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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관문
영어 공부와 불서 읽기의 묘미 - 불기 2559년(2015년) 1월 29일 후기
Bhikkhu Bodhi 스님의 In the Buddha's Words (3)
서울경기강원지역방 3260번 글 http://cafe.daum.net/altlovebuddha/PEK/3260
의 후속타입니다.
<Bhikkhu Bodhi 스님의 In the Buddha's Words> 를 세 번째로 읽었습니다. 오늘 불서읽기에는 설각 스님, 효주 법우, 줄리아 법우, 환희장엄 법우, 클나라 법우, 저 관문 이렇게 6명이 참석했습니다.
오늘도 지난번에 모였던 장소 ‘Cafe 57th’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곳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80 미터 가량 직진하신 후 풍문여고를 오른 쪽에 끼고 돌아서 약 60 미터 가면 보이는 곳입니다. 모이는 때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교재 <Edited and introduced by Bhikkhu Bodhi, In the Buddha's Words> 중 General Introduction 을 읽었습니다. 관문이 가지고 있는 책으로 1페이지부터 7페이지 8째 줄까지입니다.
<Bhikkhu Bodhi 스님의 In the Buddha's Words> 를 읽는 동안의 후기는 영어와 저희가 시도해 본 번역을 올리겠습니다. 아직 이 책의 우리말 번역본이 없어서 이 후기는 순전히 저희 영어불서 읽기 모임의 작품이 되겠습니다.
GENERAL INTRODUCTION
전반적인 소개 글
UNCOVERING THE STRUCTURE OF THE TEACHING
가르침의 구조를 드러냄
Though his teaching is highly systematic, there is no single text that can be ascribed to the Buddha in which he defines the architecture of the Dhamma, the scaffolding upon which he has framed his specific expressions of the doctrine. In the course of his long ministry, the Buddha taught in different ways as determined by occasion and circumstances. Sometimes he would enunciate invariable principles that stand at the heart of the teaching. Sometimes he would adapt the teaching to accord with the proclivities and aptitudes of the people who came to him for guidance. Sometimes he would adjust his exposition to fit a situation that required a particular response. But throughout the collections of texts that have come down to us as authorized “Word of the Buddha,” we do not find a single sutta, a single discourse, in which the Buddha has drawn together all the elements of his teaching and assigned them to their appropriate place within some comprehensive system.
붓다의 가르침은 매우 체계적이기는 하지만, 붓다가 담마[법, 진리]의 구조를 정의하고, 그가 교리의 특별한 표현을 구상한 발판이 그에게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텍스트도 없다. 그의 오랜 전법 활동의 과정에서, 붓다는 경우와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셨다. 때로는 가르침의 핵심에 있는 불변의 원칙을 명확하게 상세히 설명하시곤 했다. 때로는 그에게 지도를 받으려고 온 사람들의 성향과 적성에 맞추기 위해 가르침을 각색하곤 했다. 때로는 특별한 대답을 요구하는 상황에 맞추기 위해 그의 설명을 조정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권위 있는 “붓다의 말씀”으로 전해져온 텍스트의 모음 전반을 통해서, 붓다가 그의 가르침의 모든 요소를 통합해서 어떤 이해할 수 있는 체계 안에서 적절한 지점에 배당한 단 하나의 경이나 설법을 발견하지 못 한다.
While in a literate culture in which systematic thought is highly prized the lack of such a text with a unifying function might be viewed as a defect, in an entirely oral culture—as was the culture in which the Buddha lived and moved—the lack of a descriptive key to the Dhamma would hardly be considered significant. Within this culture neither teacher nor student aimed at conceptual completeness. The teacher did not intend to present a complete system of ideas; his pupils did not aspire to learn a complete system of ideas.
