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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를 위한 법화경강의 제6강 1
(無比 큰스님, 문수선원, 2008년 7월 4일)
1. 서품 61-67
경전(經典)을 통한 수행을 법화경과 금강경등 이런 중요한 경전에서 서사(書寫) 수지(受持) 독(讀) 송(誦) 위인해설(爲人解說)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읽고, 많이 읽다 보면 어떻게? 외워지죠?
외우고, 그리고 쓰고, 또 그 이전에 경전을 지니고 다닌다 수지(受持), 지니고 다닌다
마음에 지니고 다니면 더욱 좋지만은
마음에 지니고 다니기 까지는 이 종이와 먹으로 된 이 책
유형의 이 책을 지니고 다녀야 돼요.
유형의 이 책을 지니고 다님으로 해서 그것이 또 마음에 지니고 다니는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조그마한 포켓용 천수경이나 포켓용 금강경이나 관음경 같은 그런 소형 책자들이 많죠?
그런 소형 책자들을 왜 만들었냐?
수지(受持) 지니고 다녀라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위인해설(爲人解說) 남한테 이야기 해 주는 거야.
이야기 해주는 것이 뭐 깊은 뜻을 알아서 그 깊은 도리를 잘 이야기 해 주면은 좋죠.
그렇지만은 ‘아, 이 책 이렇게 가지고 다니기만 해도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것만도 좋다하더라’ 아 이 이야기야 어떤 바본들 못하겠습니까?
그 정도라도 이야기 해주려고 생각을 갖고 그렇게 권하는 것, 그것도 위인해설이야. 남을 위해서 해설해 주는 거예요.
공덕도 이야기 해 주고
거기에 담겨 있는 이치도 이야기 해주고
그리고 어디에 법회가 있다 하더라
그런 것도 소개해 주는 것도 위인해설이라.
생각해 보면요, 아주 쉽고 간단하고 너무나도 우리 일상에 많이 펼쳐져 있는 그런 사실들을 얼마든지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지(受持), 독송, 독(讀) 송(誦) 서사(書寫) 또 쓰는 것 그 다음에 위인해설(爲人解說)
그런데 내가 자꾸 사경을 권하면서 책을 벌써 몇 권 째 받았죠? 오늘도 반야심경 사경, 이거 받았는데
우리 불자들이 제대로만 이렇게 밟아서 절에 다니고 불교 공부하는 데 다니면, 제대로만 정상적으로
정상적인 코스를 밟아서 제대로만 한 3년만 다닌다 하면은 한문도 잘 쓰고 한문도 쓸 줄도 알고 내용도 알고 또 그것도 해석도 할 줄 알고 그런 길이 열려요 저절로.
그런데 왜 3년 아니라 30년을 다녀도 그렇게 못 되는가?
그건 이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불교를 만들어 가지고
자기 불교를 보따리에 싸가지고 가져오기 때문에 그래.
그래서 뭐 절에서 뭐라고 권하더라도 또 법사가 뭐라고 이야기 하더라도 그거는 뒷전이고 자기가 만든 불교가 있어 자기 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어떤 형식의 불교가 있어서 고 불교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 그 불교를 하기 때문에 20년 30년 다녀도 별로 진전이 없고 그런 거예요.
그래 마음을 텅 비워버리고
정말 불법의 정상적인 길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에 귀 담아서 잘 듣고 마음에 탁 이렇게 새기면 정말 진정한 불공이 되고 진정한 불공이 됨으로 해서, 공덕,
우리가 공덕이다 복을 짓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공덕이 되고 복이 되는 것도 훨씬 더 효과가 크고
빠르게 그 효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조금 지나친 표현으로써
절 운영하는 주지한테서는 바른 불교를 공부할 수가 없고 차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차공부를 바르게 할 수가 없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그게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어요.
왜냐? 절 운영할라면 절 운영하는 데다가 초점을 맞춰서 법문하는 거야. 그러니까 바른 불교를 이야기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주지라 하더라도 그래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은.
부처님은 주지 안 살았기 때문에 바른 불교를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그 뒤에 이제 절을 운영하고 절을 또 확장 시켜야 되고 뭔가 또 이렇게 풍성하게 좀 돌아가게 하고 불사도 해야 되고 하는 그게 과제야. 그게 숙제라.
어떤 선방에 다니는 스님이 절을 하나 지으면서 욕심이 자꾸 생겨 가지고
잘 짓고 싶고 좋은 나무 사다가 짓고 싶고
또 옆에 땅도 더 사고 싶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화두는 어디 가버리고 절 짓는 게 화두고
절 짓는 게 화두라는 것은 화주하는 게 화두가 돼 버린거야 그만. 신도들에게 돈 화주 하는 게 화두가 돼 버린 거라고.
그거 그래 됩니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그런 처지가 되면은 저절로 그런 생각하게 돼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절 운영을 하는 사람들은 바른 불교를 이야기 할 수가 없어. 절 운영하는데다가 초점을 맞춰서 불교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어.
차장사 하는 사람 가게에 가 가지고
차가 이게 좋냐 어쩌냐 자기 파는 거만 좋다고 하지 그 외에 것은 좋다고 안 해. 바르게 이야기 안 한다고요.
그래 돼 있어 세상사가. 그건 나쁜 게 아니야. 이치가 그렇다는 거야.
