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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8호
호주 시드니에서 온 백 스물 세 번째 편지
맞고 난 후 깨달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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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나 군대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도 80년 6월 2일 날짜로 조국의 부름을 받고 군복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었습니다. 내가 군대에 갔을 그 당시는 그 유명한 80년 민주화의 봄바람이 불던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이 매우 불안정한 때였습니다. 사회적으로 불안전한 때였기 때문에 군대에도 비상이 걸리고 모든 군인들은 휴가는 물론이고 외박까지도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그랬기에 군인들은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좋게 보질 않았습니다.
대학생이었던 내가 군대에 가자 고참들은 마치 내가 데모를 해서 자신이 휴가를 못 간 것처럼 그 화풀이를 신참들에게 다 풀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또 누구에게 맞았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로 수 없이 맞았습니다. 사회에서는 한 대도 맞아 본 적이 없는 내가 그런 수많은 구타를 잘 견디어 냈다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 말고도 군대에서 안 맞아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 군대는 구타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옛말에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군대에서 밥 먹다 말고 맞아 본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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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대기 두 개를 달고 군 생활을 하던 중 서울 근처에 있는 산에 파견 근무를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근무하는 병사가 3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쌀 같은 기본적인 주식 외에는 부식이 보급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식비가 따로 보급되고 또 그 돈을 가지고 시장에 나가 찬거리를 사다가 직접 반찬을 해 먹었습니다.
처음 그곳을 간 날, 상병인 고참이 “오늘부터 부엌일은 졸병인 네가 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사회에 있을 때 밥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별 염려 하지 않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부엌에는 배추와 함께 김치 담글 재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하라면 하는 것이지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감히 고참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배추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집에서 김치를 담그시던 어머니 모습을 생각하며 김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추를 깨끗이 썰어서 씻고 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새우젓까지 넣고 비볐습니다. 내가 보아도 맛있게 비벼졌고 색깔은 아주 맛깔스럽게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나는 고참들에게 김치가 맛있다고 칭찬을 듣고, 또 점수를 따서 군대 생활을 좀 편하게 해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김치를 먹던 고참에게 나는 밥 먹다 말고 죽어라 맞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김치가 뻣뻣해서 먹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참은 그곳에 온 나를 군기를 잡아야 하는데 마침 좋은 건수를 잡아 신나게(?) 때렸고 나는 왜 김치가 뻣뻣한지도 모른 채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았습니다.
얼 차례와 함께 수없이 맞고 난 후에야 나는 김치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들은 보통 ‘소금으로 배추를 죽인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소금으로 배추를 먼저 죽였어야 했는데 그만 소금에 죽이지 않고 그냥 깨끗하게 씻어서 양념을 넣고 비비기만 한 것입니다.
배추를 죽인다는 의미는 배추를 절인다는 의미입니다. 배추를 물에 담가 소금으로 절린다음 몇 시간이 지난 뒤 배추를 씻고 양념들로 배추를 비볐어야 했는데 나는 배추를 절이는 단계를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 일찍이 배추를 절이는 것에 대해 알았다면 그렇게 맞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 맞고 난 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의 의미를 나는 군대에서 죽어라 맞고 난 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이 말씀 속에는 수많은 진리들이 담겨져 있지만 우리가 쉽게 지나쳐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인들이 소금으로 나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뻣뻣하게 살아 있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여진 나로 인해 뻣뻣하게 살아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을 복음으로 녹아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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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또 쉽게 지나쳐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금은 소금인데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교회에서 죽어져 세상에 나가 하나님을 향해 뻣뻣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세상 세상들을 복음으로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는 죽어 놓고 교회 문을 나설 때는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와 뻣뻣하게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와서도 죽지 않고 마치 자기가 주인인 양 뻣뻣하게 교만의 고개를 쳐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말씀으로 죽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세상에서는 살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향해 “저 사람 기독교인 맞아?”라고 조소 어린 비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그뿐 아니라 교회에서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어 있지 아니하고 나 자신이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나 자신을 죽입시다. 이 진리의 사실을 맞고 난 후 깨닫지 말고 맞기 전에 깨달읍시다. 맞고 난 후 깨달으면 결국 자기만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3:5-6)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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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맞고 나서라도 깨달았으니 축복입니다. 깨닫는 토요일 밤이되시고 주일을 신실히 지킵시다.
고맙습니다 맞고나서라도 깨다달을스있게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된주일되세요 ...
은혜가 됩니다.감사합니다.
시간, 시간 하나님 은혜 를 깨닫게 하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