체계적인 사상을 대단히 귀중하게 여기는 문자를 사용하는 문화에서는 통합하는 역할을 가진 텍스트가 없다고 하는 것이 결점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붓다가 살고 활동했던 시대의 문화가 그랬듯이, 전적으로 구전(口傳)의 문화에서, 담마[법, 진리]에 대해 설명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없다고 해도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스승도 제자도 개념적인 완벽함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승은 사상의 완전한 체계를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고, 제자도 완벽한 사상의 체계를 배우기를 열망하지도 않았다.
The aim that united them in the process of learning—the process of transmission—was that of practical training, self-transformation, the realization of truth, and unshakable liberation of the mind. This does not mean, however, that the teaching was always expediently adapted to the situation at hand. At times the Buddha would present more panoramic views of the Dhamma that united many components of the path in a graded or wide-ranging structure. But though there are several discourses that exhibit a broad scope, they still do not embrace all elements of the Dhamma in one overarching scheme.
전달 과정이라는 학습의 과정에서 스승과 제자를 하나로 묶는 목표는 실천적인 훈련, 자아의 변화, 진리의 실현, 마음의 흔들리지 않는 해탈 등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가르침이 언제나 당면한 상황에 방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붓다는 과거의 많은 요소를 점진적인 혹은 광범위한 구조에서 결합하는 담마[법, 진리]에 대한 좀 더 개관적인 관점을 제시하곤 하셨다. 넓은 시각을 보여주는 몇몇 설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도 하나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구조에서 담마의 모든 요소를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e present book is to develop and exemplify such a scheme. I here attempt to provide a comprehensive picture of the Buddha’s teaching that incorporates a wide variety of suttas into an organic structure. This structure, I hope, will bring to light the intentional pattern underlying the Buddha’s formulation of the Dhamma and thus provide the reader with guidelines for understanding Early Buddhism as a whole. I have selected the suttas almost entirely from the four major collections or Nikāyas of the Pāli Canon, though I have also included a few texts from the Udāna and Itivuttaka, two small books of the fifth collection, the Khuddaka Nikāya. Each chapter opens with its own introduction, in which I explain the basic concepts of Early Buddhism that the texts exemplify and show how the texts give expression to these ideas.
바로 이 책의 목적은 이러한 구조를 개발하고 예증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광범위하고 다양한 경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구체화하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종합적인 그림을 제공하기를 시도하려고 한다. 내가 바라건대, 이 구조는 붓다가 담마를 체계화한 것의 기저를 이루는 의도적인 형식을 밝은 데에 드러낼 것이다. 그래서 독자에게 초기불교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지침을 제공할 것이다. 나는 거의 전적으로 4부 주요 경전 모음집, 즉 빠알리 성전(聖典)의 니까야에서 경들을 정선했다. 제5부 모음집인 쿠다까 니까야에서 두 권의 작은 책 우다나(자설경(自說經))와 이띠붓따까(여시어경(如是語經))에서도 두어 개의 경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각 장(章)은 그 자체의 소개 글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나는 경전들이 예증하고 이러한 사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여주는 초기불교의 기본 개념을 설명한다.
I will briefly supply background information about the Nikāyas later in this introduction. First, however, I want to outline the scheme that I have devised to organize the suttas. Although my particular use of this scheme may be original, it is not sheer innovation but is based upon a threefold distinction that the Pāli commentaries make among the types of benefits to which the practice of the Dhamma leads: (1) welfare and happiness visible in this present life; (2) welfare and happiness pertaining to future lives; and (3) the ultimate good, Nibbāna (Skt: nirvāṇa).
나는 이 소개 글 후반부에서 니까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간단히 제공하겠다. 하지만 먼저, 내가 경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고안해낸 구조의 개념을 말하고 싶다. 이 구조를 내가 특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최초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새로운 고안이 아니라 빠알리 경전 주석들이 보여준 담마의 수행이 인도하는 유익함의 유형 가운데 세 가지 구분에 기초한 것이다. 그것들은 (1) 이 현세에서 누리는 복지와 행복; (2) 미래세와 관련된 복지와 행복; (3) 궁극적인 선, 열반이다.