그래서 예를 들어서 뭐
자랑이 됐든 뭐가 됐든간에 여 문수선원에서는 절 운영하자고 모인 게 아니고 절 운영한다고 무슨 기도하라고 접수하거나 무슨 기와 불사한다고 하거나 뭐 하거나 그런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그대로 불교 있는 그대로
고대로 정직하게 불교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조건이 돼 있어 여기는. 그래서 지금 뭐 절 운영 하나도 안 하잖아요.
그냥 여러분들이 와 가지고 회비 내고 그거 가지고 운영하고 그걸로 끝이야. 더 이상 뭐 달리 무슨 뭐 하는 게 없다고.
그러면 이제 불교는 불교대로 바로 이야기 할 수가 있는 거야. 거기다 초점을
화주 하는데 초점을 맞춰서, 절 운영하는데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절 운영하는데 초점 맞춰서 할라면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 거야. 기와불사 할 때는 기와 하는 게 제일 좋다, 불교에서 제일 좋은 일이다. 불상 만들 때는 불상 만드는 게 제일 좋은 일이다. 무슨 뭐 후원채 지을 때는 후원채 짓는 게 여러분들 공양도 제공하고 하기 때문에 후원채 짓는 게 제일 공덕이 되는 일이다. 뭐 갖다 붙인 대로 그냥 불교야 그냥.
그래 되면은 이제 불교에 입문했어도
20년 30년 됐어도 자꾸 그런 곳으로만 다니고
그래서 정상적인 불교를 공부 못하다 보면은
부처님 제자가 됐어도
부처님 제자가 되면 저절로 유식하게 돼 있고, 정상적으로만 불자가 되면은 그러면 지혜로와져.
첫째 지혜로와져.
부처님 지혜를 배우는 것이 불교니까.
그래서 지혜로와 지고 이치를 알게 되고. 아 세상 이치.
팔자가 바뀌는 거 아니예요.
불교 공부한다고 하루 이틀에 뭐 일 이년에 팔자 바뀌는 거 아니야. 잘만 하면 바뀌어 질 수도 있지만은.
그러면 뭐? 뭐가 달라지느냐?
인생과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겨.
이치를 알게 돼.
아 부처님이 세상과 인생을 깨달은 이치가 이러이러 하니까 그 지혜를 우리가 배움으로 해서 보는 눈이 달라져요.
이치를 알게 된다고요.
꽃은 왜 피는가, 나는 왜 이래 생겼는가, 나는 왜 이 집에 시집 와서 이런 팔자로 사는가, 전부 다 환하게 알게 돼 있어 거기에. 알면 불만이 없는 거야.
알면 불만이 없다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이치를 알면 불만이 없어.
불만이 없으면 됐지 뭐. 불만 없으면 되는 거예요.
세상 사는 데 불만 없으면 되는 거라.
그런데 이게 하루이틀 살고 마는 것이 아니고
이제 계속 인생이라는 게 계속 거듭거듭 반복 하니까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고 모레가 있고 또
금년이 있고 내년이 있고 글피 있고
계속 그렇다 보니까 계속 우리는 갈고 닦아야 돼.
그래서 지혜의 눈을 계속 열어 가야 돼.
그래서 사경을 내가 자꾸 권하는 이유가
사경을 하는 것은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쓰는 게 더 마음 속에 자리 잡아. 더 이제 확실해진다고요.
글자 획도 알게 되고, 글자 뜻도 알게 되고 아 그 속에 담긴 이치도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돼.
그리고 온 마음이 거기에 집중되지 아니하면 글자 한자 써지지가 안 해. 그런데 읽는 것은 입에 익숙하면 뭐 나모라 다냐다라 그냥 뭐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읽게 되는 거라.
그래 되면 이제 아무 의미가 없어요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은.
마음이 담겨 있지 아니한 독송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마음을 제일 많이 담을 수 있는
수행방법이 사경이라.
읽고 외우고 하는 것도 좋아요. 또 경우 따라서 읽고 외우고 해야겠지. 그리고 위인해설도 해야 되겠죠.
가지고 다니기도 해야 되겠지.
그런데 이제 시간이 되면은
시간만 용납하면은 이거 한 자라도 쓰는 것이 제일 효험이 있다 하는 그런 이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이구 스님들 같이 무슨 뭐 일이 없나요? 세상에서?
일 없이 그렇게 공부시간 하루에 말야 네 시간 다섯 시간씩
그래 할애 해 가지고 공부할 그런 처지가 안 된다 이거야.
뭐 밥하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온갖 뒷바라지 하고 또 뭐 가족 관계, 또 친지 관계 이런 데 가서 얼굴 내밀어야 할 경우도 많고 등등 뭐 얼마나 일이 많다고 그게 되느냐?
다 알아요. 다 이해한다고. 그런데
짜두리 시간, 어디 나가기 전에
법회 가기 전에 집에서 짜투리 시간 한 10분 20분 있잖아요. 고걸 잘 활용해야 돼. 또 들어와서도 아직 그 저기 뭐야 밥 할 시간이 아니다. 그러면 이제 고 나머지 한 10분이나 20분 있는 고 시간,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야 돼요.
잠들기 전 짜투리 시간 한 10분쯤 이용 잘 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요
요 긴 시간을 활용 잘하는 것이 아니고 짜투리 시간 활용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고 부자는 잔돈 관리 잘하는 사람이 부자라. 큰 돈 관리 그거 누가 못 해? 다 잘해.
