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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추수감사주일 이네요.
제가 최근에 이스라엘 성지를 다녀 왔어요.
성탄 축하 성지제작을 하느라고 지니진인가 이쪽에서..시내산까지 다니면서 빙빙 돌려가면서 찍느라고 죽을 뻔 했습니다.
아이고, 거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마터면 체포될 뻔했어요.
광야에서 막 찍고 있는데, 군사보호지역이라고 군인들이 와가지고,이집트에서.
제가 10년전 쯤 갔었는데 이집트를 가서 보고 놀랜게,
3500년전 모세때 이집트는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근데 지금 이집트는 정말 못삽니다.
제가 그걸 보고 ‘역사가 이렇게 퇴보할 수도 있구나!’
그 때 만들어논 피라미드를 지금도 수선을 못하는, 기술이 안되가지고,
거기도 현대 포니를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에 다시 가보니까
1500cc이하 소형차 70%가 국산차입니다. ‘현대’ ‘기아’ ‘대우’가 이집트를 쫙 깔아버렸어요.
근데 더 놀란건 지금도 포니가 돌아다니는 거예요.
30년도 더 넘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저게 한국에서도 못하는데 했더니
첫째 포니는 고장날 게 없대요. 뭔 장치가 없어가지고, 엔진하고 바퀴하고만 있고,
차가 간단해서 고장날 것이 없고, 부속은 주물딱 주물딱 만들어서 넣으면 된다는거예요.
지금도 또 다니는 것에 놀랐고요. 한국차를 다 깔은것에 놀랐고요.
참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서 열심히 애를 쓰고 사는구나! 하는걸 느꼈고,
이집트로 넘어가면 참 신기한게, 제 느낌이 그런지는 몰라도
참새도 이집트 참새는 빼짝 말랐고, 이스라엘 참새는 통통하고 그래요. 참새도,
그러니까 나라가 못사니까 새도 불행하다, 새도,
이스라엘은 잘 사는데, 다 내내 중동 아랍 국가들인데,,
그런데 신기한게 이집트나 요르단이나 비슷해요. 삶이.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은 좀 달라, 같은 중동인데 왜 다른가 봤더니.
이스라엘은 흩어져서 세계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다 왔어, 그러니까 때깔이 틀려,
잘살고 못살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자체가 틀려져 버렸어요.
제가 거기서 느낀게 ‘아하! 흩어져 사는 불행은 있었지만,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우수민족이 됐구나!’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남한에 그냥 살지요.
이북에서 피난오신 분들은 상당히 어려웠죠.
정주영 할아버지가 남한으로 내려올 때 소한마리 값 가지고 내려왔어요,
그 때 남한에는 부자가 참 많았습니다.
소 한 마리가 뭡니까? 집도 있고 논도 있고 밭도 있고,
근데 소 한마리 값가지고 온 정주영씨는 저 부자될 때,남한의 부자들은 뭐했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가짐의 문제’가 아니고 ‘살아가는 자세’의 문제다.
피난민들 비교적 잘 살아요. 왜그러냐면 정신력이 좋아요.
피난민도 잘 살지만 더 잘사는 게 ‘화교’입니다. 화교 못사는 것 봤어요?
왜 남의 나라에서 내돈 없으면 죽는다는 그 정신이 잘 살게해요.
그러면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도 세계에 흩어져서 그 정신으로 다 잘 산다는 거지요.
그렇게 세계 흩어져서 잘사는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니깐 같은 아랍권인데도 수준이 너무 다른거예요.
때깔도 다르고, 경제력도 다르고 뭐 이집트 게임도 안되겠어요.
군대라고 해봐야 우리 공수부대 1개 소대만 데려가면 먹어버리겠어요.
그게 뭔 군인이라고, 부대라고도 뭐 없어요.
기관단총 하나 초소에 세워 놓았는데, 그까짓거 우리 공수부대 두명만 데리고 가면 그냥 먹어버리겠어요.
그러니 이스라엘은 핵을 가지고 있으니 전쟁이 안 될 수 밖에 없겠더라고요.