Three preliminary chapters are designed to lead up to those that embody this threefold scheme. Chapter I is a survey of the human condition as it is apart from the appearance of a Buddha in the world. Perhaps this was the way human life appeared to the Bodhisatta—the future Buddha—as he dwelled in the Tusita heaven gazing down upon the earth, awaiting the appropriate occasion to descend and take his final birth. We behold a world in which human beings are driven helplessly toward old age and death; in which they are spun around by circumstances so that they are oppressed by bodily pain, cast down by failure and misfortune, made anxious and fearful by change and deterioration. It is a world in which people aspire to live in harmony, but in which their untamed emotions repeatedly compel them, against their better judgment, to lock horns in conflicts that escalate into violence and wholesale devastation. Finally, taking the broadest view of all, it is a world in which sentient beings are propelled forward, by their own ignorance and craving, from one life to the next, wandering blindly through the cycle of rebirths called saṃsāra.
예비적인 세 장은 이 3부 구조를 구체화하는 장들의 서곡이 되도록 계획되어 있다. 제1장은 세상에 붓다가 출현하기 전에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개관이다. 아마도 이것은 미래의 붓다가 될 보살이 세상에 내려와 마지막으로 태어날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면서, 도솔천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며 살고 있을 때, 그에게 비친 인간의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들이 늙음과 죽음을 향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세계를 지켜본다. 그곳에서 인간들은 주변 상황에 휘둘려서 육체적인 아픔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실패와 불운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고, 변화와 노쇠 현상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 세계는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기를 열망하지만 그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감정이, 그들은 어리석게도, 갈등 속에서 싸우게 반복해서 강요하고 이것은 폭력과 대규모의 황폐 상태로 악화되는 곳이다. 결국 모든 것을 가장 넓은 견해로 보면, 그곳은 중생들이 그들 자신의 무명(無明)[무지(無知)]와 갈애(渴愛)[갈망(渴望)]에 의해 앞으로 끌려 나가고,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윤회라고 불리는 재생(再生)의 순환을 통해 맹목적으로 헤매고 있다.
Chapter II gives an account of the Buddha’s descent into this world. He comes as the “one person” who appears out of compassion for the world, whose arising in the world is “the manifestation of great light.” We follow the story of his conception and birth, of his renunciation and quest for enlightenment, of his realization of the Dhamma, and of his decision to teach. The chapter ends with his first discourse to the five monks, his first disciples, in the Deer Park near Bārāṇasī.
제2장은 붓다가 이 세상에 내려오심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붓다는 세상에 대한 자비심에서 나타난 “한 사람”으로 오며, 그의 세상에 나타나심은 “위대한 빛의 현현(顯現)”이다. 우리는 그의 입태(入胎)와 탄생, 출가와 깨달음의 추구, 담마를 깨달음, 가르치기를 결심하는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이 장은 바라나시 근처의 사슴 동산[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의 제자들인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신 최초의 설법[초전법륜(初轉法輪)]으로 끝난다.
Chapter III is intended to sketch the special features of the Buddha’s teaching, and by implication, the attitude with which a prospective student should approach the teaching. The texts tell us that the Dhamma is not a secret or esoteric teaching but one which “shines when taught openly.” It does not demand blind faith in authoritarian scriptures, in divine revelations, or infallible dogmas, but invites investigation and appeals to personal experience as the ultimate criterion for determining its validity. The teaching is concerned with the arising and cessation of suffering, which can be observed in one’s own experience. It does not set up even the Buddha as an unimpeachable authority but invites us to examine him to determine whether he fully deserves our trust and confidence. Finally, it offers a step-by-step procedure whereby we can put the teaching to the test, and by doing so realize the ultimate truth for ourselves.
