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31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쇠하고 마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듯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데 어찌 잠시 후면 사라지고 없어질 것에 이리 목숨을 거는지요.
잠시 잠깐 후면 없어질 안개와 같은 육신적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생명에 나를 던지게 하소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오니 그 안에 나를 던지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육신으로 살고자 하는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요 영적 하루살이로 사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고전 13:8-13
제목 : 쇠락의 법칙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생명.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나의 묵상
예언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방언도 있다가 그치며 지식도 사라질 것이지만 사랑은 결코 떨어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지만 완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유치한 것을 다 버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해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처럼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12장에서 언급한 각종 은사들은 만물 안에서 한계를 가지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만물 안에서나 만물 위에서 영원한 것임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예언과 방언 그리고 지식 등의 선물은 쇠락의 법칙에 의해서 쇠하고 그치고 없어질 것이다.
(벧전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그러나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은 위로부터 오신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주는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밖에 없다(벧전 1:4, 23-25; 고전 13:8).
어린 아이가 어렸을 적에 갖기 원하는 것은 그 어린 나이에 걸 맞는 장난감이나 인형과 같은 것들이다.
그 나이에는 목숨 걸고 갖고 싶어하던 것이라 할지라도 어른이 되면 그 때 갖고 싶던 것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이 땅 곧 만물 안에서는 청동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지만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과 같으며, 또한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알게 될 것이다.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영원히 있을 것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사랑이다.
우리 큰 아들 은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부산 화명동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은수를 데리고 화명동 롯데마트에 갔었다.
당시는 마그넷몰이라고 했는데 그곳 2층에 장난감 코너가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 은수가 장난감을 사내라고 주저앉아서 떼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그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줬다.
그런데 우리는 롯데마트에 가면 최대한 조심해서 장난감 코너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은수는 롯데마트에만 가면 어느 새 쪼르륵 그 코너에 들어가 앉아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장난감을 사주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사주지 않으면 주저앉아서 온갖 생떼를 부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아이가 고등학생 쯤 되었을 때 그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그렇게 그런 장난감이 갖고 싶니?’ 하고 물었더니 피식 웃으면서 ‘제가 뭐 어린 애예요?’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분명하게 보고 알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눈으로 보는 이 세상 곧 만물 안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만물 위의 세계 곧 창세전의 세계이다.
비록 이 땅에서 살지라도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음을 통하여 얻는 영생 그리고 영원히 쇠하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는 것, 그리고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아들 곧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대하여 크게 오해한 자였다.
이는 곧 영생을 오해한 것이다.
영생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극히 사전적 의미로만 알았고 또한 죽어서 가는 천국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생이란 성경에서 잘 설명하는 것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하나님의 유일하심은 히브리어로 ‘모나드’라고 하는데 이는 숫자적인 하나의 의미를 넘어 영원성 통일성 초월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인데, 아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존재이신 말씀으로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이 교제와 사귐은 부부가 서로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나 가족끼리 서로 교제하며 사귐을 갖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지식적으로 아는 앎은 실은 아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내가 대통령을 아는 것은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아는 앎이 아니라 지식적인 앎으로 제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앎은 아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로서의 복음인 말씀으로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갖지 않으면 죽어서 가는 천국 외에 다른 영생의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비록 이 땅에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살지만, 날마다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이것이야말로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요 또한 진정한 영생이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나를 일으키는 순간이며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영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름다운 5월의 마지막 날을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으로 시작하는 이 마음은 천국을 누리는 은혜의 시간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 만물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상징이요 모형과 그림자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육신으로 사는 이 땅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며 모형과 그림자이기에 어린 아이가 그 나이에 맞는 수준의 것을 구하듯 나 또한 잘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땅의 것에 치심하곤 하였나이다.
이런 어리석은 자를 끝까지 내치지 않으시고 참으시며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에 나의 생명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영원한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심은 우리 주님의 사랑만이 영원한 생명을 잇게 하는 복음 중에 복음임을 믿습니다.
그 사랑에 겨워 주님과 한 몸 되기 원하오니 이 종을 주의 사랑 안에 가두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