‘아! 그래서 흩어져 가는 단점 속에 저렇 강대국이 되어갔다는 장점이 있구나!’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난 곳 나사렛, 베들레햄, 요단강, 광야 이런데 보면 굉장히 초라해요.
어떻게 보면 주님은 의도적으로 초라한데를 골라 다녔던것처럼 사셨어요.
그런데 그걸 보고 느낀 건,
주님은 ‘현상중심의 삶’이 아니라 ‘본질중심의 삶’을 사셨구나 그것이 현격하게 느껴져요.
근데 지금은요, 얼마나 이스라엘에 성전이 많은지, ‘눈물 방울 교회’..
하여간 기념되는 곳마다 다 교회를 지어놓았어요.
근데 너무너무 잘 지었어요.
세계적인 설계사가, 세계적인 건축사가 세계적으로 잘 지었어요. 작품입니다. 작품.
하나만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 국회의사당위에 돔있죠, 돔, 고런 것이 많은데 건축양식에,(놀라지도 않는거봐,금이라니까!)그걸 다 금으로 칠해버렸어요.
가서 집을 다 뜯어보면 금이라니까. 순금
그렇게 화려해,건축도 좋아, 그런데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현상은 무지무지 좋아졌는데 본질이 없어,
이렇게 말하면 심할지 몰라면, 내가 단연코 예수님 안 계셔, 떠났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떠나셨다고,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본질를 중심으로 사시고 역사하셨던 주님의 시작이 결국 현상으로 끝나는,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영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마치려는가?’
때로 한국교회가 자꾸 본질 중심의 삶에서 현상중심의 삶으로 자꾸 탈바꿈해가고 있지 않냐?
내가 부정적인 소리를 하는게 아니고 바른소리라고 좀 들으면 좋겠어요.
깐다고 하지말고 바른말을 한다.
까는 것과 바른말은 좀 다르잖아요.
‘깐다’ 그거하고 ‘바른말을 한다’ 그것은 좀 다른 겁니다.
교회가 천막을 쳐서 부흥되는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왜냐면 천막이 있는데 부흥이 되는건 현상을 보고 오는게 아니고 뭔가 그속에 은혜가 있기 때문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근데 잘 지어서 부흥이 되는 교회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건,
교회가 좋아서 부흥되는 것은 현상의 부흥일 수가 많다는 거죠.
참 교회가 좋아서 부흥이 되는데,
그 속에 뭐가 없어져가냐면, 은혜가 없어져가고 변화가 없어져가고,
근데 우리가 그것을 자꾸 착각을 해 간다는 것이지요.
붓는 것과 살찌는 것은 좀 다릅니다.
우리가 자꾸 부어가고 있는데 자꾸 살쪄가고 있는 양 착각을 합니다.
한국교회는 부어가고 있습니다. 살쪄가고 있는 게 아니여요.
까는게 아니여, 목사님 그게 까는게 아니여? 그럼 까는거여.
오늘 추수감사예요.
감사예배가 다 그만두고 감사하시기를 바래요.
근데 이게 감사예배가 어느순간부터 어느 순간부터 부담스러워지면,
‘아~ 씨 뭐 또 추수감사여 이거 골치아프네, 누가 농사지어 요새, 감사하게’
추수감사예배는 괜찮은데, 감사절 봉투 다 나눠졌잖여, 지난주에.
교회도, 성도도 감사한 마음, 그러니까 여러분이 봉투에 얼마를 넣던 간에 그것은 현상이죠.예물을 담는 마음은 본질인데,
나는 그 현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여러분 마음 속에 지난 한 해동안 지켜주심에 대한 주님의 감사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감사한 마음이 본질이고 감사 예물은 현상인데, 예물의 현상이 부담으로 와닿는다는 것은
예물의 현상의 부담이 문제가 아니고 감사하는 마음의 본질이 없어졌다는 거지요.
여러분 기도도 잘 분석을 해보면,
본질기도는 없고 현상기도만 있어요. 기도자체가 거기서부터 잘못돼가고 있는 거예요.