제3장은 붓다의 가르침의 특별한 성격을 약술하기 위한 의도로 쓰였다. 아울러 넌지시 미래의 제자가 가르침에 접근해야 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다. 경전들은 담마가 비밀스러운 또는 비전(秘傳)의 가르침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가르쳐질 때 빛나는” 가르침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 가르침은 권위를 가진 경전, 신의 계시, 혹은 오류가 전혀 없는 도그마 등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지 않고, 조사를 요구하고 가르침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표준으로서 개인적인 체험에 호소한다. 그 가르침은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을 문제로 삼는데, 그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관찰될 수 있는 것이다. 그 가르침은 심지어 붓다를 비난의 여지가 없는 권위자로서 내세우지 않고 그가 우리의 신뢰와 믿음을 충분히 받을 만한지 아닌지 결정하라고, 그를 조사해 보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끝으로, 그것은 그것으로 그 가르침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수 있는 단계적 과정을 보여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
With chapter IV, we come to texts dealing with the first of the three types of benefit the Buddha’s teaching is intended to bring. This is called “the welfare and happiness visible in this present life” (diṭṭhadhamma-hitasukha), the happiness that comes from following ethical norms in one’s family relationships, livelihood, and communal activities. Although Early Buddhism is often depicted as a radical discipline of renunciation directed to a transcendental goal, the Nikāyas reveal the Buddha to have been a compassionate and pragmatic teacher who was intent on promoting a social order in which people can live together peacefully and harmoniously in accordance with ethical guidelines. This aspect of Early Buddhism is evident in the Buddha’s teachings on the duties of children to their parents, on the mutual obligations of husbands and wives, on right livelihood, on the duties of the ruler toward his subjects, and on the principles of communal harmony and respect.
제4장에서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이 가져오기로 계획된 세 가지 유형의 이로움 중 첫 번째 것을 다루고 있는 경전들을 접하게 된다. 이것은 “이 현세에서 누리는 복지와 행복”이라고 불리는데, 가족관계, 생계수단, 공동체 활동에서 윤리적 규준을 지킴으로써 생겨나는 행복을 말한다. 종종 초기불교가 초월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출가의 급진적인 훈련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니까야들은 붓다가 사람들의 윤리적인 지침에 따라서 함께 평화롭게 또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질서를 향상시키는 데 몰두했던 자비롭고 실용적인 스승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초기불교의 이런 면은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의무, 남편과 아내의 상호적 책임감, 올바른 생계 수단, 통치자의 국민에 대한 의무, 공동체의 화합과 존경의 원칙 등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에 분명히 나타난다.
The second type of benefit to which the Buddha’s teaching leads is the subject of chapter V, called the welfare and happiness pertaining to the future life (samparāyika-hitasukha). This is the happiness achieved by obtaining a fortunate rebirth and success in future lives through one’s accumulation of merit. The term “merit” (puñña) refers to wholesome kamma (Skt: karma) considered in terms of its capacity to produce favorable results within the round of rebirths. I begin this chapter with a selection of texts on the teaching of kamma and rebirth. This leads us to general texts on the idea of merit, followed by selections on the three principal “bases of merit” recognized in the Buddha’s discourses: giving (dāna), moral discipline (sīla), and meditation (bhāvanā). Since meditation figures prominently in the third type of benefit, the kind of meditation emphasized here, as a basis for merit, is that productive of the most abundant mundane fruits, the four “divine abodes” (brahmavihāra), particularly the development of loving-kindness.
붓다의 가르침이 인도하는 두 번째 유형의 이로움은 제5장의 주제인데, 미래세와 관련된 복지와 행복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공덕을 쌓음으로써 미래세에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남과 성공을 얻음으로써 달성되는 행복이다. “공덕”이라는 단어는 다시 태어남의 순환 안에서 유리한 결과를 낳는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건전한 업을 가리킨다. 나는 이 장을 업과 재생의 가르침에 관한 정선된 경전들로 시작한다. 이것은 공덕의 관념에 대한 일반적인 경전들로 인도하고 뒤따라서 붓다의 설법에서 알아볼 수 있는 세 가지 주된 “공덕의 토대”에 관한 경전들이 나온다. 그 세 가지는 보시, 도덕적 훈련[지계(持戒)]와 명상이다. 명상은 세 번째 유형의 이로움에 두드러지게 이채를 띠기 때문에, 여기에서 공덕이 토대로서 강조되는 명상의 종류는, 가장 풍부한 현세의 과보를 생기게 하는 네 종류의 “신들의 거처”[4범주(四梵住); 4무량심(四無量心)], 특히 자애(慈愛)의 개발이다.
