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피고 변호하던 변호사, 감춰졌던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죽을 고생
판에 박힌 법조인 틀 깨는 파격적 캐릭터의 밉지 않은 친근함, 현실감 높여
이선균 주연의 ‘성난 변호사’(감독 허종호)는 여러 모로 그의 전작 ‘끝까지 간다’를 연상시킵니다. ‘끝까지 간다’가 생각지도 않던 대사건에 좀 억울하게 휘말려든 형사의 필사적 몸부림을 그렸듯, ‘성난 변호사’는 살인 사건 피고를 변호하던 변호사가 감춰졌던 거대한 음모에 본의 아니게 휘말려 벌이는 아찔한 활극을 펼칩니다.
- '성난 변호사'의 변호사 변호성(이선균)은 두뇌가 비상하고, 맡는 사건마다 100% 이기는 에이스 변호사. 그러나 외양부터 성격까지 통상적인 '성실하고 유능한' 법조인 혹은 정의의 사나이와는 좀 거리가 있다. 판에 박히지 않은 이런 캐릭터는 친근함과 현실감을 더 높인다.
이 살인사건의 검사는 공교롭게도 검사 시절부터 잘 아는 여자 후배인 진선민(김고은)입니다. 진선민 검사의 반론에 맞서 치밀하게 반박하며 승리를 믿어갈 무렵, 놀랍게도 피고가 법정에서 “내가 살해했다”고 자백하는 사태가 터집니다. 이게 웬일일까. 변호성은 일대 위기를 맞습니다. “변호사가 재판에서 이기려고 증거를 조작한 것 아닌가”하는 의혹까지 받습니다. 사건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니 비밀스런 일이 충격적으로 드러납니다. 법정 드라마처럼 시작했던 영화가 액션 활극이 되어 갑니다.
‘성난 변호사’와 ‘끝까지 간다’가 스토리의 골격 못지 않게 결정적으로 닮은 부분이 또 있습니다. 판에 박은 형사·변호사와는 다른, 튀는 캐릭터의 사내 역을 이선균이 특유의 개성적 연기로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엔 지하철 추격 신등 스피디한 액션 신들도 펼쳐지지만, ‘성난 변호사’의 첫 번째 재미는 ‘변호성 변호사’라는 캐릭터의 알 수 없는 매력입니다.
그는 두뇌도 최고 수준이고, 대검 중수부 검사를 지냈으니 경력도 최고이며, 맡는 재판마다 100% 이기니 승률도 최고인 에이스 변호사입니다. 그러나 외양이나 행동거지는 판에 박힌 엘리트 법조인의 모습과는 영 딴판입니다. 수트에 흰 운동화를 신고, 선글래스를 즐겨 쓰며 늘 캐주얼 백팩을 메고 다닙니다.
그를 고용한 기업 관계자가 법정에서 변호성의 튀는 행동을 보고 “어디서 저런 또라이를 보냈느냐”고 화를 낼 정도였습니다. 변호성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이 친구가 생긴 건 이래도 일은 확실히 한다”고 하니, 생긴 게 확실히 문제는 있다는 이야깁니다. 변호성은 “나 이런 사건 맡았다가 뒤통수 맞는 거 졸라 싫어해”같은 말을 쓰기도 하고, 나쁜 놈들의 행동에 분노하면 “개 새끼”라고 씹어뱉습니다. 더 흥분하면 “×발 놈아 나도 너 도우려다 ×됐어”같은 고강도 욕설도 서슴지 않습니다.
- 변호사 변호성(이선균)이 살인사건 피고의 변호를 맡고 보니 법정싸움 상대인 검사가 잘 아는 법조계 여자 후배인 진선민(김고은)이다. 선-악 세력끼리의 활극과 별도로 두 남녀의 톡톡 튀는 싸움도 이어진다.
‘성난 변호사’는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점점 큰 일들을 하나 둘씩 터뜨립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 반전도 있습니다. 재미의 핵심은 범죄 스릴러적 긴장감보다는 엄청난 사태에 휘말려 가는, ‘못 말리는 변호사’가 영리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펼치는 별난 활약들입니다. 변호성은 늘 근육을 쓰기보다 잔머리를 굴립니다. 지하철에서 자신을 추격하는 악의 무리를 절묘한 아이디어로 따돌리는 대목은 잔머리의 극치입니다.
- 영화에서 변호사 변호성(이선균)은 살인사건 피고의 변호를 맡았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거대한 음모와 마주쳐 죽을뻔한 고비까지 겪으며 모험을 하게 된다. 법정 드라마처럼 시작했던 영화가 액션 활극이 되어 간다.
이선균의 독특한 연기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목소리가 성우 같고 너무 극적이어서 캐릭터에 힘을 주거나 정형화된 연기를 하면 관객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고 어딘가 꾸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캐릭터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방법을 파고 파고 또 판다. ‘왜 깡패는 저런 톤으로만 얘기해야 하나? 술 취해 휘청거리는 남자는 양주 대신 소주 마시면 안되나?’하고 끊임없이 의문을 가집니다.” 이선균은 ’성난 변호사‘의 캐릭터를 빚어낼 땐 가볍고 뺀질대지만 결국은 법조인으로서 전문성을 드러내 관객을 매혹시키는 쪽으로 연기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빚어진 이선균식 연기가 연기에 현실감을 불어 넣었다고 봅니다. ’끝까지 간다‘에서는 이선균이 형사 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죠. 어느 모로 보나 그의 목소리도 체격도 일반적 형사 이미지와 거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에선 형사 같지 않은 형사가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그런 현실감이 이선균 연기의 무기입니다. 물론 그 자신도 스스로 걱정하듯 튀는 형사·변호사 캐릭터도 자꾸 반복하다간 질릴 수 있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