그런데 잔돈 관리를 잘해야 돼. 작은 돈.
‘에이 이거 뭐 몇 푼 되지도 않는 거’ 하는 사람은 평생 부자 안돼. 몇 푼 안 된다고 해서 함부로 쓰는 사람은 결코 부자 안 된다고요.
작은 돈 관리를 잘해야 부자가 되고
짜투리 시간 뭐 5분, 10분, 고 정도 시간 관리 잘 하는 사람이 공부 잘해.
사경도 충분히 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한 시간 안 내도.
늘 밥상하나 딱 해놓고 항상 해놓는 거야. 그러면 지나가다가 한 번씩 쓰고 앉다가 한 번 쓰고, 일어나다가 한 번 쓰고 그러면 되는 거지. 그렇게 할 작정을 하면 이거 못 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이제 여러분들에게 부담을 내가 주는 거지.
그래서 책도 자꾸 이렇게 구해 가지고 드리고 쓰라고. 그래 뭐 보문품도 써라. 반야심경도 써라.
반야심경 이거 다 잘 외우시니까 얼마나 좋아요?
아 이거 내가 잘 외는 건데 이거 한 번 써보자 하고서.
그걸 또 해석도 해놓고 글자 뜻도 다 해놨겠다.
얼마나 친절하게 잘 돼 있습니까?(웃음)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 쓰는 데, 쓰는 일이 익숙하도록
뭐 그냥 우리가 밥 먹고 차 마시는 정도로 익숙한 일로 만들어 놓는 거야 생활로. 그렇게 만들어 놔야 이게 이제
내 어떤 살림살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수행 가운데 별시수행(別時修行)이 있고,
또 보통 시간에 수행이 있는 거야. 그래 보통 생활속에
생활시간 속에서 수행하는 것은
아까 앞에서 말한 그런 생활 속에서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수행, 글자 한 자라도 쓰고, 염불 한 마디라도 하는 것이고
별시수행은 이제 특별히 이렇게 와가지고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사경을 하든지 강의를 듣던지 이렇게 하는 것을 별시수행이라고 그래.
스님들은 하루에 열 시간씩 이렇게 별시수행을 딱 정해가지고 하는 거야. 그래 신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아 스님들처럼 그래 선방에서 열시간씩 이렇게 정해놓고 수행하는 것 그것이 수행이지 우리같이 생활에 쫓기는 사람이 무슨 수행을 할 수 있겠나?’ 이게 잘못된 생각이라.
그러면 보통 시간 속에서 수행하는 것
이거 본래 그렇게 하나로 이게 연결이 돼야 돼.
스님들이 예를 들어서 특별한 시간을 정해놓고 수행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그게 활용이 안 되면은
이건 별시수행이 잘못된 거야.
별시수행하는 것은 생활수행을 잘 하자고 하는 거야.
생활수행 잘한 사람이 별시수행을 잘하는 거야.
그러면 이제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집에서 10분이나 20분
경을 읽든지 사경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사경 시간을 한 시간을 딱 갖는다. 그러면 ‘아이구 잘됐다.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말야 사경만 하게 됐으니까’ 얼마나 잘 되겠어요? 별시 수행이 잘 되는 거라.
생활수행에서 훈련을 쌓아 놓으면은 별시수행이 잘 됩니다.
그런데 별시수행을 아무리 잘 해도 생활수행이 안 되면은
그거는 무효야. 선방에서 아무리 화두 잘 들어도 해제 하고 무슨 돌아다닐 때 화두가 안 들리면 그건 하나마나야.
그래서 그거 꾸중을 많이 듣거든요?
해제 중에 돌아다닐 때 화두가 잘 들려야 그게 결제 중에 공부 잘한 사람이다. 조용히 앉아서 공부하는 훈련을 쌓는 것은 해제 중에 돌아다니면서 일상생활 할 때 잘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게 만약에 안 되면 그건 뭐 하나마나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별시수행이 어쩌다 있는 것이고
생활수행은 늘 있는 거예요.
스님들은 별시수행이 늘 있고, 생활수행은 오히려 더 적고 그 반대로 돼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이제 서로 융통이 돼야 돼.
그래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선방에 앉아서 화두만 든다고 그게 수행이 아니고
경전으로써 수행은
수지(受持) 독(讀) 송(誦) 서사(書寫) 위인해설(爲人解說)
그래서 이제 다섯가지죠.
읽고, 외우고, 지니고 다니고, 쓰고, 설명해 주고 남을 위해서 설명을 해 주고 하는 것.
이렇게 해서 다섯 가지로 오종수행(五種修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나의 지혜로 이끌어 오는데
이 경전 공부 이상 가는 게 없어요. 경전공부가 제일입니다.
이보다 뭐 더 이제 지름길은 달리 없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서품인데 아직은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서 상서를 보였는데 그 광명이 너무너무 밝아서 동방으로 일만팔천세계를 비췄다 그랬죠.