기도자체가,
“주님, 감사하는 마음을 제게 주옵소서,주님,기쁨을 내게 주옵소서,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 주옵소서” 이런 기도는 거의 없고
“그 건물을 꼭 팔아주시옵소서, 831부동산 정책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전에 아파트 한 채를 정리해 주옵소서”전부 그런 기도예요.우리 기도가 " 이번에 꼭 애기 합격시켜주시고, 우리 남편 진급을 이번에 kbs에서 좁은문이지만 관철시켜주옵소서"
나쁘다는게 아니에요. 교회를 잘 짓는게 나쁘다는게 아니에요. 헌금을 많이 하는게 나쁘다느게 아니에요.
다 좋은데 중요한 건 그속에 본질이 있냐는 것이지요. 본질,
성전을 잘 지은다는게 나쁘다는게 아니에요.
근데 그속에 예수님이 계셔야지요.
금덩이로 두른 집 속에 예수님이 계셔야 되는데 예수님은 안 계시고 입장료로 유지하는 그 교회에 주님이 계시냐는 거예요.
과연 한국교회가 나중에 교회 관람비로 유지하는,
절간 다 썩었어요.
절간은 시주로 유지되야 하는데 절간은 입장료로 유지합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현상을 추구하는 종교는 다 썩어져간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본질 속에서 나오는 현상이 본질이 빠져버리면 현상만 딱 남더라 이거지요.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결혼하는 것은 현상이죠.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해야죠.
“야 잘봐라, 그 남자 앞을 못보는 것 같더라” “괜찮아, 내가 그의 두눈이 되어주리”
“야,너 잘봐 그남자, 손이 없는 것 같아” “괜찮아, 내가 그의 손이 되어주리”
아무 문제가 없는건 ‘사랑의 본질’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근데 문제는 이 본질이 빠지니까. 이제 보이는거여, 앞 보이는 것이 보이는 거여
그러면서 그래, “아니 앞을 못보더라고?”
‘아니,언제는 봤어?’
아무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 빠져버리는 ‘본질중심의 삶’
제가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시간은 적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말주변이 없거나 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 얘기 했다 저 얘기 했다 다 해주고 싶은 얘기야.
왜 여러분 한사람의 사상이 바뀌면 가서 파급되는 효과가 많을 것 같아서 그래요.
라디오를 하던 피디를 하던 간에 그속에 멘트를 한마디씩 넣을 때,
본질 멘트가 나가야 된다 이말이여, 적어도 kbs에서는,
쓸데없는 현상소리 하지말고, 본질소리를 하라 이말이야,
현상도 꼭 나쁜건 아니예요, 그렇지만, 본질이 있는 현상이 나와야지요.
본질도 없는 뭐 남편이 반지를 사다주니까 좋아요.거 좋아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랑해서 사주는 반지가 좋지, 바람펴서 미안해서 사다주는 반지가 뭐가 좋냐 이말이요.
그러니까 현상만 기뻐할 게 아니라 그 현상에 본질이 있냐 그게 중요해요.
모세가,
느보산에서 보면 바로 앞에 요단강이 보이고,좌측으로 사해가 보이고 바로 가나안땅이 보입니다.
느보산에서 모세가 여호수아를 딱 보내요.
200만 여호수아를, 본인 혼자 거기 남습니다.
모세는 굉장히 기뻐해요.
참 그래서 모세는 훌륭하다. 왜냐면 모세는 후계자를 잘 세웠어요.
그게 굉장히 성숙한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후계자 꼴을 잘 못봐요. 그러니까 후계자를 잘 안 세워요.
이 민족의 특성입니다.
왜냐하면 그 놈이 치받고 올라오니깐, 그래서 직장에서 절대 후배를 안키웁니다.
왜냐하면 후배가 웬수거든, 후배가 적이예요, 경쟁자이고.그러니까 안키워.
그러니까 후배를 키운다는 건 엄청 성숙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성숙한거예요.
모세는 적어도 이런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하는 기쁨’과 ‘보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수준있는 말을 알아듣나 몰르겄어요.
우리는 ‘하는 기쁨’만 알지 ‘보는 기쁨’을 몰라.
