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프랑스 외인부대 혹한기 훈련의 모습으로 극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고
살아남기 위한 특수훈련을 받고 있다.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외인부대는 1831년 프랑스인이 아닌 벨기에 출신
모험가 라크로와라는 사람이 프랑스국왕에게 기발한 제안을 하면서 시초가 된다.
프랑스는 1830년 7월 혁명으로 극도로 혼란한 시절에 루이필립은 샤롤10세를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다.
그리고 인근 유럽 각국도 당시 내란이 곳곳에서 발생하자 불안을 느낀 타 유럽인들이
그나마 안전한 프랑스로 공식 비공식 망명객 및 밀입국자들이 몰려 들어 프랑스
국내 역시 치안과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때 국왕의 총애를 받던 벨기에 출신 라크로와는 골치아픈 존재인 망명객과
거리를 무전 취식하며,배회하는 사람들 그리고 프랑스 정규군 중에서
일부 부대 해체로 불만에 가득찬 대원들을 포함하여 특수 훈련을 시켜 프랑스와
아프리카 알제리 간 식민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파견하는 기발한
제안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외인부대(레종 에트란제)는 소수의 정예군이 많은 적군을 상대로 승리 할 수 있는
지옥훈련을 시켜 체력과 담력키운 뒤 적진에 투입되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용병들이다.
훈련목표는 세계 최강부대의 기준으로 받고 있으며,프랑스 정규군 보다도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외인부대의 1837년 콩스탕틴 전투와 1863년 카메론 전투는
신화적인 전투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며,외인부대의 찬란한 역사로 남는다.
먼저 유명한 콩스탕틴 전투에서 있었던 일화를 간단하게 알아보자.
전투부대의 대령 밀셀 콤 부대장은 승리의 낭보를 직접 상관인 여단장에게
전하기 위해 여단 본부에 들러 직접 보고하고 있었다.
부대장 대령 밀셀 콤은 이미 가슴에 두군데 적으로 부터 맞은 총탄으로
쓰러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보고 중인 것이다.
여단장은 부대장의 승리의 보고를 받던 중 제지를 시키면서
대령에게 물었다.
콤 대령! 귀관은 지금 부상이 심한것 같은데,,,,
지금 상태가 어떤가?
콤 대령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저는 이미 전사 했습니다."
다음날 콤 대령은 결국 사망했다.
다음은 카메론 전투에서 있었던 일화을 간략하게 적는다.
외인부대는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보다 부대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시한다.
1863년 카메론 전투는 2천여명의 멕시코 군과 프랑스 외인부대원 60여명이
상상을 초월하는 치열한 전투였다.
식량은 물론이고 단 한방울의 물도 없이 유일하게 남은 것은 단 한발씩에 가까운
실탄과 6명의 대원 뿐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곳도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실탄 한발씩을 쏜 뒤 그들은
항복보다는 총검을 착검하고 마지막 돌격으로 중과부적의 백병전을 벌이지만
결국 장렬히 전사한다.
1892년 전투가 끝나고 프랑스 정부는 이곳에 기념비을 세운다.
"60여명도 안돼는 사나이들이 적의 부대와 맞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의 힘은 적의 부대를 압도했으며,용기를 버리지 않고 목숨을 기꺼이 버렸던
이들은 우리 프랑스의 위대한 군인들었다." 고,,,,,
다음으로 프랑스 외인부대의 구성에 대해 추가로 알아본다.
현재 프랑스 외인부대는 140개국의 지원병들로 이루어 지고 있으며,우리 한국인도
약 100여명이 프랑스외인부대원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글를 본적이 있다.
이들 외인부대의 평소 슬로건은 훈련은 고되게 전투는 쉽게로
바꾸어 말하면 고된 훈련이 전투을 쉽게 승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인부대의 훈련은 지옥훈련 바로 그것이다.
극한 상황 그 어디든 그들이 가는 곳은 반드시 승리 할 수 있도록 대담한 담력과
엄격한 군기,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만이 살아 돌아 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현재 외인부대는 러시아를 비롯한 CIS 국가 젊은이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최근 남미 지역,브라질,콜롬비아 출신의 지원자가 많은 편이나 특히 한국인들도
갈수록 인원이 늘어 서두에 적은바와 같이 100여명이 넘고 있는 가운대
총 7700여명의 대원으로 외인부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외인부대의 혹독한 훈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훈련은 제4외인부대에서 이루어 지는대 외인부대의 교관들은 지옥의 사자처럼
거칠기로 유명하다.
