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의 비극 - 팔꿈치 부상으로 모든 것이 어그러지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조성민과 함께 플레이했던 마키하라씨는 조성민씨를 "매우 밝은 사람으로 일본어도 배우고, 모두와 친밀했다." 고 회상한다. 그는 조성민씨의 죽음에 큰 쇼크를 받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키하라씨는 2000년 12월에 한국에서 치러진 조성민씨의 결혼식에도 요미우리의 다른 선수들과 함께 참석했다. 마키하라씨는 "조성민 선수가 야구계로 복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98년 올스타 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한 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역주 - 조성민 선수의 죽음은 일본에서도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조성민 선수는 일본프로야구 98 시즌 전반기에 7승 6패, 6번의 완투승, 3번의 완봉승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뽑혔습니다. 조성민 선수는 올스타전에서 9회 초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은 후, 10회 연장전에도 등판했는데 조성민은 팔꿈치에 이상을 느끼고 그만 던지겠다고 했지만, 당시 올스타팀 감독이었던 요코하마의 곤도 감독은 자기 팀 마무리인 사사키를 아끼려고 조성민에게 계속 던지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조성민은 팔꿈치 인대가 완전히 끊어졌고, 다시는 구위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야후재팬 댓글-
그 때 사사키와 교체했더라면 인생이 바꼈을텐데. 사사키도 준비하고 있었고, 관중들도 사사키를 연호하고 있었는데. 찬성 1.220 반대 61
아내가 자살했을 때 한국 인터넷과 언론으로부터 엄청 까였던 것 같다. 조성민 아내는 한국에서 조성민보다 훨씬 유명한 여배우였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한국인은 싫지만 그 때 요미우리 우완 에이스로서 상당히 잘했었는데. 부상만 없었으면...
올스타전 혹사가 인생을 망쳤다.
올스타전 때 팔꿈치가 아프다고 일본어로 말했는데도 곤도 감독이 계속 던지라고 했었을 걸. 정말 불쌍하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더 활약했을텐데.
일본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비극이 일어났다고 일본 욕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올스타전 때 계속 던지게 하지만 않았으면 오랫동안 요미우리에서 우완 에이스로 남았을 사람. 정말 아쉽다. 당시 요미우리는 싫어했지만 조성민은 좋아했다. 이렇게 죽어서 정말 유감이다. 명복을 빕니다.
98년 올스타 때 감독이 누구였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팔꿈치가 아프다고 교체해 달라고 했는데도 라이벌 팀인 요미우리를 견제하려고 자기 팀 소속인 사사키를 내보내지 않았던 곤도 감독. 큰 죄를 졌다.
곤도 감독의 코멘트를 듣고 싶다.
저 당시 조성민 선수와는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한국요리를 만들어주거나 한국의 부모님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체격은 크지만 솔직하고 밝은 청년이었다. 여러가지 어려웠던 일이 있었던 건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자살은 하면 안되는 거다.
올스타전 때 팔이 빠지면서까지 던졌던 성실한 선수. 좋은 선수였습니다 .
저 때 조성민은 전반기에 굉장히 컨디션이 좋아서 그가 최다승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올스타전 부상으로 후반기에 몰락. 그 뒤로는 부활하지 못했다. 곤도 감독이 장례식장에 가서 사과의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올스타전으로 인생이 망가지다니...
그 때 투구 전에 팔꿈치를 가리키면서 포수와 벤치에 사인을 보냈었다. 그래도 못 본 척하고 계속 던지게 해서 재기불능. 올스타전처럼 보이지 않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어쨌든 곤도는 장례식장에 가서 사죄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뛰어난 투수더라도 어깨와 팔꿈치 부상은 선수생명과 직결된다. 선수보호 차원에서 그만 던지게 해야 했었는데.
조성민은 키도 크고 센스도 있는 선수였는데. 한국인인데도 싫지 않았다.
곤도는 뭐 할 말 없나?
이승엽은 별 일 없겠지? 설마 이승엽도 자살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조성민은 확실히 재능이 뛰어나서 미완의 대기라는 느낌이었지. 그 때 한국 야구에는 선동렬이나 정민태처럼 개성있는 투수들이 많았다는 느낌.
조성민은 확실히 활약했었다는 기억이 있다.
죽은 사람을 한국이라는 이유로 욕하지 말자.
전성기 때는 쭉쭉 뻗는 직구와 무섭게 꺾이는 슬라이더가 인상적이었다. 20승이라도 올릴만한 기세였는데. 지금이라면 구위는 다르빗슈보다 못하지만 시합운영 능력은 다르빗슈보다 더 뛰어난 정도였다. 어쨌든 막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부상을 입어서 안타까웠다.
명복을 빕니다. 요미우리에서의 활약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