래로 접근도 어렵다
18. 갱기폭포 상단
19. 갱기폭포 상단
첫댓글 고생은 하신듯 한데 설악산 바위의 기를 듬뿍 받으셨는지 표정들은 밝고 보기 좋습니다.
치마바위 직등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었을 것. 안전우선이라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산행이었네요.
향상님 말씀대로 표정 밝고 좋아요. 굿입니다.
고생들 많으셨슴다...웃는게 웃는게 아니란 느낌...서락은 맘대로 대들었다가는 도그고생합니다.^^ 치마바위 밑에서 크게 우회하여 성골과 만나야 안산으로 갑니다.
치마바위는 1,2봉 사이 가운데 크럭스지대로 직등도 가능하다는데 확보할 장비가 필요하고 마지막이 난관이라 뚜벅이들은 우회가 정답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