Chapter VI is transitional, intended to prepare the way for the chapters to follow. While demonstrating that the practice of his teaching does indeed conduce to happiness and good fortune within the bounds of mundane life, in order to lead people beyond these bounds, the Buddha exposes the danger and inadequacy in all conditioned existence. He shows the defects in sensual pleasures, the shortcomings of material success, the inevitability of death, and the impermanence of all conditioned realms of being. To arouse in his disciples an aspiration for the ultimate good, Nibbāna, the Buddha again and again underscores the perils of saṃsāra. Thus this chapter comes to a climax with two dramatic texts that dwell on the misery of bondage to the round of repeated birth and death.
제6장은 과도기적인데, 뒤따라오는 장들로 가는 길을 준비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현세의 범위 안에서 행복과 행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반면에, 사람들을 이러한 범위를 넘어 인도하기 위해, 붓다는 모든 조건 지워진 존재에 있는 위험성과 부적절함을 폭로한다. 그는 감각적 쾌락의 결점, 물질적 성공의 불충분한 점, 죽음의 불가피함, 존재의 모든 조건 지워진 세계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그의 제자들에게 궁극적 선, 열반을 향한 열망을 일깨우기 위해, 붓다는 되풀이해서 윤회의 위험을 강조한다. 이렇게 이 장은 되풀이되는 생사(生死)의 순환에 얽매이는 비참함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두 개의 극적인 경전으로 절정에 도달한다.
The following four chapters are devoted to the third benefit that the Buddha’s teaching is intended to bring: the ultimate good (paramattha), the attainment of Nibbāna. The first of these, chapter VII, gives a general overview of the path to liberation, which is treated analytically through definitions of the factors of the Noble Eightfold Path and dynamically through an account of the training of the monk. A long sutta on the graduated path surveys the monastic training from the monk’s initial entry upon the life of renunciation to his attainment of arahantship, the final goal.
다음에 오는 4개의 장은 붓다의 가르침이 가져오도록 되어있는 세 번째 이로움에 바쳐졌다. 즉 궁극적인 선, 열반의 성취이다. 이들 중 첫 번째인 제7장은, 해탈로 가는 길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을 제시한다. 이것은 팔정도의 요소들에 대한 정의(定義)를 통해서 분석적으로, 승려의 수련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역동적으로 다루어진다. 단계를 둔 길에 관한 기다란 경은 승려가 출가 생활에 처음 입문했을 때부터 마지막 목표인 아라한도의 성취에 이르기까지 수도원의 훈련을 개관한다.
Chapter VIII focuses upon the taming of the mind, the major emphasis in the monastic training. I here present texts that discuss the obstacles to mental development, the means of overcoming these obstacles, different methods of meditation, and the states to be attained when the obstacles are overcome and the disciple gains mastery over the mind. In this chapter I introduce the distinction between samatha and vipassanā, serenity and insight, the one leading to samādhi or concentration, the other to paññā or wisdom. However, I include texts that treat insight only in terms of the methods used to generate it, not in terms of its actual contents.
제8장은 수도원 훈련에서 주된 강조점을 두는 마음을 길들이기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서 나는 정신의 개발에 장애요소들, 이 장애를 극복하는 수단, 다양한 명상 방법, 장애가 극복되고 제자가 마음 다스림을 얻었을 때 성취되는 상태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경전들을 제시한다. 이 장에서 나는 사마타와 위빠싸나, 즉 평온함과 통찰력[지혜], 하나는 삼매 혹은 집중으로 이끌고, 다른 하나는 빠냐[반야] 혹은 지혜로 이끄는 것의 구분을 소개한다. 하지만 나는 통찰력을 단지 그것을 발생시키는 데 사용된 방법의 면에서만 다루고, 실제적인 내용의 면에서는 다루지 않는 경전들을 포함시킨다.