하는 기쁨은 뭐냐 내가 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근데 누가 하는 것을 ‘보는 기쁨’은 없단 말이여.
우리는 자기가 하는 프로그램은 보는데,자기가 봐야할 프로그램은 안가버려.
지가 출연하는 기쁨만 알지 관람하는 기쁨을 모른단 말이여,
성숙은 하는 기쁨도 중요하지만, 보는 기쁨
예를 들면 모세는, 내가 가서 쳐부수는 것도 기쁘지만,
여호수아가 가서 쳐부수는 것을 기쁘게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는 거지요.
그게 바로 후계자 양성입니다, 시켜놓고 기뻐할 줄 아는.
근데 우리는 그 기쁨이 없으니까, 놀려고를 안해요.
우리는 보는 기쁨을 볼 줄을 모르니까, 하는 기쁨만 알기 때문에 놀려고를 안해요.
사울이라고 하는 왕이,
처음엔 잘 나가다가 하나님 말씀대로 못사니까, 힘이 점점 빠져가니까 골리앗이 커졋어요.
꼭 명심하세요. 골리앗이 커진게 아니고 내가 약해진 겁니다.
“아 목사님, 요즘 마누라 못 이깁니다. 엄청 세졌습니다”
똑바로 아세요. 마누라가 세진게 아니고 당신이 약해진거요.
집에 들어올 때부터 초판에는 이기게 들어와,“여보, 이봐 네 엄마 어디갔냐”
벌써 이기게 생겼어요. 소리가
근데 40년이 훌떡 넘어가면 소리가 틀려져, “엄마 있냐?”
그 힘 가지고 어떻게 이겨, 여자는 독이 올라가는데,
아내가 세진게 아니라 내가 약해진 것이다,
그게 무거워진게 아니라니까, 내 힘이 빠진거지,
병이 쎈게 아니라 저항력이 떨어진거라니까,
역기가 왜 이렇게 무거워졌어. 무거워진게 아니야, 내가 힘이 빠진 거지. 똑바로 알어,
여자가 쎄진게 아니라니까, 내가 힘이 빠진거지.
아무리 여자가 쎄도 더 쎄봐 “어디 ~ 확~죽여뻐릴 깍~”
블레셋이 강한 게 아니라 사울이 왕이 힘이 떨어진거지요.
그 때 다윗이 나가서 골리앗을 쳐부수지요.
골리앗이 키가 2미터 90입니다.
그 사람은 시대를 잘 못 타고 났어, 요새 났어야돼, 요새,
요새 나오면 그냥 MBA주전입니다.
시대를 잘못타고 났어, 근데 그 때도 괜찮아요. 그때는 힘으로 사는 시대니까.
원췌 큰 거구니까.
근데 사울은 보고 기가 팍 죽었어요. 못이긴다.
근데 다윗은요. 나가면서
“저것 이깁니다. 저거 크니까요. 아무렇게나 던져도 맞아요”
그게 바로 대기업의 약점이죠.
대기업은, 다 이길 것 같아도요. 야물딱스런 소기업이 거의 대기업이길 수 있어요.
그게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그리고 우리나라가 왜 좋으냐, 옛날에는 큰 나라가 좋았는데 지금은 야물딱스런 나라가 좋아요.
지금 부동산 정책이요. 논 백필 사놓는 것보다 명동에 요지땅사서 건물 세받는게 나아요.
옛날에는 큰게 좋았는데, 요즘은 짭짤한게 좋아요.
우리나라 팔면 호주 다섯 개 사, 미국 절반을 사고,
우리는 상업용지, 그곳은 전답,
우리나라는 휴대폰이 안 터지는데가 없어, 지리산 노고산에도 “여보세요?”
독도에도, “짜장면 시키신 분”
미국은 그렇지 않아, 미국은 엄청 넓어서 우리나라 만큼 좋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큰게 꼭 좋은게 아니라, 적어도 비싼용지, 상업용지. 우리나라가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런데 참 감사한거죠.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어요. 여자들이 가만 있어야 되는데. 이 푼수같은 여자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고것 때문에 평생 사울의 일과가 뭐냐,
다윗 잡아죽이려고 쫒아 다니다가 끝났어요. 인생이.
