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15일 이날의 감흥을 앞으로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젊은 시절 남자는 모름지기 빨리 군대에 가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군에 일반병사로 입대하였지만 현실은 정말 녹록지 않았다. 고된 훈련과 엄격하고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맨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왜 내가 장교가 아닌 병으로 와서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했었다. 그렇지만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여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나의 일을 성실히 하다 보니 그 인고의 세월도 흘러가더라.
논산훈련소에서 6주의 기본 군사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춘천을 거쳐 강원도 화천 7사단에 배속되어서 4주간의 신병 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었다, 자대에 배치된지 보름만에 한밤중에 비상을 발령하여 야간 산악 행군을 하여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곳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춥다는 1,178m의 백암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능선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OP(Observing Post)와 OP 아래쪽에 있는 중화기 중대의 81mm 박격포 진지가 있는 막사에서 중대장을 보좌하는 작전/훈련 담당으로 그 추운 겨울을 포함하여 6개월간 근무하였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4년 12월 당시 야당 총재이었던 김영상 총재가 국군장병 위문차 우리 부대를 방문했을 때 나도 이다음에 성공해서 김영삼 총재처럼 전방의 국군 장병들을 위문하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야 김총재처럼 큰 성공은 못했지만 위안이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김총재는 백암산 정상 높이보다 약 100m는 낮은 곳을 방문했지만 나는 김총재가 방문했던 곳보다 더 높은 백암산 정상을 민간인 신분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단히 만족하고 백암산 케이블카를 설치한 대한민국 정부와 강원도 화천군에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백암산 정상에 오르면 날씨가 쾌청하여 시계가 좋으면 저 멀리 금강산 비로봉과 설악산 대청봉도 보인다고 한다. 어제도 시계는 좋은 편이었으나 그리 완벽하지 못해 금강산 비로봉이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북쪽을 바라보니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이 산 능선과 산허리를 따라 그 연결선이 뚜렷하게 보였고 DMZ 내 군사분계선에 가장 근접한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국군 초소인 GP(Guard Post)와 북한의 GP도 보였다.
북동쪽으로는 북한의 금강산댐과 호수, 동남쪽에는 우리나라의 평화의 댐이 보인다. 두 개의 댐을 연결하는 북한강이 한 폭의 하얀 비단같이 아름답게 굽이굽이 흐른다. 안내원에 의하면 금강산댐의 수력발전량이 북한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압록강의 수풍발전소가 발전량이 제일 많다고 알았는데 지금은 금강산댐에게 그 타이틀을 양보한 것 같다.
멸종위기종인 산양과 사향노루도 심심찮게 보인다고 하는데 어제는 우리를 보는 것이 수줍었는지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아쉬운 마음을 접는다.
백암산 정상에서 유일하게 한 명의 현역 군인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수고가 많다는 인사도 건네고 나도 50년 전에 백암산에서 근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을 걸어서 같은 동료의식을 표현하였다.
백암산 단풍이 정말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이면 단풍관광객이 너무 많이 와서 미리미리 예약을 안하면 붉디붉은 단풍을 볼 기회가 없다고 한다. 50년전 백암산 단풍을 보고 왜 이리 단풍이 아름다운지 모르겠다고 고참한테 물어보니 고참 왈 6.25전쟁 때 백암산 전투에서 수 많은 영혼들의 희생되어 그 피가 땅속에 스며들어 단풍이 새빨갛다고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올가을에는 백암산 단풍 보러 또 한 번 가야겠다.
잘 있거라 백암산아, 다시 보자 백암산아.
첫댓글 전적지를 다녀오셨구려
고생했던곳이라 감회가 남달랐을싶으이.
사진이라도 혹 보면 했오이다
겨울 백암산의 정경과 중대장을 보좌한 장이병의
모습을 그려 봤을터인데
나도 양구 2사단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근무했어서 전방의 당시 근무 상황을 그나마 이해 할수있어서 끝까지 읽게 되었오
주로 다녔던 산을 내설악산의 한계령,까칠봉,
대암산등을 밥먹듯이 행군했었소이다
이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고 불리우던 지역이 유사시 투입되는 대대 방어 작전
구역이였으니...
고생했고 잘 봤어요
장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