Chapter IX, titled “Shining the Light of Wisdom,” deals with the content of insight. For Early Buddhism, and indeed for almost all schools of Buddhism, insight or wisdom is the principal instrument of liberation. Thus in this chapter I focus on the Buddha’s teachings about such topics pivotal to the development of wisdom as right view, the five aggregates, the six sense bases, the eighteen elements, dependent origination, and the Four Noble Truths. This chapter ends with a selection of texts on Nibbāna, the ultimate goal of wisdom.
제9장은 “지혜의 빛을 비추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통찰력의 내용을 다룬다. 초기불교에서, 그리고 실로 거의 모든 불교 종파에서, 통찰력 혹은 지혜는 해탈의 주된 도구이다. 그래서 이 장에서 나는 정견(正見), 오온(五蘊), 6근(六根; 6가지 감각기관), 18계(十八界), 연기법(緣起法), 4성제(四聖諦)와 같은 지혜의 개발에 중추적인 주제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장은 열반, 즉 지혜의 궁극적 목표에 관한 경전들로 끝맺는다.
The final goal is not achieved abruptly but by passing through a series of stages that transforms an individual from a worldling into an arahant, a liberated one. Thus chapter X, “The Planes of Realization,” offers a selection of texts on the main stages along the way. I first present the series of stages as a progressive sequence; then I return to the starting point and examine three major milestones within this progression: stream-entry, the stage of nonreturner, and arahantship. I conclude with a selection of suttas on the Buddha, the foremost among the arahants, here spoken of under the epithet he used most often when referring to himself, the Tathāgata.
궁극적 목표는 갑자기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속인으로부터 해탈한 사람인 아라한으로 변화시키는 일련의 단계를 통과함으로써 달성된다. 그래서 제10장 “깨달음의 수준들”에서 그 길을 따라가는 주요 단계에 관한 정선된 경전들을 제시한다. 나는 먼저 점진적 연속으로서의 일련의 단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이 과정에서 3가지 중요한 획기적인 사건인 예류(預流), 불환(不還)의 단계와 아라한도(阿羅漢道)를 검토해 본다. 나는 이 장을 아라한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붓다에 관한 정선된 경전들로 끝맺는다. 여기에서는 붓다를 자신을 가리켜 말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한 여래(如來)라는 명칭으로 말한다.
THE ORIGINS OF THE NIKĀYAS
니까야의 기원
The texts I have drawn upon to fill out my scheme are, as I said above, all selected from the Nikāyas, the main sutta collections of the Pāli Canon. Some words are needed to explain the origin and nature of these sources.
내가 설정한 구조를 더 다듬기 위해 내가 이용한 경전들은, 위에서 말했듯이, 모두 빠알리 성전의 주요 경전 모음인 니까야에서 정선된 것들이다. 이 출처의 기원과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몇 마디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The Buddha did not write down any of his teachings, nor were his teachings recorded in writing by his disciples. Indian culture at the time the Buddha lived was still predominantly preliterate.1 The Buddha wandered from town to town in the Ganges plain, instructing his monks and nuns, giving sermons to the householders who flocked to hear him speak, answering the questions of curious inquirers, and engaging in discussions with people from all classes of society. The records of his teachings that we have do not come from his own pen or from transcriptions made by those who heard the teaching from him, but from monastic councils held after his parinibbāna—his passing away into Nibbāna—for the purpose of preserving his teaching.