이 사울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약점이 뭐냐?
다윗이 하는 역할을 보면서 즐길 줄 아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죠.
다윗이 막 전쟁에서 이기고 오는 것을 다윗이 즐길 줄만 알았다면,
사울의 인생은 엄청 편하고 좋았다구요.
근데 하는 기쁨만 알았지 보는 기쁨이 없는,
이 민족에게 있어서, 특별히 교회 안에 마찬가진 것은 정치도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보는 기쁨이 없어요,
여러분, 후배가 나가서 막 이렇게 커가면 그거 기쁘게 보아야합니다.
어차피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니까.
어차피 퇴직하고 가야잖여?
우리 선배때는 퇴직을 땡겨야 되고 내 때는 늘려야 됩니까?
그런 도둑놈 맘보가 어딨어요? 이런 일관성있는 마음이 어딨냐고? 그건 똑같이 규정을 해야지,
그러면 어차피 간단말이여, 한세대는 가고 한세대는 왔을 때, 서로 즐기면
“저 사람 내 밑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내가 키워놨더니, 잘해, 잘해”
그러면 본인도 신나고 나도 좋으련만, ‘자식 시켜놨더니 꼴불견이네,저거’
그럼 나간 나도 불행하지만, 큰 그사람도 얼마나 불행하겠냐 이말이지요.
근데 우리 민족전체가 그래요.
어려운 얘깁니다만 아주 성숙된 얘기라서 제가 얘기합니다.
보는 즐거움도 즐거움이고, 하는 즐거움도 즐거움인데,
보는 즐거움을 우리는 좀 갖자,
후배목사가 커서 잘하는 것을 즐길 수 있을 때
사울왕은 그것만 알았다면요,
(아~ 나 이설교 사울왕에게 해야 되는데 죽어뻐려가지고 할 수가 있어야지)
다윗은 전쟁에 한 번도 진적이 없어요.
그러면 그걸 “어 이놈자식, 또 이겼네” 사위잖아, 사위
그랬으면요. 그 부가 다 상납되었을 텐데, 시기땜에.
이해가 되는 건,목사의 세계에서도,
목사가 아버지가 아들한테 물려준 사람도 있고, 아버지가 남한테 물려 준 사람도 있고,
아버지 아들 다 쫓겨난 사람도 있고, 막 교계도 복잡혀, 안 물려주고 계속 가는 사람도 있고,
교계도 복잡해.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사람 얘기를 들어보니까
목사님,목사님 하다가 아들로 바뀌니까, 교인들이 “목사님, 목사님”하는데 눈알이 확 뒤집어 지더래요. 누구한테 줬는데,아들한텐데도.
야! 부자지간에도 용납하기가 어려울 때, 남 줘놓고 저게 용납이 될까?
그만큼 우리 마음이 하는 즐거움만 안다는 거지요. 보는 즐거움을 모르고,
그러니 남한테 어떻게 주겠어요.
그런데 이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괜찮은데, 너무 안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
대표적으로 사울왕이죠.
근데 모세는 여호수아가 막~ 할 때 모세는 그걸 즐긴다는 거예요.
모세가 가면요. 계속 전쟁 해야 되는데 그 때 모세의 나이가 120살입니다.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씩 마지막 일곱바퀴를 돌을 때,
가서 그냥 천당이 아니여, 여리고는 막 내려야 돼, 가나안 일곱족속을.
그 120살 먹은 할아버지가 계속 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과욕이죠, 노역이죠,
모세의 성숙함은 하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을 겸직한 사람이고,
사울왕의 실패는 하는 즐거움만 알았지, 보는 즐거움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보는 즐거움,
아 맘은 급하고, 40분까지는 끝내야 되고, 점심 먹어야 되니까.
그래도 이렇게 많이 말할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야, 사실은.
한 마디만 똑부러지는 얘기 들어도 보람이 되는 걸, 뭔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할려고..
