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인도불교철학/철학과/2017101236/김지수
나는 철학을 함에 있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서 자유로움, 자유롭지 않음을 만든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틀, 프레임, 패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틀리지 않았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겠지 하는 것. 혹은 이럴 땐 이런 생각을 떠올려내야 하기 때문에 떠올리는 것 등이 될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그런 것에 갇혀 사고하는 것은 자유롭지 않음이고, 그런 것에서 벗어나 사고하는 것은 자유로움인 것이다.
내가 이런 틀이나 패턴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누군가 나를 보면서 손을 흔드는 것이 나를 보며 인사하는 것 이라고 생각 하는 것, 뭐하냐는 질문이 정말 뭐하는지만 듣고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닐수도 있음을 이미 알고있는 것 등 또한 그런 패턴에 들어간다.
손을 흔드는 행동을 보고 그 행동에서 시작해 의미를 찾았기 보다는 내게 익숙한 행동임을 알기에 그 행동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 판단의 근거였고,
뭐하냐는 질문은 맥락이 없음에도 경험에서 맥락을 떠올린 것 때문이다.
내 판단의 근거는 지금 눈 앞의 일이 내 기억과 경험과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한 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패턴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틀을 전부 벗어재껴 사고하자는 것은 아니다. 틀과 패턴은 분명 장점이 있다. 상대방의 인사를 바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처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면서 빠른 반응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것들까지 패턴이고 틀일 수 있음을 짚은 것은, 이런 것들이 패턴이나 틀일지도 모른다면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에는 또 얼마나 많은 틀이 있을까 하는 부분을 짚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것들 또한 내가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게 된 것들이라면, 평상시의 내 사고에서 내가 놓친 패턴들 또한 있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정말 많을지도 모르겠다. 문화적인 이유나, 언어적인 이유로 인해서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인도불교철학에서 배운 자유사상가들의 내용은 나에게 있어 많이 존경스러운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 당연하게 믿어지고 당연하게 받아졌던 생각들을 부정하고 정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 위에서 처음부터 새로 사고하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도덕적 인과관계, 그 당시의 정당성, 그 당시에 당연한 것들에 갇히지 않고 사고함이 내 마음에 들었다.
손을 흔듦이 반드시 인사는 아닐 수 있음을 알고 내게 보인 것 부터 시작해 사고하는 것 같았다.
첫댓글 "지금까지 틀리지 않았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겠지 하는 것. 혹은 이럴 땐 이런 생각을 떠올려내야 하기 때문에 떠올리는 것 등이 될 것 같다." 이렇게 편하지 않아야 할 듯한 수단으로서의 틀, 패턴, 도구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게 거꾸로 진리를 향하는 우리의 사유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의 내 사고에서 내가 놓친 패턴들 또한 있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 곧 평상시 사고의 틀에 갇혀서 진리를 포착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이중 부정어인 neti, neti(아니고, 아니다)를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