붓다 자신은 자신의 가르침 중 어느 것도 글로 쓰지 않았고, 그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도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다. 붓다가 살았을 당시의 인도 문화는 아직 지배적으로 문자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주1) 붓다는 갠지스 강 평원에서 제자 비구 비구니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모여든 재가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고, 호기심이 많은 질문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사회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토론하는 데 몰두하면서 이 마을 저 마을을 유랑했다.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그의 가르침의 기록들은 붓다 자신의 기록이나 그에게 가르침을 들은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필사(筆寫)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 반열반(槃涅槃) 이후 열린 붓다의 가르침을 보존하려는 목적을 가진 승가의 경전 편찬회의[결집(結集)]에서 유래한다.
NOTE 1. The exact years of the Buddha’s life are still a matter of conjecture among scholars. Until recently, the most commonly cited figures were 566–486 B.C.E., but in recent years a growing number of Indologists have come to question these figures and the current preference is to place his death closer to 400 B.C.E.
주1) 붓다의 생애의 정확한 연대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는 추측에 불과하다. 최근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인용되는 연대는 기원전 566년-486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인도학자들이 이 연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오늘날 선호되는 많은 의견은 붓다의 죽음을 기원전 400년에 가까이 보는 것이다.
It is unlikely that the teachings that derive from these councils reproduce the Buddha’s words verbatim. The Buddha must have spoken spontaneously and elaborated upon his themes in countless ways in response to the varied needs of those who sought his guidance. Preserving by oral transmission such a vast and diverse range of material would have bordered on the impossible. To mold the teachings into a format suitable for preservation, the monks responsible for the texts would have had to collate and edit them to make them better fit for listening, retention, recitation, memorization, and repetition—the five major elements in oral transmission. This process, which may have already been started during the Buddha’s lifetime, would have led to a fair degree of simplification and standardization of the material to be preserved.
이 경전 편찬회의에서 유래한 가르침들이 붓다의 말씀을 정확히 말 그대로 재현했을 가능성은 없다. 붓다는 자연스럽게 말씀을 하셨고 그의 지도를 찾아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필요에 응답하여 무수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한 엄청나고 다양한 범위의 제재(題材)를 구전(口傳)으로 보존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붓다의 그러한 가르침을 보존하기에 알맞은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 경전 편찬에 책임이 있는 승려들은, 구전(口傳)의 5가지 주요 요소인 듣기, 기억하기, 낭송, 암기, 반복하기에 더 낫도록 경전들을 교정하고 편집해야만 했었을 것이다. 이 과정은, 아마도 붓다가 세상에 계실 때에 이미 시작되었을 것 같은데, 제재(題材)를 보존하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단순화와 표준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During the Buddha’s life, the discourses were classified into nine categories according to literary genre: sutta (prose discourses), geyya (mixed prose and verse), veyyākaraṇa (answers to questions), gāthā (verse), udāna (inspired utterances), itivuttaka (memorable sayings), jātaka (stories of past births), abbhutadhamma (marvelous qualities), and vedalla (catechism).2 At some point after his passing, this older system of classification was superceded by a new scheme that ordered the texts into larger collections called Nikāyas in the Theravāda Buddhist tradition, Āgamas in the North Indian Buddhist schools.3 Exactly when the Nikāya-Āgama scheme became ascendant is not known with certainty, but once it appeared it almost completely replaced the older system.
붓다가 세상에 계실 동안에, 설법들은 문체의 장르에 따라서 9개의 범주로 분류되었다. 그것은 수따(산문으로 된 설법; 경(經) 또는 계경(契經)), 게야(산문과 운문이 섞인 것; 응송(應頌) 또는 중송(重頌)), 베야카라냐(질문에 대답한 것), 가타(운문; 게(偈) 또는 게송(偈頌)), 우다나(스스로 흥이 나서 하신 말씀들; 감흥어(感興語) 또는 무문자설(無問自說)), 이티붓따카(기억할 만한 말들; 본사(本事)), 자타카(전생에 대한 이야기들; 본생(本生)), 아부따담마(놀라운 만한 것들; 희법(希法) 또는 미증유법(未曾有法)), 베달라(교리 문답) 등이었다.(주2) 붓다가 돌아가신 후 어느 때인가, 이 옛날의 분류 체제는 테라바다 불교 전통에서는 니까야라고 불리고, 북부 인도 불교 학파에서는 아가마(아함(阿含))라고 불리는 좀 더 확대된 경전들의 모음으로 체계화한 새로운 구조로 대체되었다.(주3) 정확하게 언제 니까야-아가마 구조가 지배적이 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구조가 일단 나타나자 옛날 체제를 거의 완벽하게 대신해 버렸다.