거기에 나타나는 광경이 너무너무 신기하고
상서로운 면이 많아서 그것을 미륵보살과 대중들이 궁금해서 그 까닭을 알고 싶어 했는데,
‘이 대중 가운데서 누구에게 물으면 좋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문수보살에게 그 까닭을 이제 묻게 됐고,
그래서 문수보살이 과거의 예를 들어서
오늘의 상서에 대한 까닭을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아직도
문수보살이 옛날 일월등명불 시절에 오늘과 똑 같은 상서가 있었는데. 그 상서를 나타내고 법화경을 설하게 됐듯이
오늘 석가모니 부처님이 저러한 상서를 나타내시니까 틀림없이 법화경을 설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62.日月燈明佛이 於六十小劫에 設是經已하시고 卽於梵과 魔
일월등명불 어육십소겁 설시경이 즉어범 마
와 沙門婆羅門과 及天人阿修羅衆中에 而宣此言하사대
사문바라문 급천인아수라중중 이선차언
일월등명불이 육십 소겁 동안 이 경전을 말씀하시고는 곧범천과 마군과 사문과 바라문과 천신과 사람과 아수라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日月燈明佛이 於六十小劫에 設是經已하시고
일월등명불이 육십소겁(六十小劫)에 설시경(設是經)하시고
그래 일월등명불 시대의 이야기, 과거 이야기를 문수보살이 하는 거죠. 이 경전을 육십소겁 동안을 이 경전을 설했다.
법화경을 설했다 이말이예요.
卽於梵과 魔와 沙門婆羅門과 及天人阿修羅衆中에
즉어(卽於) 범(梵)과 마(魔)와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과 그리고 천(天) 인(人) 아수라(阿修羅) 대중 가운데에
而宣此言하사대
이선차언(而宣此言)하되, 그래 육십소겁이라고 하는 길고 긴 수 억 만년 뭐 요게 이제 일 겁을 보통 백년으로 설사 쳐도 최하로 치는 게 백년이예요. 백년으로 쳐도 육십소겁이니까 얼마? 육천년이죠.
그동안 법화경을 설하시고 나서
그 다음에 모인 모든 대중들
범천, 마구니, 사문들, 바라문들 천, 인, 아수라 뭐 온갖 생명들에게 다 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중요한 이야기예요.
63.如來於今日中夜에 當入無餘涅槃호리라 하시니라
여래어금일중야 당입무여열반
‘여래는 오늘 밤중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如來於今日中夜에 當入無餘涅槃호리라 하시니라
여래가 금일중야(今日中夜)에 여래께서 오늘 밤중에 한밤중에
당입무여열반(當入無餘涅槃)하리라.
무여열반에 마땅히 들게 될 것이다.
열반에 든다 이 말이예요.
법화경 설하고는 열반에 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법화경 설하시고 나서 열반에 들었어요. 법화경 설하고, 그 다음에 열반경은 열반에 드는 광경을 그려놓은 게 열반경이고 정작 정상적으로 경전을 설하는 것은 말하자면 법화경입니다. 법화경 설하시고 열반에 들거든요.
그러니까 여기도 과거부처님도 그러했듯이
그 이야기를 지금 하는 거죠.
무여열반(無餘涅槃)
유여열반 무여열반 그러는데 몸뚱이까지 다 소멸해 버린 그런 것을 무여열반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열반에 들 것이다 라고 하시니라.
64.時有菩薩하니 名曰德藏이라日月燈明佛이 卽授其記하사
시유보살 명왈덕장 일월등명불 즉수기기
告諸比丘하사대
고제비구
그 때에 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이 덕장(德藏)이었습니다. 일월등명불께서 그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時有菩薩하니 名曰德藏이라
그 때 보살이 있었다. 열반에 이제 들기 직전이죠.
법화경 다 설했고,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들려고 하는데
그 때에 덕장(德藏)이라고 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日月燈明佛이 卽授其記하사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이 곧 그 사람에게 수기(授記)를 주었다. 수기를 주었다. 그러니까
요 사실들이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러했지만은 일월등명불도 똑같이 그러했는데 이 사실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법화경을 설하시고 곧 열반에 드시고 이제 이 걸로써 끝날텐데 고 직전에 수기를 주었다 하는 그 말이
수기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최후의 유언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수기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 엄청난 사실을 보증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기억으로 남기는 거예요.
기억으로 남기고 기록으로 남긴다.
그래서 기록할 기(記)자 아닙니까?
그 기(記)를 주고 그랬잖아요. 그 기록을 주고 그랬습니다.
요게 이제 문서화된 기록이든 또 말로만 하는 기억이든 간에
문서로 할 때는 기록이 되고 또 우리 마음에 기억시키는 것은 기억이 되고 그렇겠죠.
그래 부처가 된다고 하는 이 사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 여는 이제 덕장보살이라고 하는 한 사람에게 이야기한 것이지만은 내용은
‘내가 그동안 여러 가지 방편의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알고 보면은 여러분들도 똑 같이
나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그런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기에 보면은
告諸比丘하사대
고제비구(告諸比丘)하사대 여러 비구에게 고하사대
65.是 德藏菩薩이 次當作佛하리니 號曰 淨身多陀阿伽度 阿羅
시 덕장보살 차당작불 호왈 정신다타아가도 아라
詞 三藐三佛陀리라
하 삼먁삼불타
‘이 덕장보살이 이 다음에 성불하여 이름을 정신(淨身)다타아가도, 아라하, 삼먁삼불타라 하리라.’
