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소스 왕조(Hyksos Dynasty)의 이집트 지배 시대
“전차(戰車)와 강궁(强弓) 기술 개발해 군사 강국으로 등장해”
사관 마네토(Manetho)에 의하면 셈족 계열의 유목민족인 힉소스(Hyksos) 족의 이집트 지배시대의 왕조를 제15, 16왕조 시대로 구분하였다.
힉소스라는 말의 뜻은 히카우 코스웨트(hikaukhoswet), 즉 ‘사막의 왕자’라는 말인데 마네토가 인용한 그의 이집트의 역사(History of Egypt)에서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 대한 마네토의 전승(tradition)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아피온에 대한 반론(Against Apion)에 길게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고대 이집트에 닥쳐온 위기의 시대였던 힉소스의 식민통치시기를 그리이스계 이집트인이었던 사고의 한계를 참고하여 기록하였을 것이다. 특별히 12왕조 시대의 귀족이었던 크놈호테프 2세(Khnumhotep Ⅱ)의 무덤에 그려진 아시아의 셈족계열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힉소스인들은 기원전 18세기말에 이르러 그들의 수도였던 아바리스(Abaris)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나간다. 이 시기에는 창세기의 요셉 시대 이후부터 모세 출생까지의 약 430년의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성경계시는 침묵을 지켰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마네토가 열거하는 힉소스의 다섯 왕(셰시:Sheshi, 야쿠브헤르:Yakubher, 키안:Khyan, 아페피 1세:ApepiⅠ, 아페피 2세:ApepiⅡ)이 통치하던 시기(1663-1555 BC)였다. 이들은 108년을 통치하였는데 개별 통치자들의 재위기간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동쪽 스텝지역에서 이주하여 온 힉소스인들은 당시 이집트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던 ‘말을 사용한 전차’ 등의 월등한 신무기들로 무장한 체 델타지역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도시들을 불태우고 신전들을 파괴하였으며 이집트인들을 잔인하게 살육하였으며 또한 그들을 노예로 혹사시켰다.
이집트 전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힉소스인들은 곳곳에 지역 관리들을 임명하고 조공을 받음으로써 하이집트는 힉소스인들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인, 아시아인 등 셈족계열의 이주가 델타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마 이 시기에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해가 더하여 갈수록 번성하였을 것이다.
세소스트리스 왕조(혹은 세누스레트:Senusret) 시대에 이집트로 이주하여 왔던 야곱의 후손들은 힉소스 통치시기에 더욱 많은 정착 농경민들로 번성하였다. 세소스레트 3세(SesostrisⅢ, 1878-1841 BC)는 문민정책으로 백성들의 복리정책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왕권중심의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동기가 되었고 이틈을 틈탄 유목민족인 힉소스 족이 이집트를 점령한 것이다. 같은 샘족계열인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힉소스 지도층의 반발을 능히 상상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을 예상할 수 있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기원전 18세기는 특별히 팔레스타인 지역을 비롯한 스텝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는 시기였기에 이들의 델타지역 이주는 어쩔 수 없는 생존을 위한 선택의 한계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들 이스라엘인들을 비롯한 셈족인들은 상이집트까지 진출하였는데 이곳에 정착한 그들은 요리사, 양조업, 포도원지기 등 각종 직업에 종사하였다.
셈족의 족장들 중에는 뛰어난 장인들이 많았으며 수많은 용병들에 의해 각종 신무기들을 개발하는 기술자들을 배출하였다. 이 시기에 이집트인들은 상상도 못할 말(馬)을 다루는 기술과 전차(戰車)들을 힉소스인들이 개발하였으며 정밀한 강궁(强弓) 기술 등을 개발하여 군사력을 확장하는 정보들을 이집트에 유입시키는 동기를 만들어 주었다.
델타(Delta)지역의 아바리스(Abaris)에 정착하였던 힉소스 족들은 데베 남쪽 게벨렌(Gebelen)에 신전을 두고 있는 세벡(Sebek:악어)을 숭배하였다. 통상적으로 제15왕조를 위대한 힉소스 시대(Great Hyksos)로 16왕조는 작은 힉소스 시대(Small Hyksos)로 불린다.
현재 델타지역의 아바리스(Abaris)에는 힉소스시대의 고고학적 유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게 힉소스의 유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힉소스 족들을 몰아내 낸 후 이들 유목민들에 의해 지배를 받은 시기를 치욕의 시기로 평가하였던 이집트 지도층 계급에 의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학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힉소스 왕들이 하이집트를 다스리고 있을 때 상이집트에서는 제17왕조의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난다. 이들은 힉소스의 지배를 도전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힘을 기르면서 언젠가는 이들을 이집트에서 추방하기 위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힉소스의 아페피 1세(ApepiⅠ)와 데베의 바로였던 세케넨레타오(Seqenenre Tao Ⅱ, 1574 BC)에게 보낸 편지 일부가 발굴되어 해독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이곳 데베에는 하마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인하여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시오.”
이러한 편지의 내용을 보더라도 당시 하이집트를 지배하였던 아페피 1세가 북 이집트를 다스리던 세케넨레타오를 향하여 협조를 요구한 것만 보아도 그 시대의 정황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세케넨레타오 2세는 후일 힉소스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참혹하게 치명상을 입고 전사하였다는 전황을 그의 미이라를 통하여 알 수 있다. 1881년 다이르 알 바하리의 왕실 보관소에서 발견된 그의 미이라에는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흔적을 볼 수 있다.
마침내 그의 아들 아흐모세(Ahmose Ⅰ, 1570-1546 BC)가 힉소스를 몰아내고 제18왕조를 탄생시켰다. 상이집트는 힉소스 족들에게 조공을 바치면서도 힉소스 족이 소유하고 있던 말이 이끄는 전차와 강궁 기술 등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첨단 무기의 신기술을 배우면서 서서히 이들을 물리칠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바로 아흐모세 1세였다.
이런 격동기를 지내면서 출애굽의 아침은 멤피스 온 등에 위치한 고센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에 의해 서서히 밝아져 가고 있었다.