NOTE 2. See, e.g., MN 22.10 (I 133). Some of the terms are obscure, and the commentators seem to strain to find ways to identify texts that come within their scope.
주2) 예컨대, 맛지마 니까야 22.10를 보라. 용어의 몇 가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주석가들은 그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경전들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NOTE 3. But even as late as the age of the commentators (fifth century C.E.), the Theravāda tradition too called them Āgamas as well as Nikāyas.
주3) 하지만 주석가들의 시대(기원후 5세기)인 후기까지도, 테라바다 전통도 니까야라고 뿐만 아니라 아가마라고도 불렀다.
The Cullavagga, one of the books of the Pāli Vinaya Piṭaka, gives an account of how the authorized texts were compiled at the first Buddhist council, held three months after the Buddha’s parinibbāna. According to this report, shortly after the Buddha’s death the Elder Mahākassapa, the de facto head of the Saṅgha, selected five hundred monks, all arahants or liberated ones, to meet and compile an authoritative version of the teachings. The council took place during the rains retreat at Rājagaha (modern Rajgir), the capital of Magadha, then the dominant state of Middle India.4 Mahākassapa first requested the Venerable Upāli, the foremost specialist on disciplinary matters, to recite the Vinaya. On the basis of this recitation, the Vinaya Piṭaka, the Compilation on Discipline, was compiled. Mahākassapa then asked the Venerable Ānanda to recite “the Dhamma,” that is, the discourses, and on the basis of this recitation, the Sutta Piṭaka, the Compilation of Discourses, was compiled.
빠알리 율장의 한 권인 건도부(犍度部) 소품(小品)에는 붓다의 반열반 후 세 달 동안 열린, 첫 번째 경전편찬회의[결집(結集)]에서 어떻게 권위를 인정받는 경전들이 편찬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붓다의 죽음 바로 후에 장로 마하까싸빠[마하가섭(麻訶迦葉)]는 실제적인 승단의 우두머리였는데, 모두 아라한 즉 해탈한 자들 500명을 뽑아서 붓다의 가르침의 권위 있는 버전을 모여서 편찬하자고 했다. 그 회의는 당시 중부 인도의 지배적인 국가인 마가다의 수도 라자가하(오늘날의 라지기르)에서, 우안거(雨安居) 동안에 열렸다.(주4) 마하까싸빠는 먼저 계율 부문에서 가장 전문가인 우빨리 존자에게 율을 암송하라고 요청했다. 이 우빨리의 암송을 토대로 율장(律藏)이 편찬되었다. 그리고 나서 마하까싸빠는 아난다 존자에게 “담마”, 즉 설법을 암송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을 토대로 경장(經藏)이 편찬되었다.
NOTE 4. The Cullavagga’s account of the first council is at Vin II 284–87. The rains retreat (vassāvāsa) is a three-month period coinciding with the Indian rainy season when Buddhist monks must refrain from wandering and remain at fixed residences. The retreat generally lasts from the day after the full-moon day of July until the full-moon day of October.
주4) 제1차 결집에 관한 소품의 이야기는 율장 II 284–87에 있다. 우안거(雨安居)는 불교의 승려가 돌아다니는 것을 삼가고 정해진 거처에 머물러야 하는 3개월의 기간인데, 인도의 장마철과 일치하는 시기이다. 우안거는 일반적으로 7월의 만월(滿月) 날에서부터 10월의 만월(滿月) 날까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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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