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인 이창열 씨(1940년생)는 1958년도에 고향 대구에서 대학에 들어갔다가 1960년대 초에 졸업한 사람이다. 그가 대학에 다니던 시기엔 어떤 노래들이 유행했을까?
“5.16 직후인 1963년도에 군 제대하고 나오니까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한창 유행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입대하기 전엔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운운하는 노래하고, 왜 그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이런 노래들이 젊은 층에서 유행을 탔지요. 그땐 사회적으로 이젠 제발 좀 명랑한 노래를 부르자, 그런 운동이 전개됐거든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같은 전쟁의 상흔을 상기하는 노래나 ‘애수의 소야곡’ 풍의 애조 띤 노래는 이제 그만 부르고, 명랑하고 활기찬 노래를 부르자는 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얘기다. 그 운동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노래가 바로 ‘…어여쁜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 그윽이 풍겨주는 포도향기 / 달콤한 첫사랑의 향기…’ 이렇게 이어지는 ‘청포도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선민의식이 강했던 대학생들이, 일반 대중가요에 만족할 리 없었다.
-야, 명색이 대학생이라카면서 앵두나무 우물가에…그기 뭐꼬? 좀 근사한 노래를 불러봐라.
-뭐라? 근사한 노래? 니 요즘 음악 감상실인가 뭣인가 하는 데로 무슨 샹송인지 칸초넨지 들으러 댕긴다카던데 정말이고? 내는 그런 음악 안 좋아한다.
-그럼 팝송은 좋아하나? 우리 하이마트에 갈까?
-뭐하는 덴데? 거기 가면 팝송 들을 수 있나?
-촌놈 같으니라고. 가자. 내 구경시켜 주꾸마.
이렇게 해서 이창열은 난생 처음으로 친구를 따라서 음악 감상실이라는 데를 가봤다는데, 서울에 ‘쎄시봉’ 등이 있었다면 이창열 씨가 대학을 다녔던 대구에는 ‘하이마트’라는, 음악 감상을 전문으로 할 수 있는 다방이 있었다. 주로 대학생들이 흑인영가나 아메리칸 포크송 계열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그 곳을 찾았다고 한다.
음악 감상실에 들어서자마자 이창열은 그만 귀를 틀어막았다.
-아이구야, 고막 떨어지겠네. 그런데 지금 저게 무슨 노래고?
-무식한 친구야, 폴 앵커의 ‘다이아나’도 모리나.
“그 하이마트라는 다방에 들어가니까 의자가 서로 마주보게 배치돼 있는 게 아니라 극장식으로 앞을 향해서 일렬로 죽 늘어서 있었어요. 앞쪽에 놓은 라운드 스피커에서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굉음이 쿵쾅거리고…. 차 심부름 하는 여자가 종이쪽지를 죽 돌리더라고요. 신청곡을 적어내라고….”
그를 데려간 친구가 이창열의 이름으로 쪽지에다 신청곡을 써서 건넸다. 이윽고 음악이 끝났다. 디스크자키가 마이크를 켰다.
-오늘도 저희 하이마트를 찾아주신 손님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은 이창열 씨 외 세 분이 신청해 주신 킹스턴 트리오의 ‘탐 둘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1958년에 발표한 이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해온 이 포크송은, 남북 전쟁에 출전했다가 그 사이에 애인이 변심을 하자, 결국 사랑했던 연인을 살해하고 교수형에 처해졌던, 한 남자의 비극적인 운명을 담고 있는 노랩니다. 여성 여러분, 군대 간 친구 있거든 고무신 거꾸로 신지 맙시다. 자, 노래 나갑니다. 탐 둘리!
내가 옛 시절의 음악다방 얘기를 듣기 위해 이창열 씨를 만났을 때, 백발성성한 그가 술잔을 기울이고 나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대구의 음악다방에서 처음 들었다는 바로 그 ‘탐 둘리’라는 노래였다. 하지만 젓가락 장단에 맞춰가며 부르고 듣기엔 그 내용이 자못 비극적이었다.
Hang down your head Tom Dooley / hang down your head and cry…/ Poor boy, you're bound to die…
(고개를 숙여라, 탐 둘리 / 고개를 숙이고 울부짖어라…/ 불쌍한 녀석, 너는 죽음을 피할 수 없어…)
이상락 소설가
Tom Dooley - Kingston Trio
첫댓글 하이마트가 아직도 있구나.
녹향.하이마토 고딩때 단골손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