是 德藏菩薩이 次當作佛하리니
이 덕장보살이 다음에 마땅히 부처를 지으리니
號曰 淨身多陀阿伽度 阿羅詞 三藐三佛陀리라
호(號)를 가로되 정신(淨身)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 아라하(阿羅詞)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하리라
그랬습니다.
정신여래예요. 다타아가도 라고 하는 것은 여래라는 말이고 아라하는 응공 삼먁삼불타는 정변지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이름은 정신(淨身)이고 그러면 이제
여래 응공 정변지는 모든 부처님에게 다 해당되는
그런 덕을 나타내는 이름이죠.
그래 정신여래 라고 이렇게 수기를 준 것입니다.
66.佛이 授記已하시고 便於中夜에 入 無餘涅槃하시니라
불 수기이 변어중야 입 무여열반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어 마치시고 그날 밤중에 무여열반에 드시었습니다.
佛이 授記已하시고
부처님이 그 기(記)를 주고 나서 마치고
便於中夜에 入 無餘涅槃하시니라
곧 중야(中夜)에 한밤중에 입무여열반(入無餘涅槃)하시니라.
무여열반에 드시니라
그러니까 열반에 들었다 이 말이요.
돌아가셨다 이 말입니다.
일월등명불이 그렇게 법화경 설하고 수기 주고
그리고 돌아가셨다.
그래요. 이 법화경 우리 지금 공부하는 이 법화경에도
일월등명불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수기(授記) 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리가 저걸 한 번 볼까요? 목차
저 앞에 있는 목차를 한 번 봐서 확인을 합시다 수기
目 次
妙法蓮華經(묘법연화경)
第一卷
1. 序 品 (서 품)
2. 方便品(방편품)
第二卷
3. 譬喩品(비유품)
4. 信解品(신해품)
第三卷
5. 藥草喩品(약초유품)
6. 授記品(수기품)
7. 化城喩品(화성유품)
第四卷
8.五百弟子授記品(오백제자수기품)
9.授學無學人記品 (수학무학인기품)
10.法師品(법사품)
11.見寶塔品(견보탑품)
12.提婆達多品(제바달다품)
13.勸持品(권지품)
第五卷
14. 安 樂 行 品(안락행품)
15. 從地涌出品(종지용출품)
16. 如來壽量品(여래수량품)
17. 分別功德品(분별공덕품)
第六卷
18,隨喜功德品(수희공덕품)
19.法師功德品(법사공덕품)
20.常不輕菩薩品(상불경보살품)
21.如來神力品(여래신력품)
22.囑累品(촉루품)
23,藥王菩薩本事品(약왕보살본사품)
第七卷
24. 妙音菩薩品(묘음보살품)
25. 觀世音菩薩普門品(관세음보살보문품)
26. 陀羅尼品(다라니품)
27. 妙莊嚴王本事品(묘장엄왕본사품)
28. 普賢菩薩勸發品(보현보살권발품)
서품(序品)이 있고 방편품(方便品)이 있고 비유품(譬喩品)이 있고 그 다음에 신해품(信解品)이 있고 그렇죠?
그 다음에 약초유품(藥草喩品)이 있고
그 다음에 수기품(授記品)이 있습니다.
수기품 이 전에도 수기 준 게 있었지만은
수기품이 있고 거기에 이제 여러 사람한테 수기 일러줘요.
그 다음에 또 8번에 보면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이 있어요.
특별히 또 오백 제자들에게 특별히 수기를 주는 수기내용이 있어.
그 다음에 또 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
이것도 수기품이야. 배우는 사람이나 배움이 끝난 사람 무학(無學)하면 다 배운사람 이런 뜻이고 학(學)하면 지금 배우고 있는 우리들 같은 사람 이런 말이야. 배우는 사람이나 다 배운 사람들에게 수기를 주는 품이 있어.
이렇게 이제 수기라고 하는 이름이 달려 있는 거만 해도
벌써 세 가지 품이라. 그런데 저기 넘겨서
한 번 더 넘겨서 20번 보면은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있어요.
상불경보살품 이거 여기에 와서는 이제
상불경(常不輕)이라고 하는 보살이 이 보살은 경도 안 읽고 참선도 안하고 염불도 안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하고
부처님에게 예배하듯이 그렇게 예배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이게 돼도 않은 사람이 와서
자기보고 뭐 부처님이라고 하니까
‘내가 당신 같은 사람에게 수기, 허망한 수기 내가 받을 필요 없다.’ 욕을 하기도 하고
또 심지어 때리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은 저만치 도망가서 또 큰 소리로 “그래도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하면서 또 아주 정말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하는 그런 이야기가 이 상불경보살품에 나와 있습니다.
이게 인간에 대한 최상의 신뢰입니다.
끝없는 인간에 대한 신뢰거든요. 그러면 인간을 얼마 만치 믿고 이해해주느냐?
부처님으로 믿고 이해해 주는 거예요. 그것이
법화경의 위대함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법화경의 사상이 그거예요.
그리고 부처님의 그 최후의 가르침이고 또.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가르침이
바로 법화경입니다. 그게 수기예요.
부처님
상상도 못하거든요 그 당시.
요즘 사람들은 뭐 선불교 영향 때문에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 하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어요.
또 우리 마음이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심즉시불(心卽是佛) 이런 법문도 수 없이 들어와서
크게 놀라지도 않고 신기한 일도 아니고
또 처음 듣는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은 이 법화경 설하실 당시는 이게 아주 놀라운 일이거든요. 정말 놀라운 일이예요.
