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사람에게 자유는 없다.”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의 말
유모토 겐지·사토 요시히로 공저 ‘스웨덴 패러독스’에 나오는 말입니다.
1993년 스웨덴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11.9%에 달했는데, 1994년 정부 채무 잔액은 GDP 76.2%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총리의 호소로 사회보장급여 삭감을 포함해 전 국민이 고통을 수반하는 세출 삭감을 감수한 결과, 국가재정이 회복됐습니다. 1995∼98년 4년 동안 GDP 8%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를 줄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2019년 44.2%였던 한국은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아직 나랏빚이 적어 더 빚내 쓸 수 있다”는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나라 밖에서는 출생률 급락으로 빠르게 망해가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빚을 더 늘리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뒷짐 진 채, 이해관계자에게 결정을 위임한 우리 상황은 정말 바람 앞의 등불로 보입니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와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이 가장 선호했던 재정 안정 방안은 이해관계자 반대로 배제하면서, 이미 지속이 불가능한 국민연금을 더 지속이 불가능하게 논의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10대가 연금 받을 시점에, 적자가 702조 원 더 늘어나는 안을 재정 안정 방안이라고 시민 대표단에 학습시킨 뒤, 이에 근거해 토론하는 모습을 조만간 TV 생방송으로 지켜보게 될 것 같습니다.
“연금은 99%가 수리적인 문제”일 뿐임에도, 핵심 정보는 꽁꽁 숨긴 채, 개악안을 개혁안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우리 현실을 보고 있자니, 페르손 총리 말이 가슴에 더 다가옵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제 주권을 뺏기면 자유가 없음을 경험했음에도, 그 길을 또 가려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동아일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님의 글입니다》
출처 : 동아일보. 오피니언 내가 만난 명문장 코리안 패러독스[내가 만난 명문장/윤석명]
지금 “코리안 패러독스”라는 말이 대한민국의 민낯인데 정치판은 구름 속에서 신선놀음이나 하고 있으니 정말 걱정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책은 뭘까. 많은 이들은 국민의료보험 제도나 공교육 시스템 등을 떠올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서울 대중교통 시스템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긴다. 시스템의 핵심은 2004년 시행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다.
준공영제에선 공공이 노선이나 운행 횟수 등을 결정한다. 대신 사업자에게 적자 발생분을 보전해 줘야 한다. 2020년 1705억 원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8915억 원까지 급등했다. 최근 버스 파업을 계기로 600억여 원이 더해지게 됐다.
서울교통공사 등이 매년 적자 운송으로 떠안는 비용과 최근 도입된 기후동행카드 유지비 등까지 합치면 매년 1조원 이상이 대중교통 운용비용으로 청구된다. 올해 기준 서울시 예산 45조원의 40분의1, 656조원인 국가 예산의 600분의1이다. 해당 시스템이 존재하는 덕분에 대중교통 요금도 여타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
제도 개선의 목소리는 높다. 버스 업계 구조조정이나 서울교통공사 수익모델 다변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누구도 준공영제를 폐지하거나 요금을 현실화하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쟁력 강화와 교통복지 비용에 해당해서다. 세금은 바로 이런 곳에 쓰라고 걷는 것이다. 재정은 무작정 낭비해선 안 되지만 무턱대고 아껴도 안 된다. 가령 저출산엔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필수적이다.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우리의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다.
선거철만 되면 퍼주기 공약이 난무하지만 올 총선 만큼이었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또다시 기본소득을 꺼내 들었다. 민생 해결을 위해 국민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지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무려 13조원이 소요된다.
기본소득은 비용은 막대하지만 효과는 불분명하다는 건 학계에서는 상식에 속한다. 고물가 등으로 민생이 파탄 직전까지 몰린 건 맞지만 코로나 팬데믹 때처럼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상황도 아니다. 이러니 같은 당에서조차 “소상공인,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거기에 투자하는 게 경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김동연 경기지사)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여당도 퍼주기를 남발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다. 금투세는 주식 등 금융투자로 얻은 소득이 5000만원을 넘는 경우 수익의 20%를 과세하는 제도다. 향후 3년간 4조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금투세 폐지는 1400만 개인투자자의 표심을 잡기 위한 포석이지만 혜택을 보는 투자자는 전체의 1~2% 남짓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건 더 큰 문제다. 매달 근로소득세를 뭉텅이로 내는 월급쟁이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불로소득의 환수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 양도소득은 무슨 명목으로 걷을 것인가.
공약들을 무작정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는 연간 10조원의 재원이 소요되지만 온 국민이 ‘간병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책이다. 5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 철도 지하화 역시 해당 부지가 효율적으로 이용되면 비용보다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문제는 재정 가뭄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지난 1~2월 국세 수입은 58조원으로 ‘세수펑크’ 전해인 2022년 대비 12조원이나 덜 걷혔다. 이런 와중에도 효과는 물음표인 가공식품 부가세 인하 방안을 내놓는 행태를 두고 ‘포퓰리즘’ 외에 어떤 표현을 써야 할까.
‘모든 국민이 함께 사용하는 재화나 서비스.’ 공공재의 사전적 정의다. 공기처럼 평소엔 당연하게 여기다가 막상 없어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출근길에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목도했던 시민들 역시 대중교통이라는 공공재의, 그리고 공공재 종잣돈의 원천인 나라 곳간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라 곳간은 쓸 곳에만 쓰고, 걷을 곳에서만 걷어야 한다.
1960년대 저출산 구호를 바꿔 말하면 ‘덮어 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다. 12년 만의 버스 파업이 우리에게 건네는 교훈이다.>서울신문. 이두걸 전국부장
출처 : 서울신문. 오피니언 [데스크 시각], 덮어 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말은 1938년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경제학을 여덟 단어로 표현하면(Economics in Eight Words)'이라는 글을 기고할 때 인용하면서 유명해졌지만 그가 최초로 한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말의 명확한 유래는 없지만, 아주 옛적에 인도의 현명한 왕이 전국의 유명한 학자들을 다 모아 놓고 내가 백성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남길 가장 좋은 것을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열두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왕이 그것을 누가 다 읽겠냐고 하면서 가장 쉽게 빨리 알 수 있는 걸로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한 권으로, 다시 몇 장으로, 최종으로 나온 것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 문장이었고, 이를 보고 왕이 아주 흡족해 하면서 이것만 백성에게 제대로 전하면 내가 죽어도 걱정할 일이 없다고 했다는 얘기에서 나왔다는 말이 많습니다.
우리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정치판의 불한당(不汗黨)’들은 우리가 그 소 잡아먹고, 거지가 될 후손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