정당한 교육이나 훈련 중 구타도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으며,기합 또한 훈련의 연장선이라
혹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모든 것은 세계 최고의 전투요원으로 키우는대
필수적이라 제반 훈련과정은 정당화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 외인부대 신병 모집은 통상적으로 50대 1의 경쟁율을 보이고 있으며,
세계 140여개국의 뛰어난 체력과 운동신경이 발달한 젊은이들이 아직도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5년만 버티면 적지않은 금액의 년봉과 수당 그리고 프랑스에서 살 수 있는 정당한
영주권을 부여 받기 때문에 남의 나라 국방과 국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혹여 죽을지도 모르는 혹독한 프랑스 외인부대 전투요원으로 지원하고 있다.
출처http://blog.daum.net/qhdtjsghkduswjd/7013087
첫댓글 베트남전 디엔비엔푸전투와 한국전에선 상당히 타격을 많이 입었져 그래서 20세기들어서는 그다지 프랑스외인부대의 실전평가가 좋지를 못한것 같습니다. 물론 디엔비엔푸에서는 식민지(인도차이나반도,북아프리카등)에서 없는사람들 끌어다가 정규군과 혼합시켜 전투에 내보냈고 한국전에서는 현지의 우리한국사람들을 급하게 모병해서 바로전투에 투입시켰으니, 규모만 커졌지 사실을 훈련받은 정규군보다는 훨씬 못한 전력이었을 겁니다. 군인에게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인 동기부여가 전혀 없었으니까여~ 20세기 중반의 그런 실패를 되풀이 하지않으려고 지금의외인부대가 엄청난 훈련량을 자랑하는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용맹함은 높이 평가해주어야 할것입니다. 덕분에 디엔비엔푸에선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는 비극을 겪게됐지만...
디엔비엔푸는 뭐죠??
한국에 특전사가 최고죠 ㅎㅎㅎㅎㅎ
누가 최고인가는 중요하지않습니다. 가늠하기도 어렵고여~그리고 외인부대는 특수부대라기보다는 전전후 돌격부대의 성격을 더많이 띄구여 프랑스에는 지젠느라는 대테러특수부대와 그외의 특수전부대들이 있습니다. 굳이 최고를 대한민국의 특전사라 칭하기보다는 각국의 특수전부대들의 특성을 고려한 평가가 내려져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물론 각국 특수부대들을 점수로 평가한 자료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것이고 해서도 안되는일이기두 하구여~
디엔비엔 푸는 베트남과 라오스국경 근처의 작은마을입니다. 프랑스와 베트남독립연맹간의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결정적전투이면서 최대의 격전이 벌어진 마을이구여~ 전쟁에서 밀리고있던 프랑스는 라오스를 통해 전쟁물자를 보급받는 베트남동맹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위해 디엔비엔 푸 근처에 요새를 구축하고 베트남군역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칩니다~다연발로켓포등을 인력과 가축으로 그 좁은 정글을 뚫고 옮겨내는 엄청난 괴력?을 보인 베트남동맹군의 맹공에 결국 프랑스의 공수부대와 식민지에서 급조해 보강한 외인부대는 전사자5000여명, 항복한 만명등으로 완패하고,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갈라져버리져~
결국, 비극의 결말이자 서막이 되는 전쟁이 된 셈이고, 그 한가운데가 바로 디엔비엔 푸, 디엔비엔 푸 전쟁이었져~물론 베트남전의 발발요소는 여러가지 겠지만여~
그럼 이때 분쟁으로 베트남전이 시작된거군요...! 위워솔져스영화에서 보면 프랑스군이 처음에 나오던데...그건 베트남 초기인가요??
분쟁이라기보다는 일본이 패망후 떠나자 다시 식민지배를 행하려던 프랑스와 민중의 전폭적인지지 받고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베트남독립연맹과의 독립전쟁에 가깝구여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의 침공이져~ 분쟁은 아닙니다~
위워 솔져스 도입부는 베트남전 초기가 아닌 아마도 인도차이나 전쟁의 한 장면만을 보여준것같습니다~ 제가 윗댓글에 비극의 결말이자 서막이되는...이라고 쓴것도 후에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대립 그에 따른 미군의 개입이 바로 본격적인 베트남전쟁의 시작이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