그래서 이런 놀라운 이야기를 함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부처님으로 까지 믿고 이해해 주는 그런 최상의 신뢰를,
말하자면은 우리가 갖고 사는 게 이게
평화의 길이고 이것이 행복의 길이다 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정말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면은 저렇게 무슨 뭐 두 달 석 달 그렇게 촛불시위할 일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설사 그런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도 않을 거야. 서로가 그런 일이 없어. 서로가
서로가 그런 일이 없다고.
노사분규도 마찬가지야. 서로가 그런 일이 없어. 아예 데모할 일을 안 만들어.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니까.
사용자는 노동자를 부처님으로 생각하니까 모든 것 다 깨놓고 우리 회사는 이렇다 말이야. 이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 많이 생기면 많이 나누고 적게 생길 때는 좀 참고 어렵게 우리 살자 이런 식으로 되면은
그거 뭐 어떻게 분규가 일어날 까닭이 있겠어요?
그렇게 서로 이해한다면.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가정사나 뭐 어떤 개인과의 관계나 어떤 회사의 문제나 국가의 문제나 어떤 단체의 문제나 이것이 가장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열쇠가
아니, 최상의 열쇠이면서 하나뿐인 열쇠.
하나뿐인 열쇠입니다 이거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없어요.
그 하나뿐인 열쇠며 최상의 열쇠가
인불사상(人佛思想) 사람이 부처님입니다.
하는 이 사상이예요.
나도 사실은 인불사상을 정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주창을 하는 사람이면서 모든 사람들을 다 그렇게 부처님으로 잘 대해지진 안 해요. 그래도 한 번씩 내가
아 누가 뭐 이렇게 얻으러 오면은
얻으러 오면은 아유 내가 찾아가서도 줄 건데 여기 까지 왔으니까 하고 내 마음을 달래는 거야.
아니 내가 찾아가서도 줄 판인데 내 한테까지 찾아왔으니 고맙지 않느냐 하고 그러면 내 마음이 편안해져. 그리고 이왕 주는 거 기분 좋게 주고 그렇게 된다니까?
그러니까 멀리까지 우리 생각할 거 없고.
내가 처해 있는 한 가정, 나하고 늘 부대끼는 그런
가장 인연 깊은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
한 번 만이라도
아 저도 저래도 부처님인데 하는 그런 어떤 마음가짐
이것이 결국은 최상의 열쇠고 오직 하나뿐인 열쇠입니다.
인류평화를 가져오고 행복을 가져오는 하나뿐인 열쇠예요.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하나뿐인 열쇠가 오직 이게
인불사상이고 또 부처님의 최후의 사상이고
상불경 보살이 그걸 보여주잖아요.
때리면 맞기는 싫으니까 도망가 가지고
멀리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예배를 하면서
“당신도 부처님이십니다.” 하고 이런 모습이
이제 이 법화경 안에 있습니다.
그저께 여기 범어사에 행사가 있어서 어떤 스님이 오셨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법화경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운허스님이라고 역경(譯經) 우리나라 한글 번역하는데 최고 공헌이 많은 제일 공헌이 많은 운허스님.
이광수 선생의 6촌 형인가 되는 분이죠.
그래서 유명한 분이고 또 학문이 깊고 정말 그이는
보살행으로써 역경을 경전 번역을 많이 하신 분인데
불교를 경전을 제일 많이 본 분이지.
그래서 그 스님 밑에 공부할 때
만약에 한 권을 가지고
책 한 권을 가지고 평생 의지하고 평생 공부하고
또 불교의 전체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고
그리고 최고의 어떤 수준의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뭐 워낙 팔만대장경 많으니까
한 권만 가지고 평생 그렇게 공부하고 의지하는
그런 경전이 있겠습니까? 라고 하니까 대뜸 한 마디에
말이 떨어지자 마자 “법화경을 읽어라” 그랬대요.
법화경을 읽어라.
이광수 선생이 봉선사
자기 형뻘 되는 운허스님 계시는 봉선사에 와가지고
법화경을 번역할라고 한 번을 읽고 그 천재가
우리나라에 아주 천재로 아주 손꼽히잖아요.
한 번을 읽어보니까 아주 대단하거든? 그래 또 이거
번역하려고 두 번 읽어보니까 뜻이 또 깊은 거야. 처음에 읽을 때하고 또 달라 그래 세 번 읽고 네 번 읽고 아무리 읽어도 그 속에 담겨 있는 뜻을 자기가 이해하기가 너무 힘든 거야.
그래 무궁무진한 뜻이 담겨 있구나.
앞에서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 읽으니까 또 그보다 더 깊은 뜻이 또 있고, 또 있고 그래서 결국은 번역을 못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운허스님 모시고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런 이광수 선생의 이야기라든지 법화경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그런 등등의 이야기를 직접 많이 들었거든요.
또 역경원 하시면서 역경 연수생을 양성할 때
1기생으로 내가 또 들어가 가지고 역경 연수생으로
또 그 스님 밑에서 있기도 하고
또 그 전에 해인사에서 강의도 몇 번 듣고
그런 역사가 있어서 직접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은 그와 같이 불교경전의 왕이면서 최고 수준의 가르침이고 그 최고 수준의 가르침은 인불사상이다.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불사상은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부처님으로 이해하면은
가정의 행복, 회사간의 어떤 분규문제 해결, 또 국가에 있어서의 어떤 정치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고
정말 인류평화를 가져오는 하나뿐인
오직 하나뿐인 열쇠다. 내가 이렇게 표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법화경은
물론 실천하기는 쉬운 건 아니죠. 쉬운 건 아니지만은
그러니 이 법화경의 공덕이 오죽 하겠습니까?