이것도 하는 욕심이야,
그래도 또 언제 오겠어 내가? 그러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온김에 얘기 하려고 하는데,
이말이 들으면 이말이 맞고 저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데,
그래도 더 맞는 말이 있고 덜 맞는 말이 있고,
여러분은 방송사에 근무하고 또 교회가면 봉사하시는 분들이니까 그 ‘보는 즐거움’
감사의 절기는 해마다 한번씩 우리가 지키는데 여러분 마음속에 정말 주님을 향한 감사가 있기를 바래요. 그게 본질이거든요,
그 본질 속에서 적어도 감사절이 즐거웁기를 바래요.
감사절이 부담된다는 얘기는 여러분이 지금 변질 된겁니다.
‘주님, 정말 감사해요. 지난 한해 동안 이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주시니 참 감사해요’
그리고 그 마음 속에서 많든 적든 감사예물이 드려질 때 완벽한 거예요.
그런데 체면 때문에 한다던지, 아니면 감사 주일날 감사헌금 하기 싫어서 주일날 일부러 놀러가고 빠진다든지 하면 아주 고약한 성도예요. 가다 얻어 터진 성도예요.
그래서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또하나, 꼭 하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하는 즐거움만 누리지 말고 언젠가는 우리도 놓아야 할 때, 보아야 할 때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데,
우리가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게 딱 한가지 있어요. 공통점이
그것은 손자 예뻐하는 것,
혹시 손자 있는분 있습니까? 그렇지 손자를 볼정도 되면 여기 앉아있기가 어렵죠.
근데 손자가 얼마나 귀엽느냐,
아들은 몰라, 아들은 부담스러워,키우느라고 내가 책임지니까, 근데 손자는 내 책임이 없어,아들 책임이니까.
왜 그런 프로가 있었어. 코미디에,
할아버지,아들, 손자 3대가 사는데.
손자가 막 우는 거야, 그러니까 아빠가 “할아버지가 때렸어”
막 가더니 자기 아버지 앞에서 자기를 막 때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너 왜그래“하니까
아 아버지가 내 새끼 패는데, 내가 아버지 새끼 놔둘 것 같아요.
근데 이렇게 손자를 딱 나면
내가 어떤 목사님에게 들은 얘긴데,
자기는 자기 마음속에 사랑이 없는 줄 알았데.
아내나, 자식이나, 교인이나, 사실은 그냥 의무로 했지, 애절한 사랑이 없었답니다.
근데 자기가 깜짝 놀란건,
내 속에서 이런 사랑이 있다는 걸 발견시켜준 것이 손자여,
미치겠다는 거여,이뻐서, 근데 그것은 거의가 대부분이 그러더라고.
손자가 이쁜게 아니라 그가 손자를 향한 사랑이 있다는 거요.
모세는 여호수아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하는 일을 기뻐한거야.
사울은 다윗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보는 즐거움은 사랑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 속에는 한 마디로 사랑이 없어.
있다면 자기만 사랑하는 사랑이 있어요.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해요.
우리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요.
딱 남을 하나 사랑한다면 마누라는 사랑안하고 손주만 사랑해.
딱 사랑한다면 신랑도 사랑 안하고 자식만 사랑해.
그래서 사랑의 본질 그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추수감사절이 되지 않겠는가? 기도하십시다.
첫댓글 장경동 목사님말씀 첨 들었는데, 너무 재밌으십니다./ 오늘은 컴이 고장나 ~소리가 작게 들려서 오늘 왠종일 이것저것 고치려다가 힘만들고,,아무것도 못하고,,뭐 사운드 드라이버를 깔아야 한다나요.빨리 마쳐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할 것은 많은데....
(아~ 나 이설교 사울왕에게 해야 되는데 죽어뻐려가지고 할 수가 있어야지) 나도 이렇게 말많이 하려는 것도 욕심이야,'하는 욕심' 한마디만 똑부러지게 해도 되는 걸 ~뭔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할려고,//본질(사랑)도 없는 남편이 바람펴서 미안해서 사다준 반지(현상)가 뭐가 좋냐 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