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동행
구석본
달 밝은 밤,
홀로 걸어본 적 있나요
가로둥 없는 시골의 밤길,
산기슭이나 강변을 걸어 보았나요
발자국마다 달빛이 먼저 그늘을 쓸어주고
불쑥 그만큼 앞서면 어둠에 문힐세라
한순간 무심하던 공중의 달이 화들짝 따라와
더도 덜도 아닌 그만큼만 따라와
길의 모퉁이부터 열고 있지요
외로움이 외진 어둠을 안고 절룩거리면
스르르 허리 굽혀 뒤꿈치부터 들어올립니다
이때쯤 외로움도
바람과 함께 노래가 됩니다
집까지 따라와 등 떠밀어주고는
다시 두둥실 떠오르는 달
공중에서, 그만큼의 거리에서,
그대가 그곳에 계셨습니다
다시 어머니 앞에서
구석본
손녀는 두세 살 무렵에 먹지를 않았다
분유도, 밥도, 과일도, 과자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런 손녀 옆에서 순가락과 밥을 가지고 지키다가
아이가 장난감 놀이에 정신을 빼앗기는 순간,
손녀 입에 밥순가락을 넣는 것이다.
과일도 별모양으로 깎아 '별을 먹자'면서 입에 넣어주었다
놀이터에서도 외출할 때도
아내의 손에는 밥그릇과 숟가락이 있었다
아내는 밥 주는 사람이었다.
손녀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혼자 밥을 먹는다.
식사할 때 아내는 말없이 내 앞에 앉는다
당연히 겸상한다고 생각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아내는 앉아 있었다
식사를 마치면 나는 훌쩍 식탁을 떠나곤 했다
일흔이 넘어 아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않은 아내가 보였다
고등어살을 발라 내 밥순가락 위에 얹는
아내의 손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고기 상추삼을 입에 넣어주는 손, 달걀을 넘겨주는 손,
이것은 단백질이야. 나이가 들수록 고루 섭취해야 해.
손녀를 달래며 밥을 먹이던
아내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TV를 보고 있노라면 부억과 거실을 들락거리며 물 마실 시간, 약 먹을 시간에 맞춰 종일 바쁘다 아내는 입히고 먹이고 잠재우는 사람,
일흔이 넘어 아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아, 밥 먹을 시간이다.
약 먹을 시간이다
당신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어머니, 세상일이 서툴러집니다
걸음마다 눈길처럼 미끄럽고 가파릅니다
어머니,
당신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가는 나를
일흔이 넘어 비로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