대단한 거예요. 법화경 공덕이
그래 법화경 영험록만 해도 이 법화경 이거 몇 권 돼.
법화경 공부해서 영험을 받은 그 영험록만 해도
장경각 안에 가보면 이 법화경 몇 권 될 정도로 그렇게 양이 또 많아요. 그걸 일일이 내가 이제
한글본으로 나온 것들도 더러 있습니다. 소개를 안 해서 그렇지 상당합니다.
그 다음에 중야(中夜)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시니라 그리고
67.佛 滅度後에 妙光菩薩이 持 妙法蓮華經호대 滿八十小劫을
불 멸도후 묘광보살 지 묘법연화경 만팔십소겁
爲人演說이러니 日月燈明佛 八子-皆師妙光커든 妙光이 敎化
위인연설 일월등명불 팔자 개사묘광 묘광 교화
하야 令其堅固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시니 是諸王子-供養無量
영기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제왕자 공양무량
百千萬億佛已에 皆成佛道하고 其 最後成佛者는 名曰然燈이라
백천만억불이 개성불도 기 최후성불자 명왈연등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묘광보살이 묘법연화경을 가지고 팔십 소겁 동안 사람들에게 설하였는데,일월등명불의 여덟 왕자가 모두 묘광보살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묘광보살은 그들을 교화하여최상의 깨달음이 견고하게 하였습니다.그 왕자들이 한량없는 백 천 만 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나서 모두 불도를 이루었는데, 맨 나중에 성불한 분의 이름이 연등불(然燈佛)이었습니다.
佛 滅度後에
부처님이 멸도(滅度)한 후에 요건 이제 열반입니다.
멸도나 무여열반이나 같이 이제 열반에 드셨다
그런 말이예요. 이건 일월등명불이예요. 일월등명불이 열반에 드신 후에
妙光菩薩이 持 妙法蓮華經호대
묘광보살(妙光菩薩)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가지되,
가지되 했잖아요. 수지(受持) 처음에 가져야 돼
滿八十小劫을 爲人演說이러니
만(滿) 팔천소겁을 팔천소겁이 가득 찰 때 까지.
팔십소겁이라고 되어 있지 책에? 팔십소겁
여기 이제 책에 오자가 옛날 본엔 팔천이라고 되어 있는데.
팔십소겁(八十小劫)을 가득 찰 때까지 위인연설(爲人演說)이라. 사람들을 위해서 연설을 했다. 이거예요.
가져야 되고 가지면 읽게 되고 읽다보면 외우게 되고
외우다 보면은 쓰고 싶고
또 그러면 알게 되고
알면은 남을 위해서 설명 해 주는 거야. 여기 다 있잖아요. 연설이러니
日月燈明佛 八子-皆師妙光커든
일월등명 부처님의 팔자(八子)가 개사묘광(皆師妙光)이어든 저기 일월등명 부처님이 여덟 왕자가 있었다 그랬죠.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전부 묘광보살을 다 스승으로 삼거든
妙光이 敎化하야 令其堅固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시니
묘광보살이 그들을 교화(敎化)해서 영기견고(令其堅固) 그들로 하여금 그 여덟 아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견고하게 했다.
견고하게 했다 하는 말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상의 깨달음
최상의 깨달음에 대해서 요지부동의 위치에 또는 퇴전하지 않는 위치에 오르도록 했다. 이 뜻입니다.
견고라고 하는 말이. 견고하게 했다.
우리가 법화경 공부를 이렇게 참 다행스럽게 우리가 하게 됨으로 해서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
또 법화경에 대한 아주 깊은 믿음
‘아 나도 이제 법화경 이거 가지고 평생 공부해야지.’
정말 이거는 한 권으로써 경전 한 가지로써 평생, 아니 세세생생 의지하면서 공부해도 좋을 경전은 정말 법화경이예요.
금강경은 좀 부족해 사실은 금강경은.
금강경은 사실은 좀 단순해요.
그런데 법화경은 금강경에 비하면 양도 많을 뿐더러 그 내용도 훨씬 차원이 다릅니다.
是諸王子-供養無量百千萬億佛已에
시제왕자(是諸王子)가 공양무량(供養無量)
이 여덟 왕자, 팔왕자예요. 무량백천억불(無量百千萬億佛)에게 공양하고 나서
皆成佛道하고
개성불도(皆成佛道)하고 다 불도를 이루고 글자 뭐 어려운 거 하나도 없잖아요. 내 저 앞에 있던 거.
그래 우리 불교 신자들은 불교를 정상적으로 입문해서 정상적 코스로 공부해 가면은 금방 유식해진다니까? 삼년이면 아주 유식해져 버려.
워낙 우리 교재가
공부해야 할 교재가 팔만대장경이 우리 앞에 놓여 있으니까 그 가운데 뭐 백분의 일만 공부해도 아주 유식해.
공부 여기서 이제 법화경 공부 잘해가지고 어디 뭐
친구들이나 형제들 공부 안한 사람들 만나 봐요.
차원이 다르지.
이야기가 시시해서 같이 놀고 싶지가 안 해. (웃음)
아 그래 된다고. 금방 그래 돼요.
그 전에 은해사 승가대학에 있을 때, 승가 대학원 학인들 가르치고 있을 때 거기 대학교 나온 어떤 아가씨가 승가대학원 사무를 보고 있었어. 직원으로 들어와 있었는데
내 듣는 이야기가 법문이고 불교 이야기고
그 다음에 스님들이 하는 소리가 내 불교 이야기고
그러다 보니까 한 일년 근무하고 나서 친구들 하고 만나니까
시시해서 만나기 싫다는 거야 시시해서.
영 시시해서 만나기 싫다는 거야.
‘이야기도 그렇게 유치한 소리만 하고 그 유치한 소리가 그래 조타케쌌고.’(웃음) 그 소리를 내가 몇 번 들었어요 그 아가씨.
지금도 그때 우리 스님들이 모이면은 옵서버로 또 와. 쫓아와. 와 가지고 참례해. 오라고 또 그래 놨지. 니는 영원한 옵서버 자격을 준다 해가지고 (웃음)
그런 이야기를 내가 들었어요.
‘아 정말 내가 이상하게 됐는지 어떻게 됐는지 가아들이 이상한지 도대체가 이야기 수준이 다르더라’고
그래 됩니다 그거.
아 젊은 애가 학교 졸업하고 일년간 대학원 사무도 보고 스님들하고 내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법문 듣고 강의하는 거 듣고 그래놨으니까 안 그렇게 되겠어요? 3년이면 사람 달라진다니까 수준이. 그래 불교를 정상코스로 공부만 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其 最後成佛者는 名曰然燈이라
그 최후성불자(最後成佛者)는 이름이 연등(然燈)이다.
연등부처님 아시죠? 금강경에도 나오고.
자 이제 다시 정리하면 그렇습니다.
일월등명불이 이만부처님이 나왔다고 했어요.
그리고 최후 일월등명 부처님이 여덟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여덟 아들이 묘광보살이라고 하는
문수보살이예요 결국은.
묘광보살이라고 하는 이가 전부 가르쳤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도 무량백천만억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고 전부 불도를 이루었는데
그 여덟 아들 중에서 마지막 부처님이 연등부처님이고
이 연등부처님은 석가모니의 스승이었다.
그렇게 연결됩니다. 부처의 역사가 그래요.
일월등명불 이만불
그 가운데 마지막 일월등명불의 여덟 아들 중에
최후 아들이 연등불,
연등불의 제자가 석가모니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연등불은 지혜의 등불을 밝히다 태울 연(燃)자 하고 또 통해요. 불 화(火) 있는 연(燃)자하고도 똑같습니다.
그래 이제 이 이름을 우리가 연등축제((燃燈祝祭)
이렇게 쓰는 거야.
그러면 이 등불이라고 하는 게 뭐겠습니까?
지혜의 등불을 밝히는 일입니다.
그래 절에서 예를 들어서 뭐
인등을 켜거나 초파일에 등을 달거나 하는 것이
전부 이 연등부처님 이야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것도 좋잖아요.
이 이야기 하나만 알아도 어디
집에 가서 이야기할 거리 되잖아.
‘아 초파일에 등 키는 것도 과거에 일월등명부처님이 이만부처님이 계셨고, 이만 부처님 중에서 제일 마지막 부처님이 또 여덟 아들이 있었어.’
성불한 사람은요 전부 장가가 갖고 아들 많이 놓고 그것도 여덟 명씩이나 낳아야 성불해 (웃음)
안 그러면 자격이 없는가봐.
그래 여덟 명이나 낳아서 그 중에 또 아버지가 출가해서 성불했다는 소리 듣고 이 여덟 왕자들이 다 출가 했잖아요?
그 다음에 이제
고 중에 마지막 아들이 성불해서 연등부처님이 됐다.
그래서 우리가 등불 켜는 것도 전부 거기에
근거를 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신라 때부터 등불을 밝히는
연등회(燃燈會)가 있었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초파일에 등불 밝히는 것이 바로 거기서 출발 한 겁니다 이 연등에서. 법화경 공부하면 그런 불교 그런 상식도 다 알아진다니까.
그래 지혜의 등불을 밝히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그거는 모양도 없고 뭐 어떻게 잘 이해도 안 되고 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등불을 우정 이런 등을 달아놓고 밝히는 거야.
이렇게 하면서 그 생각을 하도록 하는 거지.
아 내 마음에 등불을 밝힌다.
어두울 때, 지금 전기 있으니 그렇지 전기 없을 때는
등불 하나 밝히면은 어두운 길 다 갈 수 있거든요.
어두운 인생, 괴로운 인생, 비 맞고 눈보라 치고 하는 그
우여곡절의 인생을 뭘로 우리가 헤쳐 나가겠어요?
지혜로써 헤쳐 나가는 거야.
내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혜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된다? 부처님한테 와서.
부처님 공부하는 데 와서 부처님 지혜를 배워가야 돼.
그래서 부처님 지혜를 빌어서
그 어둡고 질곡이 많은 그런 인생의 길을 밝혀가는 거죠.
이거예요 불교라는 게 간단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